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은 육체를 나로 삼는 데서

금강경에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의 사상을 중시 하는 것은 이것만 떨어지면(마음)이 드러나게 되고 (참나)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상)이라 함은 내가 항상 말하는 육체를 (나)라 하고 생각을 (나)라고하는 (가아)를 말합니다. 이 (가아)인 (아상)이 있기 때문에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를 다시 한 번 더 되풀이해서 사상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 무엇인가. 발심이 무엇인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교를 안다는 말은 인생을 바로 안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본성을 발굴해서 자기가 갈 수 있는 길을 깨달은 사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깨달은 이인데, (이런 사람은 어떻게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며 어떻게 백팔 번뇌, 팔만사천 번뇌를 항복 받아야 하겠읍니까.)하고 수보리가 부처님께 질문을 하셨는데 그 뜻을 한 번 더 풀어보면 이런 것입니다.

(인생이 꿈 속이란 것은 알지만 그러나 이해가 앞설 때는 욕심도 나고 남녀 이성끼리 만나면 이상한 생각이 일어나고 이런 쓸데 없는 꿈 속의 일에 시달립니다. 태평양 바다보다 더 복잡하고 심한 번뇌의 파도가 일어나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잘 안 되니 옳지 않은 이 마음을 어떻게 항복 받아야 하겠습니까.)하고 여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항복 받아라.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고도 제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만일 중생을 교화했다는 생각이 있으면 그것은(나다)(남이다)(중생이다)(부처다)(오래산다)하는 분별심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것은 발심한 보살이라 할 수 없다.)) 중생은 다 제 잘난 멋에 삽니다. 부처님의 말씀에 (중생을 제도하라 하시면서 제도했다는 생각이 있으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는 것이므로 보살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사상(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중생에 떨어진다는 것인데 이 사상은 곧 (나)로부터 벌어집니다.

(나)란 생각은 본래부터 있는 생각이 아니고 객관을 상대할 때 (나)라는 생각을 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이 사람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이 물건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다가도 얼마 안가면 싫어하고 미워합니다. 이와 같이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이 자기의 바탕일 수는 없고 그런 것을 좋다 싫다하고 생각내는 주체가 (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내가 항상 말한 바와 같이 물질도 허공도 아닌 산 생명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동그라미도 네모 세모도 아닙니다.

마음 자리는 모나고 둥근게 아닌 형상을 초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먹물은 본래 검은 것이기 때문에 세계의 먹을 다 갈아도 하얗게 될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물질이나 허공은 본래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아무리 뭉치고 천충 만층 높이 쌓아봐도 그것이 듣고 보고 생각할 줄은 모릅니다.

그와 같이 물질적 요소로 이루어진 육체도 무엇을 보고 들을 줄은 모릅니다. 마음이 보고 싶어야 보고, 듣고 싶어야 들립니다. 육체는 내가 아니라 나의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은 육체도 아니고 모든 것을 다 초월한 자리, 차원 이전이고 태초 이전이며 질량 이전입니다. 이것이 온갖 생각의 주체이고 진아입니다. 따라서 진아의 상대가 가아이며, 생각의 (나)입니다.

(진아)니(가아)니 해도 실제 마음은(잔아)(가아)를 초월한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것조차 아닌 만사의 주체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설명으로 될 것이 아니고 스스로 깨쳐야 합니다.
깨달았다 견성했다는 말은 소위 밥 먹고 자고 일어나고 할 줄 아는 그 자기를 깨친 것이니 깨달았다고 해도 말이 안됩니다. 부처님이 깨쳐 놓고 보니 출가하려고 할 때 애쓰던 그 마음 그대로고 싯달태자 그대로입니다.

(육체 말고 자기 마음 그대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아니 진실상 그대로의 마음이 있겠구나 )하고 이해가 될 때 그래서 우주에 재자유가 있고 전지전능한 부처님이 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이 마음을 깨쳤다고 하는 것이 밥 먹고 똥 싸는 그 마음, 산모가 아기 어서 나가라고 힘주는 마음 그대로이니 이것은 깨쳤다고 해도 안됩니다. 본래 미한것도 아닌데 어떻게 깨칩니까.

