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관(不淨觀)
부처님 당시에도, 부처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에도 나를 떼기가 하도 어려운 것이니까, 우리 수행법 가운데서 일반 대중한테 제일 말씀을 많이 하신 방편법문(方便法門)이 부정관(不淨觀)이나 또는 수식관(數息觀) 즉, 호흡관입니다.
우리 중생은 원래 욕계산지(欲界散地)라, 욕계(欲界)에서는 마음이 고요하게 하나로 모아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욕계를 산지(散地)라고 합니다.
우리 중생들은 욕계산지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참선하기가 참 어려운 것입니다. 앉으면 그냥 천 만 가지 생각만 나부낍니다. 우리 중생이란 산란스런 마음을 일으키도록 되어 있기에, 욕계는 산지인 것입니다. 그런 중생들인지라 좋은 법문을 해도, 내가 없다고 해도, 좀체 알아 듣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부정관(不淨觀)이라, 이런 몸뚱이는 아주 더럽다고 부정관을 하면 그때는, 내가 없는 것을 조금 더 깊이 느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정관은 내 몸뚱이가 맑지가 않고 청정하지 않다고 관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고집할 때는 ‘내 몸뚱이가 아주 귀엽구나, 눈이 곱구나, 입이 곱구나, 모두가 곱다’ 하는 것이고 남녀 이성관계도 그런 데서 오는것인데, 부정(不淨)을 느끼면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一. 관자신부정(觀自身不淨)…구상관(九想觀)
부정관의 처음엔 관자신부정(觀自身不淨)이라, 먼저 내 몸이 부정(不淨)한 것을 관찰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구상관(九想觀)이라, 아홉 가지 관법이 있습니다.
‘내 몸이 어째서 더러운 것인가? 내 몸이, 이것이 천한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관법입니다
하나에는 사상(死想)이라, 죽는 모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회자정리(會者定離)요, 만나면 정녕코 반드시 헤어지고,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한번 삶이 있는 것은 다 꼭 죽지 않습니까, 따라서, 비록 내가 지금은 죽음을 안 당했지마는 여러 사람들 죽음도 보았으니까 죽음을 생각할 수는 있지요. 죽음을, 죽는 순간을 생각하는 것이 사상(死想)인 것입니다.
죽을 때 모습보면 참 정말로 가엾은 것입니다. 평소에 장관이니 또는 누구누구니 할 망정 죽을 때는 비참한 것입니다. 죽어서 어디로 갈 곳도 모르지만, 죽는 모습도 아주 고통스럽습니다. 단말마(斷末魔)의 고통이라, 빈손으로 허공을 마구 휘젓고 굉장히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물론, 염불 많이 하고 참선 많이 하여 마음이 가라앉은 분들은 그냥 미소를 띄우며 기쁜 마음으로, 마치 쉬러가는 기분으로서 가는 것입니다만 그렇지 못한 분은 굉장히 고통을 느낍니다. 누구나 죽고 마는 것이니까 이렇게, 죽는 모습을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다음에는 창상(脹想)이라,
이것은 배부를 창(脹)자입니다. 우리가 죽은 다음에는 그냥 몸이 퉁퉁 붓습니다. 죽은 다음 바람기만 들어가도 송장은 그냥 부어오르는 것 보십시요. 생명이 있을 때 비로소 이런 몸인것이지 생명이 떠나버리면 그냥 몸은 붓고 달라지는 것입니다. 몸이 부어 놓으면 아무리 미인(美人)이라도 그때는 미인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몸이 부어올라서 추악한 그런 모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셋째로 청어상(靑瘀想)이라,
푸를 청, 멍들 어자입니다. 몸이 부어서 시푸르뎅뎅하니 멍들어 보인다는 말입니다.
좀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십니다마는, 우리같이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인공(人共) 때 죽은 송장을 많이 봤습니다. 길거리에서도 많이 보고 전쟁가서도 많이 본 셈입니다만, 그런 것을 보면 그야말로 참 무서운 것입니다. 아무리 잘낫다고 하더라도 한번 죽어진 그때는 그 몸이 더럽고 결국은 무서운 것으로 바뀌고 맙니다. 부르터서 탱탱 불어 있는 모습 또는 시푸르뎅뎅 멍들어 있는 모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농란상(膿爛想)이라,
고름 농자와 데어 터질 란자 입니다. 피고름이 터져서 더러운 모습입니다. 데어 터져서 고름 나오는 것을 보십시요. 한번 죽은 사람들을 옮길려고 해서 묘소(墓所)를 파 보십시요. 냄새가 얼마나 진동하는가 말입니다. 우리는 출가(出家)하여 중이 된 몸이라서 사람 송장을 많이 파보고 염(殮)도 해보고 했습니다만, 확실히 그 죽은 시체를 파가지고 본다고 할 때는 굉장히 악취(惡臭)가 풍기고 보기가 흉합니다.
