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벌소밀다 아씨를 찾다
그 때에 선재동자는 지혜의 광명이 비치어 마음이 열리고 일체지의 지혜[一切智智]를 생각하고 관찰하면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모든 법의 성품을 순종하고, 모든 중생의 음성 다라니문을 견고하게 알고, 모든 여래의 법 수레 다라니문을 받아 지니고, 모든 중생의 의지가 될 만한 불쌍히 여기는 힘을 얻었으며, 온갖 법의 이치를 관찰하는 광명문을 얻고, 빨리 법계를 원만하게 하는 수레를 얻고, 큰 서원을 깨끗이 하는 수레를 얻고, 시방의 모든 법을 널리 비치는 지혜 광명을 얻고, 모든 세계를 두루 장엄하는 자재한 힘을 얻고, 모든 보살을 거두어 지니는 신통의 지혜를 얻고, 모든 보살을 일으키는 원만한 서원을 얻고는, 차츰차츰 앞으로 가다가 험난국 보장엄성에 다다라, 여러 곳으로 다니며 벌소밀다 아씨를 물었다. 성중에 사는 사람들은 이 아씨의 공덕과 지혜와 훌륭한 방편과 머물러 있는 경계가 비밀하고 깊은 줄을 모르고, 이렇게들 생각하였다.
‘이 동자는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얌전하며, 지혜가 명철하여 방탕한 기색이 없고, 마음이 산란하지 아니하며 앞길만을 자세히 살피며 게으른 마음이나 집착함이 없다. 눈도 깜박이지 않으며 뜻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마음은 깊고 너그러워 바다와 같으니, 이 벌소밀다에게 애착하거나 잘못된 생각이 있지 아니할 것이며, 예쁘다는 생각이나 탐욕의 생각도 내지 아니할 것이고, 이 여자의 아름다운 용모에 반하지도 아니하였을 것이며, 또 이 동자가 마군의 행동을 하지도 않고 마군의 경계에 홀리지도 않고 음욕에 빠지지도 않고 마군의 속박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며, 하지 아니할 일을 짓지도 아니하였을 터인데, 무슨 일로 이 여자를 찾을까?’
그 가운데 이 아씨가 훌륭한 공덕을 가졌고 깊은 지혜를 갖춘 줄을 아는 이가 있어서 선재에게 말하였다.
“장하고 장합니다. 잘 왔노라, 선남자여, 그대가 이제 벌소밀다 아씨를 찾으니, 그대는 벌써 크고 좋은 이익을 얻은 것입니다. 선남자여, 그대는 결정코 부처님의 묘한 결과를 구하는 것이요, 모든 중생의 의지가 되려는 것이요, 모든 중생의 탐욕의 화살을 뽑으려는 것이요, 모든 중생의 여색에 대한 예쁘다는 생각을 깨뜨리려는 것이요, 모든 여래의 법계에 두루 한 공덕의 비를 주려는 것이오. 선남자여, 벌소밀다 아씨는 이 성 안의 시장거리 북쪽에 자리잡은 자기의 집에 있습니다.”