그런데 육체를 (나)라고 하는 데서 (아상)(가아)가 생기고 안상, 중상, 중생상, 수자상의 사상이 생기는것입니다. 그래서 육체를(나)라고 하다 보니 술에 미친 사람, 아편에 미친 사람이 되고 정치에 미친 사람, 문학에 미친 사람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인간의 본성이 개발되지 않아서 그럽니다. 인간성은 모든 것을 초월한 것을 뜻하며 선한 것 악한 것이 인간성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걱정말고 깨치지 못한 것만 걱정하라는 것입니다.

망상을 안 일으키려면 더 일어납니다, 망상 일어나려는 것은 내버려 두고 망상도 내가 일으키는 것이지 망상 저혼자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망상은 가만 두고 염불이든 참선이든 그것만 하면 오늘 반에 깨칠지 금생에 깨칠지 여하튼 깨치게 됩니다. 사람이 전생에 공이 많으면 금생에 깨치고 공이 적으면 내생에 깨치게 됩니다.

하여튼 깨치게 될 그 시간을 바라고 금생에 못하면 늙어 죽을 때 까지 염불이나 하고 참선하고 마치면 그러면 내생에는 깨칩니다. 복도 많이 지어서 내생에는 복을 가지고 태어나면 머리도 지금보다 몇억만 배 좋게 태어납니다.

다만 공부하는 데는 깨치려 해도 안되고 안 깨치려 해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다 되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가 될 그런 요소가 나한테 있구나. 오온이 내가 아니구나. 말하는 여기에, 배 고프면 밥 먹는 여기에 있겠구나. 여기서 자기 관혁을 깨치게 됩니다. 그 부처님께서 이것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마음이 부처란 소리가 어떤 뜻인지를 모르게 됩니다.

그러니 불교가 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평생 강사 노릇해서 제자가 수천 명이 돼도 자기가 모르고 가르치니 제자도 모르고 듣습니다. 마치 눈먼 장님에게 매달려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참선을 하는 것도 그렇고 염불도 그렇고 다른 어떤 공부를 해도 불교의 근본 진리가 어디로부터 어디로 가는지, 생사를 어떻게 해서 해탈할 것인지를 확실히 알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49년간의 기나긴 설법을 하셨던 것입니다.

육조 대사께서(응무소주이생기심)을 듣고 깨치셨는데, 그 뜻은 (번뇌 망상없이 살아라. 아무 모양, 주의 ,사상 그런 거 개의치 말고 지금까지 배운 거 다 청산해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라)그런 뜻입니다. 우리가 기분으로 만물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니 제 기분대로 비판해 치워 버립니다. 남의 말을 들어도 자기 기분좋을 때는 그 말이 좋게 들리고 기분 나쁠 때는 나쁘게 처리되어 버리니 이것이 망상입니다.

그것은 결국 육체 때문에 하루 밥 세 그릇 먹느라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말도 나쁘게 받아들이고 나쁜 말도 좋게 받아들이는 것은 필요 없다. 나는 물질도 허공도 아니니 자살도 할 수 없고 타살도 할 수 없고 죽을 방법이 없다. 그게 이렇게 받아들이고 나쁜 말도 좋게 받아들이는 것은 필요없다. 그게 이렇게 얘기하고 듣고 있다. 이것이 마음이다.) 늘 이것을 앞세워서 (나)다, (남이다)하는 것이 없는 생활을 해야 중생을 초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도 병원에 어떤 보살을 문병 갔다 온 일이 있는데 별안간 사람이 와서 스님 좀 꼭 보자고 해서 누군지도 모르고 따라가서 한 시간이나 이야기 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복잡해서 마음을 쉴 수 없다며 눈물을 자꾸 흘립니다. 가정불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과 얘기를 해 주고 관세음보살님만 자꾸 부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이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병이 됩니다. 그렇게 마음이 불안해지면 대번에 이것이 독소로 변해서 온갖 병을 일으키는 때문입니다. 그래 당신이 그 마음을 풀기 전에는 천하없이 기도를 하고 한국 돈 다 갖다 바치고 기도를 천년 만 년 해도 그 병이 낫질 않습니다.

당신이 전생에 첩이 되어 남편에게 곤란을 주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본 마누라가 되어 가지고도 남편 번 돈으로 자꾸 딴놈과 쓰고 다니고 나쁜 짓 했기 때문에 이생에 와서 남편이 그러는 것이지 모든 것이 다 인과법인데 아무 까닭없이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한 시간 정도 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정말 그러냐)고 하다가 나중에는 그 말 꼭 믿겠다고 하면서 안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이 인과를 안 믿으면 죽는다. 암은 아무리 째고 해 봐도 별 수 없어 다른 데 또 생긴다. 기분이 만든 암이기 때문에 뇌가 또 나빠지기도 하므로 마음부터 항복받아야한다.)고 말해 주고 온 일이 있습니다.

