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주와 시주의 만남
딱히 어느 때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히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그것이 비록 전설이라 할지라도. 옛날 강원도 철원군 보개면에 위치한 심원사에 젊은 스님이 노스님 한 분을 모시고 살았다.
그 스님은 묘선이라 했다. 일찍이 강원에서 부처님의 일대시교를 모두 공부하고 심원사에 돌아와 있었다. 어느 날인가, 노스님을 모시고 산책을 하던 묘선은 노스님에게 말했다. “스님, 아무래도 절의 당우가 너무 낡아 부수를 해야겠습니다.
특히 무엇보다도 부처님이 헐벗고 계시니 개금불사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딴은 그렇기도 하구나. 하지만 우리 절 살림이 이렇게 어려운데 가능한 일이겠느냐?” “스님, 오늘부터 제가 개금불사를 위한 백일기도를 봉행하겠습니다.”
“그럴 수 있겠느냐. 기도를 하면 기도한 만큼은 반드시 성취할 수 있는 범이다만.” 노스님은 말끝을 흐렸다. 묘선은 노스님이 묵계한 것으로 생각하고 날짜를 잡아 백일기도를 입재를 했다.
묘선의 기도는 참으로 지극정성이었다. 백일기도를 회향하기 하루 전날 밤이었다. 노스님이 묘선을 불러 놓고 말했다. “묘선아, 너의 기도가 그토록 지극정성이었으니 반드시 훌륭한 시주가 나타나 불사를 원만히 이루게 될 것이니라. 내일 사시에 기도를 회향함과 함께 화주를 떠나거라. 첫번째로 만나는 사람이 심원사 개금불사와 당우 중창불사이 시주이니라.” 문득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다.
노스님은 온데간데 없었다. 노스님은 곧 부처님의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묘선은 다음날 아침 꿈 이야기를 노스님께 했다. 노스님이 말했다. “부처님이 내 모습으로 현몽하신 거로구나.
그래 부처님의 현몽대로 해 보려무나.” 묘선은 사시에 기도를 회향하고 화주의 길을 떠났다. 마을에 내려간 묘선은 어느 집을 찾아들었다. 노보살 한 분이 집에 있었다. 묘선이 화주책을 내놓으면 꿈 얘기와 아울러 시주할 것을 권했다.
노보살은 군말 한마디 없이 자기가 있던 금고의 돈을 몽땅 꺼내어 시주했다. 묘선은 그 돈을 가지고 절에 돌아와 부처님 개금불사를 원만히 치렀다. 그런데 시주를 한 노보살은 개금불사가 끝나는 날 우연찮게 다리를 못쓰게 되고 말았다. 앉은뱅이가 된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한 묘선은 부처님께 나아가 기도했다. “부처님, 어인 일이옵니까? 부처님의 개금불사에 시주를 한 노보살이 불사회향과 더불어 앉은뱅이가 되다니요. 부처님, 가피를 베풀어 그 노보살이 건강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노보살의 앉은뱅이는 고쳐지지 않았다.
몇 달이 흘렀지만 여전했다. 한편 부처님 개금불사는 원만히 치렀으나 기와가 깨져 비가 새는 바람에 새로 개금한 부처님의 얼굴과 온몸에 얼룩이 지고 말았다. 이를 본 묘선은 기와불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누구를 택하여 시주를 삼을까 여러 번 궁리했지만 마땅한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묘선은 마을로 내려가 다시 그 노보살을 찾았다. “노보살님, 보살님께 시주하신 덕으로 개금불사는 원만히 마쳤습니다. 하오나 기와가 깨지고 비가 새는 바람에 부처님의 몸에 얼룩이 졌습니다. 아무래도 기와불사를 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나왔습니다.
더욱이 노보살님은 이런 뜻하지 않은 명마로 다리를 못 쓰시게 되었으니 기와불사에 시주를 하신다면 필시 완쾌되시어 걸어다닐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노보살은 흔쾌히 집문서와 땅문서를 등을 내놓았다. 묘선은 그것을 팔아 기와불사를 했다. 기와불사를 회향하는 날 노보살이 참석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회향이 끝남과 동시에 노보살의 눈이 멀고 말았다. 소경이 된 것이다. 묘선은 기가 막혔다. 한 번도 아니고 벌써 두 번째로 부처님은 묘선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묘선은 노보살을 위로했다. “노보살님, 이는 보살님이 전생의 죄업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 그 죄가 다 녹고 나면 괜찮아지실 것입니다.” 하지만 노보살은 미소만 지을 뿐 말이 없었다.
그 후로 몇 해가 지났다. 개금불사와 기와불사를 잘했으므로 법당은 문제가 없었지만, 요사채가 퇴락하여 비가 새고 엉망이었다. 경책에 빗물이 떨어져 얼룩이 지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묘선은 요사채 불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시주를 하러 나가기 전 피곤하여 잠시 졸았는데, 꿈속에 부처님이 나타나 묘선에게 말했다.
