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삼계경 – 03.하권
그 때 대덕 가섭(迦葉)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경을 듣고도 사랑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이런 경을 들어서 사랑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그 네 가지란 어떤 것인가. 온갖 방일이 많고, 업보(業報)를 믿지 않으며, 큰 지옥을 믿지 않고, 내가 장차 죽으리라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니, 가섭아, 이 네 가지 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가섭아, 중생들은 또 네 가지 법이 있어서 사랑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그 네 가지란 어떤 것인가. 스스로 강한 것을 믿고, 스스로 힘센 것을 믿으며, 5욕(欲)에 염착하여 술에 빠지고, 선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니, 이 네 가지 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가섭아, 비구는 네 가지 법을 성취하여 부처님의 보리(菩提)를 비방한다.
그 네 가지란 어떤 것인가. 본래 지은 악업으로 정법을 파괴하고 어지럽히고, 현재에 지은 악업으로 비구니를 비방하며, 그의 화상 아사리(阿?梨)도 많은 사람의 공경을 받으면서 보리를 비방하며, 이도 역시 그를 따라 배워서는 보리를 비방한다.
이는 견문이 적어 질투하기 때문에 보리를 비방하는 것이니, 가섭아, 이 네 가지 법으로 부처님의 보리를 비방하느니라.
가섭아, 또 한 법[一法]을 사문·바라문은 마땅히 지어야 한다.
한 법이란 어떤 것인가. 일체의 법에 대해 마음이 머무름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사문·바라문이 지어야 할 한 법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마치 높은 산꼭대기에서 떨어진 사람이 그 마음이 혼미하여 아무 의식이 없어 땅인지 나무인지 알지 못하고 다 헛되다는 생각을 가지며 들고나는 숨이 끊어져 계속되지 않는 것처럼,이와 같이 가섭아, 그는 일체 법에 집착하여 눈이라는 생각[眼想]에 집착하고 눈이라는 모양[眼相]에 집착하나니,그것은 사문의 법이 아니요 바라문의 법이 아니다.
이와 같이 귀·코·혀·몸·뜻이라는 모양에 집착하고, 귀·코·혀·몸·뜻이라는 생각에 집착하나니, 그것은 사문의 법이 아니요 바라문의 법이 아니다.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이라는 생각에 집착하고, 색·수·상·행·식이라는 모양에 집착하나니, 그것은 사문의 법이 아니요 바라문의 법이 아니다. 깨끗이 지니는 계에 집착하고 지니는 계의 모양에 집착하여 보리를 구하며, 다문(多聞)에 집착하고 다문의 모양에 집착하여 보리를 구하며, 부끄러워함에 집착하고 가고 옴에 집착하나니, 그것은 사문의 법이 아니요 바라문의 법이 아니니라.
만일 집착이 있으면 해침을 받는다. 어떤 해침인가. 탐욕의 해침을 받고, 분노와 우치의 해침을 받는다. 눈이라는 생각에 집착하고 눈이라는 모양에 집착하면 눈의 해침을 받아서 오랫동안 빛깔을 보지 못하며, 이와 같이 귀·코·혀·몸·뜻에 집착하면 집착하기 때문에 뜻의 해침을 받나니, 이른바 뜻에 맞는 법과 뜻에 맞지 않는 법이다.
만일 해침을 받으면 곧 속임을 당하나니, 이른바 지옥·아귀·축생 및 사람과 하늘의 모든 해침을 받는데, 다 집착 때문에 그 해침을 받는 것이니라.
이 중에서 어떤 것을 생각의 집착이라 하는가. 이른바 나라는 생각[我想]에 집착하고, 내 것이란 생각[我所想]에 집착하며, 지대(地大)·수대(水大)·화대(火大)·풍대(風大)라는 생각에 집착하고, 뼈라는 생각·무너진다는 생각·푸르다는 생각·벌레라는 생각·피투성이라는 생각·취약하다는 생각·해탈이라는 생각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런데 해탈임에도 다시 어떤 생각이 있어서 집착하는가.
이른바 여기서 해탈을 얻으리라고 집착하는 것이다. 즉 한량없는 과거에 난 곳을 집착하여 ‘나는 그곳을 억념하리라’ 집착하며, 미래에 집착하고 현재에 집착하여 ‘나는 과거다, 나는 현재다’ 하는 생각을 일으키면서 어디서나 다 생각의 집착을 일으키며, 나아가서는 열반에 대해서도 역시 생각의 집착을 일으켜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열반을 얻으리라’는 이런 생각의 집착을 일으킨다.
가섭아, 간략히 말하면, 심지어 뜻의 생각을 따르는 것을 다 생각의 집착이라 하며, 나아가 공(空)이라는 생각도 다 생각의 집착이라 한다. 그래서 이런 것은 다 사문의 법이 아니요 바라문의 법이 아니며, 사문의 행이 아니요 바라문의 행이 아니며, 사문도 바라문도 아니니, 이것은 여래의 말이다.
가섭아, 저 허공과 대지는 ‘나는 바로 허공이다, 나는 바로 대지다’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가섭아, 사문과 바라문도 ‘나는 바로 사문이다, 나는 바로 바라문이 짓는 법이다’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사문·바라문이라 하는가.
가섭아, 만일 생각이 없으면 그것을 사문·바라문이 짓는 법이라 한다.
무엇 때문에 사문·바라문이 짓는 법이라 하는가. 사문·바라문은 ‘나는 이 일을 하리라, 나는 이 일을 하지 않으리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문·바라문은 끝내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느니라.
가섭아, 마치 어떤 사람이 어두운 밤중에 두 손으로 허공을 더듬으며 귀와 코를 움직이면서 말하기를 ‘나는 세간을 희롱한다, 나는 세간을 희롱한다’라고 한다면, 가섭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의 희롱을 받는 자는 누구인가?”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자신을 희롱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 어두움 속에는 보는 사람도 없고 희롱 받을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가섭아, 어떤 비구가 아련아처(阿練兒處)나 혹은 나무 밑에 가거나, 혹은 맨땅이나 한적한 곳에 이르러 생각하기를 ‘눈은 무상(無常)하고, 귀·코·혀·몸·뜻도 다 무상하다’라고 하고, 또 생각하기를 ‘생각하면 빛깔은 무상하고, 소리·냄새·맛·감촉·법도 다 무상하다’라고 하며, 또 생각하기를 ‘나는 열반으로 나아가리라’고 한다면, 이것은 곧 스스로 속이는 것이요 사문의 행이 아니다. 왜냐 하면 먼저 눈에 집착하고,그 다음에 무상을닦고 무상을 행하여 이 악(惡)의 집착을 짓고, 먼저 귀·코·혀·몸·뜻에 집착하고, 그 다음에 무상을 닦고 무상을 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다 얻을 수 없는 것인데, 세 가지에 집착하여 생각을 따라 집착한다. 하물며 어디에서 일심(一心)을 얻겠는가.
