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자재, 색자재
“스님, 원효스님. 주무십니까?” 분명히 무슨 소리가 들렸다. 폭풍우가 사납게 몰아치는 초가을 밤이었다. 중추가절 한가위를 넘긴 지도 벌써 열흘, 달도 별도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원효스님은 분명히 어떤 인기척을 들었다.
그것도 여인의 음성이 확실했다. ‘이상하다. 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누가 내 이름을 찾는걸까? 혹시 여우가 둔갑한 것은 아닐까? 아니, 그럴 리 없어.’ 바로 그때 또 무슨 소리가 들렸다. “스님, 주무십니까? 원효스님, 문 좀 열어 주세요. 추워 죽겠습니다.” 원효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는 방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다가 다시 슬그머니 놓고 자리로 와서 앉았다. 등잔불만 저 혼자 가물거리고 있었다.
들기름을 그릇에 담고 거기에 심지를 만들어 놓은 등잔이었다. 원효스님은 여자의 음성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던 자신을 생각하며 심한 갈등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여인에 대해서는 초연하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이 밤중에 여인이 부른다고 앞뒤 생각지 않고 일어난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자세를 고쳐 점차 선정의 깊은 늪으로 침잠해 들어간 원효스님은 거세게 휘몰아치는 바람소리와 빗소리를 간간히 들을뿐, 어느것도 그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질 못했다. 그는 홀로 삼매의 기쁨에 젖어 있었다.
방안을 어슴푸레 밝히던 등잔에서 바지직 소리가 났다. 순간 방문이 왈칵 열리며 비바람이 한꺼번에 들이쳤다. 그러나 원효스님은 앉은 자리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그는 선정에 들어 생각했다. ‘그러면 그렇지. 이렇게 조용한 것을 보니 내가 아까 들은 여인의 음성은 환청인 게 분명해.’ 바로 그때였다. 밀려 들어오는 폭풍우와 함께 여인의 음성이 들려 왔다. “스님, 원효스님. 문 좀 열어 주세요.” 여인의 음성은 또렷했다. 원효스님은 삼매에 들어 다른 소리는 다 초월했으나 이상하게도 여인의 목소리는 뛰어넘지를 못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 있는 곳으로 가려는데 이미 문안에 들어선 물체가 있었다. 바로 그 여인이었다. 여인은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등잔불에 비친 비에 젖은 여인이 육체는 더욱 아름답고 요염하게 보였다. 원효스님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세상에 이처럼 아름다운 여인도 다 있었는가? 이는 필시 선녀일 거야.’ 다시 한번 비바람이 치며 열려 있는 문으로 파도 밀리듯 바람이 성큼 들어왔다. 등잔불은 꺼졌다. 여인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어둠만이 보일 뿐이었다. 어둠 저편에서 여인이 말했다. “스님, 죄송합니다. 이렇게 한밤중에 불쑥 찾아와서…” 원효스님은 더듬거렸다. “괘…괘…괜찮습니다. 이런, 부시가 어디 갔지? 불을 켜야겠는데.” 원효스님은 어둠 속에서 등잔을 켜기 위해 부시를 찾았다. 여인도 함께 엎드려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찾던 원효스님은 뭔가 짜릿한 느낌을 받았다. 더듬거리며 찾다가 여인의 손을 덥석 쥔 것이었다. 원효 스님은 지난날을 생각했다. 그는 요석공주와 잠자리를 했었다. 그런데 그대는 이토록 짜릿한 느낌을 느껴 보지 못했다.
그런 그가 이상하게도 어둠 속에서 여인의 피부를 접하고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아! 마장이로군, 마장이야.’ 원효스님은 그 느낌을 마장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도가 높아지면 마장이 더욱 치성하는 법이라 했다. 지금 원효스님은 그의 방에 나타난 여인을 실제 인물이 아닌 자신의 마음속에서 투영되어 나타난 마장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여인이 비명을 질렀다.
