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암에 얽힌 이야기
왕성하던 고려 왕조도 점차 황혼을 맞고 있을 무렵이었다. 관료들은 관료들대로 썩어 있었고 지주들이나 선비들도 너무나 부패해 있었다. 나라에 올바른 기강이 없어 정치인들이 썩어있을 때에는 반드시 어느 한 귀퉁이에 변고가 일게 마련이었다.
지금의 충북 제천 부근에서 얼마 전부터 알 수 없는 괴질이 온 마을을 휩쓸더니 마을 사람들의 생명을 하나하나 앗아가고 있었다. 이때 설정스님은 30여 년 만에 고향을 찾는 길이었다. 그런데 고향이란 게 어머니의 품속마냥 따스하기는커녕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스님은 이상하다 싶어 어릴 적 살던 집을 찾았다.
논둑이며 밭가에 난 길을 찾아 접어들었다. 가을걷이를 하고 난 밭에는 옥수수 그루터기만 황량하게 남아 있었고 밭 여기저기에 겨울여물용으로 세워 놓은 옥수수짚 다발만이 낟가리로 서 있었다. 옥수수짚을 보며 설정스님은 어릴 적 생각이 나 빙그레 웃었다. “어머니, 저도 크면 수염이 나나요?” “왜, 벌써 어른이 되고 싶은 게냐?” “예, 저도 얼른 커서 옥수수 수염 같은 수염을 턱에 달고 싶어요.”
“원, 녀석두.” 어릴 때 설정스님은 옥수수 수염을 따서 콧수염으로 붙이고 뛰놀던 일이 재미있었다. 어머니는 그때 환하게 웃으시곤 했다. 금방이라도 ‘오근아’하고 아들 이름을 부르며 쫓아나올 것 같은 고향집이었다. 그런데 인기척이 없었다. “어머니, 제가 왔습니다. 설정이 왔습니다. 아니, 오근이가 왔습니다.”
설정스님은 대문을 세차게 흔들었다. 대문 한 쪽에는 새 봉자가 큼지막하게 씌어 있었다. “이건 새 봉 자라는 거란다. 새 봉.” “새 봉, 새 봉.” 아버지는 곧잘 외워 대는 어린 아들이 대견하기만 했다. 문위에 여덟 팔 자로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란 글씨를 비롯해 입춘부를 손수 써 붙이셨던 아버지는 꽤나 유식한 분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새 봉 자를 가리키면서 물으셨다.
“오근아, 이게 무슨 자라고 했더냐?” “예, 새 조 자입니다.” 자신 있게 대답했다가 아버지께 알밤 한 대를 맞은 기억이 새로웠다. 설정은 문을 열고 들어가 마루에 걸터앉았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마루밑과 봉당뜰 아래에 밀과 보리싹만이 푸르름을 과시하고 있었다. 스님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관세음보살님은 어째서 이런 고향엘 가 보라고 하셨을까?’ 설정스님은 3일 전 밤에 설악산 대청봉 아래 위치한 관음암에서 꿈꾼 일을 생각해 냈다.
“스님, 어서 일어나세요, 고향에 속히 다녀오십시오, 어서요.” “고향에는 왜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꼭 가야 합니까?” 설정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름등잔에 불을 붙였다. 꿈이었다. 너무나 선명한 꿈이었다. 오색구름을 타고 나타난 한 여인의 부름에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그녀는 분명 관세음보살이었다.
관음암 법당에 모셔진 모습 그대로였다. 아직도 방안에는 향내가 그득했다. “그런데 이처럼 황폐한 고향엘 관세음보살은 왜 가보라고 했을까?” 설정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아랫마을에 산다는 한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이 말했다. “허허, 시주를 오신 모양인데, 아무래도 잘못 오셨소이다.” “아닙니다. 시주를 온 게 아니라, 제가 자란 옛집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이라니,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예, 이 마을은 얼마 전 괴질이 돌아 모조리 떼 죽음을 당하고 말았소,
다만 서너 살박이 어린애가 하나 살았을 뿐이외다. 허, 그것 참. 쯧쯧.” 설정스님은 노인을 따라 아랫마을로 내려갔다. 거기서 아이를 만났다. 가족관계를 따져 보니 설정스님의 조카였다. 위로 큰형님이 계셨는데 늦게 취처하여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었으니, 이 아이가 바로 그 아들이었다. 설정스님은 조카 아이를 업고 설악산 관음암으로 돌아왔다. 잘 키워 중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속가로 내보내 가문의 대를 잇게 하려는 마음이었다.
설정스님은 그게 바로 부처님의 뜻이고 자기를 고향으로 보낸 관세음보살의 뜻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아주 야무졌고 또 영리했으며, 순진하였다. 산짐승이나 새들과 함께 얘기도 나누고 다람쥐나 원숭이들과도 잘 어울렸다. 스님이 산에 나무하러 갈 때는 말벗이 되어 주곤 했다. 아이는 잘 자랐다. 설정스님은 아이의 법명을 지어주었다. 선두라 했다. ‘두’자는 어조사이고 그냥 ‘착한 아이’란 뜻이었다.
속가의 이름이 ‘선돌이’였는데, 그 이름을 따서 그대로 지은 것이었다. 선두는 어느새 다섯 살이 되었다. 스님을 따라 조석 예불에 참예하여 ‘반야심경’을 곧잘 외워 대곤 했다. 잔심부름도 너끈히 해 냈다. 스님이 밥을 짓노라면 부엌에 따라나와 부지깽이로 장작더미를 두들기며 목탁치는 흉내를 내면서 ‘관세음보살’을 염송하곤 했다.