가섭아, 모든 부처님의 보리는 매우 깊어 얻기도 어렵고 이르기도 어려우므로 생사를 초월하기도 어렵다. 가섭아, 어떤 것을 일심이라 하는가. 법을 추구할 때 한 법도 볼 수 없어서 눈의 진실을 얻을 수 없고, 귀·코·혀·몸·뜻의 진실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일체 법이 진실하지 않다는 말 그것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본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만일 본성이 그렇다면 마침내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므로, 일체 법은 진실하지 않아 얻기 어렵고 이 마음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대해 생각이 없고 행이 없으면 이것을 행이 없음이라 한다.
어떤 것을 행이 없음이라 하는가. 새 것이라 하지도 않고 옛 것이라 하지도 않기 때문에 행이 없음이라 한다. 이 가운데에는 과거 마음의 해탈도 없고 미래 마음의 해탈도 없으며 현재 마음의 해탈도 없나니, 만일 마음을 얻을 수 없으면 이것을 일심이라 하고, 이것을 일심을 설했다고 하느니라.
가섭아, 미래에는 스스로 일컬어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라 할 것이니, 이들은 파괴하는 말을 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음상(陰想)이 있다.
여래는 5음(陰)은 꿈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지마는, 이들은 그 때에 말하기를’음(陰)은 바로 진실이요, 이 꿈은 바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꿈이라는 말이 있다.
만일 꿈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거기에 대해서 생각을 낼 수 있겠는가.
이 말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꿈이라는 생각을 낸다. 결정코 이 음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은 마치 꿈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만일 음이 없다면 음은 마치 꿈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할 것이다.
이 우치한 사람들은 다시 이 꿈에 대해 진실하다는 생각을 낸다.
그래서 이런 경을 들으면 비방한다. 어떤 비구는 시주 집에 가서 ‘저 아무는 아라한(阿羅漢)이다, 저 아무는 아라한이다’고 한다. 그러면 이 비구들은 그 천박한 지혜에 의해 비구니의 방해로 선한 일을 폐하고 불선한 일을 짓는다. 그 중에서 우바새와 우바이들은 그로부터 조그만 계율 내지 약간의 게송을 듣고는 거기서 떠난다.
가섭아, 그 때의 모든 비구들은 20년 나아가 30년 동안 아련아처에 살면서도, 처음 믿는 우바새가 하루 동안에 아는 불경밖에 모르는 것과 같다.
또 가섭아, 그 때에는 비구들이 서로 공(空)이라는 이름을 주장하여 ‘이것은 공이요, 이것은 깨끗한 것이다. 이것은 공이요 이것은 깨끗한 것이다’라고 하면, 그 때 어떤 비구들은 이 법을 듣고 한데 모여 그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하기를 ‘이 경은 출가인과도 상응하지 않고 재가인과도 상응하지 않는다’라고 하리라.
그리하여 그를 버리고 떠나면서 ‘이것은 우리 스승님의 말씀이 아니다.
왜냐 하면 이것은 나와도 같지 않고 너와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만일 이 매우 깊은 큰 법을 들으면, 재가인이나 출가인이나 다 비방할 것이다.
왜냐 하면 가섭아, 지금도 범행(梵行)이 극히 순수하고 깨끗이 믿는 이가 적거늘 하물며 그 때이겠느냐. 이와 같이 지혜로운 이는 점점 멸도하고, 좋아하는 이가 더욱 적으며 좋아하는 이가 더욱 적어지는구나.
가섭아, 그 때에는 천 비구 가운데서 한 비구를 구해도 바른 견해에 바로 들어간 이를 얻기 어려울 것이요, 설사 한 사람이 업신여기고 비웃으면서 배우지 않더라도 나아가 3천 비구 가운데서 바른 견해에 바로 들어간 한 사람을 찾아도 얻기 어려울 것이다.
가섭아, 그 때에는 재가·출가가 서로 비방할 것이다.
가섭아, 미래에 만일 모든 비구들이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여 일체의 불선법을 끊고 선법을 성취하여 초저녁에도 밤중에도 자지 않으면, 이 모든 악인들은 그의 목숨을 빼앗거나 천대하고 비방하면서 그를 버리고 떠날 것이다. 가섭아, 그 때에는 불법을 헐고 비구를 헐 것이니, 그 중에서 지혜로운 이나 믿음이 매우 깊은 이나 염착이 없는 사람은 서로 잘 공경하고 잘 애념하며 한데 모여 한적한 곳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여기서 설법하는 것 제일의(第一義)를 밝히기 위해서이다.
음(陰)은 견실하지 않은 것이니 그것은 마치 꿈과 같다고 보라.
그 때의 모든 비구들은 서로 다투지만 피차가 다름없나니 상(相)을 얻을 뿐이다.
비구가 이렇게 말하면 저들은 이렇게 답하지만 이와 같은 법안(法眼)은 아무 차별 없으리라.
비구가 속인들에게 ‘당신은 매우 희유하다.
이 보리를 잘 아나니 초과(初果)를 얻으리라’ 하면
저는 스스로 법을 보았다 하고 이 비구를 친해 최상의 공양 가지고 와서 자주자주 받든다.
이 비구 말하기를 ‘진실은 다름이 없나니 아는 것 나와 같다.
본 법을 내게 말하라’ 하네.
시주(施主)와 그 비구 바른 법에 머물지 않고 부처님의 보리를 파괴하리니 그들이 나올 때가 오래지 않네.
‘그를 친하지 말고 나를 친하라.
나는 도를 말하는 것이다.
너는 마땅히 도를 빨리 얻으리라.
마치 나처럼 빨리 얻으리라.’
이것이 저들의 제1구(第一句)로서 저들은 적정(寂靜)을 이야기하면서 한데 어울려 한 무리되어 내 법을 파괴하리라.
마치 악한 큰 도적이 마을 사람들을 다 죽여 마을을 쓸쓸히 하는 것 같고 또 도시도 그렇게 하리라.
그 비구들 마땅히 이러하리라.
무지하여 우둔한 자 금계를 파괴하고 나·목숨·사람에 집착하리라.
내 말을 버리라 하고 도리어 눈을 의지해 스스로 나한(羅漢)이라 자칭하리니 실로 이것은 증상만(增上慢)이다.
저희들끼리 한데 모여 ‘우리가 최상의 승가’라 하지만 이름만 있고 지혜 없나니 거기서 한 사람도 얻기 어렵네.
또 어떤 비구는 악하면서 여실(如實)에 머문다 하고 그래도 악한 이름 말하면서 부처도 성문도 아니라 하리.
보리와 법왕의 모든 것 비방하므로 저 하늘들 극히 괴로워하여 자주자주 눈물을 흘리리라.
그리고 까무러쳐 땅에 쓰러지나니 신심이 있는 모든 하늘들은 ‘이 석사자(釋師子)의 뛰어난 법이 지금 모두 무너진다’ 하고 ‘기이하여라, 불세존이시여 기이하여라, 욕심 떠난 법 기이하여라, 복밭 스님들 부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어라.
우리는 다시 듣지 못하리.
법왕께서 하시는 말씀을.
장차 크게 우치한 사람들 능인(能仁)의 법을 파괴하리라’고
큰 소리를 내어 땅과 하늘과 그 중간 무리들 모든 하늘들에게 외치되 ‘법의 횃불이 꺼지려 한다.