“스님, 얼른 불을 켜세요.” 원효스님은 화롯불이 생각났다. 그는 부시를 찾던 일을 그만두고 화롯불에서 빨간 숯덩이 하나를 끄집어내어 등잔에 불을 붙였다. 방안은 다시 희끄무레 밝아졌다. 다시 여인의 젖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보지 않으려 해도 눈길은 비에 젖은 여인의 몸으로 옮겨 갔다. 얇은 옷은 입었는지 말았는지 분간키 어려울 정도로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봉긋한 가슴은 보기에도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했다. 원효의 눈은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차라리 안 보는 것이 나으리라 생각했다.
여인은 원효스님의 허락을 기다릴 것도 없이 자리에 앉더니 원효스님이 쓰고 있던 침상 위에 몸을 뉘었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초가을 폭풍우 속에서 찬비를 뒤집어쓴 여인은 오한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원효스님 침상에서 신음소리를 냈다. 그녀의 신음소리는 원효스님의 귀에 야릇한 흥분을 일으켰다.
‘언젠가 요석공주와 만났을 때, 그녀는 저런 신음소리를 냈었어.’ 멍하니 앉아 있는 원효스님을 향해 여인이 말했다. “스님, 추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가만히 앉아 계시지만 말고 제 몸 좀 주물러 주세요. 몸이 얼었나 봅니다.” 원효스님은 그 순간 후회했다. 공연히 여인을 들여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는 원효스님이 들여놓았다기보다 여인 스스로 들어온 것이었다. 서 있을 때와는 달리 누워 있는 젊은 여인의 모습은 더욱 요염하게 아름다웠다. 가끔씩 신음소리와 함께 꿈틀대는 여인의 육체는 원효스님의 말초신경을 자극해 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그녀와 한바탕 질펀하게 놀아 보고 싶었다. 원효스님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마음에 색심이 없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이라도 목석과 같은 것이다.” 그는 여인의 옆에 앉아 그녀의 몸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목을 주물렀고 가슴을 주물렀다. 손가락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손가락으로 그리고 무릎에서 발목까지 열심히 주물렀다. ‘나는 오랫동안 수도를 했다. 나의 공덕이 자칫하면 하룻밤새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는 옛날 의상과 함께 유학을 떠나다 중도에서 돌아온 일을 생각했다. 몇 살 아래인 의상(625–702)과 함께 그는 중국 유학의 길에 올랐다. 그 해가 650년, 원효의 나이는 34세였고 의상은 26세였다. 요동에 이르렀을 때다, 날은 이미 저물었고 인가를 찾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그들은 하는 수 없이 노숙을 해야 했다. 부드러운 풀밭을 찾는다는 것이 무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었다.
누더기 하나씩을 배에 덮고 잠을 청했지만 간간이 뿌리는 빗줄기 대문에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낮에 내린 비로 무덤가 잔디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러나 워낙 고단했던지 몸은 물먹은 솜마냥 천근만근이었고 마침내 잠이 들었다. 한잠 달게 자고 난 원효는 목이 말랐다. 하순의 달빛은 비록 반달이기는 했지만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는 마침 곁에 있던 바가지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빗물이었지만 갈증을 느낀 그에게는 감로수와도 같았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고 다시 행잔을 꾸리던 원효는 갑자기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전날 밤에 마셨던 물은 해골바가지에 담겼던 것이었다. 그는 헛구역질을 몇 번 하고는 불현듯 깨달았다.
그는 깨달음을 노래하였다. 마음이 나니 갖가지 법이 나고 마음 멸하니 온갖 법이 멸하네 마음 있으면 해골물이 있지만 마음 없으니 해골물도 없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지 삼계가 오직 마음 하나일 뿐 다른 것이 아니라고. 아아! 어찌 나를 속였겠는가! 그리고 원효스님은 신라로 돌아왔다. 의상만을 떠나 보내고 돌아오는 그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원효스님은 여인을 목석으로 볼 것이 아니라 여인 그대로 보아야 하며 다만 마음에 색심이 일지 않으면 된다고 마음먹었다. 그것이 자신의 공부가 익어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일념으로 여인의 몸을 주물렀다. 이제 그의 앞에 놓인 여인은 여인이 아니라 하나의 고귀한 생명이었다. 그녀는 지금 비를 맞고 온몸이 마비되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다. 그는 처음과 달리 여인의 몸을 구분해서 주무르지 않았다. 그의 손길이 닿아 생명이 깨어날 수 있다면 어떤 부위라도 상관하지 않았다. 생명을 일깨운다는 것은 신성하고도 기쁜 일이었다.