마음이 먼저 바로 안정이 되어야 병도 낫습니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 것도 (병원에 가면 의사가 우리 병을 책임지고 고쳐 준다)고 믿는 마음의 안정이 있기 때문에 효과가 잘 나타납니다. 치료하기 전에 벌써 자기 마음 이 반은 고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주체는 마음이고 이 현실은 꿈이어서 꿈은 다 마음이 꾸어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부터 백까지가 다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인데, 중생들이 스스로 우주의 주재신의 피조물이라 믿어 구속되고 자연계의 물리화학의 원리가 절대적이라 하여 그것에 구속되고 무당이나 점장이에 구속되고 그러지만 중생들의 마음자리 불성자리는 본래 부터 완전한 부처이어서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전지전능한 실존이어서 가사 우주을 창조한 신이 온다 해도 그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항복하게 됩니다.

그것이 다 자기 마음이 만들었던 망상이었으니 망상이 천 리 만 리 사라진 본 마음자리가 나타나면 자연히 신이니 과학이니 신앙이니 미신이니 불교니 유교니 하는 따위의 제2의 산물인 그야말로 피조물들은 다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중생들이 스스로 우주의 주재신이 있다고 믿고 자연과학의 원리에 의해 우리는 지배된다고 믿는 마음에 의해 지배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가 평소 아무것도 모르고 불법도 모르는 이런 사람이라도 심어지는 개,소,돼지 같은 금수까지라도 산보고 높다는 말은 안 하지만 산보고 높은 줄 알고 물보고 깊은 줄은 압니다.

이렇게 말은 없어도 알 줄 아는 이 자신은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시간이나 공간이 아닌 실재이고 물질이나 에네르기처럼 죽은 존재가 아닌 산 생명입니다. 이것이 눈을 통해서 내다보고 귓구멍을 통해서 듣고 이러지 다른 놈은 다 죽은 것들이므로 그럴 놈이 없습니다.

보인다 들린다 하는 생각 그것이 보고 들을 줄 아는게 아니고 일체 보는 마음도 없고 생각하는 것도 없으며,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아무 생각도 없는 실재이고 실존이고 실상이고 한 이것이 직접 눈구멍으로 내다보고 귓구멍으로 듣는 것입니다. 생각 그것도 이 실상의 반야인 마음으로부터 생각되어 만들어진 피조물임에 불과합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어서 어느 정도 인식이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맨 처음 절에 다섯 법문을 듣고 그것이 잘 듣지 못하는대로 들었지 딴놈이 들을 놈이 없습니다. 허공이 들을 수 없고 고깃 덩어리인 육체는 물질일뿐이니 역시 못 알아들을 것이고 다른 귀신이나 도깨비가 와서 듣고 알려 준것도 아닙니다. 설사 도깨비라 할 지라도 그 실상은 역시 불성자리인 마음입니다.

지옥에 가서 두들겨 맞고 아픈 줄 아는 것도 알고 보면 역시 실상자리인 그것이 알지 이것 빼놓고는 무엇이 아픈 줄 재미있는 줄을 깨달을 놈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르고 들은 그때도 완전히 부처가 돼 가지고 들었고 차차 법문을 들어서 세상은 무상한 것이다. 참선을 해야겠구나 하고 말을 알아들을 때에도 역시 본래 완전히 부처가 되어서 듣습니다. 그러니 제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중에 번뇌 망상이 없어졌다고 해서 별 것이 아니고 내내 산보고 높은 줄 알고 물보고 깊은 줄 아는 그대로이고 다른 면목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도가 다 되 있는 것이므로 실로 한 중생도 제도한 일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다만 멀쩡한 부처가 딴 생각을하고 있으니까 술 취해서 길 가는 것 붙들어 준 것 밖에 안됩니다. 술이 취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인 것은 아니고 술이 깨도 그 사람, 취해도 그 사람인 것과 같습니다.

중생들이 탐진치 삼독주에 의해 가지고 육체만 나인 줄 알고 이해타산하고 온갖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여 복잡한 세상을 만듭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탐진치의 삼독주에서 깨어나라. 육체가 나라는 생각을 버려라. 내다 남이다 하는 것이 관념이고 없는 것이다.)하는 법문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아공입니다.

