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색여승의 고난

화색여승의 고난

석존께서 마갈타국의 죽림정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실 때의 일이다.

유리왕에게 멸망을 당하여 가비라성의 서가 종족의 五백명 여인들이 한탄하고 있는 것을 보고, 화색 여승은 그녀들을 위로하여 말하였다.

『당신들의 고난은 아직 대수로운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내가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기전에 집에 있을 당시의 고난을 이야기하겠소.』

화색 여승은 선정(禪定)에 들어가, 신통의 힘으로 대광명을 내어 온 세계를 휘황하게 비추었다. 그 광명을 따라 여승과 인연이 있는 천인(天人)과 용신(龍神), 귀신과 사람이 모두 모여왔다. 이 대중들 가운데서 화색 여승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였다.

그녀가 아직 집에 있을 무렵, 부모의 나라인 사위국에서 북쪽 사람한테 시집을 갔다. 몇 해 동안에 두 아이를 낳고, 금년에 또 아이를 배었다. 이 나라에서는 아이를 낳을 때는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풍습이었으므로, 부부는 두 아이를 데리고 마차를 타고 사위국에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큰 강이 있었는데, 때마침 큰 물이 나서 탁류가 넘치고, 날도 다 저물어 건너지 못하고 강가에 머물게 되었다. 오후 여덟시쯤 되어 갑자기 진통을 일으켜 한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강가 풀숲에 독사가 한마리 있어, 생생한 피 냄새를 맡고 달려 들었다. 그녀의 남편과 하인이 자고 있는 곳은 그녀의 잠자리 보다 수풀 가까운 쪽에 있었으므로 독사는 먼저 하인을 물어 죽이고, 이어서 남편을 죽였다.

그 때, 독사의 습격을 알아차린 그녀는 남편을 소리쳐 불렀으나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독사는 또 소와 말을 물어 죽였다. 다행히도 그때에는 해가 동쪽 하늘에 떠서 그 빛을 비추기 시작했으므로, 독사는 수풀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그녀와 아이들은 그 난을 면할 수가 있었다.

죽은 남편의 시체는 독 때문에 퉁퉁 부어올라 보기에도 무서운 꼴이 되었다. 그녀는 놀람과 슬픔으로 미친 듯이 통곡을 하면서 강가에서 며칠을 보내었다. 그러는 동안에 물도 많이 줄었으므로 한 아이는 등에 업어 두 손으로 받치고, 갓난이는 옷에 싸서 입에다 물고, 맏아들은 강가에 남겨 두고, 우선 강을 건너려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강 한 복판쯤 갔을 때에 강가에 남겨 놓은 아이를 돌아다보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마리의 사나운 범이 맏아들을 노리고 있지 않은가, 깜짝놀라 큰 소리로 맏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동시에 입에 물고 있던 옷자락이 풀리어 아차하는 순간에 갓난이는 물속에 빠져 들어갔다. 얼른 두손을 물 속에 넣어 찾아 보았으나, 갓난이는 급류에 휩쓸려 그림자도 안 보인다.

한편, 등에 업힌 아이는 받쳤던 손을 떼었으므로 그 아이도 물속에 떨어져 흘러 내려가 버렸다. 멍하니 강가를 쳐다본 그녀의 눈에는 막 호랑이에게 먹히고 있는 맏아들의 모습이 비치었다.

너무나 끔찍한 일에 가슴이 찢어지고 입에서는 뜨거운 피를 토하며 울었다.

『이것이 무슨 일이냐. 한꺼번에 이런 끔찍스러운 재난을 당하다니. 신도 부처도 없는 세상이로구나.』

하며, 강 가운데 멍하니 서 있었으나, 억지로 기다시피하여 강가로 나왔다.

때마침 강가를 지나가던 한 무리의 사람들 사이에 한 장자가 있었다. 그는 그녀의 부모와 옛날부터 아는 사이었다.

『너는 대체 이런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몸이 온통 젖었고, 안색도 매우 나쁘구나, 빨리 집으로 돌아가지 그래. 네 친정집에서는 어젯밤 불이 나서 집과 재물을 몽땅 태워 버렸을 뿐 아니라, 가엾게도 부모는 미쳐 뛰쳐나오지를 못하여 타 죽고 말았단다.』

장자의 이야기를 듣고 겹친 불행에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져 버렸다. 얼마 후에 정신이 들었을 때는 五백명의 도적떼에게 장자의 일행은 약탈을 당하고 그녀는 적장에게 잡힌 몸이 되어 버렸다. 도둑의 소굴로 끌려가 적장의 아내가 된 그녀는, 언제나 적장의 부하들과 적장이 나간 뒤의 집을 지키게 되었다.

