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석천과 아수라
석존께서 탄생하신 시대보다 훨씬 이전의 일이다. 그런 시대에 제천(諸天)과 아수라가 한판 크게 싸운 일이 있다.
어느 때, 제석천은 도리( 利)의 제천에게 동원령을 내려 전투에 관한 주의를 주었다.
『이제부터 아수라와의 전투를 개시한다. 따라서 너희들은 최선을 다하여 용감히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싸움에 이기면 적장인 정심 아수라왕(精心阿修羅王)을 잡아 선법 강당(善法講堂)에 끌고 오라. 모두들 단단히 주의해서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지금부터 제석과 싸움을 시작한다. 만일 싸움에 이기면 적장 제석천을 잡아 칠엽 강당(七葉講堂)으로 데리고 온다. 모두들 단단히 주의해서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정심왕의 부하 아수라는 곧 출정의 준비를 갖추었다.
이윽고, 불꽃 튀기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싸움의 결과는 제천의 승리로 돌아가고, 아수라군은 참패를 하였다. 이애 도리의 제천은 제석천의 명령대로 도망하는 정심 아수라왕을 붙잡아 선법 강당으로 끌고와 제석천 앞에 꿇어 앉혔다.
그런데, 도리천의 생활은 수라계(修羅界)의 생활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쾌락에 넘쳐 있었다.
이에 포로의 신세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천상의 쾌락에 집착하여「이렇게 좋은 곳이라면 잠깐 머물러 있기로 하자. 아수라 궁에 돌아가기를 서두를 것은 없다.」정심왕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묶여 있던 밧줄이 스르르 풀리더니 갖가지 즐거움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정심왕이 아수라 왕궁으로 돌아갈 생각이 나면, 눈앞에 펼쳐진 갖가지의 즐거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밧줄은 저절로 온 몸을 꽁꽁 조이는 것이었다.
이에 앞서, 정심왕이 도리의 제천에게 잡히어 선법 강당 앞까지 끌려 왔을 때에 제석천이 선법당 위에서 놀고 있는 것을 발견한 정심왕은 묶여 있으면서 갖은 욕설을 퍼부어 제석천을 꾸짖었다. 그 때, 제석천은 모두 못 들은 채 묵살해 버리고 있었으나 신하들은 그냥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어자(御者) 마티리는 분통이 터졌다.
『천왕님, 무언가 무서움에 질리신 것은 아니십니까. 눈 앞에서 적장 아수라왕에게 욕설을 받으시고도 한 마디 대꾸도 못하시고 잠자코 듣고만 있는 것은 너무도 분한 일이 아니오니까.』
『마티리야, 정심왕이 무어라 하든 그것은 입 뿐이다. 그에게는 아무 것도 할 힘이 없지 않으냐. 나는 무서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의 무지와 다투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천왕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러하오나, 지금 어리석은 자의 어리석음은 고쳐 주지 아니하오면, 날이 갈수록 더욱 더 불손해지리라 생각되옵니다. 그러하오니 진작 완력으로 꼼짝 못하도록 제재를 가하여 어리석은 자의 잘못을 고쳐 주어야 할 것이옵니다.』
『마타리야, 나는 늘 슬기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자를 상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어리석은 자가 욕설을 퍼붓고, 슬기로운 사람은 이에 침묵으로 대한다. 그것이 벌써 슬기로운 사람의 승리를 뜻하는 것이다.』
『천왕님, 침묵도 때에 따라서는 슬기로운 이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심(精心)과 같은 어리석은 자는 천왕님의 침묵을 무서워서 그러는 것으로 오해하고, 이 정도라면 아직도 천왕님께 적대할 수가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마티리야, 정심왕은 어리석게도 내가 무서워하는 것이라고 속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잠자코 참는」것을 최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노여움을 노여움으로 대한다는 것은 최악의 악이다.
