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와 악마의 출가 문답

왕자와 악마의 출가 문답

석존께서 사위국의 기원정사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실 때의 일이다.

어느 때, 석존께서는 덕명왕불(德明王佛)이라는 부처가 나타났던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당시, 어느 나라의 왕자가 덕명왕불을 찾아가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부처님은 세상에서 고마우신 분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부처와 같은 지혜와 부처와 같은 얼굴을 갖출 수가 있을까.)

그는 떠오르는 대로 게로써 부처에게 물었다.

『이 몸 이제 세존을 뵈옵고

부처의 지혜를 얻기 원하오.

어떤 업을 행하면

무상의 지혜를 얻으리까.

속세에 섞이시는 그 모습

뭇별 중의 둥근 달인 양,

그 신통, 세상에 견줄 이 없으며,

사람에 맞추어 설법하시네.

이 몸 이제 석존께 묻자오니,

부처님 슬기 맑고 거침없고,

삼세에 모두 통달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우러러 보이네.

이제 이 몸 위하여 깨우치시라

석존은 그 옛날 한없이

많은 부처님 만나보시고

보리의 근원 물으시었지.

이젠 이 몸 위하여 깨우치시라.

어떻게 하여 거침없는 슬기를 얻고

모든 사람에게 귀의(歸依) 받으시고

생사의 괴로움 건지리.』

덕명왕불은 왕자의 게에 대하여,

『왕자의 말 그대로

그 일 참으로 이러하니라.

내 일찍이 갠지스강의 모래보다도

더 많은 부처 만나보고

갠지스강의 모래만큼의 세월은 지나,

여러 부처께 법을 물었지.

동자는 갸륵하게도 이제 여기서

보리의 마음 일으키었네.

그 만큼 변하지만 않는다면

부처의 깨달음에 이르리라.

이제 나의 깨우침 잘 듣고서

깨우친 그대로 몸을 닦고

보시는 행하여 게을리 말고

계를 지니어 쉬지를 말며

법을 듣고 지치지 않으면

참된 지혜를 배울 수 있으리.』

덕명왕불은 왕자의 열성적인 구도의 모습을 보고, 다시 게를 계속하였다.

『참된 지혜는 방소(方所) 없고,

참된 지혜는 주소도 없다.

우러러 듣는 인연 따라서

참된 지혜는 생겨나는 것.

참된 지혜는 눈에 의하지 않는 것

이 눈 본디 빈 것(空)이니

보는 눈에 의하지 말고

참된 지혜를 구할지어다.

귀도 코도 또 혀도 몸도

필경은 마음까지도 그러한 것

일체 오근(五根)은 다 빈 것이니

마음 머무를 형태 없나니.

사대(四大) 모여서 이루어진 몸은

마음이 잠깐 머무는 곳.

생각이 뒤이어 생겨나지만

생각 또한 유(有)가 아니다.

몸만 집착하는 것 없으면

목숨에 집착할 것도 없고

재물에 집착할 것 더욱 없으며,

이윽고 깨달음의 길 얻으리.

언제나 출가를 원하고 간절히

골똘히 도를 구하고

일체의 욕망은 멀리하고

악도(惡道)를 떨어 버리라.

보시를 베풀려 생각하거든

이사람 저사람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고,

남에게 말장난 아예 말아라.』

왕자는 이 게를 듣고 깊이 신심(信心)이 생기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일으켜 부처에게 게를 불러 말하였다.

『석존께서 나의 의심 끊어주시고

생사의 길을 피하게 하시고

깊고 맑은 법을 깨우치시어

이 몸에게서 이로움 주시었오.

부처님의 법 들은 이 몸은

빨리 도장(道場)에 앉아서

모든 악마의 올가미 벗고

이윽고 부처 되리라.

부처님의 법 듣기 때문에

이 몸은 이윽고 중생을 인도하고

대천 세계를 움직이어서

갖가지 신통을 나타내리라.

된 지혜를 얻은 이상은

일체 법이 헛것임을 알고

이윽고 큰 목숨 내어버리고

하루바삐 열반에 들고 싶어라.

