[오계이야기] 2. 불투도(不偸盜) – 투도의 과보

중생이 끝없는 죄업을 짓게 되는 근본원인은 무명(無明)에 있다.

하지만, 그 무명심을 분석적으로 규명해 보면 크게 탐욕심과 분노심과 우치심으로 나눌 수가 있으며, 이들 셋 가운데에서 탐욕심이 더욱 근본이 된다. 탐욕심은 소유하고자 하고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탐하던 것을 소유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 분노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된다.

내가 가지고자 하는 것, 내가 누리고자 하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분노하게 되고, 분노가 커지면 욕도 하고 싸움도 하고 살생까지 저지르게 되니, 이와같은 그릇된 행위가 모두 탐욕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탐욕이 마음을 덮으면 자연히 지혜가 흐려지고 온갖 죄업을 짓게 되는 것이니, 탐욕이야말로 온갖 죄업의 근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탐욕의 결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상(無常)이요, 끝없는 죄악의 굴레이다. 결국 도둑질을 하게끔 만드는 투도심도 탐욕심에 바탕을 둔 것으로, 탐욕의 극치의 투도는 우리의 불성 속에 깃들어 효순심과 자비심을 외면하는, 죄악 가운데 근본이 되는 행위인 것이다.

살생이나 망어 등의 죄업 또한 그 근원을 추구해보면 결국 탐욕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아무리 악한 존재라도 무단히 사람을 죽이는 법은 없다.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어떤 동기가 있기 때문에 살인을 하는 것이다. 망어 또한 그 수단에 있어서는 살생보다 조금 나은 것이지만, 그 동기는 탐욕을 충족시키고자 하는데 있는 것이다.

결국 투도를 중요한 계목(戒目)으로 제지하게 된 까닭도 도둑질이 탐욕심을 더욱 조장하는 죄악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탐욕으로 지은 죄업에는 반드시 지엄한 과보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제 도둑질하고 사기치고 남의 재산을 빼앗는 투도의 없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우쳐 주는 한 편의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6.25 사변 직후의 일이다. 금강산에 계시던 이혜명(李慧明) 스님이 부산을 피난을 오셨다. 이 스님은 경전에도 밝을 뿐 아니라 재를 지내는 등의 각종 의식이나 범패도 잘하셨다. 그래서 흔히 ‘팔방미인 큰스님’으로 불리었던 분이다.

이 스님은 한 때 중국의 불교성지를 두루 참배하고 명승지를 구경하였다. 한 번은 중국 상해의 큰 공원을 들렀더니 공원 한쪽 편에 까만 소 한 마리가 있고 사람들이 신기한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스님도 이상한 호기심이 생겨 소 앞에 세워 놓은 게시판을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그 간판에 적힌 글이 더욱 신기하더라는 것이다.

“지나가는 남녀노소 여러분들이여, 이 소의 배를 보시오…….” 하고 장광설(長廣舌)을 늘어놓았는데 그 내용을 이러하였다.

상해 근처에 큰 부자가 한 사람 있었다. 그 사람은 어떤 이유 때문에 죽마고우(竹馬故友)인 왕중주(王中主)에게 자신의 재산을 관리해 주도록 부탁하고 상당한 대우를 해 주었다.

그리고 왕중주에게 등기서류뿐만 아니라 인감도장까지를 모두 맡겼다. 그런데 왕중주가 친구의 은혜로운 부탁을 등지고 합법적으로 모든 재산을 가로채었던 것이다. 하늘처럼 믿었던 친구가 자기 재산을 가로채었던 것이다. 하늘처럼 믿었던 친구가 자기 재산을 교묘하게 사취(私取)한 것을 알게 된 부자는 분한 마음을 이길 수 없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재산을 다 빼앗기고 거지가 되다시피 한 그는 조금 남은 패물을 팔아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를 짓게 되었고, 논과 밭을 갈 암소를 한 마리 사서 길렀다. 몇 해가 지나자 암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그 새끼 배에 글씨가 몇 자 새겨진 흔적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자기를 배신했던 철천지원수(徹天之怨 ) 왕중주의 이름 석 자가 아닌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알아본 결과, 왕중주가 얼마 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한으로 가득 차 있던 그는 생각했다.

