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비구는 또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생각 등 감관의 문을 잘 지켜야 합니다. 마치 부자가 창고의 문을 단속하여 도둑의 침범을 막듯이. 비구가 눈으로 사물을 볼 때에는 어떤 현상이나 특수한 환경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생각을 다스리지 않고 그대로 놓아 둔다면 탐욕과 애착과 비애 등의 부정법(不淨法)에 흘러가고 말 것이오.
그러므로 눈을 잘 단속하여 감각 작용을 조절함으로써 보는 감각이 바른 길을 벗어나지 않고 항상 순결한 제자리로 돌아가게 해야 하는 것이오. 소리를 듣는 귀와 냄새를 맡는 코, 맛을 보는 혀, 차고 덥고 거칠고 부드러움을 느끼는 몸, 시비와 좋아하고 싫어하는 생각도 그와 같아서 어떤 현상이나 특수한 환경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의식하는 것이 모두 제 길을 벗어나지 않고 항상 순결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오. 이와 같이 모든 감관을 잘 단속하여 그 공덕이 갖추어지면, 마음속으로 티없이 깨끗한 안락을 누리게 되는 것이오. 이것이 감관의 문을 보호한 공덕의 과보입니다.
또 어떤 것이 비구의 지족(知足)인가 하면,
그 몸을 보호하는 옷과 얻은 것에 만족하여 어디를 가든 한 벌 옷과 한 벌 바리때를 지니고 가는 것이오. 마치 새가 어디를 가든 날개만을 가지고 날으는 것처럼. 비구는 이와 같이 청정한 계행과 감관과 만족을 갖추어 조용한 숲속이나 나무 아래, 동굴이나 묘지 등 세속을 떠난 한적한 곳을 가리어 한 그릇 밥을 빌어 먹은 뒤에는 단정히 앉아 바른 생각에 편안히 머무는 것이오.
그는 세속의 탐욕을 버리고 청정한 마음에 머물며, 남을 해치려거나 성내고 미워하는 생각을 여의고, 모든 생물을 가엾이 여기어 이롭게 하려는 마음에 머물며, 정신이 혼미한 데서 벗어나 산뜻하고 올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에 머뭅니다. 산란하고 헐떡거리는 생각을 쉬어 고요하고 차분한 마음에 머물며, 망설이고 의심하는 데서 벗어나 깨끗하고 의심하지 않는 마음에 머물러 그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정화합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남에게서 빌린 돈으로 사업을 경영하여 그 일이 잘 되면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처자를 부양하고 스스로도 만족하는 것과 같이, 비구도 계행과 정진으로 묵은 죄업을 청산하고 새로운 도업(道業)에 의해 스스로 평안을 얻어 만족하는 것이오.
또 한 가지 비유을 든다면,
남의 노예가 되어 마음대로 오고 가지 못하다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으면 남에게 예속되지 않고 떳떳한 자유인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과 같이, 비구도 청정한 계행과 줄기찬 정진의 힘으로 세속적인 오욕(五欲)의 노예에서 벗어나 독립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오. 이것이 비구가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갖추어 만족할 줄 알고 번뇌에서 벗어난 현세의 과보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니, 마가다의 왕 아자타삿투는 감격한 끝에 이렇게 여쭈었다.
“거룩하십니다.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고, 파묻혀 있던 것을 드러내 놓으며, 길 잃은 사람에게 길을 보여 주고, 어둔 밤에 불을 밝혀 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같이 온갖 방편을 들어 진리를 말씀해 주시니, 저는 지금부터 부처님께 귀의하고 교법에 귀의하고 승단에 귀의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이 목숨이 다하도록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신도가 되고자 하오니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어리석고 무지하여 왕권을 얻기 위해 잔인하게도 덕이 많은 부왕(父王)을 살해하였습니다. 부처님, 앞으로 제가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저의 이 죄악을 죄악으로 인정하시고 저를 받아 주십시오.”
“대왕, 참으로 당신은 어리석고 무지하여 큰 죄악을 저질렀소. 당신은 그처럼 덕이 많은 부왕을 살해하였소. 그러나 당신이 죄악은 죄악대로 인정하고 법에 따라 그 죄를 참회하겠다니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겠소. 누구든지 죄를 인정하고 법답게 참회하여 앞으로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계를 지키려 한다면 성자의 계율이 번창할 것이오.”
아자타삿투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왕이 물러간 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 아자타삿투왕은 진심으로 뉘우친 것이다. 만일 그가 부왕을 살해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바로 이 자리에서 마음의 때를 벗고 청정한 법의 눈을 얻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