이 몸 이제 부모님께 가서

은혜에 감사하고 하직을 하고

불법에 출가를 하여

보리의 길 닦고 행하리라.』

왕자는 부처님의 발에 절하고, 부처님을 세 번 돌고, 부모님 계신 곳으로 갔다. 그 도중에 집념이라는 하늘의 마왕이 있어, 왕자의 출가 도구의 뜻을 방해하려고 그 앞을 가로막고 하는 말이,

『그렇게 급히 어디로 가십니까.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물어 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왕자가 이에 대답하였다.

『나는 부처님 계신 곳에서 왔소. 무상의 법을 들었으므로 이제부터 그것을 닦고 행하는 것이오.』

악마는 말하였다.

『불도를 구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속세의 즐거움을 충분히 맛보고 그런 뒤에 출가를 하시오. 당신은 존귀한 왕가에 태어났으며, 집안의 재산은 한없이 많소. 먼저 속세의 즐거움을 누리지 않으면 뒤에 반드시 후회할 날이 있을 것이오.

존귀한 왕가에 태어나기란 힘드는 일이며, 숱한 재물이란 얻기 어려운 것이오. 만일 이제 그것을 다 버리고 출가하면 반드시 뒤에 후회하게 됩니다.』

왕자는 그 자리에서 그것을 물리치고 말하였다.

『속세의 영화는 참된 영화가 아니다. 이 일시적인 법을 찬탄하는 것은 당신의 그릇된 마음 때문이다. 부귀는 얻기 힘든다고 하지만 八난을 떨어 버리는 것은 더욱 힘드는 일이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때를 얻어 출가하여 불도를 닦고 행한다. 나는 이 三계의 괴로움과 덧없음을 죄다 알고, 애욕을 끊고,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지금부터 다시 무상의 법을 깨닫고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여 생사의 괴로움으로부터 건지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마왕은 말하였다.

『당신은 스스로 구도의 뜻을 세웠다고 하지만, 나도 당신을 위해 설법하여 당신을 인도해 드리렵니다.』

왕자는 대답하여,

『고맙소. 어서 말해 주시오. 어떤 법인가 들려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이에 마왕은,

『그러면 우선 맹세를 해 주시오. 그 뒤에 설법합시다.』

하였으므로, 왕자는 이 말을 듣고 성을 냈다.

『무슨 소리냐. 나는 당신이 어떤 설법을 하는가 들어 보는 것뿐이다. 들어 보고 과연 그렇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맹세든 무엇이든 다 하겠지만, 어떤 법인지 알기도 전에 맹세하기는 싫다.』

마왕은 그래도 또 말을 계속 하였다.

『맹세하는 것이 싫다면 나를 보고 그저 이렇게 말해 주면 됩니다.「가르쳐 주셨을 때에 닦고 행하겠습니다.」하고.』

왕자는 그것도 듣지 아니하였다.

『나는 당신의 제자가 되어 가르침대로 닦고 행하겠습니다, 하고 당신의 설법을 듣기도 전에 맹세를 할 수는 없어, 왜냐하면 당신이 만일 바른 법을 나쁜 법으로 생각하고 나쁜 법을 바른 법으로 생각하여 나에게 그릇된 법을 가르친다면 나는 당신의 설법에 따를 수가 없지 않으냐.

나는 당신의 설법을 들어 보고 선이면 따르지만 악이라고 생각하면 버려야 한다. 듣고 나서 맹세를 하는 것이 슬기로운 이의 법이다. 설법하고 나서 맹세를 구하는 것이 부처님의 법이요, 듣기도 전에 맹세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짓이다.

설법하기도 전에 맹세를 구하는 것은 악마의 하는 짓이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듣기 전에는 맹세를 안하는 것이다. 만일 먼저 맹세를 하면 나는 슬기로운 이의 비웃음을 살 것이다. 먼저 맹세를 해 놓고 뒤에 후회를 하게 되면 어떻게 돼, 웃음거리밖에 안 될 것이 아닌가.』

마왕은 왕자의 영리한 말을 듣고, 암만해도 설법하기 전에 맹세를 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소, 당신의 말대로 듣기도 전에 맹세를 하는 것은 슬기로운 이의 법이 아니오. 그러나 당신은 이것만은 믿어 주어야 되겠소. 대체 무슨 일이든 잘못이 많고 일과 잘못이 적은 일이 있을 경우에 그 많은 것은 버리고 적은 것은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말이요.』

왕자는 그 자리에서 반대하였다.