“그 원수가 죄값을 하려고 내 집에 태어난 것이구나……. 이놈! 잘 만났다. 사람이 죽으려면 3년 전부터 환장한다는 말은 있다만, 너처럼 환장한 놈은 일찍이 보지 못하였다. 네가 죽어 이제 빚을 갚으러 온 모양이다만, 송아지로 내 집에 태어난 것만으로 나의 분하고 원통한 빚을 다 갚는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이제부터 네놈에게 원수를 갚을 터이니 견뎌 보아라.” 이렇게 다짐을 한 그는 아주 모질고 기이한 방법을 생각해내었다. 그는 왕중주의 후신인 송아지를 가두어 놓고 끼니때마다 먹을 것을 주었다. 그러나 밤중이 되면 촛불을 밝혀 놓고 시퍼렇게 간 칼을 들고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매여있는 송아지 목에 큰 칼을 들이대고는 살기를 띤 음성으로 속삭였다.

“네 이놈! 왕중주, 이 나쁜 놈!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더냐? 네놈이 이리와 같은 놈이었으니 그런 짓을 했겠지. 이놈아! 지금 당장은 내 너를 죽이지 않는다. 조금 더 키워서 잡되 그것도 단번에 죽이지 않을 것이다. 네 놈이 보는 앞에서 숯불을 피우고 시퍼렇게 칼을 갈아 하루에 살 한점씩만 베어낸 다음, 네놈이 보는 앞에서 구워 술안주로 삼을 것이다. 네 이놈! 단단히 들어두어라.”

그는 이 일을 매일같이 계속하였다. 그러자 왕중주의 이름이 새겨진 송아지는 비쩍 마르기만 할 뿐 자라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동안을 지내고 있는데, 하루는 왕중주 아들이 느닷없이 찾아와서 마당 한가운데 넙죽 엎드려 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어르신네, 제발 널리 용서해 주시옵고 우리 아버지만 살려 주십시오 재산을 돌려드림은 물론 영감님 뜻대로 하겠습니다. 부디 아버지만 살려 주십시오.”

아들은 수없이 절을 하면서 간청하였다.

“나는 지금 꼭 돈만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너의 아버지 소행이 너무나 괘씸해서 분함을 참을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너는 어찌된 일이냐? 어떻게 이 사연을 알게 되었느냐?”

“저희 선친이 어르신네의 은공을 저버리고 사취한 것은 저도 어느 정도 짐작은 했사오나 자세히는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여러 달 전부터 어머니가 저의 꿈에 자주 나타나시어 그 동안 죄를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르신네의 소로 태어나 죄값을 갚으려 하지만, 그 죄가 워낙 크기 때문에 소의 몸을 버리고 나더라도 다시 무서운 지옥으로 떨어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의 괴로움도 괴로움이거니와 재산을 어서 돌려 드려야만 당신의 죄를 벗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선친이 살아생전에 자세한 내용을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당신의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가족들이 아는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었고, 저희들이 그 내용을 알면 떳떳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르신네께서 계신 이곳을 꿈속에서 일러주셨습니다.

이제 저희가 모든 재산문서를 이렇게 가지고 와서 사죄를 드리오니, 널리 용서하시옵소서. 부디 이것을 거두어 주시고 저희 아버지를 돌려 주시기만 하면, 그 은혜 백 번 죽어도 잊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는 지극정성으로 간청하는 아들의 효심에 감동하여 재산을 되돌려 받고 송아지를 내어 주었다. 왕중주의 아들은 아버지의 후신인 송아지를 데리고 가서 음식도 잘 대접하고 각별히 보살폈다. 그리고 다 자란 다음에는 공원에다 좋은 우리를 지어 놓고 아침 저녁으로 정성껏 여물을 쑤어 대접하면서, 오고가는 만천하의 사람들이 이 소를 경각심을 일으켜 인과를 믿고 선행을 닦으라는 뜻으로 사연을 쓴 안내판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나뿐만이 아니라 여러 스님들이 혜명스님께 직접 들은 것이다. 도둑의 과보가 실로 무섭고 어긋남이 없어서 이 인과를 확실히 아는 사람은 참으로 바르게 살지 않을 수 없다. 설사 부모의 재물, 자식의 재물일지라도 그것을 몰래 썼다면 도둑질에 대한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삼보의 물건이나 부모의 물건을 훔친 죄는 일반인이나 관리의 물건을 훔친 죄보다 더 무겁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은혜를 저버리는 것, 그것이 일반적인 투도죄 위에 더 보태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나의 저서인 <윤회와 인과응보 이야기>에서 자세히 밝혀 놓았기에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日陀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