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제5권
10. 향대불품(香臺佛品)
그때 사리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식사할 때가 되었는데, 이 대보살들은 법을 설하고 나서도 일어나질 않는구나. 우리 성문들과 보살들은 언제 식사를 할까?’
무구칭은 사리자의 생각을 알고 그에게 말했다.
“대덕이여, 여래께서는 성문들을 위해 8해탈(解脫)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이미 그 경지에 머무르고 있는데도 재물이나 먹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정법(正法)을 듣지 않고 있습니다. 음식이 먹고 싶다면 잠깐 기다리십시오. 모든 이에게 일찍이 먹어 보지 못했던 음식을 대접하겠습니다.”
무구칭은 순식간에 미묘한 적정에 들어가 뛰어난 신통력을 일으켜 보살과 대성문들에게 다음과 같은 광경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이 불국토에서 위쪽 세계로 42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불세계(佛世界)를 지나면 또 하나의 불세계가 있다. 그 불세계의 이름은 묘향(妙香)이며, 그곳의 부처님 이름은 최상향대(最上香臺)이신데 지금 현재 평화롭게 안주하고 계신다. 그 세계 속엔 미묘한 향기가 있는데, 시방의 모든 불세계의 인간들이나 천신들이 발하는 향기보다 훨씬 뛰어난 향기이다. 그곳의 나무들은 모두 미묘한 향기를 발하는데, 사방 모든 지역에 널리 퍼지고 일체에 가득 찼다. 그 세계에는 성문이나 연각과 같은 2승(乘)의 명칭은 없고 오직 청정한 대보살(大菩薩)들만 있는데, 향적여래는 그들에게 법을 설했다. 그 세계의 모든 누각이나 궁전ㆍ거리ㆍ숲ㆍ동산ㆍ의복들은 하나하나가 다 미묘한 향기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세계의 세존과 보살들이 먹는 향기는 미묘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시방의 한량없는 불국토에 널리 퍼졌다.
그때 최상향대여래와 보살들은 함께 앉아서 식사를 하고 계셨다. 그곳엔 향엄(香嚴)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천자(天子)가 있었다. 이미 대승에 대해 깊이 귀의하는 마음을 낸 자로 그 불국토의 여래와 보살들을 공양하면서 받들고 있었다.
그때 이곳의 모든 대중들은 그 세계의 최상향대여래와 보살들이 함께 앉아서 식사하는 모습을 다 보았다.
무구칭은 모든 보살들에게 널리 말했다.
“여러분 대사(大士)들 중에서 누가 저 세계로 가서 미묘한 향기로 된 음식을 가져올 수 있습니까?”
그러나 묘길상의 위신력(威神力) 때문인지 보살들은 다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무구칭이 묘길상에게 말했다.
“그대는 어째서 지금 대중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가호(加護)해 주지 않으십니까?”
묘길상이 말했다.
“거사여, 그대는 이 보살들을 경시해선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도 아직 배우지 못한 자를 경시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무구칭은 침상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대중들 앞에서 보살의 화신(化身)을 만들었다. 그 화신 보살의 몸은 금빛이었으며, 상호(相好)의 장엄함과 위덕(威德)의 광명은 그곳에 모인 대중을 압도했다. 무구칭이 말했다.
“그대 선남자여, 이 불국토에서 위쪽으로 42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불세계를 지나가면 또 하나의 불세계가 있다. 그 불세계의 이름은 묘향이며, 그곳 부처님의 이름은 최상향대인데 여러 보살들과 함께 앉아서 음식을 들고 계신다. 그대는 그곳에 가서 부처님 발에 고개 숙여 절하고 이렇게 말씀드려라.
‘이 아래쪽 세계의 무구칭이 멀리서 마음으로나마 세존의 두 발에 고개 숙여 절하고 경건히 문안드립니다. 괴롭거나 아프신 데 없이 기거가 편안하시고 기력이 충만해 안락하게 지내시는지요?’
그리고 소요하는 마음으로 오른쪽으로 수백천 번 돌고 두 발에 머리 숙여 절하면서 이렇게 말씀드려라.
‘바라건대 세존께서 드시고 난 나머지 음식을 저 아래 감인(堪忍:娑婆)세계에 베풀어 불사(佛事)를 지으셔서 근기 낮고 욕망의 쾌락을 좇는 중생들로 하여금 대지혜를 기뻐하게 하시고, 또 여래의 한량없는 공덕의 명성을 어디서나 듣게 해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나서 화신 보살이 그곳에 모여 있는 대중들 앞에서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니 모든 대중들이 모두 그 광경을 보았다. 신통력이 너무나 빨라 순식간에 묘향의 세계에 도착해 최상향대부처님의 발에 절하면서 말했다.
“아래쪽 세계의 보살인 무구칭이 세존의 두 발에 한량없이 고개 숙여 절하고 경건히 문안드립니다. 괴롭거나 아프신 데 없이 기거가 편안하시고 기력이 충만해 안락하게 지내시는지요?”
그리고 소요하는 마음으로 오른쪽으로 수백천 번 돌고 두 발에 머리 숙여 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바라건대 세존께서 드시고 난 나머지 음식을 저 아래 감인세계에 베풀어 불사를 지으셔서 근기 낮고 욕망의 쾌락을 좇는 중생들로 하여금 대지혜를 기뻐하게 하고, 또 여래의 한량없는 공덕의 명성을 어디서나 듣게 해주십시오.”
그때 그곳에 모인 묘향세계의 보살들은 이 화신 보살의 상호가 장엄하고 위덕의 광명이 미묘하면서도 뛰어난 것을 보고 경이감에 차서 말했다.
“이 대사(大士)는 지금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감인세계는 어느 곳에 있습니까? 어째서 근기 낮고 욕망의 쾌락을 좇는 세계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들은 이렇게 최상향대여래에게 묻고 나서 말했다.