『당신은 그 무슨 모르는 말을 하시오. 많든 적든 간에 잘못이 있는 것이라면 모두 버려야 하소. 예컨대, 많은 독이나 적은 독이나 사람을 해하기는 마찬가지요. 국왕의 진지에 독이 있든 천한 사람들의 밥에 독이 있든 사람에게 해가 되기는 마찬가지요, 그러니까, 슬기로운 이는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는 것에는 가까이 하지 않소.

슬기로운 이가 가까이하는 것은 전연 잘못이 없는 일뿐이요. 슬기로운 이가 가까이 하는 것은 아무런 번뇌도 없고, 아무런 흔들림도 없는, 번뇌의 경지를 떠난 세계로 궁극의 안락의 경지요.』

마왕은 왕자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내 말을 믿지 않을 뿐더러 도리어 거꾸로 응수하여 내 마음을 흔들리게 한다. 이것은 보통 내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 왕자를 항복시킬 방법이 하나 있다. 적든 많든 잘못이 있는 것에는 절대로 가까이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왕자가 이제부터 닦으려는 보살행에는 숱한 어려움이 있다.

오랫동안 생사의 세계를 왕래하여 삼독(三毒)의 중생에 섞이어 처자나 재물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와 눈과 살과 손발 등을 청하는 대로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보살의 수행에는 이런 커다란 어려움이 있다. 지금 이 왕자가 이 말을 들으면 어쩌면 퇴전(退轉)하여 소승(小乘)의 법을 닦고 열반에 들려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공격해서 왕자의 대승의 발심(發心)을 막아 주리라.)

마왕은 이렇게 생각하고, 또 왕자에게 말하였다.

『그렇소. 그 말대로요. 참으로 당신이 말하는 대로요. 많든 적든 간에 잘못이 있는 것은 가까이해서도 안 되오. 이것이 슬기로운 이의 법이요. 내가 말을 잘못해서 당신 마음에 통하게 못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도 지금 당신의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요. 이 세상에서 잘못이 전연 없는 곳은 열반의 깨달음의 경지뿐이요. 모쪼록 열심히 이 경지를 추구해 주시오.

이 생사의 미혹의 세계를 왕래하여 많은 괴로움을 받지 않도록 하시오. 우리들이 어머니 뱃속에 머물 때나 머물은 뒤나 다 고생입니다. 배 안에서 나올 때도 고생입니다. 그리고 자라서 사랑하는 사람과도 이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괴로움, 미운 사람과도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괴로움 인생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생의 연속입니다. 우리들이 받은 이 몸은 또 얼마나 덧없고 연약한 것입니까, 태어나서 자라기까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걱정과 수고가 드는지 모릅니다.

이리하여 사람은 한없이 생사를 되풀이 해 갑니다. 이것을 듣고서 인생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은 슬기로운 이가 아닙니다. 당신은 아까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요?

「여러 부처님은 만나기 힘들고, 八난은 떨기 힘들다. 사람의 몸은 받기 힘들며 경법(經法)은 듣기 힘들고 또 믿기 힘든다.」고.

당신은 앞서 어렵다고 한 것은 지금 모조리 다 얻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헛되이 버리지 말고, 어서 이 더러운 현세를 떠나 주시오. 그리하여 열반의 경지에 들어가 주시오. 나는 이것을 말하고 싶어서, 「맹세를 해 주시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왕자는 마왕의 이 설법에도 따르지 아니하였다.

『이 생사의 세계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은 무수한 괴로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지금 막 당신이 이야기한 대로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생사의 세계를 떠나, 자기 혼자만 열반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나로서는 못해. 나는 지금,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더욱 더 무한의 생사를 되풀이하여 무수한 괴로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오.