모든 하늘과 용들이여, 이 뒤에 크게 후회하지 말라.
너희들 스스로 듣는 이 불법 이 뒤에 다시는 듣지 못하리.
이 부처님 무수한 겁을 겪었거니 자기와 또는 남들과 이 사바 세계 중생들이 언제 부처 이루게 되랴.
부처님, 세상의 길잡이 이 일체 중생들 위해 그 연설하신 바른 법이 지금 아주 멸하려 하네.
지금 법의 괴란을 일으켜 큰 포악을 끝까지 짓고 악마는 더욱 사나워지리니 욕심이 적은 이는 쇠약해지리.
간사하고 지혜 없으며 거짓말하는 소인 범부들 왕성한 분노를 내어 선서(善逝)의 법을 비방하리라’ 한다.
땅과 하늘의 이 소리 듣고 천상에 난 이들 놀라워하리니 저 사대천왕(四大天王)들은 이 소리 듣고 고민한다.
저 야차(夜叉)들은 모두 와서 넓은 들의 성에 모여 다 함께 근심하고 눈물 흘리며 큰 소리 내어 울부짖는다.
그 큰 소리 몹시 슬퍼 모든 하늘들 모두 다 모여 서로서로들 이야기하리니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갖가지로 장엄한 모든 성읍(城邑)들 온갖 보배로 이루어졌는데 그것들 모두 광색(光色)을 잃고 마치 저 흙무더기 같으리라.
이 성들은 위덕(威德)이 없어 잠깐도 즐거워할 것 없고 이 성들은 위덕 없으리라.
본래 그처럼 즐겁던 것을.
내가 본래 난 곳으로 하늘들 몰려와 나를 보고는 까무러쳐 땅아 앉아 이와 같이 말하리라.
모든 하늘에서 땅에 이르기까지 모두 저 무서운 곳으로 가나니 이렇게 진실한 법이 이제 다 괴멸합니다.’
밑으로 염부제(閻浮提) 중생들 이 괴멸하는 광경 보리니 불자들은 이것 보고 고뇌하면서 다른 곳으로 달아나 숨으리라.
훌륭한 지역이 이레 동안에 아무 위덕의 빛이 없어지자 이 하늘들은 이레 동안을 내내 슬피 울리라.
‘아아, 저 용감한 부처님 우리들은 직접 바로 뵈었는데 이제는 아주 뵈올 수 없고 불법도 또 다 멸하네.’
그리고 살던 사위성(舍衛城)으로 모두 모여와 공경하고는 그리고 살던 그곳에서 내내 슬피 울리라.
‘여기는 부처님께서 앉으시던 곳 인간 중에 높으신 이 앉으시던 곳 여기서 4성제(聖諦)를 연설하시어 우리는 그 법을 직접 들었네.’
세간은 다시 어두워지고 그들은 서로 공경하지 않으며 온갖 악을 짓거니 장차는 저 악도(惡道)에 떨어지리라.
그 많은 천상의 궁전 그 모두 다 텅텅 비고 중생을 구호할 이 없으리니 염부제도 또한 그와 같으리.
‘여기는 부처님께서 거니시던 곳 지금은 다 허물어지고 비어 있다.
세간은 즐거울 것 하나 없구나.
법왕께서 멸도하신 뒤이거니.’
저 제석천(帝釋天)과 또 자재주(自在主) 삼십삼천(三十三天) 가운데서 걱정과 근심으로 고뇌 받으며 큰 소리를 내어 외친다.
모든 삼십삼천은 손을 들어 울부짖고 그 소리 들은 나라 사람들 모두 거기서 놀라 달리리라.
저 모든 하늘들은 내내 부처님 이야기하리니 ‘그 많이 설법하시던 길잡이께서는 우리를 버리시는가?’라고.
저 하늘들 음식도 먹지 않고 온갖 노래와 웃음소리도 없고 제석천은 여섯 달 동안 마음으로 못내 괴로워하리라.
불법의 광명이 없다는 그 말 아수라들 듣고 ‘우리는 지금 가리.
저 삼십삼천으로’ 하네.
염부제의 왕들은 부처님의 탑과 절을 부수고 하늘과 아수라들 모이는 등 그 때에는 이런 일이 있으리라.
저 비구들은 악도에 떨어지고 저 비구니들도 역시 악도에 떨어지리라.
집에 있으면서 계를 깨뜨리는 자 가정에 사는 저 우바새들 사나운 큰 소리 지르면서 장차 악도에 떨어지리라.
또 악한 여자도 악도에 떨어지며 세계는 다 흔들리는 등 그 때에는 이런 일 있으리라.
어떤 이는 취락으로 도망가고 어떤 이는 산림으로 달아나는 등 중생들 모두 다 달아나고 살아남는 이 조금밖에 없으리라.
많은 도적들 일고 또 흉년이 들어 오곡을 심어 거두지 못하고 또 메뚜기의 재환(災患) 있으리니
그 때 곡식은 귀하고 목숨을 마친 사람 죽은 뒤에는 아귀에 떨어져 이에 온갖 고통 받으리라.
그 모든 탑과 절은 떠돌아다니는 스님들과 그 때의 모든 비구들이 모두 다 나누어 가지리라.
내가 멸도한 뒤에는 이런 온갖 고통 있으리니 부디 빨리 준비해 이런 때를 보지 말아라.
저 범부들은 지혜가 없고 저 범부들은 슬기가 없어 온갖 범부의 행을 짓고는 빨리 저 악도에 떨어진다.
부지런히 경전을 독송하고 슬기로운 이가 온 곳을 따라 슬기로 중생들 가르치고 저 선도(善道)에 빨리 가거라.
슬기의 광명으로 밝게 비추고 마땅히 나와 같이 배워 일체의 번뇌를 버리고 빨리 열반에 이르러야 한다.
바른 법은 오래 머물지 않거니 견고하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나는 이렇게 타이르노니 부디 바로 닦아 행하라.
내가 멸도한 뒤 60소겁(小劫) 동안 누가 부처님 명호를 듣고 누가 있어 불법을 사랑하겠는가.
그들은 와서 함께 모여 못내 주림의 핍박을 받아 어미를 잡아먹고 자식 살 먹나니 이렇게 서로 되풀이하리라.
누구나 어린애 낳거든 남의 집에 가지 말게 하라.
애가 집에서 마음대로 놀아도 그래도 두려운 일이로다.
이것을 보거나 듣는 자 있어 나고 죽는 괴로움 이러하거니 그 누가 탐욕을 내어 여자를 좋다 하고 생각하리.
무지(無智)의 뿌리를 내는 욕심의 근본은 곧 여자이다.
그것은 뭇 고통의 뿌리를 내거니 그러므로 이 고통 버려야 한다.
만일 우치한 중생이라면 여자를 좋아하고 친하지마는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그는 열반에 빨리 이른다.
바르지 않은 업의 고통 지으면 과보가 와서 나타나 응한다.
이 과보는 유루(有漏)이거니 그러므로 저 악도에 떨어진다.
만일 저 무루(無漏)의 법이라면 그것은 공이라서 소유 없나니 견고하고 적정하지 않은 자는 빨리 도를 수행해야 한다.
