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해의보살소문정인법문경(佛說海意菩薩所問淨印法門經) 제13권

불설해의보살소문정인법문경(佛說海意菩薩所問淨印法門經) 제13권

“다시 해의여, 어떤 것이 금강(金剛)의 구절인가? 이른바 곧 자신(自身)이 금강의 구절이니, 자성이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 해의야, 다시 말하자면 모든 견(見) 가운데 올바른 것을 선택 결정하여 무명을 벗어나 밝음에 들어가므로 이를 금강의 구절이라 하고, 반연되는 일을 두루 알고서 5무간(無間)을 벗어나 더 없는 평등을 행하므로 이를 금강의 구절이라 한다.

모든 행을 두루 알고서 탐욕을 벗어나 평등에 들어가므로 이를 금강의 구절이라 하고, 탐욕을 벗어난 평등에서 다시 성냄을 벗어나 평등에 들어가므로 이를 금강의 구절이라 한다. 모든 성냄과 어리석음을 깨뜨리고서 지혜 광명의 평등에 들어가므로 이를 금강의 구절이라 하며, 일체 중생과 낱낱 중생에게 밝은 지혜를 드러내어 두루 중생의 평등에 들어가므로 이를 금강의 구절이라 한다. 중생들의 자성을 깨닫되 일체 중생의 마음이 한 중생의 마음임을 알고서 그 무심에 들어가므로 이를 금강의 구절이라 하며, 그 마음의 자성이 본래 명철함을 깨닫되 일체 부처님의 마음이 한 부처님의 마음임을 알고서 두루 진여(眞如)의 평등에 들어가므로 이를 금강의 구절이라 한다.

평등한 성품의 지혜를 깨닫되 일체의 찰토(刹土)가 한 찰토인 것을 알고서 그 다함 없는 찰토에 두루 들어가므로 이를 금강의 구절이라 하고, 허공의 평등함을 깨닫되 일체의 법이 한 가지 법임을 알고서 그 일체 법성의 평등함에 들어가므로 이를 금강의 구절이라 한다. 둘 없는 법문을 분명히 깨닫되 일체의 법이 바로 부처님의 법임을 알고서 일체의 지혜에 들어가 수순하므로 이를 금강의 구절이라 하며, 금강유정(金剛喩定)의 선정을 닦아 모든 마군의 사업과 부처님의 사업임을 알고서 그 마군의 사업에 들어가 경오(警悟)하므로 이를 금강의 구절이라 한다.

일체 마군의 사업과 일체의 언어를 벗어나는 것이 곧 여래의 사업과 여래의 언어임을 알고서 일체의 음성에 두루 들어가 깨달으므로 이를 금강의 구절이라 하며, 말할 수 없는 일체의 법이 다 생멸 없는 법임을 깨달아 그 생멸 없음에 들어가므로 이를 금강의 구절이라 한다. 생로병사의 길을 초월한 일체의 생사 없는 법을 깨달으므로써 그 지식(止息) 없음에 들어가 적멸한 법을 굴리므로 이를 금강의 구절이라 한다.

해의야, 이러한 모든 금강의 구절은 바로 파괴할 수 없는 구절이고, 정묘(精妙)한 구절이고, 평등한 구절이고, 성스러운 진리의 구절이고, 견고한 구절이고, 갖가지가 없는 구절이고, 애락[愛樂]의 구절이고, 끊어지지 않는 구절이고, 적정의 구절이며, 작용 없는 구절이고, 화합하지 않는 구절이고, 갈래[趣] 없는 갈래에 들어가는 구절이고, 지어감이 없는 구절이며, 진실한 성품의 구절이고, 사실 그대로의 구절이며, 부처님을 배반하지 않는 구절이고, 법을 비방하지 않는 구절이고, 스님을 파괴하지 않는 구절이며, 말씀 그대로를 실행하는 구절이고, 3륜(輪)이 청정한 구절이고, 용맹스러운 구절이며, 범행(梵行)의 구절이고, 공적(空寂)의 구절이고, 허공의 구절이고, 각지(覺支)의 구절이고, 무상(無相)의 구절이고, 무원(無願)의 구절이고, 법상(法相)의 구절이며, 심의식(心意識)에 머물지 않는 구절이고, 모든 마군과 외도를 부수는 구절이고, 더러움 없이 청정하고도 명철한 구절이며, 보리를 비추어 보는 구절이고, 지혜로 광명을 나타내는 구절이며, 생사 없는 법을 드러내 보이는 구절이고, 필경 생멸 없는 이치의 구절이고, 자체의 경계가 청정한 구절이고, 부처님 경계에 들어가는 구절이며, 분별하거나 계교하지 않는 구절이고, 차별 없는 법계의 구절이고, 구절 없는 구절에 들어가는 구절이니라.

