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부사의 일념 소 중에서도 특이하게 우황(牛黃)을 지닌 소가 있듯이, 사람중에서도 특이하게 人黃이라는 것을 지닌 이가 있다.
이 인황은 우황보다 더 약효가 뛰어나서 불치병을 치료하는 효험이 있다고 한다.
지금부터 수백년전, 남쪽나라 월남국의 왕은 인황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불치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나 인황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왕은 월남의 오지에까지 사람들을 파견해 인황을 찾고자 하였지만, 인황을 가진 사람이 발견되지 않았다. 마침내 왕은 곡마단을 조직해 각국을 돌면서 인황이 있는 자를 찾아 대령하도록 했다.
중국 일본 등 여러나라를 별 성과없이 유람한 월남의 곡마단들이 우리나라 남해안에 이르렀다. 그때 동래 부사의 몸 속에 그토록 귀한 인황이 들어 있다는 것을 소문으로 알게 되었다.
곡마단원들은 한동안 동래에서 놀라운 묘기를 부리다가 어느 날 진수성찬을 마련해 동래 부사를 초청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래 부사는 기쁘게 초대에 응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멋진 묘기를 감상했다. 그리고 예쁜 여인들이 권하는 술을 넙죽 넙죽 받아먹다가 많이 취해 골아 떨어졌다.
문득 속이 뒤틀리고 머리가 빠개지 듯이 아파 눈을 떠 보니, 밖은 망경 창파라 배가 육지를 떠난 지도 이미 오래였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이오.” 그제 서야 월남인들은 그를 납치한 까닭을 일러주었다.
뒤늦게 수만리 타국으로 납치돼 가는 사실을 알게된 동래 부사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타국의 왕을 위해 산채로 내 배를 갈라야 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안된다. 절대로 안돼.’ 그는 평소 집안에 관세음보살상을 모셔놓고 즐겨 예배를 드리는 독실한 불자였다.
백척간두의 절망 앞에서 그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떠올린 그는 오체 투지로 간절히 기도했다. “관세음보살님, 이렇듯 억울한 일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고향에 돌아가 아직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제발 목숨만 구해 주십시오.” 동래부사는 밤낮 없이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오직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은 채 열심히 기도하다 문득 잠이 들었다. 신비하게도 눈을 뜨자마자 바다로 눈길을 돌리니 큰 연꽃 한 송이가 둥둥 떠다니는 게 아닌가. 그는 이것저것 가릴 것도 없이 바다에 뛰어내려 있는 힘을 다해 헤엄쳐 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계속 관세음보살을 부르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는 어느새 자신의 방에 돌아와 있는게 아닌가. 자신의 방에 모셔 두었던 관세음보살님의 몸은 바닷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죽고 사는 것까지 넘어서서 일념으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생명의 길이 열리게 마련이다. 동래부사는 기도가 일념삼매에 젖어들면 삶의 희망이 어느새 저절로 열리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