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을 통해 본 전생과 내생
신효거사는 신라 사람으로 공주에서 태어나 거기서 성장하였다.
그는 이름에서 보여지듯이 불교에 대한 믿음이 돈독하였고 부모에 대한 효성도 지극하였다. 자장율사가 오대산에 작은 초암을 짓고 살다가 묘향산으로 옳겨 정거사를 짓자 신효 거사는 자장율사가 남기고 간 초암에 들어가 수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세상에서는 그를 유동보살의 화신이라 일컬었다. 마납박가(Manavaka)로 알려져 있는 이 유동보살은 연등불 처소에서 석존이 쓰던 어린 보살의 이름이다. 또는 선혜보살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이 신효거사는 순박했다. 티없이 맑은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 한 분을 모시고 공주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 갈수록 꼭 고기 반찬을 갖추기를 원했다. 하루는 활을 메고 사냥을 나갔다. 계룡산 서쪽 기슭에 자리 한 갑사에서 점심 공양을 하고 산에 올랐다. 하지만 그날따라 아무 것도 잡지를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빈손으로 가기가 죄송스러워 둑가를 거닐고 있는데 학 다섯 마리가 낮게 떠서 하늘을 날아 가고 있었다. 신효거사는 전통에서 화살 한 개를 뽑아 시위에 메겼다.
화살은 다섯 마리의 학 가운데 한 마리를 맞추었다. 그런데 학은 그냥 날아가고 깃 하나가 하늘거리며 떨어졌다. 그는 그 깃을 주워 논둑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았다. 눈에 깃을 대자 사람이 축생으로 보였다. 그러나 깃을 떼면 사람으로 되돌아왔다.
공주에 도착한 신효거사는 하도 이상해서 깃을 통해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소가 걸어가고 있었다. 뱀도 기어가고 있었 다. 별의별 산짐승 들짐승 집짐승들이 있었다.
곰도 있었고 호랑이도 늑대도 여우도 있었다. 신효거사는 그제서야 사람과 동물의 차이가 외양에 있을 뿐, 내면의 정신적 세계에는 전혀 차별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사람이 소로 보이는 것은 그가 전생에 소였기 때문이다. 이는 전생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는 전생만 보여줄 뿐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의 마음기짐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의 탈을 쓰기는 했지만 여우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고 늑대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뱀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 호랑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 돼지나 닭의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렇다. 그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마음과 그 마음의 씀씀이에 따라 다시 내생에 그와 같은 몸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는 걸음을 멈추고 생각을 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잡아온 온갖 짐승들이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자 활과 화살을 던져 버렸다. 그는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며칠 뒤 그의 어머니가 숙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는 자기 집을 고쳐 새롭게 절을 짓고 부처님을 모셨다. 그리고 절 이름을 효가원이라 했다.
그는 효가원을 나와 행각에 올랐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신과 인연이 맞는 곳을 골라 살 작정이었다. 그는 공주를 출발하여 한양가지 가 보았지만 마땅한 인연처가 없었다. 발걸음을 강원도로 향해 옮겼다. 강원도 명주에 이르러 지나가는 개를 깃을 눈에 대고 보니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는 다시 개를 몰고 가는 사람을 보았다.
그는 호랑이로 보였다. 깃을 내리고 그는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지금 어디로 가시오?” 그가 신효거사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마침 오늘이 말복이라 이 개를 잡아 보신탕이나 해먹을 생각으로 끌고 가는 것이오.” 개 값을 물어보니 본디 파는 게 아니라서 값을 매길 수가 없다고 했다. 신효거사는 웃돈을 더 주고 그 개를 사서 얼마쯤 가다가 놓아 주었다.
그는 명주가 인연처라고 생각했다. 그곳에 마땅한 터를 잡아 절을 짓고 수행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때 한 노파가 광주리를 이고 지나가다 말고 신효거사에게 말을 걸었다. “절터를 찾으시는군요?” 신효거사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니 어떻게 보살님께서 그것을 아십니까?” “다 아는 수가 있지요.” “허!” “서쪽의 고개를 넘어 북쪽을 향한 마을이 살 만할 겝니다.” “서쪽 고개라면…?” 신효거사가말을 하는데 노파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에 신효거사는 그 노파가 곧 관세음보살의 화현임을 깨닫고 대관령을 넘었다. 대관령에서 다시 진부령을 향해 걷다 보니 평평한 고원이 나왔다. 성오를 지나 한참을 걸어 들 어가니 자장율사가 살았던 초암이 나타났다.
그는 그 초암에 행장을 풀었다. 며칠이 지나자 다섯 분의 스님이 초암을 찾았다. 신효거사는 차를 내어 스님네를 대접하고 물었다. “실례지만 스님들께서는 어인 일로 이 누추한 곳을 찾으셨습니까?” 그 중에 한 스님이 말했다. “내 가사 자락을 찾기 위해섭니다.” “가사 자락이라니요? 저는 재가 불자이므로 가사가 필요없는데요.” 그 스님이 가사를 펼쳐 보였다. 가사 자락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그가 말했다. “바로 여기서 떨어져 나간 조각이오.” 신효거사는 점점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머뭇거리자 스님이 말했다. “전에 거사님은 학의 깃털 하나를 얻으셨지요? 바로 그 깃털을 주십시오” 신효거사는 비로소 알아듣고 깃털을 내어 주었다. 스님은 그 깃털을 가사 끝 떨어진 곳에 갖다 대었다. 깃털은 금세 가사조각이 되어 떨어진 자리에 꼭 들어맞았다.
스님이 말했다. “가사를 입으면 비로소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자, 그럼.” 말을 마치자 다섯 스님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 버렸다. 신효거사는 그들이 오류성자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나중에 그 성자들이 사라진 쪽에 신의대사가 절을 지으니 오늘날의 월정사였다. 월정사의 월정이란 월정마니보주에서 온 말로 매 우 영롱한 보배를 뜻한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