“바라건대 세존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이여, 여기서 아래쪽으로 42항하의 모래 수만큼 많은 불세계를 지나면 다시 하나의 불세계가 나오는데 그 이름을 감인(堪忍)이라고 한다. 그곳에 계신 부처님의 명호는 석가모니 여래ㆍ응공(應供)ㆍ정등각(正等覺)이신데, 지금 현재 그곳에서 안온하게 머물러 계신다. 석가모니여래는 다섯 가지 부정(不淨)이 가득한 나쁜 세상에 머무시면서 근기 낮고 쾌락만을 좇는 중생들을 위해 정법(正法)을 선양하고 계신다. 그곳에는 또 무구칭이라는 보살이 있는데 이미 불가사의 해탈법문에 안주해서, 여러 보살들에게 미묘한 법을 열어 보이고 있다. 이 무구칭이 화신 보살을 이곳에 보낸 것은 나의 공덕과 명호를 칭송하고, 동시에 이 땅이 온갖 공덕으로 장엄되어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그곳 보살들의 선근(善根)을 자라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묘향세계의 보살들 모두가 말했다.
“그 분의 공덕이 어느 정도이시기에 큰 신통력과 무외(無畏)의 힘이 이 같은 화신을 만드는 데까지 이른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이여, 이 대보살은 뛰어난 대공덕법을 성취했다. 한 찰나에 한량없고 가없는 보살의 화신을 지어 시방의 모든 국토에 전부 보내 불사를 짓게 하니, 이는 한량없는 중생의 안락과 번영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최상향대여래는 온갖 미묘한 향기가 흘러나오는 그릇에다 온갖 미묘한 향기를 풍기는 음식을 담아서 무구칭이 보낸 화신 보살의 손에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 불국토의 9백만 대보살들이 동시에 한 목소리로 부처님께 청했다.
“우리들도 이 화신 보살과 함께 저 아래 감인세계에 가서 석가모니여래를 뵈옵고 경건히 예를 드리고 공양을 한 다음 정법을 듣고 싶습니다. 아울러 무구칭과 여러 보살들을 뵈옵고 경건히 예를 드리고 공양하고 싶습니다. 바라건대 세존께서는 허락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이여, 그대들이 가고 싶다면 지금이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그대들 모두는 스스로 몸의 향기를 거두고 나서 감인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그곳 중생들이 향기에 취해 방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대들 모두는 스스로 자신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숨긴 채 감인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그곳 보살들이 부끄러워하는 생각을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또 그대들은 저감인세계에 대해서 경멸하는 생각을 일으켜 혐오하지 않도록 하라. 왜냐하면 선남자들이여, 일체의 불국토는 다 허공 같기 때문이다. 모든 불세존은 중생들을 성숙시키고 싶기 때문에 중생이 즐기는 데 따라 갖가지 불국토를 나타낸다. 어떤 국토는 청정하고 어떤 국토는 오염되어 있고, 어떤 국토는 결정된 모습이 없지만 사실상 모든 불국토는 근본적으로 청정해서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그러자 화신 보살은 음식이 가득 찬 그릇을 받아들고 9백만 보살들과 함께 최상향대부처님의 위신력과 무구칭의 신통력에 의지해 그 묘향세계에서 사라져 순식간에 이 세계의 무구칭 방에 나타났다.
무구칭은 9백만 개의 사자좌(師子座)를 만들어 묘향세계의 보살들을 그 자리에 앉게 했는데, 그 미묘함과 장엄함은 전에 만든 사자좌와 똑같아 전혀 차이가 없었다. 그러자 화신 보살은 음식이 가득찬 그릇을 무구칭에게 건네주었다. 그 음식의 미묘한 향기는 광엄성(廣嚴城)과 삼천대천세계에 널리 퍼졌다. 한량없고 가없는 미묘한 향기가 퍼졌기 때문에 일체의 세계가 그 향기로 진동했다. 광엄성의 모든 바라문과 장자ㆍ거사ㆍ사람인 듯 사람 아닌 자들이 이 향기를 맡고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그들은 몸과 마음이 한량없이 황홀해지는 것을 느꼈다.
당시 광엄성 이첨비(離呫毘) 종족의 왕 이름은 월개(月蓋)였다. 그와 8만 4천 이첨비 종족은 갖가지로 장엄하고서 무구칭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방 안에 있는 수많은 보살과 장엄하게 장식된 높고 넓은 사자좌를 보고는 너무나 기쁜 마음이 솟구쳐 일찍이 없었던 놀라운 광경이라고 찬탄했다. 그리고 여러 보살들과 대성문들에게 예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또 모든 지신(地神)과 허공신(虛空神),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의 모든 천인들이 이 미묘한 향기를 맡고서 저마다 한량없이 많은 권속들을 데리고 무구칭의 방으로 들어왔다.
무구칭이 존자 사리자를 비롯한 대성문들에게 말했다.
“존자들이여, 여래께서 베푸신 감로 맛의 음식을 들어보십시오. 이 음식은 대비(大悲)로 훈제한 것이니, 졸렬하고 왜소한 마음으로 이 음식을 먹지는 마십시오. 만약 그런 마음으로 먹는다면 절대로 소화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모인 대중 중에 근기 낮은 성문이 이렇게 생각했다.
‘이 음식은 너무나 적은데 어떻게 이 모든 대중을 다 먹일 수 있겠는가?’
그러자 화신 보살이 말했다.
“그대들의 사소한 복과 지혜로 여래의 한량없는 복과 지혜를 측량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4대해(大海)의 물이 다 말라붙는다 해도 이 미묘한 향기의 음식은 절대로 동이 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한량없는 대천세계의 모든 중생 하나하나가 이 밥을 먹는데, 그 먹은 음식이 묘고산처럼 거대하고, 또 이런 일을 1겁이나 100겁을 계속한다 해도 이 음식이 동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음식은 결코 다함이 없는 계율[戒]ㆍ선정[定]ㆍ지혜[慧]ㆍ해탈(解脫)ㆍ해탈지견(解脫知見)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래께서 드시고 남은 음식은 한량없는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백천 겁 동안 그 향기나는 음식을 먹는다 해도 결코 동이 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곳에 모인 대중들이 모두 이 향기나는 음식을 먹었고, 모두가 배불리 먹었는데도 음식은 여전히 남았다. 온갖 성문들과 보살들, 인간과 천인 등 모든 대중은 이 음식을 먹고 나서 몸이 안락해졌다. 마치 일체안락장엄세계(一切安樂莊嚴世界)의 보살이 누리는 일체 안락의 경지에 머무는 것 같았다. 또 대중들 몸의 털구멍은 미묘한 향기를 발했는데, 마치 일체묘향세계에 있는 숱한 묘향나무[妙香樹]들이 늘 한량없는 온갖 미묘한 향기를 뿜어내는 것과 같았다.