번뇌,망상, 온갖 지식과 경험을 쌓아가지고 하는 법은 이렇고 땅의 이치는 어떻고 인간 사회의 도리는 이런 것 이라는 관념을 가지고는 서로 죽이려고 하고 전쟁을하고 그럽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그런 하늘도 없고 그런 땅도 그런 인생도 없고 그런 아버지 어머니도 없고 내가 생각하는 그런 몸뚱이도 있는게 아닌 도리를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법공입니다.

부처님 법공의 진리를 듣고 나서 여태까지의 지식을 다 놓아버리고 온갖 생각이 끊어지면 본래 있던 적멸 그 자리가 나타납니다. 마치 구름이 벗겨지고 나니 본래 있던 밝은 달이 나타난 것과 같아서 아예 없던 달이 그름 벗겨지고 나서 새삼스레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아아 이제 알았구나!)하고 깨달았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께달았다는 생각마저 놓아버리는 이것이 구공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공,법고,구공의 이치를 깨달았다고해서 본래 부처자리인 마음 바탕이 더 밝아진 것도 아니고 알 줄 아는 성품이 잘못된 착각을 품었다고 해서 손상이 있느냐하면 그런것도 아닙니다.

근본 마음 자리는 벌레나 굼벵이가 되었다고 해서 더러워진 것도 아니고 하나도 중감이 없이 불생불멸이고 불면하는 일여평등체입니다. 그러니 애당초에 이렇게 완전한 부처가 되어 있으므로 제도 한다는 생각이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생을 내가 제도 하겠다, 깨우쳐 주겠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있다면 이 사람은 중생을 내가 제도하겠다, 깨우쳐 주겠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 사람은 중생 제도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보살이 될 수는 더욱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법사거니, 내가 누구를 가르쳐 주었거니, 걔를 내가 일러 주었으니, 내 제자거니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르쳐 주지도 않고 제도하지도 않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제도하기는 하되 그런 생각이 없이 무심으로하고, 하는 것 없이 한다는말씀입니다.

만일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또 소승이고 공에 떨어진 것이며, 대승이 아니고 금강경의 말씀을 바로 배운 것이 아닙니다. 금강경의 말씀은 공의 사상을 철저히 말하지만 거기에 집착하여 머무르라는 것이 아니고 상없는 마음으로 머무름없이 중생을 제도 하고 인류의 구제를 위해 공의 원리로 백천억의 육신을 바치고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중생을 발심시켜서 일일이 지도를 해서 견성을 하게 하고 보살만행을 잘 하도록 호념해 주고 부촉애섯 정각을 이루고 성불을 하게 하는 것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은 다 꿈 숙에서 하는 일이고 관념일뿐 꿈을 깨고 보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거기까지 가는길인 로정기만을 말씀하신 것인지 그 당초 자리는 시방제불이 한 마디도 말씀하시지 못한것입니다. 그 곳은 말이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꿈 속에 들어가서 꿈으로 꿈 같은 이야기를 해서 꿈으로 꿈을 깨도록 하는 말씀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꿈 밖의 이야기는 한 마디도 이야기하지 못했고 실상의 소식에 대해서는 입을 뗄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부처님도 아무 상관도 없는 말씀한 하셨지 사실로 중생이 제도 받는 일이 없습니다.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자리이고 본래부터 그렇게 완전한 자리이므로 제도한다는 말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제도하는 사람도 제도하고 제도받을 것 없는 줄 알고 설법해 주므로 종일 설법을 해도 법을 이걸 줬거니 하는 생각이 없습니다. 이 자리는 일체 사상,인륜도덕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선방에서 참선할 때 조금만 허술하면 방망이가 막 내려 옵니다. 망상이나 피우는 그런 머리통은 부서져도 좋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일체 중생을 실제로 제도했다 하더라도 제도 했거니 하는 생각이 있다고 하면 이 사람은 곧 중생의 실재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사람이고 동시에 불법을 모르는 사람이니 이런 사람은 보살일 수 없고 중생을 제도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굶는 사람이게 쌀말이나 주었다 하더라도 주었거니 하는 생각이있으면 아상,인상이 있는 것이고, 중생을 제도하겠다고 자선 보살이 제도를 했거니 제도를 받았거니 하는 생각이 있어서 선생이니 제자니 하는 생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고 불법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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