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宋)나라 때, 시인이며 대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곽공보(郭功甫)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인물입니다. 이 사람을 잉태할 때 그의 어머니가 이태백의 꿈을 꾸었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를 이태백의 후신(後身)이라고 했는데, 뛰어난 천재였다고 합니다.
곽공보의 불교스승은 귀종 선(歸宗宣) 선사인데 임제종의 스님이었습니다. 어느 날 귀종 선 선사가 곽공보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앞으로 6년 동안 곽공보의 집에 와서 지냈으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곽공보는
스님께서 연세가 많긴 하지만 어째서 자기의 집에서 6년을 지내려 하시는지 알 수 없어 이상하게 생각 하였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안방에서 잠을 자다가, 문득 부인이 큰 소리로 “아이쿠, 여기는 스님께서
들어오실 곳이 아닙니다.”하고 소리치는 바람에 깨어났습니다. 부인이 꿈에 큰스님께서 자기들이 자고 있는 방에 들어왔다고 하는 말을 듣고 곽공보는 낮에 온 편지 생각이 나서 불을 켜고 부인에게 그 편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튿날 새벽, 사람을 절에 보내 알아보니 어젯밤에 스님께서 가만히 앉아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편지 내용과 꼭 맞았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곽공보의 부인이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편지를 보낸 것이나 꿈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귀종 선 선사가 곽공보의 집에 온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달리 지을 수가 없어, 귀종 선 선사의 ‘선(宣)’자 를 따고, 늙을 ‘노(老)’를 넣어 ‘선로(宣老)’라고 했습니다.
생후 일 년 쯤 되어 아이가 말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누구를 보든 ‘너’라고 하며 제자 취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법문을 하는데 스님의 생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어린애 취급을 할 수가 없어 모두 다 큰스님으로 대접하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아이의 엄마, 아버지도 큰절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소문이 났습니다.
당시 임제종의 정맥(正脈)을 이은 유명한 백운 단(白雲端) 선사가 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세살되는 어린애를 안고 마중을 나갔더니 이 아이가 선사를 보고 “아하, 조카 오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
생의 항렬로 치면 백운 단 선사가 귀종 선 선사의 조카 상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니 “사숙님” 하고 어린아이에게 절을 안 할 수 없었습니다. 백운 단 선사 같은 큰스님이 넙죽 절을 하였던 것입니다. 백
운 단 선사가 “우리가 이별한 지 몇 해나 됐는가?” 하고 물으니, 아이는 “4년 되지. 이 집에서 3년이요, 이 집에 오기 1년 전에 백련장에서 서로 만나 이야기하지 않았던가”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조금도 틀림없는 사실을 말하자 백운 단 선사는 아주 깊은 법담(法談)을 걸어 보았습니다. 법담을 거니 병에 담긴 물이 쏟아지듯 막힘이 없이 척척 받아 넘기는데, 생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
법담은 장황하여 다 이야기 못하지만 <전등록(傳燈錄)>같은 불교 선종 역사책에 자세히 나옵니다. 이것이 유명한 귀종 선 선사의 전생담입니다.
그후 6년이 지나자 식구들을 모두 불러 놓고는 “본래 네 집에 6년만 있으려 하였으니 이제 난 간다”하고는 가만히 앉아 입적 했습니다. 이처럼 자유자재하게 몸을 바꾸는 것을 격생불망(隔生不忘)이라고 합니
다. 아무리 전생, 후생으로 생을 바꾸어도 절대로 전생의 일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性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