그때 무구칭이 위쪽 묘향세계에서 온 모든 보살들에게 물었다.
“그곳의 여래께서 보살들을 위해 어떤 법을 설하시는지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일체묘향세계의 보살들이 다 함께 대답했다.
“우리 땅의 여래께서는 보살들에게 문자나 언어로 법을 설하시지 않습니다. 오로지 미묘한 향기로써 보살들을 다 조복(調伏)시키십니다. 보살들이 저마다 묘향나무 밑에 편안히 앉아 있으면, 그 묘향나무들은 제각기 온갖 향기를 내뿜습니다. 그러면 보살들은 이 미묘한 향기를 맡고서 일체덕장엄정(一切德莊嚴定)을 얻습니다. 이 선정을 얻는 것이 바로 일체 보살의 공덕을 갖추는 것입니다.”
반대로 묘향세계에서 온 보살들이 무구칭에게 물었다.
“이곳의 여래 석가모니께서는 중생들에게 어떤 법을 설하십니까?”
무구칭이 말했다.
“이 땅의 중생들은 너무도 억센지라 다스리고 교화하기가 지극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래께서는 이 다스리고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들을 강경한 설법으로 조복시켜 교화시킵니다. 그 설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은 지옥으로 가는 길[地獄趣]이다. 이것은 축생의 세계로 가는 길[傍生趣]이다. 이것은 아귀의 세계로 가는 길[餓鬼趣]이다. 이것은 8난처에 나는[無暇生] 길이다. 이것은 신체장애[諸根缺]의 길이다. 이것은 몸으로 저지른 악행이고, 이것은 몸으로 저지른 악행의 과보이다. 이것은 말로 저지른 악행이고, 이것은 말로 저지른 악행의 과보이다. 이것은 뜻으로 저지른 악행이고, 이것은 뜻으로 저지른 악행의 과보이다. 이것은 생명을 끊는 것이고, 이것은 생명을 끊은 것에 대한 과보이다. 이것은 주어지지 않은 것을 취하는 것이고, 이것은 주어지지 않은 것을 취한 것에 대한 과보이다. 이것은 욕망에 의한 그릇된 행동이고, 이것은 욕망의 그릇된 행동에 대한 과보이다. 이것은 허망한 거짓말이고, 이것은 허망한 거짓말에 대한 과보이다. 이것은 이간질하는 말이고, 이것은 이간질하는 말에 대한 과보이다. 이것은 거칠고 나쁜 말이고, 이것은 거칠고 나쁜 말에 대한 과보이다. 이것은 더러움이 섞인 말이고, 이것은 더러움이 섞인 말에 대한 과보이다. 이것은 탐욕이고, 이것은 탐욕에 대한 과보이다. 이것은 성냄이고, 이것은 성냄에 대한 과보이다. 이것은 그릇된 견해이고, 이것은 그릇된 견해에 대한 과보이다. 이것은 인색함이고, 이것은 인색함에 대한 과보이다. 이것은 계율을 파괴하는 것이며, 이것은 계율을 파괴하는 것에 대한 과보이다. 이것은 원망하는 것이고, 이것은 원망함에 대한 과보이다. 이것은 게으름이고, 이것은 게으름에 대한 과보이다. 이것은 마음의 흐트러짐이고, 이것은 마음의 흐트러짐에 대한 과보이다. 이것은 어리석음이며, 이것은 어리석음에 대한 과보이다. 이것은 배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것은 배운 것을 초월하는 것이다. 이것은 별해탈(別解脫)을 갖는 것이며, 이것은 별해탈을 범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루어진 것[應作]이며, 이것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것은 유가(瑜伽)이며, 이것은 유가가 아니다. 이것은 영원히 끊는 것이며, 이것은 영원히 끊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장애이며, 이것은 장애가 아니다. 이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며, 이것은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갖가지로 오염된 것이며, 이것은 청정한 것이다. 이것은 바른 길이며, 이것은 그릇된 길이다. 이것은 선이며, 이것은 악이다. 이것은 세간이며, 이것은 세간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죄가 있는 것이며, 이것은 죄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번뇌가 있는 것[有漏]이며, 이것은 번뇌가 없는 것[無漏]이다. 이것은 유위(有爲)이며, 이것은 무위(無爲)이다. 이것은 공덕이며, 이것은 과실(過失)이다. 이것은 고통이 있는 것이며, 이것은 고통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즐거움이 있는 것이며, 이것은 즐거움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싫어서 벗어나야 할 것이며, 이것은 좋아서 즐겨야 할 것이다. 이것은 버릴 만한 것이며, 이것은 닦아 익힐 만한 것이다. 이것은 생사이며, 이것은 열반이다.’
이처럼 법에는 한량없는 문(門)이 있습니다. 이 땅의 중생들은 그 마음이 억세어 여래께서는 이 같은 갖가지 법문으로 중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그들을 조복시키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코끼리와 말이 사나워 말을 듣지 않으면 갖가지 채찍을 가해 그들 뼈에 사무치게 한 뒤에 조복시킵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의 억센 중생들은 지극히 교화하기 어려운지라 여래는 이 같은 절실한 언어를 방편으로써 은근히 깨우치고 가르친 뒤에 조복시켜서 정법(正法)에 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때 상방(上方)에서 온 여러 보살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서 놀라면서 모두 이렇게 말했다.