“요사채불사를 하려거든 개금불사와 기와불사를 한 노보살을 찾아 시주로 삼으라.” 묘선이 놀라 물었다. “옛? 또요? 그 노보살에게 무슨 낯으로…”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부처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깜짝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다.
선명함이 생시와 같았다. 묘선이 찾아갔을 때 노보살은 혼자 않아 있었다. “노보살님, 요사채불사에 시주를 하시지요. 이상하게도 부처님께서 노보살님을 시주로 삼으라 현몽까지 하셨습니다.” 노보살은 아주 밝은 얼굴로 장을 더듬어 금반지 등 온갖 패물을 꺼내 놓았다.
“시집올 때 해 온 것입니다, 스님. 그러나 내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일을 위해 쓰여진단면 더 없는 보람이겠지요.” 묘선은 노보살의 마음씨에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눈물나도록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보통사람 같으면 불사에 시주하고 앉은뱅이만 되었어도 부처님과 스님네를 싸잡아 원망하련만, 소경까지 되었으면서도 또 아낌없이 시주를 하였으미. 이제 노보살에게는 몸뿐이었다.
묘선은 그 패물을 갖다 팔아 불사금을 마련했다. 한편 노보살은 완전히 빈털털이가 되어 절에 올라와 법당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요사채불사가 끝나는 날까지 낮이고 밤이고 법당에서 염불만 했다.
백일 동안의 요사채불사와 백일 동안의 기도가 마침내 회향을 하게 되었다. 회향하기 전날 밤에도 노보살은 여전히 법당에서 염불을 했다. 자정이 지나고 첫닭이 울 무렵이었다.
갑자기 경내를 뒤흔드는 거센 바람이 불었다. 절 밑 마을에서는 개들이 짖어 댔다. 묘선은 벌떡 일어났다. 느낌이 묘했다. 장지문을 열고 밖으로 막 나서려는데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집채 만한 호랑이 한마리가 나타나더니 법당으로 돌진했다.
놈은 법당 문을 앞발로 열고는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묘선은 무서워 덜덜 떨었다. 그 순간 다시 검은 물체가 법당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호랑이였다. 한데 놈은 입에 웬 흰 물체를 물고 있었다. 마침 그때 구름 사이로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얼핏 보았지만 그것은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그 순간 묘선은 그것이 염불하던 노보살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호랑이는 바람처럼 사라져 갔다. “원, 세상에. 요사채불사를 마치고 호환을 당하다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부처님도 도대체 믿을 것이 못 된다.” 묘선은 광으로 달려갔다. 도끼를 집어들었다.
그는 한달음으로 법당에 뛰어들어 부처님 앞에 도끼를 들고 섰다. “이제 다시는 당신을 믿지 않겠소. 부처님이라 부르지도 않겠소. 아무리 전생의 업이 지중하다한들 개금불사에 앉은뱅이가 되고, 기와불사에 소경이 되었으며, 요사채불사를 하고 호환까지 당하다니,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그는 눈이 뒤집혔다. “예라, 내 도끼나 받으시오.” 묘선은 날이 선 도끼를 부처님 가슴에 내리 찍었다. 목불이었기에 도끼는 깊이 박혔다. 그 길로 묘선은 심원사를 떠났다. 특별히 승복도 가려 입지 않았고 머리와 수염도 깎지 않았다. 얼굴도 씻지 않았으며 목욕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전국을 방랑하면서 30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묘선도 50이 넘었다. 희귀본능이라던가. 묘선은 어느 날 문득 심원사가 그리워졌다. 자연히 그의 발길은 심원사로 향해 보개면에 이르렀다. 심원사로 들어가는 길로 접어들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묘선이 한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실례지만 어디로 가시는 중입니까?” “심원사에 갑니다.” “심원사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직 모르시나 보군요.” “예, 전혀.” “일주일 전에 신관사또가 이곳 철원에 새로 부임을 해 왔지요.
나이는 그저 30이 될까말까 한데, 이 분이 여기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심원사에 올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 고을 백성들 편안하고 잘살게 해 달라는 기도인데 오늘이 그 회향날이지요. 그래서 모든 철원고을 백성들이 사또의 기도회향을 보러 가는 길입니다. 예. 예.” “아, 그랬군요. 저도 동참하고 싶은데, 괜찮겠지요?” “당연하지요.” 묘선의 남루한 옷차림이나 흐트러진 몰골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 주는 사람들에 대해 묘선은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
‘백성들의 마음은 이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데, 지위깨나 있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문제군.’ 더러우니 깨끗하니 잘났느니 높으니 낮으니 하고 차별하는 것은 좀 배웠다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지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그들은 그저 ‘사람’으로만 통했다. 30여 년 간을 떠돌이로 살면서 묘선은 그러한 서민들의 마음을 배웠고 깨달은 것이다. 그들에게는 ‘사람’ 그 자체가 소중하였다.
