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파리와 불정존승 다라니경

불타파리와 불정존승 다라니경

당나라 때 불타파리는 계빈국(罽賓國) 사람으로 도를 구하기에 몸을 잊고 사방으로 불 보살의 신령한 자취를 구하여 다녔다.

중국에 문수보살 계신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사막(沙漠)을 건너서 의봉(儀鳳) 1년(676)에 중국에 이르러 오대산의 남쪽 사양령(斜陽嶺)에 올라갔다.

무성한 수풀은 하늘에 닿았고 땅에는 아름다운 꽃이 깔려 있었다.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를 쳐다보고 환희한 마음을 금할 길 없어 엎드려 절하고 공중을 향하여 하소연하였다.

「여래가 열반하신 뒤로 여러 성인이 자취를 숨기었으나, 문수 대성(文殊大聖)만이 자비가 그지 없으사 이 산중에서 중생을 건져 주시며 보살을 교화하시나이다.

저는 험난한 세상에 태어나서 성인을 뵈옵지 못함을 원통하게 생각하옵고 사막을 건너와 예배 하옵나니, 바라옵건대 자비를 드리우사 거룩한 존안(尊頗)을 친견케 하옵고 성스러운 말씀을 듣게 하여지이다.」

말을 마치고 슬피 울면서 산을 향하여 예배하니, 문득 한 노인이 골짜기로부터 나타나 바라문의 말로 불타파리에게

「너는 도를 구하려고 멀리 와서 보살의 자취를 찾는구나.

이 나라 중생들은 죄업을 많이 짓고 출가한 사람들로 계율을 지키지 않는다.

서역(西域)에는 불정존승다라니경(佛頂尊勝陀雅尼緩)이 있어서 중생의 죄업을 멸하는데, 너는 그것을 가지고 왔느냐?」

「저는 급히 서둘러 떠나오느라고 미쳐가지고 오지 못하였나이다.」

「경도 가지지 않고 와서 무엇 하려느냐 설사 문수보살을 만나더라도 알지 못할 것이다. 너는 빨리 돌아가 그 경을 가지고 오너라. 그리하여 이 나라의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면 곧 부처님도 친견하고 공양할 수 있을 것이니, 어찌 문수보살만을 만날 뿐이겠느냐.」

불타파리는 이 말을 듣고 환희하여 노인에게 절하고 일어나니 노인은 간 곳이 없었다.

기쁘고 슬픈 마음이 함께 읽힌 그는 서역으로 다시 돌아가서 정성을 다하여 불정존승다라니경(佛頂尊勝陀雅尼緩)을 구해 가지고 홍도(弘道) 1년(683)에 장안으로 돌아왔다.

존승다라니경을 가지고 왔노라고 임금님께 말씀드렸더니 고종(高宗) 황제가 크게 기뻐하면서 일조삼장(日照三藏)에게 명을 내려 불타파리와 함께 다라니경을 번역하게 하였다.

번역이 끝나매 불타파리에게 비단3천 필을 하사하고 경은 대궐 내에 두었다.

불타파리는 울면서 다시 여쭈었다.

「제가 목숨을 걸고 경을 가져 온 뜻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옵고 부귀를 탐한 것이 아니오니,

원컨대 폐하는 만백성을 평등하게 사랑하시는 뜻을 드리우사 그 경을 널리 퍼뜨리게 하옵소서.」

고종은 그 뜻을 가상히 여겨 번역한 경은 궐내에 두고 범본(梵本)을 도로 내주었다.

불타파리는 범본을 가지고 서명사(西明寺)에 가서 정순(正順) 스님과 함께 다시 번역하였고 그 뒤 범본을 가지고 오대산 금강굴(金剛窟)에 들어가서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혹은 말하기를 『불타파리가 금강굴에 들어가니 광명이 찬란한 곳에 문수보살이 엄연하게 계심을 보고, 굴 밖에 있는 동행한 사람을 부르러 나왔더니 별안간 거룩하던 경계가 없어지고 쓸쓸한 굴만 남게 되었다. 불타파리는 바위에 앉아서 죽었는데, 존승다라니는 세상에 유통되었다』한다.

화엄경에는 이런 게송이 있다.

화장세계(華藏世界)의 수 없는 티끌

그 티끌마다 낱낱이 법계(法戒) 있고

창명 속에 구름같이 모이는 부처님

이것이 여래의 국토에 자재하심이다

그러므로 금강굴은 성인의 경계이지 범부의 경계라 할 수 없으며, 불타파리가 한번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면 보살의 화신으로 나타내는 일이요, 나와서 앉아 죽었다면 범부를 떠나서 성인에 참예함이리라.

<고승전>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