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방에 얽힌 전설

아자방에 얽힌 전설

조선 중엽 하동 군수로 온 정여상이 쌍계사에 초도순시차 왔다. 쌍계사에서 점심 요기를 하고 주지스님이 내어 온 녹차를 마시고는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칠불암의 아자방 얘기가 나왔다.

정여상은 쌍계사 주지에게 물었다. “이곳에는 칠불암이라는 암자가 있지요? 좀 보고 싶은데요. 참 어째서 칠불암이란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까?” “예, 그 칠불암은 신라 제5대 바사왕 23년(서기 102년),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출가하여 그곳에서 모두 성불하였기에 붙여진 이름이지요.”

“제가 듣기로는 그 암자에 아자방이 유명하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좀 유명하지요.” “어떻게 유명합니까?” “예, 그 아자방은 방 자체도 크지만 방의 형상이 아자형식으로 되어 있어 아자방이라 합니다. 높이가 12자인데 높은데도 참선하는 스님네가 있고, 낮은 데도 참선하는 스님네가 앉아 정진하지요.

불을 때면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이나 함께 더우며, 한 번 방이 덥혀지면 석 달 열흘 동안 불을 때지 않더라도 방안이 훈훈하다고 합니다.” 정여상은 내심 놀랐다. “허, 그렇군요. 이거 호기심이 나는데요.” 쌍계사 주지는 군수 정여상이 반응을 보이자 신이 나서 말했다.

“설계는 신라 효공왕 때(897–912 재위)가 담공선사가 했지요. 참 특이한 온돌식 난방구조입니다. 동양에서는 유일한 대선방이며, 오직 우리 조선에만 있는 유일한 난방구조입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습니까?” “웬걸요. 거기는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참선수도하는 스님네만 입방이 허락됩니다.” “제가 좀 보려고 하는데 안내해 주시겠소?” “좀 곤란합니다. 그 아자방은 오로지 참선하는 방으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쌍계사는 물론 조선의 모든 사찰들이 아자방만큼은 잘 수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곤란합니다.” “그래도 스님이 안내를 좀 하시오.” 하동 군수 정여상은 자신의 권력으로 밀어부치고 있었다. 스님네는 바로 그 점이 아니꼬웠다. 하지만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대답했다. “말은 유명하다고 했으나 볼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돌아가시지요.” 정여상의 낯빛이 약간 변했다. “나는 이 고을 군수요. 군수가 안내 좀 해 달라는데 그렇게 뻐길 것까지는 없지 않소. 어서 안내하시오.” 스님네는 군수 정여상을 칠부암으로 안내했다. 정여상의 표정에는 거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까짓 중들이 뭘 안다고 떠드느냐는 식이었다. 그는 약간의 승리감에 들떠 말했다.

“내 여기까지 왔다가 그 유명하다는 칠불암과 아자방을 보지 않고 간대서야 말이 되는가, 어험.” 칠불암에 도착한 군수 정여상 일행은 법당 안에 들 생각을 하지 않고 이 구석 저 구석 기웃기웃하며 다녔다.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별로 볼 것도 없구만. 괜스리 야단들이로고.” 군수가 아자방 앞에 이르러 스님들에게 말했다.

“이 방이 그 유명하다는 아자방이오?” “그렇습니다만…” “그렇다면 문을 여시오.” “안 됩니다. 지금은 전진중이라 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언제 가능하겠소?” “예, 이제 막 점심 공양을 끝내고 정진에 들어갔으니 적어도 서너 시간은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참으로 무례한 사람들이로고.” 정여상은 눈을 치켜 떴다. 당장이라고 스님네를 징치하려는 듯싶었다. 스님네는 하동 군수 정여상의 눈치만 살폈다. 정여상의 호령이 이어졌다. “어서 문을 열어 않고 뭣들 하는 게요. 내가 이 고을 성주 정여상이오. 성주가 주민을 보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 정여상은 수행한 나졸들을 항해 소리질렀다. “너희들이 문을 열어라.” 그때 한 스님이 정중하게 나서며 만류하였다.

“죄소하오나 조정의 영상대감도 그리하셨고 본도의 관찰사도 그리하셨습니다. 옛날부터 규정이 그러하오니 이 방만은 안되옵니다.” 정여상은 삼정도를 뽑아들며 나졸들을 돌아보고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느냐, 빨리 문을 열어라.” 나졸들이 달려들어 가로막고 있는 스님을 나꿔채 내동댕이쳤다. 스님은 저만치 나동그라지며 얼굴에서 피가 흘렀다. 나졸들은 무자비했다. 그중의 한 나졸이 방문을 열어젖혔다.