선재동자는 이 말을 듣고 기뻐 뛰며 소원이 이루어질 것을 생각하면서 그 집으로 향해 갔다. 그 문 앞에 이르러 살펴보니, 집이 크고 화려하며 보배 담과 보배 나무와 보배 해자[]가 모두 열 겹씩 둘리었고, 해자 가운데는 향물이 가득하고 바닥에는 금모래가 깔려 있었다. 보배로 된 하늘 꽃인 우발라화·파두마화·구물두화·분타리화가 물 위에 만발하고 향기가 그윽하여 보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하며 훌륭한 보배로 언덕을 빛나게 장식하고, 섬돌과 층층대와 난간들은 모두 여러 가지 보물로 되었고, 궁전과 누각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고, 문과 창과 바라지들이 마주 향하여 열리었으며, 그물로 덮고 풍경을 달고 짐대와 깃발을 세우고 한량없는 보배로 장엄하였다. 유리로 땅이 되고 훌륭한 보배가 사이사이 수놓였으며, 침향을 사르고 전단향을 바르고 방울을 달아서 바람을 따라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었다. 하늘 꽃을 흩어 땅 위에 널리고, 마니 등불에서는 밝은 빛이 찬란하게 비치며, 여러 가지 보물 고방은 백천이요, 열 군데의 동산과 숲으로 장엄하였으므로 나뭇가지들은 고운 꽃들이 빛을 다투어 가지각색으로 피어 그 화려한 것은 이루 다 말할수 없었다이 때에 선재동자는 그 아씨가 방에 앉은 것을 보게 되었다. 얼굴은 아름답고 단정하고 몸매가 원만하고 살갗은 금빛이요 눈은 샛별 같고 머리카락은 검푸르며, 키는 크지도 작지도 않고 몸매는 뚱뚱하지도 가늘지도 않으며, 욕계의 천상에나 인간에서는 비길 이가 없었고, 음성은 아름답고 명랑하여 범천 아씨들보다도 뛰어났다. 모든 중생의 여러 가지 말을 모두 구족하여 모르는 것이 없었으며, 글과 이치를 잘 알고 이야기가 능란하며, 환술 같은 지혜를 얻어 방편문에 들어갔으며, 여러 가지 보배 영락으로 몸을 장식하고 온갖 그물로 위에 덮었으며, 머리에는 여의 마니로 꾸민 훌륭한 관을 쓰고 한량없는 권속들이 공경하여 둘러 앉았으니, 모두 선근을 함께 심었고 행과 원이 같으며 복과 덕을 구족하여 끝이 없었다.
이 때에 아씨의 몸에서 찬란한 광명이 쏟아져 나와 온 집 안의 방들과 누각과 궁전에 비치니, 그 빛을 받는 이는 몸이 시원하고 마음이 깨끗하게 되었다. 선재동자는 앞에 나아가 발에 절하고 합장하고 서서 말하였다.
“거룩하신 이여,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사오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의 도를 닦아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듣사온즉, 거룩하신 이께서 잘 가르쳐 지도하신다 하오니 바라옵건대 저에게 말씀하여 주소서.”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이름은 탐욕의 짬을 벗어남[離貪欲際]이오. 나는 모든 중생의 욕망을 따라 몸을 나타내노니, 만일 천상 사람이 나를 볼 적에는 나는 천녀의 모양이 되어 훌륭한 광명이 비길 데 없소. 이와 같이 하여, 내지 사람인 듯 아닌 듯한 것 등이 나를 볼 적에는 나도 또한 사람인 듯 아닌 듯한 여자의 모양을 나타내는데, 그들의 형상을 따라 각각 모양이 아름다우며, 그들의 욕망대로 나를 보게 됩니다.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애욕에 얽히어, 나에게 와서 내 몸을 보고 완전히 반하여 취한 듯할 적에 내가 법문을 말하면 그는 법을 듣고 음란한 마음이 없어지고 보살의 집착이 없는 삼매를 얻으며, 어떤 사람이 잠깐 동안 나를 보기만 하여도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즐거운 삼매를 얻으며, 어떤 중생이 잠깐 동안 나와 더불어 말만 하여도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걸림없는 묘한 음성장 삼매를 얻으며, 어떤 사람이 잠깐 동안 내 손만 잡더라도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모든 부처 세계를 따라가지 않는 데 없는 삼매를 얻으며, 어떤 사람이 잠깐 동안 나의 자리에 올라 앉기만 하여도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온갖 세간 광명을 여의는 삼매를 얻으며, 어떤 사람이 잠깐 동안 내 얼굴만 살펴보아도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고요하게 장엄한 삼매를 얻으며, 어떤 사람이 나의 기지개켜는 것만 보아도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모든 외도들을 꺾어 굴복시키는 삼매를 얻으며, 어떤 사람이 나의 눈이 깜짝거리는 것만 보아도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부처님 경계의 광명에 머무는 삼매를 얻으며, 어떤 사람이 나를 끌어안기만 하여도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모든 중생을 거두어 항상 버리지 않는 삼매를 얻으며, 어떤 사람이 나의 입술만 한 번 빨아도 탐욕이 없어지고 모든 중생의 복덕 광을 늘게 하는 삼매를 얻게 됩니다.