“가섭아, 이것이 비구가 첫 법을 성취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이가 무루법의 마음을 가지고자 하면, 일체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고서 일체 법을 설명해야 하느니라.
또 가섭아, 보살은 마땅히 견고하게 짓고 견고하게 머물러야 한다.
어떤것을 견고하게 짓고 견고하게 머무름이라 하는가.
그 마음을 견고하게 하고 그 정진을 견고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것을 견고한 마음이라 하고, 어떤 것을 견고한 정진이라 하는가?
가섭아, 견고한 마음이란, 보살은 마땅히 이런 마음을 내어야 한다.
즉 항하(恒河)의 모래 같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그 다음에 한 생각의 마음을 내리라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항하의 모래 같은 겁 동안에 한 부처님도 나오시지 않으면 다시 항하의 모래 같은 마음을 일으키되 ‘한 사람의 몸을 얻고, 이 항하의 모래 같은 몸을 얻어 1구(句)의 법을 듣고는 이 슬기를 더욱 키워 위없는 도에 이르리라’고 해야 한다. 이 보살은 이런 마음을 내느니라.
이 보살은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이와 같은 어려운 행과 괴로운 행으로 정진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부지런히 닦으리라. 나는 지금 이렇게 추구하리라.’
가섭아, 보살은 이와 같이 마음을 견고히 해야 한다. 가섭아, 나는 이 비유를 들었으니, 모든 지혜 있는 이는 이 비유로 이해해야 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이런 고행으로 보리를 얻으려면, 항하의 모래 같이 많은 겁 동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배워 게으르지 말며, 부지런히 배워 쉬지 말고 항하의 모래 같이 많은 겁 동안 보리를 배워야 하느니라. 보살은 생각한다.
‘나는 지금 견고한 집념과 견고한 욕심을 내어 마침내 위없는 정도를 버리지 않으리라.’
가섭아, 보살은 이렇게 그 마음을 견고히 해야 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어떤 보살이 이렇게 마음을 견고히 하면 무엇을 취하는가.
이른바 장소를 취하지 않고 장소 아닌 것도 취하지 않는다.
장소를 취하지 않고 장소 아닌 것도 취하지 않음이란 어떤 것인가.
만일 장소와 장소 아닌 것 모두에 소유가 없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多羅三?三菩提)를 빨리 성취하기에 아무 장애가 없느니라.
가섭아, 삼천대천세계 안에 가득 채운 7보로 보시한다 해도, 만일 지금 여래가 설명하는 이런 경에서 보리의 정안(正眼)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 그것을 추구하고 찾으며 의지하고 머물면, 이 사람의 복의 덩어리는 저 앞의 것보다도 곱절이나 많을 것이다.
가섭아, 보살은 마땅히 이렇게 마음을 견고히하되, 견고히 하는 이 마음마저 얻지 못하나니, 그러나 쉬지 않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초업(初業)이라 하는가. 많이 심는 것이 초업이다.
어떤 것이 많이 심는 것인가. 한마음으로 많은 업을 잘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이 법은 말로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초업을 많이 심는 것은 이른바 마음을 견고히 하는 것이니라.”
그 때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음이 아닌데 마음의 상[心相]을 지으면 언제나 큰 두려움 있다.
나는 이루고도 이루지 않은 것이 될 것이니 이 일을 어떻다 하랴.
이것이 항상 의심을 일으켜 일체에 늘 머물고 있나니 방편을 닦고 지어 어떻게 보리 얻으랴.
저것은 바로 게으른 생각이요 이 보리의 생각 아니다.
여기 일체의 의심 있나니 ‘부처님인가, 혹은 성문인가?’라고.
선현(善賢)의 온갖 불법을 바라지마는 미치지 못하고 편함과 즐거움 능히 얻으나 그것은 음성 때문 아니다.
여기 믿음과 욕망이 있어 극히 훌륭하고 묘함을 모으나니 다만 조그만 생각만으로 훌륭한 도 얻는 것 아니다.
일체 법 가운데서 한 가지 법에 머물러야 한다.
깨달음의 지혜가 더욱 더하면 닦아 행하여 도를 얻으리라.
“가섭아, 이 법을 연설할 때, 만일 어떤 보살이 이 행을 성취하면, 부처님을 만나지 않고도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불여래·응공(應供)·정변각(正遍覺)이 되리라’고 하리라.
가섭아, 재가 보살은 ‘어떻게 수행해야 보리를 얻을 수 있을까?’라고 해야 한다.
가섭아, 재가 보살은 세 가지 업으로 보리를 구한다. 그 세 가지란 어떤 것인가.
지극한 욕심을 내고, 일체지(一切智)에 있어서 본래 지은 것에 집착하지 않으며, 5계(戒)를 지녀야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갖추면 6법(法)으로 나아간다. 6법이란 어떤 것인가.
거룩한 법을 얻고 모든 감관을 완전히 갖추어 눈이 멀거나 귀가 먹거나 벙어리가 아닌 것이요, 추악한 얼굴이 아닌 것이며, 믿는 마음을 빨리 얻어 깊은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고, 법을 듣고는 빨리 알아 물러나지 않게 되는 것이니, 마땅히 이런 여섯 가지 법을 구족해야 하느니라.
다섯 가지 장애 되는 법[五障法]을 마땅히 잘 알아야 한다.
다섯 가지란 어떤 것인가. 이간질하는 말을 알고 끝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며, 보살은 이 간탐이 바로 보살의 장애라 보고 마땅히 그 간탐을 행하지 않는 것이며, 만일 욕심에 집착하면 이것은 보살의 장애라 하여 끝내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니, 이런 다섯 가지 법은 장애가 되느니라.
또 마땅히 세 가지 법을 지어야 한다.
세 가지란 어떤 것인가. 항상 출가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계율을 깨끗이 지니는 사문·바라문을 존중하고 공경하여 그 가르침을 받으며 상(相)에 집착해 설법하는 자를 항상 멀리 떠나야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이것은 보살이 배워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보살은 부실(不實)한 풀[草]을 짊어져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이것은 보리가 아니기 때문이니, 만일 부실한 것을 지면 이것은 장애를 배우는 것이요 법 모으기를 배우지 않는 것이다.
또 가섭아, 보살은 마땅히 세 가지 법을 배워야 한다.
세 가지란 어떤 것인가. 마음이 항상 전념하여 부처 되는 길로 나아가고,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수습하고 독송하며, 항상 중생들에 대해 자비스런 마음을 닦아 행하는 것이니, 마땅히 이런 세 가지 법을 닦아 모아야 하느니라.
또 세 가지 법을 친근해야 한다.
세 가지란 어떤 것인가. 매질을 버리고 남을 비천하다고 말하지 않으며 두려워하는 중생을 구해 주는 것이니, 마땅히 이런 세 가지 법을 친근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하천한 사람 친근하지 말고 정직하지 않은 자를 보되 보고는 멀리 떠나야 하나니 마치 악한 독뱀을 멀리하듯.
그를 배우지 않아야 하고 또한 그에게 예경하지 말며 그를 멀러 떠나야 하나니 마치 사나운 개를 보듯.