“너무도 기이하십니다. 세존 석가모니께서 이토록 힘든 일을 하시다니요. 석가모니께서는 한량없이 존귀한 공덕을 숨기시고 이러한 놀랄 만한 조복의 방편을 나타내십니다. 또 근기 낮고 비천한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해 갖가지 법문으로 조복해서 그들을 이롭게 합니다.
그리고 이 불국토에 사는 보살들 역시 온갖 수고를 달게 받고 감내합니다. 그들은 가장 뛰어나고 보기 드물고 견고하고 불가사의한 대자비와 정진을 성취해서 여래의 위없는 바른 법[無上正法]을 돕고 거들어서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들에게 이익을 줍니다.”
무구칭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진실로 대사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석가모니여래께서는 지극히 어려운 일을 하십니다. 즉 한량없이 존귀한 공덕을 숨기시며, 어떤 수고로움도 꺼리지 않습니다. 또 방편을 써서 억세어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을 조복합니다. 이 불국토에 태어난 보살들도 온갖 수고를 달게 받고 감내합니다. 그 결과 가장 뛰어나고 보기 드물고 견고하고 불가사의한 대자비와 정진을 성취해서 여래의 위없는 바른 법을 돕고 거들어 한량없는 중생을 이롭게 합니다.
감인세계에서 평생 동안 보살행을 실천하고 중생을 이롭게 해서 얻은 공덕은 일체묘향세계에서 백천 대겁(大劫) 동안 보살행을 실천하고 중생을 이롭게 해서 얻은 공덕보다 많다는 것을 대사들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감인세계는 대략 열 가지 닦아 나가는 착한 법[善法]이 있는데 이 착한 법은 다른 시방세계의 청정한 불국토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열 가지 착한 법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보시를 베풀어 가난한 이들을 다스립니다.
둘째, 청정한 계율로써 금기를 깨는 이를 다스립니다.
셋째, 인욕으로 성내는 이를 다스립니다.
넷째, 정진으로 게으른 자를 다스립니다.
다섯째, 정려(靜慮)로써 마음이 흐트러진 이를 다스립니다.
여섯째, 뛰어난 지혜로 어리석은 이를 다스립니다.
일곱째, 여덟 가지 불행에 빠지는 길을 없애는 법을 설해서 일체의 불행한 중생을 두루 다스립니다.
여덟째, 대승의 정법을 설해서 일체의 소승법 즐기는 이를 다스립니다.
아홉째, 갖가지 뛰어난 선근(善根)으로 아직 선근을 심지 못한 이를 널리 다스립니다.
열째, 위없는 4섭법(攝法)으로 늘 일체 중생을 성숙시킵니다.
이상을 열 가지 닦아 나가는 착한 법이라고 합니다. 감인세계는 이 열 가지 법을 다 갖추고 있으나, 다른 시방세계의 청정한 불국토는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자 저 부처님 세계에서 온 보살들이 다시 말했다.
“감인세계의 보살들은 몇 가지 법을 아무 훼손 없이 성취해야 목숨을 마친 뒤 다른 정토에 태어납니까?”
무구칭이 말했다.
“감인세계의 보살들은 여덟 가지 법을 아무 훼손 없이 성취해야 목숨을 마친 뒤 다른 정토에서 태어납니다. 여덟 가지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보살은 ‘나는 중생을 위해 당연히 착한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 착한 일에 대한 과보를 바라서는 안 된다’고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 보살은 ‘나는 저 일체 중생을 대신해 온갖 고뇌를 받고, 내가 성취한 모든 선근을 다 되돌려서 베풀겠다’라고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셋째, 보살은 ‘나는 저 일체 중생을 대할 때 항상 평등한 마음과 걸림 없는 마음으로 대하겠다’라고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넷째, 보살은 ‘나는 저 일체 중생을 대할 때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그들을 부처님처럼 공경하고 사랑하겠다’라고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섯째, 보살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주 심오한 경전에 대해 믿음과 이해를 가져야 하며 그 경전을 잠깐이라도 들으면 의심하지 말고 비방도 없어야 합니다.
여섯째, 보살은 타인의 이익에 대해서는 질투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고, 자기의 이익에 대해서는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일곱째, 보살은 자기의 마음을 조복해야 하고 늘 자기의 허물을 살필 뿐, 남의 잘못은 비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덟째, 보살은 항상 방일하지 말아야 하고 늘 착한 법을 즐기면서 묻고 탐구하여 깨달음을 돕는 법[菩提分法]들을 정진 수행해야 합니다.
감인세계의 보살들이 이 여덟 가지 법을 아무 훼손 없이 모두 성취한다면 목숨을 마친 뒤에는 다른 정토에서 태어납니다.”
이처럼 무구칭과 묘길상을 비롯한 보살들이 대중들 속에서 갖가지 미묘한 법을 설하자 백천 중생이 동시에 무상정등각의 마음을 일으켰으며, 1만 보살이 다 무생법인을 증득했다.
11.보살행품(菩薩行品)
그때 부처님께서는 암라위(菴羅衛)숲에서 대중들에게 법을 설하고 계셨다. 그런데 대중들이 모인 그곳의 땅이 돌연 커지고 넓어지면서 일체의 대중이 다 금빛의 색조를 띠었다. 그러자 아난다[阿難陀]가 즉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어떤 조짐입니까? 대중들이 모인 곳이 돌연 이처럼 커지고 넓어지면서 일체 대중들이 다 금빛을 띠고 있으니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구수(具壽)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무구칭과 묘길상이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대중들을 데리고 이곳 모임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냈기 때문에 이런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그때 무구칭이 묘길상에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여러 대사와 함께 여래를 찾아뵙고 예를 드리고 공양한 뒤 세존께 미묘한 법을 들읍시다.”
묘길상이 말했다.
“지금이 갈 때이니 동행하시지요.”