때는 마침 늦은 봄이었고, 점심 공양을 끝낸 스님들이 아자방에 들어않아 가부좌는 틀었지만 춘곤증과 식곤증이 겹쳐 모두들 졸고 있었다. 그들 자세는 엉망이었다. 어떤 납자는 천정을 쳐다보고 입을 벌린 채 졸고 있었고, 또 어떤 납자는 머리를 푹 숙이고 방바닥을 내려다보며 졸고 있었다. 또 어떤 납자는 방귀를 뽕뽕 뀌며 졸고 있었다.

군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기껏 공부한다는 중들의 자세가 겨우 이런 것들이었냐?” 군수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언짢아했다.

그는 나졸들에게 문을 닫게 했다. 처음 문을 열었던 나졸이 문을 슬그머니 닫았다. 군수가 돌아서며 독백하듯 말했다. “요놈들 한번 혼쭐을 내놓아야지.” 나졸들을 거느리고 아자방을 나서는 정여상은 심사가 뒤틀렸다. 정여상은 고을의 동현으로 돌아왔다. 그 후 사흘이 지난 뒤 하동 군수 정여상은 쌍계사 주지 앞으로 서찰을 보냈다.

“그대의 절에 도인이 많은 듯하오. 목마를 만들어 가지고 와서 우리 마을 고을 동헌에서 타고 한 번 놀아 봄이 어떴소. 만일 목마를 잘 타면 큰 상을 주겠소.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고을의 성주를 희롱한 죄로 엄히 다스리겠소이다.” 군수의 서찰을 받아 본 쌍계사 대중들은 당황했다. 살아 있는 말도 타 본 사람이 없을 터인데, 불도를 닦고 참선하는 스님네가 어떻게 목마를 탈 것인가. 그렇다고 그냥 넘길 게재도 아니었다. 쌍계사 큰방에서는 각 암자의 대중들이 모여 대중공사, 즉 회의를 열었다.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쌍계사 주지가 서두를 꺼냈다. 대중들은 아무도 먼저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쌍계사 주지는 답답했다. “누군가 일단 말을 해 보시지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군수영감의 비위를 거스르면 화가 있을 따름입니다. 답답하니 말씀들을 해 보십시오.” 한 스님이 말했다.

“저희들이야 모두 초심납자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이 산중에서는 쌍계사 주지스님이 가장 도가 높으시고 어른이시니, 이 일을 감당할 분은 오직 큰절 주지스님이시라 생각합니다만…” 대중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스님말고 누가 이 일을 감당하겠습니까?” “군수 영감의 서찰을 받으신 분도 바로 큰절 주지스님이 아니십니까?” “큰절 주지스님께서 나가셔야 합니다.” “옳습니다. 그 길밖에 없습니다.” “찬성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쌍계사 주지는 낭패였다. 동진출가하여 아직 말이라곤 근처에도 가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다른 스님들이 나서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그때였다. 말석에 앉았던 열두서너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미가 나서더니 말했다.

“맡겨 주신다면 제가 그 일을 하겠습니다. 스님들은 아무 걱정 마시고 싸리채를 엮어 목마를 한 마리 만들어 주십시오.” 대중들은 어이가 없었다. 어른들도 감당할 수 없어서 쌍계사 주지에게 미루고 있는 판인데 어린 사미동자가 감당해 내겠다니. “자네가 무슨 재주로 그리 할꼬?” 사미가 자신 있게 말했다. “심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기필코 성스러운 아자방을 환난에서 구하겠습니다.

그러니 제가 말씀드린 대로 어서 목마나 준비해 주십시오.” 스님들은 하는 수 없었다. 사미의 말대로 싸리채로 목마를 만들었다. 어차피 다른 스님들도 감당치 못할 바에야 자처하고 나서는 사미에게라도 한 가락의 희망을 걸고 싶었던 것이다.

사미는 절의 나무하는 일꾼인 부목에게 목마를 운반하게 했다. 하동군청 마당에는 동헌 뜰을 가득 메운 구경꾼들이 이미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사미가 먼저 들어가 동헌 마당에 섰고 부목이 목마를 짊어져다 동헌 마당에 내려 놓았다.

군수인 정여상은 사미를 보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쌍계사에는 그리도 사람이 없더냐? 저 어린 사미가 목마를 탄다고 나왔으니. 그래 사미야, 네가 정녕 목마를 탈 수 있겠느냐?” 사미가 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 쌍계사 회상에서는 소승이 가장 어리고 또한 도가 가장 낮습니다.