노여움에 대하여 노하지 않는 것이 싸움의 최상인 것이다. 사람들이 다투어 호소하여도 상대하지 않는 것이 최후의 승리자다. 큰 힘을 가진 사람은 무력한 자에 대하여는 무엇이든 참아 준다. 이 인내의 힘이야말로 힘 주의 힘인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힘이 세다고 생각지 모르나, 그런 힘은 힘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여법(如法)의 인내력이야말로 그 무엇도 꺾을 수는 없는 것이다.』
또 어느 때인가, 도리의 제천과 아수라와 싸운 결과, 아수라가 승리한 일이 있다. 그 때, 제석천은 바퀴에 천개의 살을 가진 수레를 타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그 도중에서 금홍(金紅)나무 위에 새둥우리가 하나 있는 것을 문득 발견하였다.
이에 제석천은 어자 마타리에게 노래로써 다음과 같이 분부하였다.
『그 나무에 한쌍의 새 살고 있다.
얼른 이 수레를 멈추어라.
비록 이 몸 잃는 한 있어도
새의 목숨 다치지 않으리.』
분부를 받은 어자는 급히 수레를 멈추어 새둥우리를 피하였다. 그 때문에 수레의 앞머리가 추격해 오는 아수라군 쪽을 향하였다.
결사적으로 도망치는 줄만 알고 신이나서 추격하던 아수라군은 갑자기 제석천의 수레가 이쪽으로 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것은 제석천에게 무슨 승산이 있어서, 우리 군대를 공격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이 상황으로서는 아군이 이길 가망은 없다.) 고 생각했으므로 아수라군은 겁을 집어 먹고 퇴각해 버렸다. 제석천의 새에 대한 자비심에 승패는 그 위치를 뒤바꾸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싸움은 제석천의 승리로 돌아갔다.
아수랑왕은 격퇴하고 최후의 승리를 얻은 제석천은 개선하여 승전 축하회를 열었다. 그리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당을 하나 지어 최승당(最勝堂)이라 이름지었다.
그 당의 건평은 동서백 유순(由旬), 남북 六십 유순에 걸친 광대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군데군데 노대를 마련하고, 그 각 노대 위에는 七사람의 옥녀가 있어 각각 七사람의 시녀를 데리고 있다. 제석천은 꽃같이 아리따운 그 옥녀들의 시중을 받고 또 그 옥녀들은 의식은 물론 그 몸을 장식하고 있는 모든 물건은 저절로 공급되어 호사스러운 생활에 무한한 쾌락을 누리고 있었다.
이 당은 전생에 이긴 기념이므로 최승당이라고 이름지은 것이지마는, 또한편 삼천 세계의 모든 당 중에서 가장 뛰어났음을 나타내기도 한 것이다.
그 때, 정심왕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위덕도 광대하고, 신통력도 결코 적지 않다. 그런데, 도리천이나 해와 달들은 언제나 공중에 있어 내 머리 위에서 자유자재로 놀고 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신통력으로써 해와 달을 따다가 귀걸이를 만들어 보리라. 그리고 마음껏 하늘을 활개치고 돌아다니리라.)
정심왕은 이렇게 생각하고는 저절로 흥분이 되어 즉석에서 추타아수라( 打阿修羅)에게 군대의 출동 준비는 곧 갖추어졌다. 그리고 자기는 보거(寶車)를 타고 부하를 지휘하여 아수라왕 앞에 정렬하였다.
그 밖의 대신 아수라를 비롯하여 여러 아수라들은 모두 아수라왕의 명령을 받고, 모든 준비가 다 되었으므로, 드디어 제천과 승패를 겨루려고 아수랑성을 뒤로 하고 의기양양하게 출발하였다.
이 때, 바다를 집으로 삼고 있는 용의 종족인 二대용왕―난타용왕(難陀龍王)과 발난타용왕(跋難陀龍王)은 몸으로써 입곱겹으로 수미산을 둘러싸고, 가지고 있는 센 힘으로 산과 골짜기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엷은 구름을 덮어 작은 비를 내리게 하고, 꼬리로 바다 물을 때리니 바다는 큰 파도를 일으켜 수미산 꼭대기까지 그 물결에 씻기는 형편이었다. 한편, 도리의 제천족의 군대는 몇 억이라는 무수한 무리가 창, 칼, 활 등 무기를 들고 갑옷, 투구에 무장으로 아수라군에게 싸움을 걸었다. 만일 용의 군대가 이기면 아수라군을 추격하여 그 왕궁으로 쳐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용군이 지면, 용궁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가루라(迦樓羅) 귀신한테 도망하기로 작정을 하였다. 그리하여, 용왕은 귀신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하였다.