모든 상에 집착하는 자 저들은 악도에 떨어지나니 만일 저들을 배워 닦으면 그도 저들을 따라가리라.
공(空)의 법을 의심하지 않고 부처님의 법과 그리고 공을 즐기는 비구라는 말 듣거든 거기에 공경하는 마음 내어라.
이 가운데 더욱 많이 듣고 또 예리한 지혜를 내면 보리의 도에 가까워지고 모든 사람의 예경 받으리라.
빨리 그 재계(齋戒)를 받고 빨리 경전을 읽고 외우면 이것은 더욱 지혜를 더하리니 마치 물 속의 청련화(靑蓮華) 같으리라.
빨리 그 재계를 받고 많이 듣고 법을 받으면 그것은 더욱 지혜 더하여 온갖 번뇌를 다 끊으리라.
큰 지혜와 큰 정진과 큰 위덕과 두려움 없음 그것은 자기를 이롭게 하고 또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한다.
끝내 남을 때리지 않고 또 그것을 즐거워하며 보리의 갈래를 다 도우면 이 사람의 법은 줄지 않으리라.
이 사람은 병환이 적고 가장 훌륭한 몸을 가지며 저 중생들의 사랑을 받고 자기의 법을 이롭게 하리라.
인자한 마음을 수행하면 가정에 머물러 있는 보살도 일체의 악도를 버리고 빨리 저 천상에 나게 되리라.
그는 하늘이라는 이름을 얻어 다섯 가지 쾌락을 스스로 즐기다가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도 끝내 악도에는 나지 않는다.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부하고 귀한 종족으로 그 형색은 극히 묘하며 아무도 그를 속이지 못한다.
누구의 수호를 못 받더라도 이 사람은 법을 닦아 행하여 훌륭한 곳을 보게 되고 모든 중생의 사랑 받는다.
안온하게 잘 수 있고 깨어서는 기뻐하며 끝내 두려움 내지 않나니 이 또한 하늘의 수호이다.
마치 더러운 똥인 듯 그는 이렇게 상을 보며 집에 있어서도 그러하나니 다른 것에도 다 그렇다.
마땅히 선한 사람은 칭찬과 찬탄 받고 두려워하는 이에게 무외(無畏)를 베푸나니.
저 재가 보살은
다른 하늘을 섬기지 않고 다른 하늘을 보지도 않나니 이 도는 극히 정직해 슬기로운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이 사람은 이 선근으로 일체의 악도를 버리고 일체의 지혜와 3명(明)이 있나니 3계(戒)를 잘 배우기 때문이다.
그 지은 공덕과 같이 그 예(禮)로 섬긴 것과 같이 그도 또한 예경 받나니 모든 중생들이 공경하기 때문이다.
그 지은 공덕과 같이 그 예로 섬긴 것과 같이 중생들 중에서 뛰어나 부처님처럼 섬김 받으리라.
재가의 위치에 있으면서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면 이것은 칭찬할 법이니 또 다른 법도 지금 들어라.
“가섭아, 재가 보살은 세 가지 법을 성취해야 한다. 세 가지 법이란 어떤 것인가.
마땅히 행복에 대한 바람을 멀리 떠나야 하고, 이 보살은 가옥을 수리해야 하며, 온갖 방해를 제거하여 지식을 부지런히 닦아야 하는 것이니, 보살은 마땅히 이 세 가지 법을 구족해야 하느니라.
또 세 가지 법을 일으킨다. 세 가지란 어떤 것인가. 설법하는 스님의 설법을 막지 않아야 하고, 마땅히 설법을 부지런히 청해야 하며, 마땅히 항상 밝은 등촉을 켜야 하나니, 이런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재가 보살은 끝내 여자의 행을 짓는 세 가지 법을 하지 않아야 한다.
세 가지란 어떤 법인가. 법을 듣지 못하게 만류하지 않아야 하고, 비구와 함께 있지 못하게 만류하지 않아야 하며, 아내가 비구 처소에 가는 것을 막지 않아야 하고, 법을 들으려는 이를 방해하지 않으며, 여자 처소에서 정도를 버리고 도 아닌 것을 범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이런 세 가지 법을 일체 행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이 업을 지으면 곧 여자의 몸을 받을 것이니라.”
그리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신심(信心)으로 자주 밝은 등불 밝히면 번뇌의 눈 없어지고 부처의 눈 얻으리라.
길잡이께서는 이 눈으로 일체를 잘 아시나니 이런 지혜를 알면 진실한 지혜 알리라.
과거 세상 법을 알고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 생각 않으면 세 가지 상(相) 짓지 않는다.
세 가지 상 있으면 그 셋도 또한 버리고 세 가지가 한뜻 되면 상(相)이 곧 상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근(根)을 말씀하시지만 법에는 근이 없다.
그로써 분별하지 않으면 보리가 최상이 된다.
‘부처의 눈을 깨끗이 닦아 모든 것 환히 안다.’
이 글귀가 곧 보리이니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말하는 법 그 법을 헐지도 않으나 모든 법은 다 공이니 그러므로 ‘말한 것’이라 한다.
외도들은 사견(邪見)으로 속인 위해 설법하지만밝은 등불 켜는 것과 같아 눈 있는 자는 잘 안다.
석사자(釋師子)의 법으로 설법하는 이를 막지 말라.
그리하여 빨리 악도에 가지 말고 태어나서 장님 되지 말라.
선서(善逝)께서 법 연설하시기를 부지런히 청하면 이 선근으로써 최상의 법륜 굴리리라.
부디 만류하지 말라.
법을 듣지 못하게 하면 극히 사나운 여자 되나니 장님이나 꼽추 되어 극히 추악하리라.
아무 빛깔도 보지 않고 아름다운 소리도 듣지 않으며 깜깜한 곳에 있는 것 마치 땅 속의 뱀과 같다.
법의 장애가 되면 질투하는 아내 되고 빨리 목숨 마치고는 폐악스러운 여자 되리라.
노란 머리에 파란 눈 시꺼먼 얼굴 보기가 싫고 악한 종기로 다리 뒤틀리고 귀머거리 바보 되어 아는 것 없다.
자비 없는 사람은 이런 과보 받으며 질투하는 남자 되어 욕심 인(因)을 자꾸 짓는다.
“또 가섭아, 재가 보살은 세 가지 법을 짓지 않아야 한다. 세 가지란 어떤 것인가.
여자를 청해 애욕의 인연을 만들지 말아야 하고, 소유[蘇]와 제호(醍?)와 온갖 맛없는 것을 보시하되 출가하려는 사람을 말리지 말고 출가하지 않은 이는 권해 출가시켜야 하며, 여래의 탑을 만들고 사업하는 사람이 되어 그것을 남에게 가르치되 그 물건을 남에게서 빼앗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니, 이런 세 가지 법을 재가 보살은 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리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남의 여자에게 보시하지 말고 법 아닌 짓을 행하지 말며 혼인하지 않으면 오기 어렵나니 그러므로 일체 보시하지 않는다.
할 말 있으면 그에게 가서 합장하고 예경하며 보시하고 또 보시해 그 마음을 기쁘게 하라.