해의여, 이같이 수승하고도 미묘한 모든 금강의 구절을 어떤 보살이 만약 받아 간직하고서 그 이치를 선택 결정한다면, 그는 반드시 보리의 도량에 앉아 사자후(獅子吼)를 하리라고 나는 말하겠노라.”

세존께서 법문의 구절과 인(印)의 구절과 금강의 구절을 이같이 말씀하시자, 그 때 모임에 있던 8천의 보살이 모두 일체 법문에 들어가 인(印) 다라니를 얻는 한편, 또 일체 중생의 즐거운 뜻에 두루 들어가는 삼매를 얻었다.

그 때 시방세계로부터 모여든 일체의 보살마하살들이 이 법을 듣고는, 마음이 유쾌하여 뛸 듯이 기뻐하는 한편, 각각 신통의 힘으로 그들의 찰토(刹土)로부터 갖가지 꽃다발과 바르는 향·가루 향 따위를 이 모임 가운데 가지고 와서 그 미묘한 뭇 꽃다발과 향을 널리 뿌려 석가모니부처님과 바른 법을 위해 공양을 올리면서 다음과 같이 원을 세웠다.

‘이 바른 법을 오래도록 세간에 머물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이 보살들은 공양을 마치고 나서 함께 미묘한 음성으로 세존께 찬탄을 올리면서 게송을 읊었다.

상(相)이 없으면서 색상(色相)을 드러내어 
한 가지 상으로 모든 상을 여의시니 
모든 그 평등한 상은 상이 없으므로 
진실한 상에 머무신 큰 성인에게 머리 조아리며 

일체 중생의 말소리에 두루 들어가되 
그 말소리에 지혜가 따라 들어가 
일체의 말소리를 해탈해 깨달으므로 
평등한 마음으로 해탈한 이에게 머리 조아리며 

세간의 차별된 모든 심행(心行)은 
그 심행이 환영 같아 깨닫지 못하지만 
세존은 행 없는 평등한 행을 나타내시므로 
허공의 마음 지니신 이에게 나 예배하오며 

있고 없음이 평등하고 끝이 끝없어 
법과 법을 분별하되 분별을 떠나 
일체의 마음이 본래 고요하므로 
그 마음 고요한 이에게 나 예배하옵니다.


부처님만이 인연의 모든 운용(運用)을 아시고 
부처님만이 인연의 행을 선설하시되 
그 인연의 본제(本際)로부터 해탈했으므로 
부처님께서는 실제 진정한 평등을 아신다.



이제 그 평등한 상에 두루 들어간 
선서(善逝)의 몸은 몸이 아니지만 
상 있는 몸을 분별할 수 없기에 
일부러 온갖 미묘한 상을 나타내심이니 

시방 부처님의 모든 찰토를 
다 이 부처님의 찰토에 들어오게 하되 
그렇다 해서 이 찰토가 늘지도 않고 
저 찰토 또한 줄거나 흔들림이 없네.



평등한 마음 그대로 마음이 없고 
환영 같은 마음 분별이 없이 
평등한 보리심을 분명히 아시어 
세존은 항상 평등한 법을 행하며 

법계와 함께 평등한 경계에 들어가 
모든 성품 없는 법에 두루 들어가고 
깨끗한 속에나 더러운 속에 항상 평등하므로 
세간을 이롭게 하는 이에게 나 예배하옵니다.



해와 달도 땅에 떨어뜨릴 수 있고 
형상 없는 바람도 잡아맬 수 있고 
수미산도 티끌처럼 휘날릴 수 있으나 

부처님만은 망설(妄說)이 없으시니 
그 진실한 말씀 본래가 청정하고 
깨끗한 마음 또한 허공처럼 밝아 
세간 법의 탐애(貪愛)에 물들지 않음이 
마치 3유(有)에 있어도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네.