원효스님은 지금 자신을 찾는 마음으로 손끝 하나하나에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다. 이윽고 여인의 몸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여인이 깨어나고 나니 원효스님은 다시 자신과 여인의 경계를 느꼈다. 이젠 생명으로 서가 아니라, 여인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원효스님은 밖으로 뛰쳐나왔다. 날은 이미 밝아 있었다.
폭풍우가 지나고 난 아침. 아침 햇살은 유난히 상큼했다. 간밤에 내린 폭우로 인해 계곡의 물은 한층 거세게 흘러갔고, 폭포도 자랑이라도 하는 양 천지를 뒤 흔들며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원효스님은 문득 멱이 감고 싶어졌다.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초가을이라 그런지 물은 차가웠지만 간밤에 시달린 엄청난 열뇌를 녹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때였다. 어느새 왔는지 여인이 옷을 벗고 있었다. “스님, 저랑 같이 목욕해요.” 대답을 기다릴 것도 없이 그녀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속옷 하나 걸치지 않고 원효스님에게로 다가왔다. 물이 맑아 그녀의 몸매가 그대로 투영되었다. 속옷을 안 입기는 원효스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자신의 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여인의 부드러운 곡선이 꽉 차 있을 뿐이었다. 원효스님은 항거했다. 결국 그는 눈을 부릅뜨고 소리질렀다. “그대는 나를 유혹하여 어쩌자는 것이요? 어젯밤에 죽을 목숨을 살려 놓으니까. 이 무슨 짓이오.” 여인이 요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스님을 유혹했다고요? 천만에요. 스님께서 스스로 색안을 갖고 저를 보실 뿐이지요. 색안으로써 말입니다.” 원효스님은 순간 어떤 커다란 방망이로 얻어맞은 듯 정신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여인의 말이 백 번 천 번 옳았다. ‘그래, 맞는 말이다. 내가 색안으로써 저 여인을 대한 것이다. 색안…색안…색안…’ 원효스님의 머리 속에는 여인이 내뱉은 ‘색안으로 본다’는 말이 꽉 차 있었다.
엄청난 폭포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여인의 요염한 몸매도 그의 그 생각을 헤집고 들어오지는 못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원효스님이 삼매에서 깨어날 때 비로소 온갖 법이 마음 하나에 달려 있다는 도리를 재인식했다.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색으로 인해 생긴 마음이여!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 하리 여인이 나를 유혹한 게 아니라 내 스스로 그 마음 지녔었네. 누가 여인을 일러 수행자의 마장이라 했던가. 여인은 다만 여인일 뿐, 수행자니 마장이니 여인이니 하는 온갖 생각 털어버릴 때 거기에는 오직 깨달음만 있어라.
원효스님은 정신을 가다듬고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거기 있었다. 원효스님은 알몸을 일으켰다. 모든 게 새로웠다. 산도 계곡도 폭포도 아침의 햇살도 그리고 자신과 여인도 모두 생동하고 있었다. 그는 비로소 알몸의 여인 앞에서 알몸의 자신을 드러내고도 자재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여인은 어느새 금빛 찬란한 원광을 지으며 관음보살의 모습으로 폭포 윗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원효스님의 마음에는 관세음보살마저 각인되지 않았다. 원효스님은 그 후 그 토굴 자리에 암자를 세우고 자재암이라 이름했다. 그것은 그의 몸과 마음이 자재를 얻은 곳이라는 데서 기인한 이름이었다. 지금도 동두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소요산에 원효스님의 자제에 대한 일화를 간직한 채 우뚝 서있는 자재암을 향해 납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른바 심자재와 색자재의 도리를 공부하기 위해서. 그리고 보살이 목욕했던 폭포를 옥류폭포라 불러 오고 있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