저 스님들 있는 곳에 심부름하는 사람 적을 때 만일 누가 그런 사람 청하거든 그런 사람 적은 이 도와주라.
물을 휘저어 흐리게 하지 말라.
혹 누가 그렇게 하더라도 그를 해치려 하여 성내는 마음을 내지 말라.
제 아들이나 또 친척으로서 출가하려는 사람 있으면 보살은 이들을 끝내 말리지 않는다.
저 중생들 즐겁게 하고 멸도를 증득하여라.
이는 본래의 내 소원이라 그러므로 위없는 법 연설한다.
그들의 허물 알고는 스스로 투기하지 말고 긴 밤에 늘 걱정하면서 번뇌에 물들지 말라.
“가섭아, 재가 보살에게 또 닦아 모으지 말아야 할 세 가지 법이 있다.
세 가지란 어떤 것인가. 남자를 사지 않고 여자를 사지 않고 독약을 보시하지 않는 것이니, 만일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친근하지 말아라.”
그리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남자를 사는 업을 버리고또 여자를 사지도 말며 독약을 보시하지 말고 그런 사람은 멀리 떠나라.
하늘도 이 법을 꾸짖나니 중생들은 고뇌 받고 여러 곳으로 달리면서 고민의 화살에 찔린다.
그는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온갖 고뇌를 받고 또한 목숨이 끊어지나니 그러므로 그런 일 해서는 안 된다.
이 허물과 또 다른 허물 나는 그들의 지음을 다 알지만 이제 그 일부분만 말하나니 이것은 보리를 위해서이다.
“가섭아, 재가 보살은 세 가지 법을 짓지 않아야 한다. 세 가지란 어떤 것인가.
음녀의 집에 가지 않고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비도(非道)를 범하지 않으며, 푸줏간 근처에 살지 않는 것이니, 재가 보살은 이 세 가지 법을 짓지 말아야 하느니라.”
그리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음녀의 집에 가지 말아라.
더러운 욕심을 위하는 자 남의 존경을 잃으리니 하천한 욕심을 가까이하기 때문이다.
스승의 버림받고 여기 오나니 그의 업신여김 받기 때문이다.
어느새 병을 이루어 그로써 목숨 마친다.
남자나 여자나 행할 도가 아니면 그 둘을 다 친근하지 말라.
이 여자란 반갑지 않을 것 무엇 때문에 그것 범하랴.
푸줏간이 있는 곳이거든 일체 그 근처 가지 말라.
이것은 내가 나쁘다 하나니 보살의 법이 이러하니라.
이런 온갖 허물과 근심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다 아신다.
그러므로 바르지 않을 행을 지금 여실히 말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조금 말씀하시나 내 성문들은 잘 알리니 부처님 말씀을 직접 듣고 어찌 뒤에 헛되게 하리.
중생으로서 성인을 믿는 자 열반에 빨리 이르려는 자 이들을 위해 내가 말하는 것이지 가르치기 어려운 자 위함 아니다.
“또 가섭아, 재가 보살은 마땅히 세 가지 법을 성취해야 한다.
어떤 것이 세 가지 법인가. 집에 있으면서 마치 나그네인 듯하여 나라는 생각[我想]을 일으키지 않고,보시한 자를 가까이 모으려는 생각 일으키지 말고 보시하지 못한 자를 천 유순이나 멀다고 하는 생각 버리며, 자식을 위해 보배 창고를 만드리라는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이니,가섭아, 재가 보살은 마땅히 이런 세 가지 생각을 성취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죽는다는 생각을 닦아라.
나는 오래지 않아 목숨을 마치리니 그러므로 간직한 모든 것 중에서 이 재물을 마땅히 견고히 하라.
남녀의 일을 구별하여 끝내 이익을 위하지 말고 빨리 견고한 법 신명과 재물을 구하라.
간절히 보리를 구하되 행동이 경박하지 말고 법의 이익을 구하기 위해 언제나 꺾어 항복 받아라.
마치 소녀가 장난할 때 광명이 점점 나타나나 맛을 즐기어 집착하지 않는 것처럼 법을 요구하는 이도 이래야 한다.
쉬지 않고 경전을 읽고 외우며 그 좋은 법의 장엄을 닦아 모으기 매우 어렵다.
그 가지가지 모든 것들을.
이와 같이 서로 비슷한 법을 가섭아, 나는 이미 말했다.
총명하고 영리한 사람 있으면 나는 그런 사람을 다 아나니
저들은 자신을 잘 알고 스스로 자신을 가엾이 여기리니 저들은 그 때가 되면 자주자주 나를 만나리라.
“또 가섭아, 재가 보살은 세 가지 법을 성취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부모가 믿지 않으면 교화하여 믿음에 머물게 하고, 부모가 계를 깨뜨리면 권하여 계에 머물게 하며, 부모가 간탐하면 권하여 버림[捨]에 머물게 하여 위없는 도를 찬탄하면서 대중 가운데서 법을 연설하는 것이니, 이것이 첫 법의 재가 보살이 위없는 정진의 도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니라.
또 가섭아, 재가 보살은 공양할 사람과 공양하지 않을 사람을 잘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면 공양할 사람에게는 공양을 베풀고 공양하지 않을 사람에게는 공양을 베풀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람에 대해서는 인자한 마음을 닦아야 하나니, 가섭아, 이것이 둘째 법으로서 재가 보살이 위없는 정진의 도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니라.
또 가섭아, 재가 보살은 모든 재물을 부지런히 모으되 잃지 않고 다 쓰지 않아야 한다.
남에게 주지 않고 굳게 간직했다가 굳이 행동하여 계율이 깨끗한 사문·바라문에게 보시하며, 봉읍(封邑)과 재물을 깨끗한 일체의 행에 매임이 없이 평등하게 하리니, 가섭아, 이것이 셋째 법으로서 재가 보살이 위없는 정진의 도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니라.”
그리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일 재가 보살이 위없는 보리를 모으면 세 가지 슬기를 일으켜 위없는 도를 배우리라.
만일 아버지나 어머니가 나쁜 슬기로 믿음 없으면 그를 권하여 믿음을 내어 훌륭한 법으로 나아가게 하라.
아끼고 범하면 계와 버림에 머물게 하고 슬기가 없으면 슬기를 믿게 하며 위없는 보리로 향하게 하고 권하여 이곳에 이르게 하라.
만일 사방으로 다니면서 잘 설법하는 이를 구하거든 법의 보시를 행하여 지혜를 더욱 증진시켜야 한다.
계를 범하면 계에 머물기를 가르치고 믿음이 없는 자는 믿음을 가르치며 슬기 없는 자는 슬기를 가르치면 이 사람은 끝내 물러나지 않으리라.
만일 저 슬기로운 비구와계를 지니며 많이 아는 이 보거든 공경하고 믿고 가까이하여 자주자주 그에게 물어야 한다.
왜 비구를 가까이하여 자주자주 그에게 묻는가? 빨리 그 법을 받고자 함이니 그러므로 물러나지 않는다.
그를 깨달아 늘리고 듣는 이와 지혜로운 이는 깨달음의 지혜를 더욱 늘리며 제 살을 버려 공양한다.
