夫諸佛諸佛 藏嚴寂滅宮 於多劫海 捨欲苦行
衆生衆生 輪廻火宅門 於無量世 貪欲不捨
무릇 모든 부처님이 적멸궁에 장엄하심은, 오랜 세월 욕심을 끊고 고행하신 결과며,
중생들이 불난 집을 윤회함은, 한량없는 세상에서 탐욕을 버리지 못 했기 때문이다.
부처와 중생의 커다란 차이는 욕망의 차이이다. 탐욕을 모든 경전에서 염려하는 것은, 3독(탐,진,치)의 첫째로서의 이유도 있는데, 『제법무행경』에서는, “만약 사람이 성불하고자 한다면 탐욕을 지니지 말아야 한다.”고 설하고 있다. 지혜로운 수행자가 항시 분소의를 걸치고 하나의 발우로 살아가는 모습, 부처님의 칭찬이 거기에 있으며, 가득 찬 욕망이 온갖 괴로움의 씨앗임을 깨닫고, 이를 과감히 떨쳐버릴 때, 우리는 점차 부처님으로 변신해 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無防天堂 少往至者 三毒煩惱 爲自家財
無誘惡道 多往入者 四蛇五欲 爲妄心寶
막지 않는 천당에 가는 사람 적은 것은 삼독번뇌로 자기의 재물을 삼음이요,
권하지도 않은 악도에 가는 이 많은 것은 사사(四蛇)와 오욕을 헛되게 마음보배로 삼음이다.
천당이란 불교에서 말하는 육도(六道 : 천상, 인간, 아귀, 아수라, 지옥, 축생)가운데, 복이 제일 수승한 곳을 일컫는 곳이다. 그런데 이 하늘세계는 광범한 하늘의 왕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예를 들면, 세로로는 욕계(성욕과 식욕의 세계로 6천), 색계(식욕과 성욕을 여읜 세계로 18천), 무색계(물질이 없고 心識만 있는 세계로 4천)의 28천을 말한다. 또한 욕계육천의 제2가 도리천이며, 이 도리천이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의 정상에 있고, 제석왕의 천궁이 있음. 이 정상의 사방에 봉우리가 있고, 봉우리마다 8천이 있기에 33천이 가로로 있는 것이다.
사찰에서 대종을 칠 때, 아침에는 스물여덟 번을 울려 28천을 열고, 저녁에는 서른 세 번을 울려 33천을 닫는데, 이렇게 불교에서는, 하늘세계에 태어나는 것도 인간의 일이라는 것을 설하며, 또 천상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도(六道)를 들어, 자기가 행한 숱한 잘 잘못에 따라 여섯 가지의 길을 돈다는 윤회의 법칙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사(四蛇 : 인체의 구성요소인 지,수,화,풍 (地,水, 火,風) )과 오욕(五欲 : 재물, 색(신체를 포함한 물질성 성욕), 식, 수면, 명예(財,色,食,睡,名))은, 인간의 성립관계상 끊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나, 몸에 아무리 좋은 것을 먹이고 입혀야 큰 이익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대가 덧없고 항상하는 것도 아니면서도 그 몸에 집착함이 마치 독사와 같다하여 사사(四蛇)라 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사(四蛇)와 삼독(三毒)에 집착하면, 악도(惡道) 에 떨어짐은 너무나 당연하며, 때문에 권하지도 않았는데 많은 사람이 그곳을 간다 하는 것이다.
人誰不欲 歸山修道 而爲不進 愛欲所纏
然而不歸 山藪修心 隨自身力 不捨善行
어느 누가 산중에 들어 수도할 생각이 없으련만, 나아가지 못함은 애욕 때문이다.
그러나 산에 들어가 수행은 못해도 자신의 힘을 따라 착한 행을 버려서는 안 된다.
그러한 악도를 두려워하여 산중에 들어 수도를 할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이들과의 떨어짐이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애욕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애(愛)는 항상 있다(有)하여, 그 착각의 올가미로 해서, 너는 내 것이니까, 또는 내가 너를 이렇게 끔찍이 생각하니까,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한다며, 자기 자신의 기대감이 온통 그 사람(애인,부부,자식,친구등)의 집착에 빠져있는 것이다.
“애욕을 버리지 못하고 산에 들어 수행은 못해도 자신의 힘을 따라 착한 행을 버려서는 안 된다.”란 말은, 수행은 반드시 산에 들어가 하는 것만이 아니며, 세속에 있으면서도 자포자기 하지 말고, 자기가 세운 원력에 따라 동사섭과 같은 착한 일을 힘에 따라 해야 된다는 말씀이다.
법공 스님/동국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