하오나 제가 반드시 군수님의 소원을 풀어 드리지요.” 당당하고 막힘이 없었다. 정여상은 사미의 그 의젓함에 호기심을 느꼈다. “그렇다면 좋다. 네가 목마를 타기 전에 물어 볼 말이 있는데 대답해 줄 수 있겠느냐?” “예, 소승이 비록 저희 회상에서 가장 어리고 또한 가장 미약하옵니다만, 말씀만 하신다면 대답해 올리겠습니다. 말씀하시지요.” “허, 고놈 참 맹랑한 놈이로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정여상이 정색을 하고 물었다. “알았다. 내가 며칠 전 쌍계사 칠불암에 갔을 때 들은 말로는 아자방에는 도인들만 있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앉아 있는 모양새가 영 도인 같지 않더구나.” 사미가 대답했다. “원, 군수 영감님도, 도인이라고 뭐 특별한 모습이 있겠습니까? 또 겉모양으로만 사람을 판단할 순 없겠지요.” “하긴 그렇기도 하구나.

그럼 내 네게 묻겠다. 하늘(천정)을 쳐다보고 졸고만 있는 중은 무슨 공부를 하는 것이더냐.” “그것은 앙천성수관입니다.” “앙천성수관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냐?” “네, 하늘을 보고 무량한 별들을 관하는 공부입니다.” “별은 왜 쳐다보고 관하는고?” “원, 군수 영감님은 그것도 모르십니까? 위로 천문의 이치를 통하고 아래로는 땅의 이치를 달해야만 천하만사를 다 알게 되고, 따라서 천상에 태어난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으음! 네 말이 그럴 듯하구나. 그럼, 머리를 숙이고 방바닥을 들여다보며 졸고 있는 중은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지?” 사미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예, 그것은 지하망명관이라는 공부법입니다.” “지하망명관?” “그렇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 죽으면 지하의 지옥에 떨어져 무량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지하망명관이란 지하에 떨어져 고통받는 중생을 어떻게 하면 제도할 수 있을까를 일심으로 관찰하고 숙련하는 공부법입니다.” “허, 고놈 제법이구나. 그러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전후좌우로 흔들며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하며 졸고 있는 중은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냐?” “예, 그것은 춘풍양류관이라는 공부법이지요.”

“그것은 또 무슨 의미더냐?” “예, 공부하는 도승은 유에 집착해도 안 되고 무에 집착해도 안 됩니다. 고와 낙 성과 쇠, 그 어느것에도 집착해서는 중도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봄바람에 버드나무가 전후좌우 어느 곳으로 흔들려도 마침내 어느 한 쪽에 기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공과 유, 선과 악, 죄와 복 등 어떠한 보응에도 걸리지 않는 관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춘풍양류관의 공부법이라 합니다.” 정여상은 사미의 대답이 이치에 딱딱 들어맞는 데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태연하게 다시 물었다. “그건 그렇다치고 그러면 방귀를 뽕뽕 뀌어 대고 있는 중은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인고?” “예, 그것은 타파칠통관이라는 공부법입니다.” “타파칠통관이라. 거 참 재미있어 보이는구나. 그래 그 뜻은 무엇이지?” “예, 사람이 무식하기만 하고 고집만 세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뭐든지 제 마음대로만 하려는 사또와 같은 칠통의 무리들을 깨닫게 하는 공부법이지요.”

“허허 고놈, 말버릇 한 번 고약하구나. 그래, 잘 들었다.” 사미에게 계속해서 두들겨 맞은 군수 정여상은 앉아 있는 여러 아전과 관료들과 백성들을 돌아보며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직 젓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너의 식견이 이처럼 논리 정연하고 고매하니 그곳에 있는 도승들이야 더 말할 게 있겠느냐?

이제 더 물어 볼 말이 없구나. 어서 목마나 타보도록 해라.” 사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싸리채로 만든 목마위에 턱 걸터앉더니 고사리 같은 여린 손으로 말의 궁둥이를 후려치며 말했다.

“어서 가자, 목마야. 미련한 우리 하동 군수 정여상 영감님의 칠통 같은 어둔 마음을 확 쓸어 버리자. 그리고 그 마음에 태양처럼 밝은 부처님의 반야광명이 비치게 하자꾸나.” 사미가 한 번 발을 구르니 싸리채로 만든 목마가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이를 바라보는 스님네는 마음속에 깊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목마는 동헌 마등을 대여섯 바퀴 돌더니 둥실둥실 떠서는 공중으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군수와 육방권속들, 그리고 구경을 나온 온 고을 백성들은 너무나도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스님들은 그 사미가 다름아닌 문수동자의 화현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사미가 목마를 타고 사라져 간 쪽의 하늘을 향해 무수히 많은 절을 올렸다. 한편 군수 정여상은 그 뒤부터 마음을 고쳐먹고 불심을 발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독실하게 믿게 되었다.

군수는 쌍계사와 아자방의 스님들을 생불처럼 공경하고 공양하였다. 이쯤 되니 육방권속들을 비롯하여 하동군민은 물론 백성들도 부처님을 신봉하게 되었고, 부처님의 교법이 널리 퍼져 마침내 화장장엄세계를 이루게 되었다.

아자방은 지방유형문화재 제14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현존하는 건물은 1982년에 복원된 것이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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