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묘월 장자를 찾다

56. 묘월 장자를 찾다

그 때에 선재동자는 곧 묘월(妙月) 장자에게 가서 발에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고, 합장하고 공경하면서 한곁에 서서 말하였다.

“거룩하신 이여,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사오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보살의 도를 닦는지를 알지 못하나이다. 듣사온즉 거룩하신 이께서는 잘 일러 주신다 하오니 바라건대 저에게 말씀하소서.”

묘월이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이름은 때 없는 지혜 광명이니라.”

선재가 말하였다.

“어떻게 수행하면 이 해탈을 얻나이까?” “보살이 열 가지 법을 행하면 이 해탈을 구족하게 얻느니라. 그 열 가지 법이란 모든 선지식을 항상 여의지 아니하며, 부처님 뵈올 생각을 항상 망각하지 아니하며, 바른 법 들을 욕망을 항상 잊지 아니하며, 부처님·보살·선지식에게 먼저 문안하고 공경하고 공양함을 항상 잊지 아니하며, 많이 들음과 지혜가 많은 선지식으로서 법문 연설하는 이를 항상 여의지 아니하며, 온갖 바라밀의 행을 듣기를 항상 여의지 아니하며, 모든 보리분법(菩提分法)을 듣는 것을 항상 여의지 아니하며, 삼해탈문(三解脫門)을 항상 버리지 아니하며, 범천이 머무는 네 가지 법을 항상 여의지 아니하며, 일체지의 자체를 항상 여의지 아니함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항상 이 열 가지 법을 여의지 아니하면 때 없는 지혜 광명 해탈문을 얻느니라.”

선재가 다시 말하였다.

“이 해탈문은 어떻게 하여야 눈앞에서 증득할 수 있나이까?” “눈앞에서 반야바라밀의 마음을 지어서 서로 응하게 하면, 보고 아는 것을 따라 모두 증득할 것이니라.” “거룩하신 이여, 반야바라밀의 이야기와 글월을 듣고도 눈앞에서 증득할 수 있나이까?” “아니니라. 왜냐 하면 반야 바라밀은 모든 법의 진실한 자체와 성품을 보고야 증득하는 까닭이니라.” “듣고는 지혜를 내고 또 지혜의 성품을 생각하여 진여(眞如)를 보고야 스스로 증득하는 것이 아니오니까?” “아니니라. 만일 듣고 생각하여서 증득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니라. 선남자여, 내가 이 이치를 비유하여 말하리니 자세히 들으라. 넓은 사막에 샘이나 물이 없는데, 뜨거운 여름날 어떤 사람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여 가다가 동쪽으로부터 오는 사람을 만나서 물었다.

‘내가 지금 목이 마르고 덥습니다. 어디 가면 물과 서늘한 그늘이 있겠습니까? 나는 거기 가서 물을 먹고 목욕을 하고 쉬면서 더위와 갈증을 면할까 합니다.’

그 사람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이렇게 대답하였다.

‘여기서 동쪽으로 가시오, 왼쪽 길과 오른쪽 길이 있는데, 오른쪽 길로 부지런히 가면 반드시 찬 샘이 있고 서늘한 그늘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될 것이오.’

선남자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덥고 목마른 사람이 나아갈 것을 생각만 하면 덥고 목마름을 없애고 시원함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길을 가르쳐 준 대로 샘과 못에 이르러서 마시고 목욕하여야만 비로소 덥고 목마름을 없애고 서늘함을 얻을 것입니다.” “선남자여, 보살도 그와 같아서 다만 듣고 생각하고 지혜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온갖 법문을 증득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사막은 나고 죽는 일을 말함이요, 서쪽에서 오는 사람은 중생을 말함이요, 더운 것은 번뇌요, 목마른 것은 탐심과 욕정이요, 동쪽에서 오던 길 아는 사람은 부처님이나 보살로서 일체지에 머물러 법의 참 성품이 평등하고 진실한 뜻을 얻은 이요,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얻어서 덥고 목마름이 없어지는 것은 스스로 진실한 이치를 증득함이니라.

선남자여, 내가 그대에게 거듭 비유로써 설하리니 잘 들으라. 가령 부처님이 한 겁 동안을 사시면서 가지가지 방편과 미묘한 변재로 염부제 사람을 위하여 말씀하기를, ‘천상의 소타(蘇陀)는 여러 가지 덕을 갖추어서 부드럽고 묘한 감촉과 빛깔이 곱고 향기롭고 맛이 좋다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저 중생들이 이 말씀을 듣고 생각할 적에 천상의 맛을 알게 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묘월이 말하였다.

“이 일도 그와 같아서, 듣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반야의 참 성품을 증득하지 못하느니라.” “보살이 어떤 방편으로 공교롭게 말하여야 중생들로 하여금 진실하게 증득케 하오리까?” “선남자여, 보살이 증득한 반야의 참 성품에는 말이 결정적으로 바른 인(因)이 되나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이 해탈을 증득하는 것이며, 중생들을 위하여 공교롭게 말하느니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이 해탈을 얻나니 그 열 가지란, 하나는 모든 착하지 못한 법을 멀리 여읨이요, 둘은 여래의 마련한 계율을 어기지 아니함이요, 셋은 모든 간탐과 질투를 여읨이요, 넷은 온갖 여래께 공양함이요, 다섯은 모든 복덕의 업을 닦음이요, 여섯은 지혜를 갖춤이요, 일곱은 방편을 구족함이요, 여덟은 큰 서원을 구족함이요, 아홉은 여읨을 구족함이요, 열은 정진을 구족함이니, 만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이 해탈문을 증득하리라.

선남자여, 나는 다만 이 보살의 때 없는 지혜 광명 해탈문을 알 뿐이니, 저 보살마하살이 가지가지 보살의 지혜문을 닦아 행하며, 부지런히 애를 써서 위없는 업을 행하며, 마음이 정직하고 성품이 부드러우며, 고요한 데를 좋아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머물며, 세간을 여의지 않고 마음이 물들지 아니하며, 여러 가지로 보시하고도 신세 갚음을 바라지 아니하며, 부처님의 넓고 큰 경계를 항상 생각하며, 부처님의 진실한 법을 항상 생각하며, 보살 들에게 가까이 하기를 좋아하며, 보살의 바라밀을 항상 행하며, 보살의 증득한 지(地)에 항상 있으며, 여래의 십력[力]과 무소외(無所畏)와 불공법[不共佛法]을 관찰하며, 한량없는 삼매 바다에 들어가며 끝까지 해탈하는 진실한 법문이야, 내가 어떻게 그 공덕의 행을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이 남쪽에 한 성이 있으니 이름이 엄청난 소리요, 거기 한 장자가 있으니 이름은 무승군(無勝軍)이다. 그대는 그에게 가서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보살의 도를 닦느냐고 물으라.”

선재동자는 묘월 장자의 발에 절하고 수없이 돌고, 공손히 우러러보며 일심으로 사모하면서 하직하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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