그러므로 칭찬을 들어도 기뻐하지 않고 
비방을 들어도 진심을 내지 않아 
저 움직이지 않는 수미산 같으시므로 
세간을 안락하게 하는 이에게 나 예배하옵니다.

그 때 저 보살마하살들이 이 게송을 읊어 찬탄하고는 함께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심을 말미암아 법보가 나오고 안락이 있나이다. 다시 생각하건대 슬기로운 행이 나오고,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와 자(慈)·비(悲)·희(喜)·사(捨)의 행이 나오고, 수승한 이치와 실제의 진리가 나오고, 바른 법과 깨달음의 법이 나오고, 4념처(念處)·4정근(正勤)·4신족(神足)·5근(根)·5력(力)·7각지(覺支)·8정도(正道)의 법이 나오고, 사마타(奢摩他)와 비발사나(毘鉢舍那)의 법이 나오고, 6통(通)·3명(明)·8해탈(解脫)이 나오는 이 모든 것이 다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신 때문이오니, 요약하여 말하자면, 불선한 일체의 법을 끊고 일체의 선한 법을 나오게 한 것이겠나이다.”

그 때 모임 가운데 혜적(慧積)이란 보살이 있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치 그대로를 풀이한다면,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심은 이 중생들이 몸에 대한 어떤 견(見)을 내고 무명으로 애착을 내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내고, 네 가지 뒤바뀜[顚倒]과 5개(蓋)과 여섯 가지 느낌[六入]과 일곱 가지 알음알이와 여덟 가지 삿된 법과 아홉 가지 고뇌와 열 가지 불선(不善)한 업을 내기 때문에, 그 모든 불선한 업을 끊기 위해 출현하신 것이겠나이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세간에 출현하셔도 어떤 대치(對治)가 없으므로 증승(增勝)하는 힘을 나타내지 않으시니, 만약에 보살들이 부처님의 세간에 출현하신 그 원인을 알려고 한다면, 마땅히 이와 같이 알고서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렇다, 그렇다. 너의 말처럼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시게 됨을 그렇게 알고 그렇게 수행해야 할 것이며,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신 원인을 그렇게 알므로써 모든 법이 세간에 나오게 됨도 그러한 것임을 알게 되리라.”

그 때 해의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처음 발심한 보살로서는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신 그 원인에 대한 이러한 설명을 듣더라도 잘 이해하지 못하리니, 그렇다면 이른바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신 그 원인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해의보살에게 대답하셨다.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는 원인에 있어서는 보살들이 그의 정도에 따라 제각기 청정한 마음을 얻나니, 왜냐 하면 해의야, 이것을 알아 두라. 보살이 무릇 네 종류가 있는데, 첫째가 처음 발심한 보살이고[初發心菩薩], 둘째가 수행의 위에 있는[修行位菩薩] 보살이고, 셋째가 퇴전하지 않는 보살이고[不退轉菩薩], 넷째가 한 생만 지내면 부처님 지위에 후보되는 보살[一生補處菩薩]이다.

해의야, 이 네 종류의 보살 가운데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은 여래의 장엄한 색상(色相)을 보면 청정한 마음을 얻고, 수행의 위에 있는 보살은 여래가 성취한 그 수승 미묘한 공덕을 보면 청정한 마음을 얻으며, 퇴전하지 않는 보살은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보면 청정한 마음을 얻고, 한 생만 지내면 부처님 지위에 후보되는 보살은 부처님의 장엄한 색상과 그 종성(種姓)·씨족과 부처님의 성취한 그 공덕을 보지 않고 그 중에 어떤 법까지도 보지 않나니, 왜냐 하면 지혜의 관찰로 비추기 때문이며, 지혜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며, 지혜의 힘으로 포섭하기 때문이며, 그 지혜가 아무런 지어감이 없기 때문이며, 모든 희론(戱論)을 떠나서 그는 이같이 보지 않는가 하면 보지 않는것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있다는 견(見)과 없다는 견의 그 두 가지 견에 대해 이 지위의 보살은 견과 견 아닌 그 두 가지 극단을 모두 떠나서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을 그와 같이 보기 때문에 자신을 보는 것도 그러하며, 자신을 청정하게 보기 때문에 곧 부처님을 청정하게 보고, 부처님을 청정하게 보기 때문에 곧 일체의 법도 그와 같이 청정하게 보는 것이니, 이같이 청정하게 본다면 그는 바로 지혜로써 보고 진실하게 부처님을 본다 하리라.