언젠가 적장은,

『내가 없을 때에는 문을 꼭꼭 잠그고 절대로 열어서는 안돼. 내가 돌아와 신호를 할 때에는 일각을 지체말고 얼른 문을 열어라.』

하고, 엄중히 명령해 놓고 나갔다. 그녀는 그 뒤에 갑자기 진통을 일으켜, 네째번 아이를 낳으려는데, 적장은 재물을 빼앗아 가지고 부하들과 함께 급히 집으로 돌아와 신호를 하였다.

그러나 아내가 이런 형편이었으므로 되풀이 한 신호에도 문을 열지 않는 아내에 화를 내면서 담을 넘어 들어왔다.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내가 돌아왔는데 문도 안 열고, 집에 못 들어오게 할 셈이었구나, 너는 아직도 나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가 보구나?』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아기를 낳느라고 문을 못 열었읍니다.』

아내의 변명을 듣고 화는 약간 풀렸으나 포악한 도적의 남편은 결코 동정심이 있는 사나이가 아니었다.

『아이를 배면 낳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피할 때가 없어 하마터면 붙잡힐 뻔하였다. 이런 위험한 꼴을 당하는 것은 이 아이 때문이다. 빨리 이 아이를 죽여 버려라.』

아무리 하여도 그녀는 제가 낳은 아이를 죽일 수는 없어, 어쩔 줄을 모르고 쩔쩔매고 있었다. 그러자, 적장은 칼을 빼어 갓난이의 팔 다리를 토막내어 죽여버렸다. 그리고 또 아내에게 말하였다.

『네가 낳은 아이의 고기다. 아까우니 먹어 버려라. 내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네 모가지도 잘라 버리겠다.』

무자비하기 이를데 없는 남편의 포악이 무서워 아내는 아기의 그 고기를 울며울며 먹었으므로 남편의 성은 겨우 풀렸다.

그 뒤에도 적장은 도둑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악운이 다하여 붙잡혀 참형에 처해지고 그 아내는 함께 생매장을 당하고 말았다.

아내는 몸에 구슬 목걸이를 가지고 있었다. 한 도둑이 그것에 눈독을 들였다가 한 밤중에 무덤을 파서 구슬 목걸이를 빼앗고 그녀도 데려가 버렸다. 얼마 뒤에 관리가 그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도둑은 곧 잡히어 법률에 따라 참형에 처하였다. 도둑과 함께 그녀도 두번째 생매장을 당하였다.

그날밤 또 다시 그녀를 습격한 것은 사람은 아니었다. 굶주린 늑대가 송장을 찾아 무덤을 돌아다니면서 파헤쳤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기회로 다행히도 그녀는 그 구덩이에서 나와서 일정한 방향도 없이 이리저리 도망쳐 헤매고 다니면서,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미친듯이 물었다.

『나는 지금 고난의 밑바닥에 처해 있습니다. 마음은 어지럽고 몸은 지쳐, 자신을 가눌 수가 없읍니다. 누구시든 저를 구해 주실 분은 안 계십니까.』

그 때, 한 늙은 바라문이 지나가다가,

『석가모니 세존의 가르침을 믿으면, 몸과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가 있소.』

하고 가르쳐 주었으므로, 그녀는 급히 석가모니의 작은 어머니이신 마하파자파티고다미를 찾아가, 그 제자가 되어 가르침을 받아 차츰 수행을 쌓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설명하시고 나서 화색 여승은 五백의 석가족 여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집에 있을 때의 고난은 참으로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승인 여승에게 인도되어 도를 얻은 것도 이 고난의 인연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생각하면, 슬픔도 또한 기쁨의 씨가 아닙니까? 당신들도 망국의 슬픔에 낙담만하지 말고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갱생의 길을 찾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석가족의 여인들은 이 깨우침을 듣고, 모두 매우 기뻐하며 고마운 인사를 하고 사라져 갔다는 이야기다.

<大方便佛報思經 第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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