그는 믿고 아는 상이 있는데 내가 말한 곳과 같이 믿지 않는 마음으로는 보리로 나아갈 수 없느니라.
그 견해가 차츰 늘어나 빨리 증장(增長)하게 되면 이에 모든 늘어남을 그는 얻기 어렵지 않으리라.
이 늘어남을 알고는 만일 자기와 또 남이 기뻐하면서 나아가게 되면 이 사람의 지혜 더욱 늘어나리라.
딸려 있는 모든 재물은 본래 모은 것이니 저 계율을 지키는 사람 그들에게 모두를 주라.
그는 다른 말 없고 끝내 다른 말 하지 않으며 씩씩하고 견고하게 보시하나니 그는 능히 여래 이루리라.
부드러워 같이 있기 쉽고 용감한 이는 자비스러워 기뻐하면서 굳게 보시하나니 먼저와 같이 나중도 그러하다.
용감하고 훌륭한 시주 남에게 구하지 않고 모든 보시 중에서 가장 건실한 것으로서 일체를 버리지 않는 것 없다.
금이나 은이나 또는 돈을 전생에도 일찍이 보시했나니 그것은 최상의 법과 매우 깊은 최상의 글귀를 바라서이다.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들 상응하게 오로지 공양하나니 만일 법을 구하려거든 이 사람에게 다 공양하라.
용감하고 건장한 이는 법을 모아 법으로써 살아가며 지혜와 훌륭한 법 가졌나니 마땅히 세상을 구제하는 이 되리라.
“또 가섭아, 재가 보살은 세 가지 법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내고 빨리 성문(聲聞)에 떨어져 반열반에 든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만일 잠깐일지라도 한 번 보리심을 내고서 지옥·아귀·축생을 두려워하여 보리의 도를 무거운 짐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온갖 선근을 구하면서도 오로지 생각하지 않고 선을 구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이 사람은 마음의 해침을 받아 괴롭다는 생각을 내나니, 가섭아, 이것이 첫 법으로서 재가 보살이 위없는 도에서 물러나고 빨리 성문에 떨어져 반열반에 든다는 것이니라.
또 가섭아, 재가 보살이 만일 잠깐일지라도 한 번 보리심을 내고서 보시를 행할 때 성을 내면서 주고 주고는 후회하면 이 사람은 부처 지혜에 이르지 못하나니, 가섭아, 이것이 둘째 법으로서 재가 보살이 보리심에서 물러나고 빨리 성문에 떨어져 반열반에 든다는 것이니라.
또 가섭아, 재가 보살이 만일 잠깐일지라도 한 번 보리심을 내고서 부지런히 정진하여 많이 듣지 않으면, 이 사람은 이 조그만 선근으로 빨리 열반에 드나니, 가섭아, 이것이 셋째 법으로서 재가 보살이 보리심에서 물러난다는 것이니라.”
그리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리심을 내고는 바른 행을 닦지 않아 불승(佛乘)을 파괴하고 성문승(聲聞乘)에 떨어진다.
보리는 믿지 않거나 게으른 자가 얻는 것 아니다.
간탐하고 지혜 없으면 그것들은 장애가 된다.
은혜 알아 깨끗한 계에 머물고 마음이 항상 즐겨 버림을 행하며 버릴 때에 기뻐하면 보리를 얻기 어렵지 않다.
마음으로 온갖 악을 지으면서도 마음으로 또한 보시 행하면 이 중생은 마음이 견고해 세간의 탑이 될 것이다.
만일 이 법을 버리지 않고 마음이 보리로 나아가면 부처 되어 세상에 나와 세상을 위해 복밭이 되리라.
“가섭아, 재가 보살은 세 가지 법이 있어서 보리심에서 물러나고 연각의 열반을 따라 반열반에 든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이 재가 보살이 한 번 발심하고서 비밀한 법을 아끼면, 가섭아, 이것이 첫 법으로서 보살이 보리심에서 물러나고 연각의 열반을 따라 반열반(般涅槃)1)에 든다는 것이다.
가섭아, 또 재가 보살이 한 번 발심하고서 좋은 때를 바라 길일(吉日)을 구하면, 가섭아, 이것이 재가 보살의 둘째 법으로서 보리심에서 물러나고 연각의 열반을 따라 반열반에 든다는 것이다.
또 가섭아, 재가 보살이 게을러서 보리를 돕는 법을 구하지 않으면, 가섭아, 이것이 재가 보살의 셋째 법으로서 보리심에서 물러나고 연각의 열반을 따라 반열반에 든다는 것이니라.”
그리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비밀한 법을 아껴 남에게 가르쳐 주지 않으면 이 사람은 연각 자리에 떨어져 저 보리를 잃게 되리라.
이 사람은 삼계에 떨어져 이익을 잃고 고통 받으며 과거와 또 현재에 보리를 의심하리라.
대승을 생각하고는 빨리 길상(吉祥)을 바라나니 이것은 신해(信解)의 상이 아니매 부처님께서는 이를 친하지 아니하신다.
만일 참으로 마음을 오로지해 보리의 도를 굳게 구하거든 세간의 탑을 제외하고는 다른 아무것도 섬기지 말라.
만일 이런 신심 있으면 그 다른 하늘은 얻지 않고 최상의 도를 성취하리니 이름을 천중천(天中天)이라 한다.
보리심을 내어서는 다른 것 섬기지 않고 어디서 나거나 최상의 몸을 받으리라.
“가섭아, 재가 보살은 세 가지 법으로 새까만 몸을 받는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부처님의 탑에 켜는 등불을 끊고, 남의 싸움에 성을 내어 자기의 일은 돌보지 않고 남의 싸움을 대신하며, 얼굴 검은 사람을 보면 비방하는 것이니, 가섭아, 이것이 재가 보살의 세 가지 법으로서 그 몸이 새까맣게 된다는 것이니라.”
그리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탑 안에 등불을 켰는데 이 불을 꺼 버리면 그 몸은 매우 검어져 마치 검은 칠판 같아지리라.
그 얼굴 검은 사람 보고 ‘나는 희고 너는 검다’ 하면 이것은 남을 비방하는 것이니 그는 숯과 같은 검은 몸 받으리라.
구업(口業)을 잘 수호하라.
지은 업은 끝내 없어지지 않나니 그 지은 업을 따라 그와 같은 그릇 있으리라.
“가섭아, 재가 보살은 세 가지 법으로 장인(匠人)의 집에 간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가섭아, 재가 보살이 스스로 5계를 받았는데, 만일 어떤 벗이 멀리서 오면 그를 술을 마시게 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청해 술을 마시게 하면, 가섭아, 이것이 재가 보살의 첫째 법으로서 장인의 집에 난다는 것이다.
또 가섭아, 재가 보살이 스스로는 깨끗한 행을 가졌으면서도 남과 어울려 애욕을 행하게 하면, 이 업 때문에 장인의 집에 나나니, 가섭아, 이것이 재가 보살의 둘째 법으로서 장인의 집에 난다는 것이다. 또 가섭아, 재가 보살이 만일 다른 사람이 법사(法事)를 경영해 짓고 부지런히 경전을 독송하는 것을 보았을 때, 이 사람은 천사(天舍)를 짓고자 하는데 보살은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그 독송을 그만두었다가 집을 다 지은 뒤에 다시 독송하라’고 하면, 이 업으로 장인의 집에 나느니라.”