겉모양은 그 다음이었다. 함께 얘기하고 더불어 호흡하고 뜻이 통하는 사람, 그 사람이면 됐지, 더 무슨 지위나 염정을 논할 것이 있느냐는 마음들이었다. 심원사에 이르렀다. 심원사 그 넓은 경내에는 신관사또의 6일기도 회향식에 참석하기 위해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신관사또의 기도가 끝나고 마침 법문하는 차례였는데, 사또가 청중들에게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도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모습에 대해 얘기했다. 법문 끝에 사또가 말했다. “이 심원사 법당은 오래도록 잠겨 있었습니다. 내가 이곳에 와서 법당 문을 열려고 해 보았지만 도저히 열리지 않아 할 수 없이 밖에 천막을 치고 기도를 했습니다.
힘 센 장정 몇 사람만 앞으로 나와 이 문을 열어 보시오.” 힘깨나 쓰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 몇이 나왔다. 여남은 명은 될 듯싶었다. 그들은 사또의 영에 따라 법당 문을 당겨 보았다. 법당 전체가 흔들릴 뿐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때 묘선이 나갔다. “잠근 사람이 여는 법입니다.
그 문은 제가 잠갔으니 제가 열어 보지요.” 사또는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거렁뱅이 노인에 대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길을 비켜 주었다. 묘선이 법당 문에 손을 대고 살짝 당기니 문은 소리도 없이 스르르 열리고 말았다. 모두들 놀랐다.
사또가 먼저 법당 안으로 들어갔고, 묘선이 뒤를 따랐다. 그리고 사람들이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부처님의 가슴에는 아직도 도끼가 박힌 채로 있었다. 장정들이 달려들어 도끼를 뽑았다. 자루가 부러졌다. 이미 30년이나 되었기에 자루가 썩어 있었다.
오히려 도끼 날만 박혀 있어서 문제는 더욱 커졌다. 장정들은 도끼 날을 빼내기 위해 인간힘을 썼지만 허사였다. 도끼 자루 구멍에 밧줄을 걸어 당겨 보았지만 불상만 흔들릴 뿐 도끼 날은 뽑히지 않았다. 이번에도 묘선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밧줄을 빼 버리고 도끼 날을 잡았다. 아니, 도끼 자루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쥐고 앞으로 당겼다.
도끼는 거짓말처럼 쑥 빠졌고 부처님의 가슴에 남아 있던 자국도 눈 깜짝할 새에 아물어 버렸다. 사람들은 그러한 광경을 보면서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도끼날에 다음과 같이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화주와 시주의 만남’ 묘선의 생각으로는 옛날 그 도끼에는 그런 글이 없었다. 매일같이 장작을 패던 도끼를 모를 리가 없었다. 한데 지금 그 도끼에 그런 글이 새겨져 있다니. 그 글을 보는 순간 묘선은 크게 깨달았다. 대도인이 된 것이다. 그 순간 그는 부처가 된 것이다. 그 순간 깨달음을 얻는 순간 전생의 일을 살필 수가 있었다. 묘선의 갑작스런 변화에 신관사또가 먼저 무릎을 꿇었다.
깨달음을 이룬 사람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사또가 묘선 앞에 무릎을 꿇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도 모두 묘선에게 큰 절을 올렸다. 묘선은 사또를 일으키며 말했다. “사또께서 바로 전생의 그 노보살이십니다.” 묘선은 전에 있었던 얘기를 모두 들려주었다.
노보살이 개금불사 끝에 앉은뱅이가 되고, 기와불사 끝에 봉사가 되었으며, 요사채불사 끝에 호환을 당한 일까지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길로 심원사 부처님을 등지고 30년을 방황하다 돌아온 얘기며 도끼 날에 씌어진 글자를 보면서 확연히 깨달음을 얻은 얘기까지 했다.
“그 노보살님은 삼생을 두고 그 자신이 지은 업보를 갚아야 했습니다. 앉은뱅이로 한 생, 소경으로 한 생, 그리고 한 생은 호환으로 마감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심원사 부처님께 시주한 인연공덕으로 그 삼생에 받을 과보를 한 생에 모두 받아 버린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세생생을 두고 천한 몸으로 또는 불구자로 태어나거나 축생의 몸을 받을 업이었는데, 시주의 공덕으로 남자의 몸을 받았고 명문대가에 태어나 학문을 익히고 약관의 나이에 장원급제하여 마침내 이곳으로 부임해 오는 영달이 있게 된 것입니다.”
묘선스님의 말을 들은 사또와 신도들은 비로소 부처님의 가피가 헛되지 않음을 느꼈다. 묘선스님은 그 절에 머물면서 심원사를 다시 크게 일으켰다. 사또가 심원사의 공덕주가 되었으니 불사를 진행함에 있어서도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