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된 선승

귀신이된 선승

송대 임제종 황룡파의 진정극문(1025~1102) 선사의 제자 늑담복심선사의 문하에 오시자라는 선승이 있었다.

이 스님은 장작불꽃을 휘젖다가 갑자기 깨친 바가 있어서 방장실로 달려가 자신의 깨달음을 알렸으나 방장은 그를 내쫓아 버렸다.

오시자는 그 길로 변소에 가서 목을 매어 자살해버렸다.

그후 귀신이 된 오시자는 밤마다 장경각이나 지객실, 변소 등에 나타나서 짚신을 옮겨놓거나 손 씻을 물병을 건네주거나 하며 온 대중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역시 진정극문선사의 제자이며 선기가 출중한 담당문준(1061~1115)선사가 행각에서 돌아와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몹시 슬퍼하며 귀신이 된 조카상좌를 제도하고자 깊은 깊은 밤중에 일부러 변소에 들어가 있었다.

그 때 벽에 걸린 등불이 희미해지더니 갑자기 꺼져버리고, 옷을 벗으려 하자 오시자가 손 씻을 물병을 가져왔다.

담당문준선사는 말했다.

“이봐, 아직은 일을 다 보지 않았으니 이따가 가져오게.”

용변을 보고나자 오시자는 물병과 똥 닦는 막대기를 가져왔다.

담당문준선사는 오시자를 불렀다.

“이봐, 병을 갖다두게.”

오시자가 변소 문 틈으로 내미는 병을 받자마자 선사는 그의 손을 갑자기 붙잡아 더듬어보니 흐물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단단한 것 같기도 했다.

담당선사가 그에게 말했다.

“그대가 오시자인가?

그대가 장작불꽃을 휘젖다가 깨달았다는 바로 그 사람인가?

참선하고 도를 닦는 일이란 오직 생명의 본원이 가는 곳이 어딘가를 알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대가 장경각에서 단(端)스님의 신발을 옮겨 놓은 일이 어찌 그대가 깨달은 그것이겠는가?

또한 그대가 지객실에서 목침이 공중에 날아다니게 한 일이 어찌 그대가 깨달은 그것이겠는가?

밤마다 변소에 있다가 물병을 건네주는 일이 어찌 그대가 깨달은 그것이겠는가?

무슨 까닭에 갈 곳을 모르고 여기서 대중들을 두렵게 하고 있는가?

내가 내일 대중들에게 권하여 너를 위해 경전을 읽도록 하고 돈을 모아 재를 마련하여 천도할 터이니 그대는 생사윤회에서 벗어나기를 구할 뿐 이곳에서 머뭇거리며 방황하지 말지어다.”

말을 마친 담당선사가 오시자를 힘껏 밀쳐버리자 마치 기왓장과 돌탑이 무너지듯 ‘와르르’하는 소리가 났다.

다음날 오시자를 천도하는 재를 지내자 오시자의 자취가 끊기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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