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어집] 제3편 1장 영혼(靈魂)은 있다 03. 영혼사진(寫眞)

죽었다가 깨어난 사람들에 의해 영혼이 있다는 것은 확인되었는데 영혼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는가?

우리나라에서도 옛날부터 원혼(怨魂)이라고 하여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영혼이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옵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단순히 전설로만 이해하려 들지만, 사실, 우주과학 시대라는 요즘에도 그런 일은 더러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음의 사건은 1848년 3월 31일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미국의 뉴욕 주에 하인즈 빌이라는 촌락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마을에 독일계 사람으로 폭스라는 이가 이사를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폭스가 이사온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 때 폭스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가족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문 두드리는 소리에 그냥 들어오라고 소리쳤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가만히 있노라니 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가보면 아무도 없고 해서 나중에는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문 밖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기는 사람이 아니고 영혼이라고 말하면서, 이름은 로스이고 이 집에서 죽었는데 자기의 시신이 지하실에 묻혀 있으니 그것을 파내서 장례를 치루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었습니다. 폭스의 가족들은 놀라서 경찰을 불러 지하실을 파 보니 과연 시신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생각해 보니 폭스가 이사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지하실에 시신이 묻혀 있는 곳을 정확히 아는 것을 수상히 여겨 폭스를 연행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또 영혼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나를 장례까지 치러 주었는데 이렇게 고생을 시켜 미안하다고 하며 자기를 죽인 사람은 앞집에 살던 죠지백이라고 일러 주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이 다시 그 죠지라는 사람을 잡아 조사를 해 본 결과, 과연 그가 살인범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이야기가 전국에 퍼져나가자 사람들은 영혼은 과연 존재하고 인간이 영혼과 접촉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851년에는 영국의 캠브리지대학에서 심령학회가 조직되었으며, 그로부터 1세기도 더 지난 1972년 12월에는 미국 로체스터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하인즈 빌 사건’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울 것을 결의하여 뉴욕시 73번가에 8미터높이로 기념비를 세운 한편, 영혼의 존재에 대하여 활발한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영혼이 나타났다는 일화는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신문에도 몇 번 보도가 된 것입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 재임 시에 네델란드의 유리아나 여왕이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여왕은 백악관에서 묵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자기의 시녀인 줄 알고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문 앞에는 링컨 대통령이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터라 한눈에 그 얼굴을 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여왕은 그렇지 않아도 백악관에 영혼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실지로 그 장면을 목격하게되자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옆방의 시녀들이 비명소리를 듣고 뛰어나와서 여왕을 간호했는데 그때까지 링컨 대통령의 영혼은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녀들도 영혼을 보게 되었습니다. 만일에 여왕이 혼자서 보았다면 환상이나 착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시녀까지 함께 보았으니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날 아침 트루먼 대통령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역시 링컨 대통령의 영혼을 여러번 보았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에도 그 부인이 링컨 대통령의 영혼을 보았다고 증언한 적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거짓말이라고 하여 무시하기에는 너무도 증거가 뚜렷합니다. 그래서 자주 이런 일이 일어나니까 영혼사진을 찍어보자고 해서 사진을 찍어 신문에 보도한 적도 있습니다. 그 사진은 나도 본 적이 있는 데 링컨 대통령이 살아 있던 때의 모습과 완전히 똑같았습니다.

이렇게 영혼이 있다는 사실이 갈수록 뚜렷하게 증명되고 있습니다. 영혼을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그 특징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영혼은 모양을 드러냅니다. 그것을 여러사람이 봅니다.
둘째로, 영혼은 말을 합니다. 이 말하는 것도 여러 사람이 듣습니다.
세째로, 영혼은 사람 눈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짐승의 눈에도 보입니다. 한 예로 여러 사람이 함께 사냥을 나갔을 때에 영혼이 나타나면 말이나 개들도 겁이 나서 숨는다고 합니다.
네쩨로, 영혼이 물체를 이동시킵니다. 잠가 놓은 문을 연다든지 방안의 물건을 이리저리 옮겨 놓기도 합니다.
다섯째로, 영혼사진을 찍는 것이 가능합니다. 영혼을 보았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이 있지만 그래도 그것을 믿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영혼을 사진으로 담는 데에 성공했다면 믿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영혼사진이 최초로 성공한 것은 지금부터 일 백여년 전인 1861년 미국 뉴욕시에 살던 멈러Mumler 씨에 의해서입니다. 멈러 씨가 하루는 교외에 가서 풍경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현상을 해 보니
나무 밑에 어떤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사진을 찍을 때는 나무 밑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뒤에 멈러 씨는 다시 그곳에 가서 사진을 찍으면서 주위를 두루 살피어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상을 해 보면 역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 차례 반복을 해 보았으나 늘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멈러 씨는 너무 이상해서 그 사진을 들고 인근 주민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사진에 나타난 사람은 5년 전에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멈러 씨는 그래서 이번에는 주민들과 함께 다시 그 자리에 가서 사진을 찍어 보았는데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로 말미암아 멈러 씨의 사진은 영혼사진이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영혼사진사로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사진을 찍기도 하였습니다.

