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암장로(幻庵長老)의 산거(山居)에 부침

1.

온갖 경계 그윽하고 조도(鳥道)는 평탄하여
마음에 걸리는 일, 한 가지도 없네
이 몸 밖에 다른 물건은 없고
앞산 가득 구름이요 병에 가득 물이로다

2.

자취 숨기고 이름을 감춘 한 야인(野人)이거니
한가로이 되는대로 세상 번뇌 끊었다
아침에는 묽은 죽, 재할 때는 나물밥
좌선하고 거닐면서 천진(天眞)에 맡겨두네

3.

몇 조각 구름은 경상(脛滅)을 지나가고
한 줄기 샘물은 평상 머리에 떨어지는데
취한 눈으로 꽃을 보는 사람 수없이 많건만
누가 즐겨 여기 와서 반나절을 함께 쉬랴

4.

외로운 암자 바깥에는 우거진 숲 고요한데
백납(百衲)의 가슴 속에는 모든 생각 비었으니
마음 내키면 시냇물가에 나가 앉아
물결 속에 노니는 물고기를 구경하네
懶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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