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자화휴경(太子和休經)
실역인명(失譯人名)하혜정 번역
부처님께서 나열기국(羅閱祇國:왕사성)의 기사굴산(耆闍崛山:영취산)에 계실 때의 일이다. 이곳에 보살 1만 인과 비구 스님 1,250인과 여러 우바새(優婆塞)와 우바이(優婆夷), 그리고 여러 하늘의 왕과 범천[梵] 및 제석[釋] 및 셀 수 없이 많은 사람과 귀신과 용들이 자리를 같이하였다. 이 때 아사세왕(阿闍世王)의 태자로 이름을 화휴(和休)1)라고 하는 이가 장자(長者)의 아들 5백 인과 함께 각각 황금빛 연꽃으로 꾸민 일산을 들고 나열기국을 떠나서 길을 재촉하여 모두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각각 가지고 온 일산을 부처님께 올리고 나서 각기 합장하여 머리를 땅에 대고 부처님께 예를 드린 다음 물러가서 부처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태자가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은 무슨 인연으로 해서 모습이 단정하게 되며, 여자의 뱃속에 들어가 태어나지 않고도 연화(蓮花)세계2)에 태어나게 됩니까? 또 무슨 인연으로 해서 지난 세상[宿世]의 원(願)을 알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저를 위해 크나큰 은혜를 베푸시어 이것을 분별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태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모욕을 당해도 꾹 참으면서 성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 세상에는 단정한 사람으로 태어난다. 또 보살은 음란하지 않으며 여인과 교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 세상에 태어날 때 여자의 뱃속에 들어가지 않고도 곧장 연화세계에 화생(化生)하는 것이다. 보살은 즐겨 경(經)과 계(戒)를 수지하면서 사람들을 가르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곧장 이전 세상의 일[宿命]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無央數] 이전 세상의 일들을 알게 된다.”
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인연으로 보살에게는 32상(相)이 있으며, 또 80종호(種好)가 있습니까? 그리고 어떤 인연 때문에 사람들이 부처님의 몸을 볼 때에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태자에게 말씀하셨다.
“본래 보살로 있을 때에 보시하여 주기를 좋아해서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 있으면 의복이나 음식, 금은과 보배와 마차[車馬]와 노비와 처첩(妻妾), 그리고 자신의 살점이나 머리와 눈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사람들의 요구를 거스르지 않는다. 조금도 욕심을 내거나 아까워하는 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32상을 얻은 것이다. 보살은 자비심이 있어서 사람들과 생명을 가진 모든 움직이는 것들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생각하여 이들을 모두 해탈[度脫]을 얻도록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80종호를 얻는 것이다. 보살은 원수를 보아도 마치 부모처럼 대하면서 평등한 마음으로 전혀 차별을 두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처님의 모습을 보면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이다.”
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인연으로 보살은 경전의 깊은 지혜를 알며, 무슨 인연으로 해서 삼매(三昧)의 안온함을 알며, 무슨 인연으로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은 들은 사람을 모두 기뻐하게 합니까?”
부처님께서 태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경전을 베끼거나 부처님의 말씀 배우기를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전의 깊은 지혜를 아는 것이다. 보살은 언제나 뜻을 정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를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삼매의 안온함을 얻는 것이다. 보살은 하는 말마다 모두 정성을 다하고 남을 속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는 말마다 정성을 다하고 신실(信實)해서 듣는 자들을 모두 기뻐하게 하는 것이다.”
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인연으로 보살은 몸으로 행하는 것이나 입으로 말하는 것이나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모두 정결하며, 무슨 인연으로 마귀가 제멋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까? 또 무슨 인연으로 사람들이 감히 부처님과 경전의 도리를 비방할 수 없으며 감히 비구승을 비방할 수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태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부처님 모시기를 좋아하고 경전의 도리를 좋아하며 비구승을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결함을 얻는다. 보살은 밤낮으로 경전을 읽고 실천하며 정진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보살은 하는 말마다 모두 정성을 다하여서 남을 속이는 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감히 부처님과 경전의 도리를 비방하지 못하며 비구승을 비방하지 못하는 것이다.”
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인연으로 보살은 수명이 길고, 무슨 인연으로 병이 없으며, 무슨 인연으로 집안이 화목[和順]하고 서로를 존중하여 따르며 다른 사람과 반목하여 헤어지는 일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태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마음이 자비로워서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 수명이 길 수 있는 것이다. 보살은 칼이나 몽둥이로 사람들을 두렵게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 병이 없는 것이다. 또 보살은 남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기꺼이 해결하여 화해하도록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 반목하여 헤어지지 않는 것이다.”
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인연으로 보살은 쉽게 재물을 얻고 힘들이지 않고 부유해지며, 무슨 인연으로 사람들에게 뺏기거나 도둑맞아 재물을 잃는 일이 생기지 않습니까? 또 무슨 인연으로 존자(尊者)로서의 호사와 존귀함을 누리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태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지혜가 있어서 어리석지 않다. 그러므로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큰 부자가 된다. 보살은 보시하기를 좋아해서 남의 재물을 탐내는 일도 인색한 일도 없다. 그러므로 재물을 잃어버리지 않게 된다. 남들이 부유하고 돈을 잘 버는 것을 보아도 시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존자의 지위를 얻는 것이다. 보살은 오만하지 않고 스스로 잘난 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호사하고 귀함을 얻는다.”
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인연으로 보살은 천안(天眼)을 얻어서 세상을 꿰뚫어 보며, 무슨 인연으로 천이(天耳)를 얻어서 모든 것을 철저하게 듣습니까? 무슨 인연으로 세간의 생사(生死)를 따라서 가는 곳의 선하고 악함을 압니까?”