그 다음 다섯번째는 괴상(壞想)이라,
몸의 살이 뼈에서 전부 허물어지고 문들어지는 모습입니다.
여섯번째는 혈도상(血塗想)이라,
피 혈자, 바를 도자 입니다. 피나 고름이 온 몸에 범벅시켜서 몸을 바르고 적시는 모습입니다.
그 다음이 충담상(蟲啖想)이라,
벌레 충, 먹을 담 또는 씹을 담자 입니다. 구더기 벌레가 먹는다는 말입니다. 어떠한 송장이나 벌레가 안 먹는 것이 없습니다.
그 다음은 골쇄상(骨쇄想)이라,
뼈 골, 얼킬 쇄 또는 사슬 쇄자 입니다. 뼈가 이리 얼키고 저리 얼키고 한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분산상(分散想) 또는 소상(燒想)이라,
결국은 흩어지고 마는 것이요 태워버리면 재만 남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곰곰히 생각을 한번 해보십시요. 내가 얼마나 소중한가 천한가 말입니다. 실은 이것 밖에는 아닙니다. 우리 사람몸이란 것은 더 이상 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중생들이 하도 욕심을 내니까 부정관을 시켰던 것입니다. 부정관을 90일 동안 하더니만, 한 60명이 한번에 그냥 자기 몸을 죽여 버렸습니다. 말하자면 자살을 해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자비심으로 부정관 대신에 다시 호흡관을 시키셨다는 말씀도 있습니다만, 하여튼 그러나 지금 세상은 좋은 것이 하도 많이 나오고, 새로운 문자가 많이 나오니까 지금은 부정관을 많이 해야 이놈의 몸뚱이 천한 줄을 알아집니다.
二. 관타신부정(觀他身不淨)…오부정관(五不淨觀)
또 다음은 남의 몸에 대해서 부정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남녀관계의 욕정(欲情)같은 것은 보통 남의 몸이 좋다고해서 우리가 집착하지 않습니까, 남의 몸도 역시 내 몸과 같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관타신부정(觀他身不淨)이라,
남의 몸이 부정하다고 관찰하는데 오부정관(五不淨觀)이라, 다섯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종자부정(種子不淨)이라,
비록 지금 잘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역시 종자는 청정한 것이 못됩니다. 내나야, 어떠한 사람이나 자기 부모의 종자로 해서, 부정모혈(父精母血)이라, 아버지 정(精)과 어머니의 피가 합해서 안됩니까, 그러기에 청정한 것이 못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종자가 벌써 청정하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자아(自我) 끄트머리, 본질을 보면 다 부처겠습니다마는 거기까지 못 가서 생각할 때는 이렇다는것입니다. 근본바탕은 다 부처인데, 이것을 인간 차원에서 볼 때 우리 몸을 구성하는 종자가 청정하지 못해 있습니다.
그 다음은 주처부정(住處不淨)이라,
종자가 사람 몸이 되어서 어머니 태 안에서 크는데 그 어머니 태 안이 청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 창자가 있고 그 안에서 태아가 크면 그 주처가 청정하지 못하고 말입니다.
그 다음은 자상부정(自相不淨)이라,
태 안에서 크는 태아의 모양이 또 청정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가사, 몸에는 아홉 구멍이 있어 가지고 대소변이나 기타 침이나 땀, 그런 더러운 것이 유출(流出)되어 나오는 것 입니다.
또 자체부정(自體不淨)이라,
사람 몸의 부정한 것을 불교에서는 보통 삼십유물(三十六物)로써 말을 합니다. 머리, 머리카락, 뼈 또는 피부, 손톱, 발톱 등 부정한 것을 주로 간추려서 삼십육물(三十六物)로 풀이합니다. 그와 같이, 우리 몸은 자체가 부정이라, 이런 부정물(不淨物)로써 우리가 합성(合成)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종자부터서 부정물(不淨物)이 되어 가지고 어머니 태 안에서 부정(不淨), 모양도 부정(不淨), 또 그 자체의 구성물도 부정(不淨), 사뭇 이렇게 부정물이 되어서, 종경부정(終竟不淨)이라, 마침내 끝까지 부정하다는 말입니다. 어찌그런고 하면, 이 몸이 죽어서 갖다가 묻으면 결국은 매즉성토(埋卽成土)라, 묻어버리면 흙이 되는 것이고, 충담즉성분(蟲啖卽成糞)이라, 벌레가 씹어서 먹으면 똥이 되는 것이고, 또는 화소즉성회(火燒卽成灰)라, 불로 태우면 재가 된다는 말입니다.
끝내 추구(推求)해 본다고 할 때 결국은 정상(淨相) 곧, 깨끗한 모양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내 몸 부정과 또는 우리가 집착하는 남녀의 상에 대해서 집착을 풀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淸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