그리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술로써 남을 청하거나 또 친구에게 주는 등 술을 좋은 공양으로 삼으면 이 업으로 장인에 떨어진다.
칼이나 바늘을 만들거나 온갖 장인의 일은 하지 못하고 오직 땅바닥에 앉아 손에 배낭(排囊)만 잡고 있다.
자기는 여인을 멀리하면서 남을 보고 음욕을 찬탄하면 이 업보로 말미암아 장인의 집에 태어난다.
칼이나 바늘도 만들지 못하고 배낭을 다룰 줄도 모르면서 남을 시켜 쇠망치 들고 정철(釘鐵)을 두드리게 한다.
이 장애 되는 법으로 남으로 하여금 법을 버리게 하였으므로 이 장인의 집에 떨어져 그 사람은 장인으로 태어난다.
그는 배낭도 보지 않고 또 망치와 부젓가락[椎鉗]도 보지 않고 온갖 그릇을 다 부수나니 그 업보는 이러하니라.
가섭아, 구업을 잘 수호하고 또 심업(心業)도 삼가 수호하여 일체의 선하지 않은 법을 남에게 말하지 말라.
생사(生死)의 온갖 고통을 받고 태어나서는 애욕을 더욱 늘리나니 그러므로 부지런히 법을 행하고 온갖 불선의 법을 버려라.
“가섭아, 재가 보살은 세 가지 법을 성취하여 왕가(王家)에 나고 안색이 아름답고 단정하고 사랑스러우며 곱고 깨끗하고 희고 붉으며 게으르지 않고 총명하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가섭아, 재가 보살은 일찍이 보지 못했던 사문·바라문을 보고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이 이는 복밭이니 공경하고 예경해야 한다.
이 이는 복밭이다’라고 하고, 믿고 공경하고서 그를 청해 의복·음식·침구 및 의약을 주나니, 가섭아, 이것이 첫째 법으로서 재가 보살이 왕가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또 가섭아, 재가 보살은 본래의 서원에 굳게 머문다. 본래의 서원에 굳게 머물 때에는 그 말대로 머물러 끝내 거짓말하지 않나니,
가섭아, 이것이 둘째 법으로서 재가 보살이 왕가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또 가섭아, 재가 보살은 계율이 깨끗한 사문·바라문과 친해 그에게 묻고 견고한 법을 닦나니, 가섭아, 이것이 재가 보살의 셋째 법으로서 대왕의 집에 태어난다는 것이니라.”
그리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슬기로운 사람은 계율이 깨끗하고 많이 들은 이를 보아 알고 그는 이런 마음을 일으키나니 ‘저에게 가서 명령받으리라’고.
그는 명령을 받은 뒤에 진실 그대로 실행하는데 그것은 열반을 위해서가 아니어도 그 실행은 해가 되지 않는다.
그는 친한 그들과 같은 견고한 그 법을 취하여 갖가지 지혜를 더욱 늘리되 얻기 어려운 것 빨리 얻는다.
이러한 신심으로 보리로 나아가는 자 보리를 얻기 어렵지 않나니 지혜로운 사람이 행하는 그대로이다.
최상으로 살아가고 최상의 재물을 버리고 최상의 묘한 법 모아 최상의 멸도를 얻는다.
이 이는 훌륭한 종족에 태어나고 이 이는 훌륭한 몸을 얻고 훌륭한 묘한 옷을 입고 위없는 열반을 얻는다.
이와 같은 법을 알아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은 큰 겁냄 없이 수행하나니 부처님의 말씀과 같다.
훌륭한 승(乘)을 뜻하고 나아가 이 이는 훌륭한 승에 이르러 일체의 번뇌를 멸하나니 저 최상의 결과와 같다.
그 지은 업 그것과 같고 과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백천억 겁을 지나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안 없어진다.
“가섭아, 재가 보살은 가정에 있으면서 세 가지 법을 성취하여 이런 선근을 심고 마침내 다섯 가지 쾌락을 받지 않으며, 나아가 위없는 정도를 얻는다.
가섭아, 이 재가 보살은 5계(戒)를 받아 지녀 남에게 다섯 가지 쾌락을 찬탄하지 않고, 여자를 유인하지 않으며, 부지런히 자기의 업을 닦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 여자를 친하지 않으리라’고 한다. 이리하여 마침내 다섯 가지 쾌락을 즐기지 않고, 나아가 위없는 정도를 이룬다. 가섭아, 이것이 재가 보살의 첫째 법으로서 마침내 다섯 가지 쾌락을 받지 않고, 나아가 최상의 정도를 이룬다는 것이다.
또 가섭아, 재가 보살은 만일 이런 매우 깊은 경전을 들으면 깨끗한 믿음으로 수행한다.
가섭아, 만일 이 깊은 경전에 대해 그가 그릇이 아니면 그를 권해 나아가게 해야 한다.
가섭아, 만일 선남자가 남으로 하여금 의심을 버리게 하면, 이 보살은 이 선근으로 막힘 없는 변재를 얻어 변론에 매이지 않게 되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빨리 부처님을 보게 되고, 목숨을 마치고는 천상에 나며, 오래지 않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 가섭아, 이것이 재가 보살의 둘째 법으로서 다섯 가지 쾌락을 받지 않고 나아가 위없는 정도를 얻는다는 것이다.
또 가섭아, 재가 보살은 그가 가진 선근을 다 위없는 정도에 회향한다.
그리하여 빛깔·소리·냄새·맛·감촉·법 등을 즐기지 않고, 재물을 즐기지 않으며, 자재(自在)를 즐기지 않고, 권속을 즐기지 않으며, 무루(無漏)의 마음과 무루의 과보로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다섯 가지 쾌락을 받지 않나니, 가섭아, 이것이 재가 보살의 셋째 법으로서 다섯 가지 쾌락을 받지 않고, 나아가 위없는 정도를 얻는다는 것이니라.”
그리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재가 보살은 5계를 지니고 불법을 보호하고 입을 단속하며 여자를 친하지 않고 이 하천한 것 업신여긴다.
이런 비슷한 법으로 무루를 닦아 가득 모으고 의혹하는 자 있으면 빨리 이해시킨다.
일체 모든 선근을 다 보리로 회향시키고 이 모든 선근으로 다섯 쾌락을 빨리 버린다.
항상 많이 들은 것 가지고 중생들 위해 법을 말하며 큰 자비심 일으켜 보리의 도를 구한다.
그러므로 이 법을 듣고는 어질고 착하고 묘한 욕심을 내고 끝내 쾌락을 친하지 않아 빨리 법륜을 굴린다.
그 때 마하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경을 무엇이라 이름하여 저희들이 받들어 지녀야 하리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아, 이 경의 이름은 연설삼계(演說三戒)라 하고, 또 설보살금계(說菩薩禁戒)라고도 하며, 또한 집일체불법(執一切佛法)이라고도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