나는 무상 보리를 얻어 이 생사의 세계를 왕래하여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을 한없이 되풀이 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지 않으면 안되겠오. 당신은 나에게 위대한 이익을 주었소. 나는 당신이 생사의 괴로움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생사에 떨어지는 사람들을 향하여 대비구호(大悲球護)의 마음을 떨쳐 일으키게 되었소.

내가 이내 열반의 경지로 들어가 버린다면 누가 이 사람들을 구할 것인가,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일으킨 대원(大願)을 더욱 더 굳게 지켜 나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오.』

마왕은 그래도 또 왕자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조그마한 잘못에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아니하였소. 그런데 왜 이 잘못 투성이의 생사의 세계에 들어가려고 합니까.』

왕자는 말하였다.

『무상보리 가운데에는 하나도 잘못이라고는 없소. 나는 이 무상보리에 가까이 가려는 것이오.』

마왕은 다시 말하였다.

『무상보리에는 잘못은 없으나, 대체 누가 그것을 줍니까. 나도 무상보리를 닦아서 부처가 되려고 발심했었으나 결국 헛일이었소.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당신에게 이루어질 수 있겠소. 내가 부처가 되려는 간사한 마음을 일으키자마자 무수한 거지떼가 나타나 내게서 처자와 재물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와 눈에 이르기까지 모든 소중한 살과 손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빼앗고 말았다.

나는 이리하여 부처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한없이 많은 목숨을 여기서 버리었다. 그 때마다 흘린 나의 피는 강이 되어 흐르고 있다. 그 때마다 잃어버린 나의 뼈와 살은 산이 되어 쌓여 있는 당신은 그것을 보고 싶지 않소.』

왕자는 말하였다.

『내 마음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어서 그 피의 강과 뼈의 산을 보여 주시오.』

마왕은 왕자의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왕자의 보리심을 되돌려 바꾸어 버릴 수가 있을지 모른다. 나를 이롭게 하기 위하여 피의 강과 뼈의 산을 보고 싶다. 따위의 말을 들어 보니 말이다.)

마왕은 그 자리에서 네 개의 커다란 피의 못을 왕자 앞에 나타내었다. 네 개의 피의 강이 그 못에 시뻘건 피가 넘쳐 흘려 들어가고 있다. 그 강 위에는 무수한 사람의 머리가 수미산과 같이 쌓여 있다. 거의 다 깨져가는 머리와 이미 흐늑 흐늑하게 으깨어져 파랑 · 노랑 · 빨강과 흰빛으로 변한 머리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 높은 머리의 산 둘레에는 손발이 잘린 시체, 눈알이 튀어 나온 시체, 귀와 코를 잘린 시체 등 무수한 사람의 시체들이 수미산을 둘러싼 산들과 같이 쌓여 있다.

그 시체 산 사이를 흉악한 모습의 사람 잡아먹는 귀신들이 수없이 많이 우글거리고 있다. 칼을 쥔 귀신, 활과 살을 든 귀신, 내지는 머리가 무수히 있는 귀신, 두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귀신, 외눈박이 귀신, 내지는 무수한 눈을 가진 귀신, 그들은 모두 서로 큰소리로 고래고래 아우성을 치며 눈을 부라리고 입술을 깨물고, 혀를 내밀고 싸우고 있다.

마왕은 이 처참한 광경을 왕자 앞에 나타내어 보이고 먼저, 눈앞의 피의 못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왕자여, 이 냇가의 피의 못을 보시오. 이것은 내가 옛날, 무상보리의 마음을 일으켰을 때 수없이 많은 거지떼 때문에 버린 나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의 못이오.』

마왕은 이어서 사람 머리의 산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왕자여, 저 수미산같이 높은 사람 머리의 산을 보시오, 저것은 내가 옛날 무상보리의 마음을 일으켰을 때, 수없이 많은 거지떼에게 베풀어 준 나의 머리요.』

마왕은 다음으로 그 둘레에 있는 시체의 산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왕자여, 저 시체의 산을 보시오. 저것은 옛날 내가 무상보리의 원을 일으켰을 때에 수없이 많은 거지떼에게 베풀어 준 나의 시체요.』