그러자 무구칭은 신통력으로 여러 대중들을 본래 있던 곳과 사자좌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한 채 오른쪽 손바닥에 올려놓고서 부처님의 처소로 가서 그곳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세존의 두 발에 경건히 절을 하고 오른쪽으로 일곱 번을 돈 뒤 한쪽으로 물러나 부처님을 향해 합장한 채 엄숙히 서 있었다. 대보살들도 사자좌에서 내려와 세존의 두 발에 경건히 절을 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돈 뒤 한쪽으로 물러나 부처님을 향해 합장한 채 엄숙히 서 있었다. 대성문들과 제석천ㆍ범천ㆍ호세사천왕들도 모두 자리에서 나와 세존의 두 발에 경건히 절을 하고 한쪽으로 물러나 부처님을 향해 합장한 채 엄숙히 서 있었다. 이에 세존께서는 법대로 보살들을 비롯한 일체의 대중들을 위문하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들 대사는 제각기 자기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대중들은 부처님의 권유를 받고 제각기 자리로 돌아가서 경건히 앉았다.
세존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 뛰어난 보살 대사들의 자재한 신통력의 활동을 보았는가?”
사리자가 말했다.
“예, 보았습니다.”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그대는 어떤 생각을 일으켰는가?”
사리자가 말했다.
“생각으로 가늠하기 어렵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대사의 불가사의를 보면서 그 활동과 신통력과 공덕이 헤아릴 수도 없고, 사유할 수도 없고, 측량할 수도 없고, 비교할 수도 없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아난다가 즉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지금 풍기는 이 향기는 예전엔 맡아본 적이 없는 향기입니다. 이것은 누구에게서 나는 향기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향기는 이 보살들의 털구멍에서 나는 향기이다.”
그러자 사리자가 아난다에게 말했다.
“우리들의 털구멍에서도 그 향기가 나옵니다.”
아난다가 말했다.
“이런 미묘한 향기가 어떤 인연으로 그대들의 몸에서 나는 것입니까?”
사리자가 말했다.
“이는 무구칭의 자재한 신통력 때문입니다. 무구칭은 저 위쪽 일체묘향세계의 최상향대여래 부처님 나라에 화신 보살을 보내 그곳의 부처님께서 드시고 남은 음식을 얻도록 청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음식을 방안으로 갖고 와서 대중들에게 공양한 것입니다. 그 음식을 먹은 이들은 모두 털구멍에서 이 향기를 내뿜습니다.”
그러자 아난다가 무구칭에게 물었다.
“이 미묘한 향기는 얼마나 오래갑니까?”
무구칭이 말했다.
“이 음식이 완전히 소화될 때까지는 향기가 계속 남습니다.”
아난다가 말했다.
“이 음식을 먹은 지가 오래되었다면 당연히 다 소화됐을 것입니다.”
무구칭이 말했다.
“이 음식의 위세는 7일 낮 7일 밤 동안 몸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기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점차 소화됩니다. 오랫동안 소화되지 않았다 해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구수(具壽)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 성문승 중에서 아직 정성이생위(正性離生位)에 들지 못한 자가 이 음식을 먹으면 반드시 바른 성품에 들어 생을 벗어난 뒤에라야 비로소 소화됩니다. 아직 욕망을 벗어나지 못한 자가 이 음식을 먹으면 욕망을 벗어난 뒤에라야 비로소 소화가 됩니다. 아직 해탈하지 못한 자가 이 음식을 먹으면 마음의 해탈을 한 뒤에라야 비로소 소화가 됩니다. 대승 보살의 종성(種性)으로 아직 무상보리의 마음을 발하지 못한 자가 이 음식을 먹으면 무상보리의 마음을 발한 뒤에라야 비로소 소화가 됩니다. 이미 무상보리의 마음을 발한 자가 이 음식을 먹으면 무생법인을 증득한 뒤에라야 비로소 소화가 됩니다. 이미 무생법인을 증득한 자가 이 음식을 먹으면 불퇴전(不退轉)의 경지에 안주한 뒤에라야 비로소 소화가 됩니다. 이미 불퇴전의 경지에 안주한 자가 이 음식을 먹으면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안주한 뒤에라야 비로소 소화가 됩니다.
구수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예컨대 세간에는 최상의 맛이라는 약 중의 왕[大藥王]이 있습니다. 만약 온갖 독이 온몸에 퍼진 중생을 만나 그 약을 먹게 한다면, 그 독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는 이 약 중의 왕은 소화되지 않습니다. 모든 독이 다 없어진 뒤에야 비로소 소화됩니다. 이 음식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번뇌의 온갖 독들이 다 없어질 때까지는 이 음식도 소화되지 않습니다. 번뇌가 완전히 소멸한 뒤에라야 비로소 소화됩니다.”
아난다가 말했다.
“불가사의합니다. 대사들이 가져온 이 향기 음식[香食]은 중생을 위해 갖가지 불사를 지을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대 말처럼 불가사의하다. 이 무구칭이 가져온 향기 음식은 중생을 위해 갖가지 불사를 지을 수 있다.”
그리고는 부처님께서는 다시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무구칭이 가져온 향기 음식이 중생을 위해 갖가지 불사를 짓듯이, 다른 시방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불사를 짓는다.