해의야, 그러기 때문에 내가 옛날 연등(然燈)여래를 뵈올 적에 이미 생사 없는 법의 지혜[無生法忍]와 소득 없는 상응의 지혜[無所得相應忍]를 얻은 뒤 그 때 바로 높이 7다라수의 허공에 몸을 솟아 일체지의 지혜[一切智智]와 차별 없는 힘을 얻음으로써 모든 견을 끊고 그 밖의 분별하거나 계교하는 생각을 초월하여 어떠한 경계에도 머무는 뜻이 없었으며, 그 때 다시 6만의 삼매문을 얻었노라.

그러므로 연등여래께서 나에게 수기(授記)하시기를, ‘너는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어 석가모니 여래·응공·정등정각이란 명호를 갖게 되리라’고 하셨으며, 나 또한 그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을 적에 귀의 감관이 상대를 대함에 장애가 없고, 어떤 알음알이로 인하여 아는 것이 있지도 않으며, 화합하는 가운데 보는 것이 있기는 하되 아무런 집착이 없었는가 하면, 나아가서는 나는 그 때 부처님과 부처님이라는 생각이 없었고, 나[我]와 나라는 생각[我想]이 없었고 수기(授記)와 수기라는 생각[授記想]이 전연 없었다.

해의야, 이러한 까닭으로 보살은 3륜이 청정해야 성불할 수기를 받는다. 3륜이 청정하다는 것은 이른바 부처님과 부처님이라는 생각이 없는 것이며, 나와 나라는 생각이 없는 것이며, 수기와 수기라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다시 보살로서 3륜(輪)이 청정해야 하나니, 이른바 나에 대한 집착이 없고 중생에 대한 집착이 없고 법에 대한 집착 없음이 그것이며, 또 청정해야 할 3륜이 있으니, 이른바 명예에 대한 집착이 없고 모습에 대한 집착이 없고 인연에 대한 집착 없음이 그것이다. 또 청정해야 할 3륜이 있으니, 이른바 과거에 이미 다된 지혜와 아직 이르지 않은 미래의 지혜와 현재 법계에 머무는 지혜를 청정하게 함이 그것이며, 또 청정해야 할 3륜이 있으니, 이른바 몸을 그림자처럼 보는 지혜와 말을 메아리처럼 보는 지혜와 마음을 환영처럼 보는 지혜가 그것이다.

또 청정해야 할 3륜이 있으니, 이른바 5온(蘊)과 법온(法蘊)을 함께 평등하게 보고 18계(界)와 법계를 함께 평등하게 보고, 12처(處)를 허공과 같이 평등하게 보는 것이 그것이며, 또 청정해야 할 3륜이 있으니, 이른바 공(空)을 깨달아 알고 상 없는 것[無相]에 수순하고 원 없는 것[無願]과 구할 것이 없는 것에 수순함이 그것이다. 해의야, 만약에 이 3륜이 청정하다면 곧 일체의 법이 청정하리니, 그러므로 보살이 3륜을 청정하게 하려면 그는 마땅히 매우 공교한 지혜를 닦아야 하리라.”

그 때 해의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사뢰었다.

“전에 없던 일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 퇴전하지 않는 보살이라야만 깊고 깊은 이러한 법의 지혜를 구족할 수 있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어떤 보살이라도 이러한 법의 지혜를 구족한다면 그는 곧 모든 공덕을 성숙한 보살이라 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해의보살에게 대답하셨다.

“해의야, 알아 두라. 이 지위에 있는 보살이라면 본래의 원력으로써 수승한 업을 잘 짓기 때문에, 그 보살이 설사 산란한 처지에 있더라도 본래의 원력 때문에 성숙한 공덕을 파괴하지 않느니라.

해의야, 세간에 슬기 없는 사람으로서는 나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므로, 이제 어떤 비유를 들어 듣는 이로 하여금 비유를 말미암아 이해할 수 있게 하리라.