마왕은 또 그 다음 수없이 많은 사람 잡아먹는 악귀들을 가리키며,

『왕자여, 저 무서운 사람 잡아먹는 귀신들을 보시오. 무상보리의 마음을 일으킨 사람이 있으면 그들은 곧 거지로 변하여 그 사람의 머리와 눈과 귀와 손을 토막 잘라서 빼앗아 갑니다. 나는 옛날 발심했다가 얼마나 그들에게 살을 빼앗겼는지 모릅니다.』

마왕은 다시 거대한 나찰(羅刹)의 모습을 만들어 내어 보이며 왕자에게 말하기를,

『왕자여, 저 나찰을 보시오. 저 나찰은 무상보리의 원을 일으킨 사람의 오장을 꺼내어 먹고 최후에 남은 일곱방울의 피까지도 다 마시고, 그 목숨이 뿌리를 끊어 버린 것입니다.』

마왕은 눈앞의 광경을 다 해설하고 나서 왕자에게 권하였다.

『왕자여, 잘 생각하시오. 당신이 그 보리의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저 괴로움을 겪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도 옛날 보리의 원을 관철하기는 어려운데 이 숱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무상보리를 물리쳤지요. 물리치자마자 당장 괴로움은 사라져 버리고 쾌락이 생겼지요. 나는 당신을 위하여 이렇게 끈질기게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무상보리의 마음을 버리시오. 버리지 않으면 이 괴로움에게 벗어날 수는 절대로 없을 것이요.』

왕자는 처참한 광경을 보고, 또 유혹을 받았으나,

(이 사나이는 마왕이냐, 악마의 사자이냐,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어서 나의 구도의 뜻을 꺾으려 하고 있다. 또 이 사나이와 같이 무상보리의 마음을 일으켰기 때문에 무수한 거지 떼에게 살과 피와 목숨까지도 빼앗기는 것은 과거세계 무거운 죄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또 이 수없이 많은 거지떼가 원을 일으킨 사람의 살을 요구하고, 피를 요구하고 목숨까지도 요구하는 것은 빨리 무상보리를 성취시키기 위한 것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헤매고 있는 사람들에게 세속적인 욕구조차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세속적인 원을 풀 수가 있을까. 이 사나이는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깊은 무상도(無相道)를 즐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중도에서 물러나 버렸던 것이다.

이 사나이가 좋은 경계이다. 나는 더욱 마음을 굳게 먹고 정진을 가하여 무상도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비록 수 없이 많은 목숨을 버릴지라도 한없이 많은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결코 퇴전(退轉)은 하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중생을 건지기 위하여 한없이 많은 번뇌를 끊기 위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무상도를 얻어야 한다.』

하고 생각하였다. 왕자는 마왕을 향하여 단호히 말하였다.

『고맙소. 당신이 보여 준 이 광경은 나에게 좋은 교훈이었소. 나는 이것을 보고, 더욱 더 구도의 뜻을 굳히고, 보리의 길을 나아갈 수가 있소.』

마왕은 이 소리를 듣고 놀랐다.

(이 왕자는 이 처참한 광경을 보고도 구도의 뜻을 버리지 않을 뿐 아니라 더욱 더 그 뜻을 굳힌 것일까.)

하고 마왕의 계획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이에 그는 왕자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에 나의 권고에 따르지 아니하면 뒤에 반드시 후회할 것을 명심하시오.』

왕자가 마왕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 악마의 무리들은 화를 내어 마왕에게 저마다 대들었다.

『마왕이여, 거기를 비켜 주시오. 이 사나이는 힘도 없는 주제에 어쩌구저쩌구 말대꾸를 하여 당신의 가르침에 따르지를 않으려 하오. 우리들은 그를 갈기갈기 찢어서 그 살을 먹고 뼈를 씹고, 오장을 꺼내 먹고, 피를 빨아먹기 전에는 이 화가 풀리지 않겠소. 우리들은 그가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그 때마다 그의 고기를 먹고, 그의 목숨을 끊어 버리지 않고서는 견ELF 수가 없소.』

마왕은 날뛰는 그의 무리들을 무마하면서 말하였다.