이렇게 모든 중생이 나에게 와서 나를 가까이 하는 이는, 모두 탐욕의 짬을 여의는 데 머물러 보살의 일체지 자리인 가장 좋은 해탈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때에 선재동자는 벌소밀다 아씨에게 물었다.
“거룩하신 이여, 어찌하여 이 해탈문을 가장 좋다 합니까?” “선남자여, 모든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고도 여인으로 말미암아 빨리 위없는 부처님 도를 이루지 못하며, 또 벽지불이나 아라한의 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며, 오신통을 얻은 신선도 여색으로 말미암아 신통을 잃어 버려 짐을 메는 자[荷負者]가 되며, 하늘이 아수라와 전쟁하는 것이라든지, 머리 열 가진 나찰이 남해의 능가성을 불사르는 것이라든지, 어떤 임금은 나라를 잃어 버리며, 내지 형제간에 서로 죽이는 것과 또 나쁜 갈래에 떨어질 원인을 짓고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곤궁하여 기꺼이 남의 하인이 되는 것이나, 스승이나 어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임금과 부모를 배반하는 따위가 모두 여인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내가 보건대 수없는 백천 세계의 탐욕 많은 중생들이 나고 죽는 벌판에서 끝없이 바퀴돌 듯하는 것이 모두 여인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이 여색을 여의면 선지식을 가까이 모실 수 있으며, 또 중생들로 하여금 탐욕을 여의고 가장 좋은 해탈 법문에 머물 수 있습니다.”
선재동자가 말하였다.
“거룩하신 이여, 어떠한 선근을 심고 어떠한 복업을 닦아야 이렇게 가지가지 훌륭한 공덕을 자라게 할 수 있습니까?” “선남자여, 지나간 세상에 부처님께서 나타나시니 이름이 고행(高行)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시고, 그 때 왕도는 묘문(妙門)이었소. 선남자여, 때에 그 여래께서 중생들을 이롭게 하려고 왕도로 와서 성문의 턱을 밟으니 그 성 안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면서, 갑자기 엄청나게 넓어지고 여러 가지 보배로 장엄하며, 한량없는 광명이 서로서로 비치었고, 가지가지 보배 꽃이 흩어져서 땅에 깔리고, 하늘 음악이 한꺼번에 잡히며, 모든 하늘 사람이 허공에 가득하여 공경하고 예배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였소.
선남자여, 내가 그 때에 어떤 장자의 아내가 되었는데 이름이 묘지(妙旨)였소. 부처님의 신통 변화를 보고 마음에 깨달은 바 있어, 남편과 함께 부처님 계신 데 나아가 크고 넓은 마음[廣大心]을 내고, 보배 돈 한푼을 부처님께 바치었더니, 부처님의 시자로 있던 문수사리동자가 나에게 법문을 말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게 하였소.
선남자여, 나는 다만 보살의 탐욕의 짬을 여의는 해탈 법문만을 알 뿐이요, 저 보살마하살의 그지없는 좋은 방편 지혜를 성취하는 것과 복덕이 허공과 같이 엄청난 것이야, 내가 어떻게 알며 어떻게 그 공덕의 행을 말할 수 있겠소.
선남자여, 여기서 남쪽에 한 성이 있으니 저 언덕에 깨끗이 이르름[淨達彼岸]이라 하고, 거기 거사(居士)가 있으니 이름이 비슬지라(毘瑟底羅)며, 그는 항상 전단 사자좌 부처님 탑에 공양하나니, 그대는 그 거사에게 가서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보살의 도를 닦느냐고 물으시오.”
이 때에 선재동자는 그의 발에 절하고 수없이 돌고 공손히 우러르면서 하직하고 물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