해의야, 마치 세간에 감자 밭[甘蔗田]이 있고 또 벼 밭[稻田]과 콩 밭[豆田]이 있다 하자, 그 밭농사를 짓는 사람이 여러 밭을 다루기 위해서는 물길[水道]을 먼저 틔워 그 밭이랑마다 고루고루 물을 가득 채워야 하리니, 농사짓는 사람이 농사일을 이같이 잘 준비해 두고서 다른 곳에 쉬고 있어야만 물은 제대로 밭 복판에 넘어 들어서 다시는 사람의 노력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그 밭의 식물이 각각 성숙해지는 것처럼, 보살의 하는 일도 그와 같아서 혹시 산란한 처지에 있더라도 그 훌륭한 방편으로 일체 중생에게 계속 선근을 성숙시킴으로써 그의 설법하는 모든 불법에 따라 선근을 모두 원만케 하는 동시에, 그 보살의 마음이 청정하여 계율을 잘 지키게 되며, 혹시 안정된 처지 에 있더라도 본래의 원력 때문에 일체의 선근을 성숙시켜 중생들로 하여금 불법 가운데에서 모든 착한 법을 계속 내게 하나니, 그러므로 해의는 알아 두라. 보살이 그 필요에 따라서는 다른 이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스스로가 일체의 선근을 원만하게 하여 다시 일체의 지혜에 회향할 수 있는 지라, 이와 같이 보살은 산란한 처지에 있거나 안정된 처지에 있거나 간에 본래의 원력으로써 모든 선근으로부터 몸과 마음을 조창(調暢)하기 때문에 그 생각이 산란하지 않아 하승(下乘)에 떨어지지 않고 대승에 나아가느니라.

해의야, 다시 비유컨대, 마치 성중에 있는 저 큰 나무를 어떤 사람이 있어 그 나무를 뿌리채 베어 간다고 하자, 나무를 벨 때에 나무가 점차로 수그러져 필경 땅에 떨어지지 마련인 것처럼, 보살의 하는 일도 그와 같아서 오래도록 착한 법을 닦아 익혀서 일체의 지혜에 나아가기 때문에 점차 일체의 지혜에 들어가서는 필경 일체의 선근을 성숙하며, 이미 성숙한 뒤에는 일체의 지혜에 회향한 그것으로 다시 일체의 중생에게 회향하여 그 공덕을 함께 한다. 나아가서는 3보의 성종(聖種)을 끊지 않게끔 회향하고, 몸 모습을 장엄하여 모든 상호를 원만히 갖추게끔 회향하고, 말의 업을 장엄하여 널리 중생을 위해 속임 없는 법을 원만히 선설하게끔 회향하고, 마음의 업을 장엄하여 항상 부처님의 정원(定願)을 원만히 성취하게끔 회향하되 보살이 다른 공용(功用)을 빌리지 않고서 또 아무런 발오(發悟)도 없이 일체의 선근을 성숙하여 일체의 지혜에 널리 회향함으로써 다른 승(乘)에 떨어지지 않음은 물론, 안정된 처지에 있어서나 산란한 처지에 있거나 간에 보리의 법을 원만히 수습하나니, 이는 다 본래의 원력을 말미암아 선교 방편으로 회향하기 때문이니라.

해의야, 다시 비유컨대, 어떤 비구가 멸정(滅定)에 들려고 한다면, 먼저 건치(犍稚:시간을 알리는 나무로 만든 기구)소리를 들을 때까지 기다린 연후에야 선정에서 나올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하므로 그가 선정에 들어 있을 동안엔 건치 소리가 선정에 들어올 수 없고 이 비구도 필경 건치 소리를 기다린 뒤에 비로소 선정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처럼, 보살의 하는 일도 그와 같아서 일체 중생을 해탈하게 하려면 대비의 서원(誓願)을 일으키되, ‘나 마땅히 일체 중생을 구호하여 그들을 널리 해탈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리의 사업을성취하여 모든 중생에게 인자한 마음을 넓혀 생사의 흐름속에서라도 마음과 뜻을 운행하여 고루 제도하고, 선정에 들어 있을지라도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키려는 그 대비의 서원으로 끝내 성문과 연각의 처지에 떨어지지 않고 선정으로부터 일어난 뒤에는 바른 지혜를 개발하여 다시 보리의 법을 모음으로써 널리 중생을 성숙시키고 교화 제도하리라’고 이렇게 원을 세워야 하리라.

그리고 해의야, 너는 또 이 보살들의 사업이 어떤 사업보다도 가장 수승하므로 비록 고요한 삼매에 들어 있을지라도 저 성문·연각의 해탈하는 경계보다는 뛰어난 줄을 관찰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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