『잠깐 기다려라, 나는 이 왕자의 그릇된 생각을 변복시키기 위하여 그의 스승이 되리라. 너희들의 역성은 고맙기는 하나 내 손으로 그를 바른 생각으로 인도하고 싶다. 만일 끝까지 그가 그릇된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 때에는 너희들의 마음대로 해도 좋다.』

마왕은 정색을 하고 왕자에게 말하였다.

『왕자여, 나는 당신을 생각하여 일생동안 당신의 스승이 되려 합니다. 제발 여기서 그 그릇된 생각을 버려 주시오. 왕자여, 이 무상도는 얻기 힘들고 깨닫기 어려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보살 수행을 한 사람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곳을 보여 드리리다. 당신은 보고 싶지 않소?』

왕자는 대답하였다.

『보여주시오.』

마왕은 왕자 앞에 대지옥을 나타내었다.

『왕자여, 저 지옥의 불에 타고, 옥졸에서 시달려 신음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시오. 저 사람들은 전세에서 무상 보리심을 일으켰으니, 많은 거지에게 구걸을 당했오. 때문에 아까와 하는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을 일으켰기 때문에 지금 이 업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약간의 물건을 구걸당했다는 것만으로써 이 지옥에 떨어져 저런 고통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하물며, 자기의 살을 달라하고 뼈를 달라하고, 눈을 뽑히고, 귀를 잘리고, 오장을 먹히고, 피를 빨리고서 어떻게 성을 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지옥의 벌을 받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당신은 이제부터 거지가 구걸을 할 때 아까와서 주지를 않으면 이 지옥에 떨어집니다. 비록 죽었다 하더라도 원망하거나 조금이라도 성을 내든가 하면 역시 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죽든 안 죽든 지옥의 괴로움은 면할 길이 없습니다.

또 설사 아끼는 마음이나 성을 내지않고 보시를 하더라도, 많은 악마의 무리들은 당신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에, 혹은 어머니 뱃속을 나올 때에 당신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당신에게 보시의 수행을 시키지 않을 것이오. 당신이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직접 이 지옥에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시오. 어째서 지옥에 떨어졌는가를 말이오.』

왕자는 그의 말대로 지옥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당신들은 왜 이 지옥에 떨어졌습니까.』

그들 중에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우리들은 옛날 불도를 닦을 때에 보시를 구하는 자에 대하여 아끼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켰기 때문에 이 지옥의 고생을 겪고 있습니다.』

또 그들 중의 누가 대답하였다.

『우리들은 옛날 불도를 수행할 때, 많은 거지들에게 살을 찢긴 노여움 때문에 지옥의 고생을 겪고 있는 것이요.』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왕자에게 권고하였다.

『왕자여, 이 사람의 말대로 하여, 뒤에 지옥에 떨어져 후회하지 않도록 하시오.』

왕자는 마왕을 보고 말하였다.

『고맙소. 당신이 보여준 지옥과 거기에 떨어져 있는 옛날 보살이었던 사람들은 나에게 좋은 교훈이었소. 나는 오늘부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을 조금도 아낌없이 구하는 사람들에게 베풀겠습니다. 또 어떤 물건을 주든지 그것에 대하여 조금도 노여움이나 원망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기로 하겠소.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물건을 아끼고 인색한데 대한 과보이지 보시에 대한 과보는 아니요. 이로부터 함께 덕명왕불께로 가서 법문을 듣고 불도를 수행합시다.』

마왕은 당황하여 왕자를 막았다.

『내가 이제 새삼스럽게 무슨 필요가 있어 부처에게 가겠는가. 가고 싶거든 당신 혼자서 가시오. 내가 가면 부처는 나에게 보리심을 일으키게 할 것이요.』

왕자는 말하였다.

『당신은 아까 말하지 않았소. 자기는 깊은 깨달음을 구하고, 조용한 경지를 원하고 있다고 말이요. 우리들은 함께 부처님에게 가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기로 합시다.』

왕자는 세 번 마왕을 재촉했으나 그는 완강히 거부한다.