부처님께서 태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절 안에 등불 켜기를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천안을 얻어서 세상을 꿰뚫어 본다. 절에서 노래나 음악을 연주하기를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천이를 얻어서 모든 것을 투철하게 듣는다. 그리고 보살은 삼매의 경지에 들어가서 선정(禪定)을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세간의 생사를 따라서 가는 곳의 선하고 악함을 아는 것이다.”
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인연으로 보살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등의 네 가지 신족념[四神足念]3)을 얻으며, 무슨 인연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겁(劫) 동안의 이전 세상의 일들을 기억할 수 있으며, 무슨 인연으로 깨달음을 얻으면 곧장 목숨이 끊어지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태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보시를 하니,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수레와 말과 코끼리와 나귀와 노새와 낙타와 신발 등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날아다닐 수 있는 4신족4)을 얻는다. 보살은 여러 부처님들의 삼매신족(三昧神足)을 생각하기를 좋아하고 기꺼이 따라 배워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한량없는 겁 이전 세상의 일들을 기억할 수 있다. 보살은 부처님의 뜻을 얻되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곧장 목숨이 끊어져 열반에 드는 것이다.”
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은 무슨 인연으로 불국토를 미리 다스리며, 무슨 인연으로 다음 세상에 태어나 비구승이 될 것을 미리 알며, 무슨 인연으로 광명을 얻어서 시방 세계를 두루 비추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태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언제나 많은 원(願)을 세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국토를 미리 다스린다. 보살은 사람들에게 보시를 베풀며 사람들에게 6바라밀의 경을 행하라고 가르치기를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비구승이 된다. 보살은 7보(寶) 등으로 일산을 만들어서 부처님과 불사(佛寺)에 올린다. 그렇기 때문에 광명을 얻어서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태자를 위하여 이와 같은 일들을 분별해서 설하시니 태자가 매우 기뻐하였으며, 장자의 아들 5백 명도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
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다음 세상에 지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실천해서 모든 것이 구족되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크게 웃으시니, 입 안에서 오색의 찬란한 빛이 나와서 모든 시방세계를 비추었다. 그러자 미륵보살이 일어나서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합장한 뒤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부디 망령되다고 웃지 말아 주십시오. 어떤 인연으로 부처님의 입에서 오색의 찬란한 광채가 나와 저 시방세계를 빠짐없이 비추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 일에 대하여 말할 것이니 들으라. 화휴(和休) 태자와 5백 명의 장자의 아들들은 이전 세상에 백억의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고 모두 보살도를 행하였다. 이전 세상 제화갈라(提和竭羅)5)부처님 시대에 이들 5백 명은 모두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다. 그러니 다음 세상에 당연히 모두 함께 모여서 6억의 부처님께 공양하고, 다시 그 뒤 1겁을 지나 겁의 이름을 마하바라밀(摩訶波羅蜜)이라고 할 때에 모두 같은 겁 중에 함께 모이게 될 것이다. 이들 5백 명이 서로 전후하여 모두 같은 이름을 얻을 것인데, 그 이름을 야나경두타나(耶那頸頭陁那)라고 할 것이다. 그 뒤 부처님이 될 때에는 그 국토는 당연히 아미타불의 국토와 같을 것이다. 그 국토 안에서 보살들이 왕래할 때에 날아다니는 자들로서 신통 변화를 하는 사람들도 모두 아미타불의 국토에 있는 보살들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 이 경을 들은 자들은 반드시 마치 문수사리보살이나 삼마제발(三摩提鉢)6)보살처럼 아미타불의 국토에 태어나서 보살이 될 것이며, 다음 세상에 부처가 되는 사람은 반드시 아미타불과 같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경을 다 설하시자, 태자와 5백 명의 장자의 아들들과 여러 보 살과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새와 우바이, 그리고 제천(諸天)과 범석(梵釋), 사람과 귀신과 용들이 모두 크게 기뻐하면서 앞으로 나와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1) 선비(善臂)ㆍ사바호(莎波乎)ㆍ소바호(蘇婆呼)ㆍ묘비(妙臂)ㆍ선수(善手)ㆍ쇄호(刷護)라고 한다.
2) 석가모니불의 진신(眞身)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정토(淨土)로, 가장 아래는 풍륜(風輪)이 있고, 풍륜 위에는 향수해(香水海)가 있으며, 향수해 가운데 대연화(大蓮花)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연화 안에는 무수한 세계를 포장(包藏)하고 있다 한다. 비로자나는 그 몸이 법계(法界)에 두루 차서 큰 광명을 비춘다는 부처님이다.
3) 작은 것도 볼 수 있는 신통[微視]과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신통[微聽]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신통[知他人心]과 하늘을 나는 신통[飛行]을 말한다.
4) 6신통 중의 하나로, 육신의 조절이 자유자재하고 왕래가 자재한 불가사의한 능력을 말한다. 신족통(神足通)이라고 한다.
5) 옛날 유동이라 불렸던 과거세의 석가모니가 다섯 줄기의 연꽃을 바쳤다는 부처이다. 이 부처는 그 인연으로 유동에게 미래에 성불할 것이라는 기별을 주었다고 한다. 정광ㆍ정광불ㆍ연등불ㆍ제원갈불ㆍ제화갈 등이라고도 하였다.
6) 정(定)의 다른 이름으로, 등지(等至)라 번역한다. 정을 등지라 하는 것은 등(等)은 정력(定力)에 의하여 혼침(昏沈)이나 도거(掉擧)의 번뇌를 여의고 심신이 평온하게 안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삼마발저(三摩鉢底)라고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