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지스님이 관세음의 영험으로 불과 적병들의 화를 면하다
동진(東晋) 때의 법지(法智)스님이 출가하기 전에 겪었던 이야기이다.
그는 어느 날, 물이 없고 마른 풀이 자욱한 넓은 늪 길을 가고 있었다.
한참을 가던 그는 길 앞쪽에서 마른 풀잎에 불이 붙어 타들어 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옆길로 몸을 돌렸으나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오던 길로 되돌아섰으나 거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불은 사방에서 맹렬한 기세로 타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도저히 죽음을 면할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문득 관세음보살에게 의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얼굴을 땅에 붙이고 납작 엎드린 채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칭념하였다.
언젠가 그는 일찍이 관세음보살을 칭념하면 어떠한 어려움에서라도 구제받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직 관세음보살만을 칭념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조차도 잊고 얼굴을 땅에 붙인 채 엎드려서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자신이 사방으로부터 불의 위협을 받고 엎드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난 뒤였다.
무서운 기세로 사방에서 타오르던 불이 지금쯤은 자신마저도 몽땅 태웠을텐데, 자신은 아직도 멀쩡하지 않은가.
그뿐만이 아니고 자신의 주위는 온 불바다가 되어 있어 몹시 뜨거운 열기가 엄습해 올 것인데, 아무런 열기도, 풀잎 타는 내음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들어보았다. 연기도, 불길도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늪에 있는 풀은 한 오라기도 남기지 않고 다 타서 까맣게 재가 되어있었다 저 멀리 구석 쪽에 아직 덜 탄 것이 남았는지 간간이 연기가 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동안 상당한 시간이 지났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자신이 엎드려 있었던 자리를 내려다 보았다. 사람(물론, 자기자신)하나 누운 자리만 타지 않은 채였다. 자신이 엎드려 있었던 곳만을 빠끔하게 남겨 놓고 그 주위는 모두 다 타버렸던 것이다.
그야말로 경전(법화경 보문품.法華經 普門品)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틀림이 없었다.
만약에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마음에 지니면 설사 큰 불속에 들게 되더라도 그 불이 능히 태우지를 못한다. 부처님의 말씀이 하나도 거짓이 없다는 사실을 그는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는 크게 느낀 바가 있었다. 영락없이 불에 타 죽었을 자신이 관세음보살의 힘으로 살아났으므로, 그로부터 그는 매우 독실한 불자가 되어 불법을 신봉하게 되었다.
그 뒤에 그는 싸움터에 가게 되었다. 전세가 불리하여 아군이 후퇴하는 바람에 그도 그 군중 속에 끼어 달렸으나, 그만 말에서 떨어져 뒤처지고 말았다.
적군의 포위망 속에 들게 된 그는 개울가의 가시덤불 속으로 얼른 몸을 숨겼다.
그때, 바로 그의 건너 쪽에서는 숨어 있는 군졸들과 달아나는 적병을 모조리 잡아 죽이라고 명령하는 적군의소리가 크게 들려 왔다. 적병들은 개울가의 가시덤불과 풀숲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그는 가시덤불 속에 웅크리고 숨어서 지성껏 관세음보살을 마음속으로 염하였다.
그 동안에 자신이 숨어있는 덤불도 적병의 손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속까지 뒤졌으나 종내 그를 찾아내지 못하고 지나가 버렸다. 그리하여, 그는 두 번씩이나 관세음보살의 힘에 의하여 생명을 건졌다.
그래서, 그 후에 결국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法亮珠林 卷17, 法華靈驗傳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