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갚은 꿩
치악산에는 구룡사 말고도 상원사라는 절이 있다.
이 절은 치악산 정상 바로 아래에 위치한 절로서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이라고도 한다. 이 절에 수도를 하고 있는 스님 한 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계림)이었다.
계림스님은 낮이고 밤이고 화두를 챙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법당 뒤로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큰 구렁이 한 마리를 목격했다. 구렁이는 독기를 뿜으며 꿩을 노려보고 있었다.
꿩은 암컷인 까투리였다. 이를 본 계림스님은 들고 있던 주장자로 구렁이를 건드려 쫓아 버렸다. “이런 못된 놈 같으니라구. 불살생을 근본으로 하는 절집 도량 내에서 살생을 하려 하다니, 저리 가거라, 이놈.” 구렁이는 계림스님의 주장자를 보더니 그만 달아나 버렸다. 계림스님은 구렁이한테 놀라 날지도 못하는 까투리를 보듬으며 멀리 날아가도록 하였다.
“불쌍한 것, 앞으로는 구렁이를 조심하도록 해라. 어서 날아 가거라.” 계림스님은 죽게 된 까투리를 살려 보내고 방생을 하였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요사에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저녁 삼경이 지나고 계림스님이 흘로 정진하는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었다.
그는 방문을 배시시 열고 마루로 나섰다. 거기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서있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야심한 밤에 길을 잃으셨는가 보군요.” 노인이 방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나는 길을 잃은 게 아니오. 배가 고파서 들어온 것뿐이오.” “그러시다면 제가 공양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계림스님이 후원으로 나가려 하자, 노인이 팔을 들어 제지하면서 말했다.
“아니오. 나는 밥을 먹지 못하오. 살아 있는 것을 먹소. 죽은 고기도 안 먹소.” 노인의 말에 계림스님은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죽은 고기와 밥을 드시지 않고 산고기만 드신다니 말입니다.” “나는 구렁이올시다. 오늘 낮에 까투리 한 마리를 잡아먹으려고 했는데 스님이 방해를 해서 놓쳐 버리고 이제껏 굶었소이 다.
그러니 대신 스님을 잡아먹겠소” “노인장께서 구렁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잡아먹는 것은 나중이고 우선 노인장이 어째서 구렁이인지 그 사연이나 들려주 셨으면 합니다.” 노인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나는 전생에 이곳 상원사에서 주지로 재직하고 있었소.
한 때, 불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범종을 주조하기로 했소. 시주자들로부터 화주를 했지요. 그렇게 해서 괘 많은 불사금이 모였소. 나는 그 돈으로 범종을 주조했는데 기술이 부족했던지 종소리가 영 나질 않았소이다. 그리고 나머지 돈은 솔직히 얘기해서 내가 혼자 착복하였소. 난 그런 죄로 그만 죽어서는 구렁이의 보를 받고 말았소이다. 그러므로 종불사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불사금을 착복하는 죄업은 한없이 크다는 것을 알았소.
하지만 현재 나는 구렁이의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니만치 산고기를 잡아먹어야만 하오.” 계림스님은 비로소 인과가 역연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계림스님이 말했다. “듣고 보니 참 딱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먹이를 뺏은 것은 잘못한 일이니 한 번만 봐주십시오.” 노인은 막무가내였다. 그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배고픔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계림스님은 생각했다.(내가 만일 이 노인에게 잡혀먹힌다면 어떻게 수행을 할 것 인가. 수행이란 것도 기실 따지고 보면 몸이 있고서야 가능한 일이다. 어찌되었든 사정해 보자.) 계림스님은 자신이 속으로 생각한 것을 털어 놓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또 사람이 아니라도 잡아먹을 것은 얼마든지 있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그러자 노인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좋습니다.
스님께서 정 그러하시다면 내가 한 가지만을 제시하겠소.” 노인의 제안이란 말에 다소 안심이 된 계림은 다가앉으며 물었다. “어떤 제안이온지?” “이 상원사 법당 뒤에 가면 내가 전생에 잘못 주조하여 소리가 나지 않는 종이 있소. 만일 내일 새벽까지 그 종이 울어 소리가 나게 되면 나는 구렁이의 몸을 벗고 다시 인간에 태어날 수가 있소이다. 그때는 나도 열심히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겠소이다.”
계림스님은 노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법당 뒤꼍으로 나갔다. 과연 법당 뒤에는 종이 높다랗게 달려 있었다. 워낙에 높이 달려 있으므로 사람의 힘으로는 그 종을 울릴 수 없었다. 계림스님은 난감했다. 발붙일 수 없는 높다란 나무 위에 달아 놓은 종. 너무나 높이 있었기에 상원사에서 그토록 오래도록 수행을 하면서도 그런 종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내왔던 것이다. 계림스님은 혼자 생각했다.
(내가 만일 선정에 들어 있으면 노인이 나를 볼 수 있을까? 옛날 도인들은 선정에 들면 그 몸도 보이지 않는다고들 했는데 …) 그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선정에 들었다. 하지만 순일한 경지에 이를 수가 없었다. 노인이 지켜 보고 앉아 있었다. 죽음은 시시각각 계림스님을 향하여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연신 요사와 종이 달려 있는 곳을 왔다갔다 했고 노인 또한 잠시도 계림스님 곁을 떠나지 않고 따라다녔다.
계림이 다시 방으로 돌아와 선정에 들려고 애를 썼다. 이미 밤은 깊어 새벽이 회끄무레 밝아오고 있었다. 오경이었다. 바로 그때 밖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종소리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높은 곳에서 다시 낮은 곳으로 흘렀다.
계림스님이 듣기에 그처럼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종소리는 처음이었다. 종소리는 한 점 가까이 울었다. 그제서야 노인은 계림스님에게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내, 저 종소리를 듣고 구렁이 몸을 벗어나게 되었소이다. 날이 밝거든 나의 시신을 거두어 화장하여 주시오. 나는 다시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나의 시체는 남쪽 처마 아래 땅 속에 있소이다. 자, 그럼.” 노인은 말을 마치자 홀연히 사라졌다.
날이 밝자 계림스님은 종이 달려 있는 법당 뒤로 돌아갔다. 거기에 장끼와 까투리 두 마리가 머리에 피를 홀리며 떨어져 있었다. 까투리를 보니 분명 지난날 구해준 그 까투리였다. 까투리는 자기의 생명을 살려준 은혜를 그의 짝 장끼와 함께 목숨을 바쳐 갚은 것이었다. 계림스님은 은혜를 갚은 꿩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다.
“미물이라도 은혜를 갚을 줄 아는데 사람으로서 어찌 저 꿩만도 못할 것이랴. 참으로 장한 일이로다.” 계림스님은 꿩을 거두어 양지 바른 곳에 잘 묻어 주었다. 그리고 노인이 일러준 남쪽 처마 아래 땅을 파 보니 거기에는 죽은 구렁이가 한 마리 들어 있었다. 그는 구렁이 시체도 잘 거두어 망승의 예로써 화장해 주었다.
그 뒤로 산 이름을 치악산이라 고쳐 부르게 하였다. 즉(꿩 치)자와(큰산 악)자를 써서 산 이름에 꿩의 보은을 길이 새기려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