어떤 불국토에서는 온갖 광명으로 불사를 지으며, 어떤 불국토에서는 보리수로 불사를 지으며, 어떤 불국토에서는 보살들로 불사를 지으며, 어떤 불국토에서는 여래의 색신(色身)의 상호를 나타냄으로써 불사를 지으며, 어떤 불국토에서는 여러 화현한 사람[化人]으로 불사를 지으며, 어떤 불국토에서는 갖가지 의복으로 불사를 지으며, 어떤 불국토에서는 침구로 불사를 지으며, 어떤 불국토에서는 온갖 음식으로 불사를 지으며, 어떤 불국토에서는 온갖 숲과 동산으로 불사를 지으며, 어떤 불국토에서는 온갖 누대와 궁전으로 불사를 지으며, 어떤 불국토에서는 허공으로 불사를 짓는다. 왜냐하면 온갖 중생은 이 방편을 통해 조복되기 때문이다. 어떤 불국토에서는 중생을 위해 갖가지 언설과 비유를 통해 꿈 같고, 허깨비 같고, 빛의 그림자 같고, 물속의 달 같고, 메아리 소리 같고, 아지랑이 같고, 거울 속의 형상 같고, 뜬구름 같고, 건달박성(健達縛城) 같고, 제망(帝網:인드라 그물) 같다는 비유를 널리 설함으로써 불사를 짓는다. 어떤 불국토에서는 음성과 언어와 문자를 통해 온갖 법의 성품과 모양을 널리 설함으로써 불사를 짓는다. 또 언설도 없고, 꾸짖거나 칭찬하는 일도 없고, 추구하는 것도 없고, 쓸데없는 논쟁도 없고, 겉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도 없는 청정하고 고요한 불국토도 있는데, 이 불국토에서 교화 받은 중생은 이 청정한 고요를 통해 자연히 모든 법의 성품과 모양에 깨달아 들어가는 것으로써 불사를 짓는다. 아난다여, 시방세계의 모든 불국토는 그 수효가 끝이 없으니 불사를 짓는 것 또한 헤아릴 수가 없다고 알아야 한다. 요컨대 모든 부처님께서 지닌 위의(威儀)와 노력과 도움과 베풂은 다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일체 모든것을 다 불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 모든 세간의 네 가지 마군[四魔]과 8만 4천의 여러 번뇌문(煩惱門)은 중생들의 번뇌이다. 일체의 여래는 바로 이 법으로 모든 중생을 위해 불사를 짓는다.
아난다여, 이 법문의 이름이 바로 ‘일체의 불법에 깨달아 들어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보살이 이 법문에 들면, 비록 일체를 성취해서 한량없이 광대한 공덕으로 장엄한 불국토를 보더라도 애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전혀 공덕이 없는 오염된 불국토를 보더라도 걱정 근심을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부처님께 최고의 믿음과 공경을 바치면서 경이에 차서 찬탄한다. 모든 부처님이신 세존들의 일체 공덕은 평등하고 원만해서 일체 만법의 궁극적이고 진실한 평등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다만 서로 다른 중생들을 성숙시키려 하기 때문에 갖가지 다양한 불국토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대는 반드시 이렇게 알아야 한다. 가령 모든 불국토가 의지하는 땅은 뛰어난 곳도 있고 열등한 곳도 있어서 한결같지 않지만 그 위의 허공은 전혀 차별이 없는 것처럼, 불세존께서는 중생들을 성숙시키기 위해 갖가지 다른 색신(色身)을 나타내지만 걸림이 없는 복덕과 지혜는 궁극적으로 원만하여 전혀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그대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의 여래는 모두가 평등하다. 이른바 최상의 두루 원만하고 다함이 없는[無極] 형색(形色)ㆍ위광(威光)ㆍ신체의 상호ㆍ족성(族姓)의 존귀함ㆍ청정한 계율ㆍ선정ㆍ지혜ㆍ해탈ㆍ해탈지견ㆍ10력(力)ㆍ4무외(無畏)ㆍ부처님과 함께하지 않는 법[不共佛法]ㆍ대자(大慈)ㆍ대비(大悲)ㆍ대희(大喜)ㆍ대사(大捨)ㆍ이익ㆍ안락ㆍ위의(威儀)ㆍ행하는 바[所行]ㆍ정행(正行)ㆍ수명[壽量]ㆍ설법(說法)ㆍ중생을 성숙시키고 해탈시키는 것ㆍ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 다 평등하다. 이처럼 모든 여래 부처님의 법은 다 평등하고 완성되어 있고 다함이 없기 때문에 그들 모두를 정등각(正等覺)이라고도 하고 여래라고도 하며 불타(佛陀)라고도 말하는 것이다.
아난다여, 설령 내가 이 세 낱말의 의미[三句義]를 분별해서 자세히 설명하고자 하여, 그대가 1겁 동안 머물면서 그 겁이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듣는다 해도 그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또 삼천대천세계의 중생들이그대 아난다처럼 기억[念]과 총지(總持)와 많이 들음[多聞]에서 최고가 되어 모두 1겁 동안 머물면서 그 겁의 수명이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듣는다 해도 그 뜻을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정등각ㆍ여래ㆍ불타 세 낱말의 오묘한 뜻은 모든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끝까지 결택(決擇)하여 선양(宣揚)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마땅히 알아라. 모든 부처님의 보리와 공덕은 한량이 없으며, 막힘없는 미묘한 말솜씨 역시 불가사의하다.”
이렇게 설법을 마치자, 아난다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부터 감히 기억과 총지와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고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마음이 위축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내가 예전부터 그렇게 말한 것은 성문들 중에서 기억과 다라니와 다문에서 제일간다는 것이지 보살에 대한 것은 아니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설사 지혜가 있는 자라도 보살들의 일은 헤아리지 못한다.
너는 지금 마땅히 알아라. 온갖 대해(大海)의 원천과 깊고 얕음은 측량할 수 있어도 보살의 지혜와 정념(定念)과 총지와 변재에 대해서는 측량할 수가 없다. 그대들 성문은 보살행의 경지를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이 무구칭이 밥 한 그릇 먹을 동안 조화를 부리고 신통력을 나타낸 것을 성문이나 독각들은 백천 대겁 동안 조화를 부리고 신통력을 나타낸다 해도 따라갈 수 없다.”