스님이 대견해서 물었다. “애, 선두야.” “예, 스님.” “관세음보살은 어떤 분이라 했지?” “관세음보살은 어머니 같은 분이고,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그래, 잘했다. 어이구 우리 선두 영리하기도 하지.” 선두는 맑은 눈망울을 굴리면서 삼촌인 설정스님에게 와락 안겼다. 스님은 선두에게서 전해져 오는 아련한 핏줄의 정을 느꼈다.
볼이 참으로 따스했다. ‘무럭무럭 자라서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할텐데.’ 설정스님은 선두를 내려놓고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선두가 스님의 눈물을 보고 침울해져 물었다. “스님, 울고 계세요?” “아니다. 울긴 내가 왜?” 설정스님은 짐짓 환한 웃음을 지여 보였다.
그러나 마음속은 쓰리고 아팠다. ‘불쌍한 녀석, 아버지 어머니 얼굴도 모르고…너무 외로운 녀석이야.’ 그 해 초겨울이었다. 겨우살이 준비를 하던 설정스님은 양식이 떨어진 것을 보고 시주를 해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설악산 대청봉 아래서 겨울 양식이 떨어지면 찾아오는 신도도 없고 큰일이었다. 설정스님은 시주를 하러 가기 위해 신들메를 했다.
선두를 돌아봤다. 데리고 갈 수도 없었고 그냥 놔두고 가자니 그렇고, 적어도 닷새는 혼자 있어야 하는데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스님은 선두를 앉혀 놓고 말했다. “내가 양식을 구해 오려면 아무리 빨라도 닷새는 걸릴 듯싶구나. 그 동안 너 혼자 있을 수 있겠느냐?” 선두의 맑은 눈망울을 바라보던 스님은 차라리 말없이 그냥 다녀올 걸 그랬다는 후회도 했다.
그런데 선두는 오히려 의젓했다. “네, 스님. 혼자가 아니고 관세음보살님하고 둘입니다.” 설정스님은 깜짝 놀랐다. 선두의 대답에서 어떤 어른보다도 엄청난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랬구나. 관세음보살님이 계시는구나. 그럼, 관세음보살님하고 절 좀 지키고 있거라. 내 속히 다녀오마.” 사립문을 나서던 설정스님은 선두를 돌아보며 다시 한번 다짐을 했다.
“어떤 경우라도 멀리 나가지는 말아라. 그리고 무서움이 일거든 관세음보살을 열심히 불러야 한다.” 선두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장 법당에 들어가 목탁을 치켜들며 스님에게 내보였다. 설정스님이 산문 밖을 나서서 멀리 떨어졌을 때도 선두의 목탁 두드리는 소리는 아련히 들려오고 있었다. 설정스님은 걸음을 재촉하여 해질녘에 양양에 도착하였다. 양식은 넉넉히 구했다.
산으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어닥쳤다. 어린 선두 생각 때문에 급히 떠나려는 스님은 마을 사람들은 한사코 말렸다. 이 눈보라치는 밤에 어떻게 가겠느냐는 것이었다. 설정스님은 그렇게 해서 하룻밤을 양양에서 묵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밤새 눈이 내려 지붕처마 밑까지 쌓여 있었다. 양양도 그러한데 설악산은 엄청날 것이 분명했다.
눈이 왔다 하면 설악산은 열 자 스무 자씩 쌓이는 게 보통이었다. 하는 수 없이 설정스님은 그 눈이 녹기를 기다렸다. 그 해 겨울 따라 유난히 추위가 심해서 좀체로 눈이 녹지 않았다. 겨울눈이 원망스러웠다. 이듬해 봄이 왔다.
그 동안 몇 번이고 길을 떠났다가는 실신해 쓰러져 있는 설정스님을 사람들이 발견해 대처로 데려오곤 했었다. 여러 번의 사고로 인해 몸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졌다. 그러나 이젠 봄이었다. 그는 동네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설악산을 향했다. 대청봉에 오르니 저 아래 골짜기에 관음암이 오롯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설정스님은 바람소리에 실려 오는 목탁소리를 들었다. 선두의 목탁소리라는 직감으로 알아챘다. 그러나 그는 믿지 않았다. 양식도 떨어진 데다 어린것이 몇 달 동안 살아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설정스님은 미친 듯이 선두를 부르면서 달려 내려갔다. 단숨에 임자에 이른 스님은 법당 밖에서 숨을 돌렸다.
법당 안에서는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는 어린 선두의 소리가 목탁소리에 겹쳐 들려 왔다. 그때였다. 웬 젊은 여인이 오색 치맛자락을 끌며 법당을 나오더니 아름다운 채색구름을 타고 멀리 날아가 버렸다.
스님은 두근거린는 가슴을 부여안고 법당문을 조용히 열었다. “선두야.” “스님.”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싸안았다. “스님.” “아이구, 네가 살아 있었구나.” “아니, 그럼 제가 살아 있지요. 스님이 오시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다고요.”
“그래, 별다른 일은 없었느냐?” “예, 스님 말씀대로 관세음보살을 불렀더니 관세음보살이 오셔서 같이 놀아 주고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했어요.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하고 너무나 똑같은 분이었어요.” 설정스님은 너무나도 감격하여 선두를 끌어안고 한없이 한없이 울었다. 그리고 그 날로 다섯 살 난 선두의 인연을 바탕으로 절 이름을 ‘오세암’이라 고쳤다.
그 후 오세암은 여러 차례의 중창을 거쳤으나 6.25때 전소하고 지금은 방 한 칸이 이 전설과 함께 전해지고 있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