하루는 친달 부인이라는 여자가 그에게 와서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현상을 해 보니 부인의 어깨에 양손을 얹고 있는 링컨 대통령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에게 물어 보았더니 자신이 링컨 대통령의 미망인이라는 것입니다. 사진을 찍기 전에 미리 링컨 대통령의 미망인이라고 하면 링컨 대통령의 사진을 구해다가 거짓된 영혼사진을 찍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해서 그 부인은 신분을 숨기고 얼굴까지 가리고 사진을 찍었던 것입니다. 그 뒤로 멈러 씨는더욱 유명해지고 큰 돈도 벌게 되었다고 합니다.

멈러 씨가 이렇게 유명해지자 정부 당국에서 조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에까지 올라가게 되어 마침내는 과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언론인까지 동원시켜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조사단은 멈러 씨와 함께 그가 처음으로 영혼 사진을 찍었던 곳에 가서 다시 사진을 찍게 한 뒤에, 모두가 엄중하게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현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영혼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법원도 그의 사기혐의에 관해 결국 무죄판결을 내렸습니다. 이것이 멈러 씨의 영혼사진 사건인데 1869년 4원 22일 자 뉴욕타임즈에 상세히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영혼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는 직접 사진을 찍는 데에 성공한 사람도 있는데, 그가 영국의 허드슨 William Henry Hudson입니다.

그 당시에 월레스 A. Wallacc(1823~1913)라는 유명한 박물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다아윈과 같이 진화론을 주장한 사람입니다. 월레스는 허드슨의 영혼사진 이야기를 듣고 허드슨에게서 자기도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의 사진에 죽은 어머니의 모습이 함께 찍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월레스는 그 사진을 보고 영혼사진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정식으로 학계에 그 사진을 첨부해서 보고서까지 제출했다고 합니다. 월레스와 같은 대과학자가 영혼사진에 대해서 거짓으로 증언할 리가 없으므로, 이것은 믿을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대체로 영혼사진을 찍으면 거기에 나오는 영혼이 어느 때, 어느 곳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영국의 호우프 Hope(1863~1933)라는 사람은 신분이 확인된 영혼사진을 무려 삼천 장이나 촬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쯤 되면 그 누구도 영혼사진을 무시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이며 과학자인 크룩스 Sir William CrooRes(1832~1919)도 호우프에게 가서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사진에 자신의 죽은 부인이 함께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크룩스 씨도 영혼사진이 결코 거짓이 아닌 사실임을 증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이 영혼사진은 많은 사람이 직접 찍고 또 이름난 과학자나 저명인사들이 그것을 직접 확인하고 나서 스스로 증언까지 하게 됨으로써, 상당히 신빙성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믿을 수 없다 하여 모두 거짓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일이 이 정도가 되면 영혼이 있다는 것은 의심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영혼사진을 찍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와 관련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곧, 영혼이란 정신체인데, 죽은 사람의 정신체인 영혼이 카메라에 비친다고 하면 산 사람의 정신 작용도 카메라에 나타나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미국의 세리우스 Ted Serios라는 사람이 이에 관하여 열 두해에 걸쳐 연구하여 마침내 성공하였습니다. 카메라를 준비해두고 그 앞에서 자동차를 생각하고 있으면 자동차가 사진에 나타나고, 빌딩을 생각하면 빌딩이 찍힙니다. 머리속에서 생각하는 대로 모두 사진이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명한 생각사진(念寫)이라는 것으로, 세리우스는 이런 사진을 여든장쯤 찍었습니다. 그 때에 아이젠버드 Eisenbird 라는 교수가 이 사람에 대해, 의혹을 가지고, 3년 동안 연구하였습니다. 속임수가 있는가 하여, 이리 연구하고 저리 연구하고 또 이렇게 실험 해보고 저렇게 실험해 보았으나, 결국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생각하는 대로 사진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아이젠버드 교수는 <세리우스의 세계>라는 책을 출판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이제, 생각사진까지 입증되고 보니,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을 사진으로 찍을 수가 있느냐는 의문은 더 이상 나올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영혼이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性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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