『왕자여, 그것은 안 됩니다. 나는 전에 부처의 가르침을 따른 것으로써 모든 괴로움을 받았소. 어떻게 이제 내가 갈 수 있겠소.』

왕자는 마왕의 손을 잡고 붙잡고 억지로 부처님께 데리고 갔다. 왕자는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서, 자세히 이제까지의 일은 부처님께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그랬더니 부처님은 왕자를 칭찬하면서 말씀하시었다.

『너는 용케도 이 사나이의 말을 따르지 않았구나. 이 사나이는 집념 마왕이다. 너를 속여서 보살의 수행을 퇴전시켜 보려고 했던 것이다.』

왕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다 듣고 나서 마왕을 향하여 엄숙히 말하였다.

『당신은 이제 여기서 불·법·승의 三보에 귀의(歸依)하시오.』

그러나 마왕은 이것을 물리쳤다.

『어림없는 소리. 그런 것에 귀의하다니.』

이렇게 내뱉고 마왕은 잠자코 서 있다. 왕자는 마왕을 조용히 바라보고 마음속으로 맹세를 하면서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참으로 불도를 구하고 있다면, 이 마왕은 수업승(修業僧)의 모습이 될 것이다.)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마왕의 머리털은 저절로 떨어지고, 몸에는 법의를 걸치고 손에는 쇠바리가 얹히어 수업승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그는 이 광경을 보고 부처님께 따져 물었다.

『三보에 귀의할 생각도 없는데 억지로 수업승의 모습으로 만드는 법이 어디 있소.』

부처님은 대답하였다.

『억지로 너를 수업승의 모습으로 만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면 내 마음대로 하겠다 하고 마왕은 얼른 쇠바리를 내버리려 했으나, 손에서 암만해도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는 당황하여 가사를 벗으려 했으나 몸에 달라붙어 아무리 해도 벗어지지가 않았다. 성급히 굴면 굴수록 쇠바리나 가사는 그에게서 더욱 떨어지지를 않는다.

(이런 곳에 어물 어물 하고 있다가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리라.)

마왕은 이렇게 생각하고 부처님 앞에서 홀연히 몸을 감추어 하늘의 제 집으로 올라갔다. 그는 자기 집에 돌아와 겨레붙이들과 함께 말하였다.

『나를 수업승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전의 마왕이다. 덕명왕불을 항복시키려다가 도리어 이런 꼴이 되고 말았다. 어처구니없는 웃음거리다.』

그러나 그의 겨레붙이들은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치고 바리를 들고 있는 이 집념 마왕을 전의 마왕이라고는 아무도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중녀석 주제에 미친 소리 마오. 너는 이제 하늘 마왕이 아니야. 여기에는 이렇게 대신 마왕이 생겼어.』

집념은 그 소리를 듣고 후회하고 탄식하였으나 이제 행차 뒤의 나팔이 되고 말았다.

그는 울부짖으며 부처님께로 되돌아왔다. 덕명왕불은 신통력으로써 그의 눈앞에 아비지옥을 나타내어 보였다. 보니 한 옥졸이 수미산처럼 큰 시뻘겋게 단 쇠공을 들고 동쪽으로 서쪽으로 뛰어 돌아다니면서 누군가를 찾고 있다.

거기에 한 사나이가 나타나 옥졸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

하고 물으니 옥졸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온 집념 마왕을 찾고 있다. 그놈의 입에 이 쇠공을 넣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거기서 그 사나이의 하는 말이,

『그 집념 마왕은 출가하여 수업승의 모습이 되어 지옥의 고생을 면하게 되었을 것이다.』

또 한 옥졸이 커다란 불덩이 산을 양쪽 어깨에 메고, 서쪽 동쪽으로 뛰어 돌아다니면서 누구인가를 찾고 있다.