『아수라군은 제천과 싸움을 시작하기 위하여 진군 중이다. 이에 아군은 아수라왕을 요격할 작전이다. 그러나 이기면 말할 것 없으나 지면 가루라 귀신한테로 도망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너희들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귀신도 전투 준비를 갖추어 자기의 안전을 기하기 위하여 우리 군대와 협력하여 아수라군과 싸울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 귀신들은 용왕의 경고에 놀라 곧 전투 준비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작전의 대강은 싸움에 이기면 아수라왕궁까지 쳐들어가고, 지면 귀신의 왕궁에는 돌아오지 않고 그 길로 나계 귀신한테로 퇴각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용왕은 다음으로 나계 귀신에게 경고를 주었다.
『아수라군은 제천과 전투를 개시하기 위하여 진군 중이다. 이에 아군은 아수라군을 요격할 작전이다. 그러나, 이기면 별문제이지만, 지면 너희들에게로 도망해 갈 것이니, 그렇게 되면 너희들도 무사하지는 못하리라. 그러므로 너희들도 유루없이 전투준비를 갖추어 아수라군과 싸울 각오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용왕이 보낸 경고에 새삼스럽게 당황한 나계 귀신은 곧 부하에게 동원령을 내렸다.
용와은 같은 경고를 상락(常樂) 귀신에게 주고, 또 사천왕에게도 보내었다. 그리고 아수라군에게 어떤 준비를 갖추게 하였다. 그런데 사천왕은 선법강당에 가서 제석천을 비롯하여 도리 제천에게 아수라군의 진격을 알리고, 협력해서 그를 요격할 것을 경고하였다.
이것을 들은 제석천은 즉석에서 시천(侍天)의 마나바에 명령하였다.
『너는 이제부터 염마천, 도솔천, 화자재천(化自在天)에 가서, 아수라왕이 무수한 군사들 동원하여, 바야흐로 제천을 향하여 진군 중이라는 것, 그러니까 제천은 유루없이 전투 준비를 갖추어 언제든지 나를 도와 응전할 수 있도록 하라는 명령을 전달하여라.』
이윽고, 제석천의 명령은 제천에게 전달되었다. 이에 염마천자는 이 명령을 받는 즉시로 곧 부하들에게 전투 준비를 시키고, 자기는 갑옷을 입고, 보거(寶車)를 타고 수많은 천중(天衆)을 거느리고 수미산의 동쪽에 출진하였다. 또 도솔천자는 마찬가지로 갑옷을 입고 수레를 타고 수많은 천중을 거느리고 수미산 남쪽에 출진하였다.
또 화자재천자는 부하를 거느리고 수미산 서쪽에 출진하였다. 또 다른 화자재천은 부하를 거느리고 수미산 북쪽에 출진하였다. 그 밖의 삼십삼천, 도리의 천중(天衆), 묘장 귀신중(妙匠鬼神衆)은 각기 무장한 부하를 데리고 제석천의 앞뒤에 모였다. 또 선주 용왕(善住龍王)은 제석천의 명령에 따라 제석천의 앞에 나타났다. 제석천 자신도 무장을 하고 선주 용왕의 머리에 무수한 제천 귀신을 앞뒤에 거느리고 천궁에서 나와 아수라군을 무찌를 결심으로 드디어 말을 진두로 몰았다.
이 때의 병기는 창, 칼, 활과 살, 도끼, 올가미, 밧줄 등등인데, 그 무기들은 모두 칠보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한편, 아수라군의 무기도 제천의 군대의 것과 같은 칠보 제품이었다. 이 무기들은 적의 몸에 닿기만 하면 곧 꿰뚫어 버릴만큼 날카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상처 자국을 몸에 남기는 일도 없고, 또 목숨을 해치는 일도 없으며, 다만 그 무기에 닿는다는 것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상대에게 주는 것이다.
<長阿含世紀經 起世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