그때 저 위쪽 묘향세계에서 온 보살들이 모두 일어나 석가모니께 예배하고 합장 공경하면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우리들이 처음 이곳에 와서 이 불국토의 갖가지 더러움을 보고 하열(下劣)하다는 생각을 일으켰습니다. 이제는 다 뉘우치고 그 같은 마음을 버리겠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의 경계와 방편의 교묘함은 불가사의하기 때문입니다. 중생을 성숙시키고자 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중생의 갖가지 욕망에 대응해 이런저런 불국토를 나타내십니다. 오로지 바라는 것은 세존께서 사소한 법이라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일체묘향세계에 돌아가면 그 법을 통해 항상 여래를 생각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마치자 세존께서 그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들의 해탈 법문이 있으니 이름하여 ‘다함이 있음[有盡]과 다함이 없음[無盡]’이다. 그대들은 이제 공경히 받아들이고 마땅히 부지런히 수학(修學)하여야 한다. 무엇을 ‘다함이 있음과 다함이 없음’이라고 하는가? 다함이 있음이라고 하는 것은 유위(有爲), 즉 생멸이 있는 법을 말한다. 다함이 없음이라고 하는 것은 무위(無爲), 즉 생멸이 없는 법을 말한다. 보살은 유위를 다해서도 안 되며, 마찬가지로 무위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보살이 유위를 다해서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그것은 보살이 대자(大慈)를 버리지도 않고 대비(大悲)를 잃지도 않는 것이다. 일찍이 일으킨 드높은 의요(意樂)와 일체지심(一切智心)을 굳게 간직하면서 잠시도 잊지 않는 것이다. 중생을 성숙시키는데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4섭법(攝法)을 한시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정법을 보호하고 지키는데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갖가지 선한 일을 닦아 익히면서도 결코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 공덕을 잘 회향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정법을 구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법의 가르침을 펴는데 권태로워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을 늘 우러르면서 공양하는 것이다. 생사를 받아도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흥망성쇠를 만나더라도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것이다. 아직 배우지 못한 자를 경시하지 않는 것이고. 이미 배운 자는 부처님처럼 공경하는 것이다. 번뇌 속에서도 이치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고 멀리 벗어나 홀로 있는 즐거움에 대해서도 탐착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자기의 행복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않고, 남의 행복에 대해서는 깊은 마음으로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닦아 익힌 정려ㆍ해탈ㆍ등지(等持)ㆍ등지(等至)를 지옥처럼 생각해 애착하지 않는 것이다. 삼계와 6취(趣)에 생사유전하는 것을 집 뜰[宮苑]처럼 생각해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
구걸하러 오는 자에 대해서는 좋은 친구라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소유를 아낌없이 버리면서 일체지(一切智)로 회향할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금기를 깨는 자에 대해선 구제할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바라밀다는 부모처럼 생각해 속히 성취하는 것이다. 보리분법(菩提分法)은 날개처럼 생각해 궁극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온갖 착한 법을 늘 부지런히 닦아 익히는 것이다. 자신의 영역을 모든 불국토의 공덕으로 장엄하기를 즐기는 것이다. 다른 불국토에 대해선 깊은 마음으로 흔쾌히 찬미하고, 자기 불국토는 속히 성취하는 것이다. 온갖 상호(相好)로 원만하게 장엄하고 청정하고 걸림 없는 대보시행을 닦는 것이다. 몸과 말과 마음을 청정하게 장엄하기 위해 일체의 계율을 범하는 악법을 멀리 벗어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견고하고 인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체의 분노ㆍ원망ㆍ번뇌를 멀리 벗어나는 것이다. 수행이 조속히 궁극[究竟]에 이르도록 겁(劫)을 지내는 동안 한없이 생사를 윤회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굳세고 용맹스럽게 하기 위해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 듣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번뇌의 적을 영원히 무찌르기 위해 방편을 통해 반야의 칼과 몽둥이를 갈고 닦는 것이다. 온갖 중생의 무거운 짐을 지기 위해 온(蘊)ㆍ처(處)ㆍ계(界)에 대해 완전히 통달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일체의 마군을 꺾어버리기 위해 게으름 없이 치열하게 정진하는 것이다. 무상정법(無上正法)을 수호하고 지키기 위해 태만함을 버리고 부지런히 훌륭한 방편과 조화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다. 온갖 세간의 사랑과 교화를 위해 늘 욕심을 줄이고 만족할 줄 아는 행실을 즐겨 익히는 것이다. 세간의 법에 늘 더럽혀지지 않으면서도 일체의 세간을 순리대로 따를 수 있는 것이다. 온갖 위의를 조금도 허물어뜨리지 않으면서도 모든 행동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갖가지 신통과 묘한 지혜를 발휘해서 일체 중생을 안락하게 하고 이롭게 하는 것이다. 일체의 배운 정법을 잘 받아 지녀서 묘한 지혜[妙智]와 정념(正念)과 총지를 일으키는 것이다. 모든 기관[根]의 높고 낮은 지혜를 낳아서 일체 중생의 의혹을 끊는 것이다. 갖가지 걸림 없는 변재를 증득해서 정법을 펴되 늘 막힘이나 걸림이 없는 것이다. 인간과 천상의 뛰어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청정한 열 가지 착한 길[十善道]을 부지런히 닦는 것이다. 범천(梵天)의 길을 올바로 개발하기 위해 4무량(無量)의 지혜를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의 가장 미묘한 음성을 얻기 위해 설법을 권청하고 따라 기뻐하며 선(善)을 찬미하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의 미묘한 위의를 얻기 위해 늘 뛰어난 적정(寂靜)의 3업(業)을 닦는 것이다. 수행 정진이 일념마다 증진하도록 일체의 법에 대해 마음이 더럽혀지거나걸림이 없는 것이다. 보살들을 잘 조어(調御)하기 위해 늘 대승으로 중생들의 배움을 권장하는 것이다. 지니고 있는 공덕을 잃거나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 언제 어느 때라도 방일하지 않는 것이다. 선근(善根)의 확실한 성숙과 증진을 위해서 늘 크나큰 염원[大願]을 닦기를 즐기는 것이다. 일체의 불국토를 장엄하기 위해 늘 부지런히 광대한 선근을 닦아 익히는 것이다. 닦아 익힌 수행이 궁극적으로 다함이 없게 하기 위해서 늘 공덕을 회향하고 훌륭한 방편을 닦는 것이다.