그 사나이가 이 옥졸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는 거냐.』

옥졸은 대답하였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온 집념 마왕을 찾고 있다. 그놈의 몸뚱이를 이 불덩이 산으로 재로 만들어 버리려는 것이다.』

거기에 또 한 옥졸이 칼산을 어깨에 메고 서쪽 동쪽으로 뛰어 돌아다니면서 누구인가를 찾고 있다. 그 사나이는 이 옥졸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는 거냐.』

옥졸은 대답하였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온 집념 마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 칼산으로 그놈의 몸뚱이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려는 것이다.』

그 사나이는 옥졸에게 말하였다.

『그 집념 마왕은 출가하여 수업승의 모습이 되어 지옥의 고생을 면했을 것이다.』

또 한 옥졸이 흐늘흐늘하게 녹은 구리를 담은 커다란 가마를 어깨에 메고 서쪽 동쪽으로 뛰어 돌아다니면서 누군가를 찾고 있다.

그 사나이는 옥졸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는 거냐.』

옥졸은 대답하였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온 집념 마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 흐늘흐늘하게 녹은 구리쇳물을 그놈의 입에 부어서 입술이며 혓바닥이며 목구멍이며 뱃속을 태워 문들어지게 해 버릴 것이다.』

그 사나이는 말하였다.

『그 집념 마왕은 출가하여 수업승의 모습으로 되어 지옥의 고생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또 한 옥졸은 손에 쇠갈고리와 활과 창과 그밖의 여러 가지 흉기를 들고 동쪽 서쪽으로 뛰어 돌아다니면서 누군가를 찾고 있다.

그 사나이는 이 옥졸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는 거냐.』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온 집념 마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 쇠갈고리와 활과 창으로 그놈의 몸뚱이를 벌집으로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

그 사나이는 말하였다.

『그 집념 마왕은 출가하여 수업승의 모습으로 되어 지옥의 고생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이리하여, 마왕은 부처님이 보여주신 지옥 속의 옥졸들의 자기에 대한 무시무시한 저주를 듣고 벌벌 떨었다.(나는 이미 하늘 세계의 영화도 사라지고, 마왕의 권위도 잃어버리고,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될 나의 운명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옥졸들은 떨어져 내려오는 나를 기다리다 못해 혈안이 되어 찾고 있다. 무엇으로 이 괴로움을 면할 수가 있겠는가. 나는 오직 출가하여 수업승이 되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진심으로 부처님께 원하여 수업승이 되어 이 대지옥의 괴로움을 면해 보자.)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왕자에게 자기의 마음속을 고백하고 출가하여 도를 얻기를 원하였다.

이에 왕자는 대답하여 말하였다.

『맑은 마음으로 참으로 무상보리의 원을 일으켰거든 출가하시오. 머리는 깎고, 옷을 물들인 것만으로서는 출가라고 할 수 는 없오. 출가할 사람이 닦아야 할 법을 닦고 나서 출가하시오. 이 불도 안에서는 나나 나의 소음에 집착하거나 또 대경(對境)에 대하여 분별하거나 하는 사람은 출가라고는 할 수 없오. 당신이 진실로 무상 보리심을 일으켰거든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시오. 지옥이란 무엇이냐, 지옥이란 실제로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이렇게 추구해 나가면 결국 지옥은 꼭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지옥에 떨어진다 안 떨어진다 하는 것도 가공적인 것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마왕은 왕자의 가르침을 듣고 곧 무상 보리심을 일으켜, 법의 모습을 가르쳐 준 그대로 보고 오래지 않아 진여실상(眞如實相)의 이치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덕명왕불은 집념 마왕에게 무상도(無上道)의 적이(記)를 주시었다.

왕자는 뜻하지 않게도 도중에서 마왕을 교화 인도하고 나서 부모님께로 가서 출가의 허락을 청하였다.

『부처님 따라 출가하녀는 이몸을

부모님이여 말리지 마소서.

출가는 즐거움의 근본이요,

부처님의 찬양하는 것이외다.

세상의 낙을 구하는 사람도

하늘 위의 낙을 구하는 사람도

참된 지혜를 구하는 사람도

모두 부처님 따라 출가하시라.

옛날 보시하시고 계를 지니었기에

부모님 지금 존귀하신 것이외다.

다시 공덕의 근본을 쌓아

바로 범왕이 되시옵소서.

옛날 보시하시고 계를 지니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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