선남자들이여, 이러한 법을 수행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유위를 다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보살이 무위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를테면 보살들이 공(空)을 행하더라도 그 공에 대해 증명하기를 즐기지 않는 것이다. 무상(無相)을 행하더라도 그 무상에 대해 증명하기를 즐기지 않는 것이다. 무원(無願)을 행하더라도 그 무원에 대해 증명하기를 즐기지 않는 것이다. 무작(無作)을 행하더라도 그 무작에 대해 증명하기를 즐기지 않는 것이다. 온갖 유위법이 다 덧없다는 걸 보면서도 선근 심는 것을 싫증내지 않는 것이다. 세간의 일체 유위법이 다 고통인 것을 보면서도 생사 속에서 자발적으로 생을 받는 것이다. 안으로 나[我]가 없다는 사실을 관찰하면서도 끝내 자신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밖으로 중생이 없다는 사실을 관찰하면서도 늘 교화로 인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열반이 궁극적으로 적멸하다는 사실을 보면서도 끝내 적멸에는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영원히 벗어나는 것이 궁극적인 안락이란 사실을 보면서도 끝내 몸과 마음을 싫어하거나 염려하지 않는 것이다
아뢰야(阿賴耶)가 없다는 사실을 관찰하면서도 맑고 깨끗한 법장(法藏)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모든 법이 궁극적으로는 무생(無生)임을 보면서도 늘 중생의 짐을 짊어지는 것이다. 번뇌 없음[無漏]을 보면서도 끊임없이 생사에 유전하는 것이다. 행이 없음[無行]을 보면서도 중생들을 성숙시키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무아(無我)를 보면서도 중생에 대한 대비심(大悲心)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무생(無生)을 보면서도 2승(乘)의 정위(正位)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모든 법이 궁극적으로 공적(空寂)하다는 걸 보면서도 닦아 놓은 복덕이 공적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모든 법이 궁극적으로는 멀리 여읨[遠離]을 보면서도 닦아 바 지혜를 멀리 여의지 않는 것이다. 모든 법이 궁극적으로 실재하는 것[實]이 없다는 걸 보면서도 늘 원만한 사유에 안주하는 것이다. 모든 법이 궁극적으로는 주재자가 없음[無主]을 보면서도 늘 부지런히 자연스러운 지혜[自然智] 구하기를 힘쓰는 것이다. 모든 법이 영원히 머문 흔적이 없다는 걸 보면서도 요의(了義)에서 부처님의 종성[佛種]을 안립한다.
선남자들이여, 이 법을 수행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무위에도 머물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 선남자들이여, 보살들은 늘 복덕의 자산을 쌓는 수행을 부지런히 하기 때문에 무위에 머물지 않는다. 늘 지혜의 자산을 부지런히 쌓기 때문에 유위를 다하지 않는다. 대자(大慈)를 성취해 어떤 결함도 없기 때문에 무위에도 머물지 않는다. 대비(大悲)를 성취해 어떤 결함도 없기 때문에 유위를 다하지도 않는다. 중생을 이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기 때문에 무위에도 머물지 않는다. 모든 불법을 궁극에까지 원만히 성취하기 때문에 유위를 다하지도 않는다. 일체의 상호로 장엄한 부처님의 색신을 원만히 성취하기 때문에 무위에 머물지도 않는다. 일체의 신력(神力)ㆍ무외(無畏) 등 부처님의 지혜로 이루어진 몸[佛智身]을 증득하기 때문에 유위를 다하지 않는다. 교묘한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에 무위에 머물지도 않는다. 미묘한 지혜를 훌륭히 관찰하기 때문에 유위를 다하지 않는다. 불국토의 궁극적인 원만함을 닦고 다스리기 때문에 무위에 머물지 않는다. 부처님의 영원하고 무너지지 않는 초인적인 힘이 늘 다함없기 때문에 유위를 다하지 않는다. 늘 중생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무위에 머물지 않는다. 끊임없이 법의 뜻[法義]을 수용하기 때문에 유위를 다하지 않는다. 선근을 쌓는 일에 다함이 없기 때문에 무위에 머물지 않는다. 갖고 있는 선근의 힘을 파괴시키지 않기 때문에 유위를 다하지 않는다. 본래의 염원을 원만히 성취하고자 하기 때문에 무위에 머물지 않는다. 영원히 적멸하여 희구하는 것이 없으므로 유위를 다하지 않는다. 원만한 의요(意樂)가 훌륭하고 청정하기 때문에 무위에 머물지 않는다. 드높은 의요가 훌륭하고 청정하기 때문에 유위를 다하지 않는
다. 항상 5신통에서 노닐기 때문에 무위에 머물지 않는다. 부처님의 지혜인 6신통이 아주 원만하기 때문에 유위를 다하지 않는다.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자량이 충만하기 때문에 무위에 머물지 않는다. 근본적인 마음의 활동들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위를 다하지 않는다. 법재(法財)의 보배를 모으는 데 언제나 싫증을 내지 않기 때문에 무위에 머물지 않는다. 제한된 법[少分法]은 별로 희구하지 않기 때문에 유위를 다하지 않는다. 굳센 서원으로 항상 물러남이 없기 때문에 무위에 머물지 않는다. 서원을 구경에 원만히 하기 때문에 유위를 다하지 않는다. 일체의 묘한 법약(法藥)을 모으기 때문에 무위에 머물지 않는다. 그 응하는 것에 따라 법약을 주기 때문에 유위를 다하지 않는다. 중생의 번뇌라는 병을 완전히 알기 때문에 무위에 머물지 않는다. 중생의 번뇌라는 병을 없애기 때문에 유위를 다하지 않는다.
선남자들이여, 이처럼 보살은 유위를 다하지도 않고 무위에 머물지도 않으니, 이를 ‘다함이 있고 다함이 없는 해탈법문에 안주하는 것’이라고 이름한다. 그대들 모두는 부지런히 배우고 닦아야 한다.”
이때 일체묘향세계 최상향대여래의 불국토에서 온 보살들은 이 다함이 있고 다함이 없는 해탈법문을 다 들었다. 법의 가르침이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고 격려하자 모두의 마음에는 커다란 기쁨이 솟구쳤다. 그래서 그들은 한량없는 온갖 뛰어난 향과 꽃 등의 장엄 도구로 세존과 보살들, 그리고 이 다함이 있고 다함이 없는 해탈법문을 공양하고, 다시 갖가지 뛰어난 미묘한 꽃과 향을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흩뿌리니, 그 향과 꽃은 대지를 덮어 무릎까지 깊이 파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