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삼계경 – 02.중권
“이와 같이 차츰 많은 여자들은 그 남편을 버리고 승방(僧坊)에 가서 논다.
승방에 들어가면 그들은 그 한 여자를 위해 설법하여 해탈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러나 가섭아, 나는 그 때에 그것은 순전한 비법(非法)으로서 5백의 비법의 문이요, 5백의 번뇌의 문임을 본다. 수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 때에는 다 계율이 없어 재가자(在家者)와 다름이 없다.
가섭아, 그 때에는 계법이 극히 악해 이익만을 바란다.
그러므로 보리를 구하는 이는 마땅히 비구니를 친근하지 말고 그곳에 머물지 말며, 친근하지 않는 것도 떠나고 다시 친근하지도 말아야 한다. 세간의 이양(利養)을 버리고 걸식행(乞食行)을 의지하며, 고운 옷을 버리고 분소의(糞掃衣)1)를 입으며, 누각과 침대와 침구를 버리고 산림과 굴속과 토굴을 의지하며, 모든 맛난 약을 버리고 오래되고 버린 약을 의지하라.
모든 중생에 대해 친애하는 생각을 내고 인자한 마음을 수행하여 일체의 비방과 구타를 참아야 한다. 일체의 아는 이와 친족을 버리고 업을 닦아 스스로 살아가면서 저 재가자와 어울려 해탈계(解脫戒)를 말하지 말되 그 행을 수순해야 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해탈계를 어기면 여래의 힘과 무소외(無所畏) 등을 어기는 것이요, 그것은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을 거스르는 것이니, 그런 죄의 과보[罪報]는, 삼천대천세계의 일체 중생이 다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들 중생들이 받는 고통을 이 고통에 비하면 백분(百分), 천분, 백천분, 백천억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나아가 산수와 비유로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만일 이런 고통을 떠나려 하면 이런 어리석고 악한 사람과는 백천 유순(由旬)을 떠나야 할 것이다.
그의 소리도 마땅히 떠나야 하겠거늘 하물며 보고 듣는 것을 떠나지 않아서야 하겠는가.
한 법을 친해야 한다. 어떤 한 법인가. 일체 모든 법은 다 소유가 없다는 것이니, 만일 모든 법이 다 소유가 없음을 인정한다면 이런 악인을 멀리 떠나 친근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또다시 두 가지 법을 친해야 한다. 어떤 두 가지 법인가. 일체 모든 법은 다 얻을 것이 없다는 것과 모든 법을 구해 모으되 모으는 마음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음이란 어떤 것인가.
모으는 것을 전혀 얻을 수 없으니, 얻을 수 없는 가운데서 마음을 내지 말라.
삿된 견해를 버리는 것처럼 3유(有)를 버리는 것도 그와 같이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보살행을 행하고 모든 상(相)과 마음을 떠나 보살행을 행하며, 보살행을 행할 때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버리고, 버리고 난 뒤에는 미륵불(彌勒佛)을 만나 모든 두려움을 떠나 이렇게 말한다. ‘시원하고 안락하며 시원하다.
악마의 반려(伴侶)됨을 떠났구나. 시원하여라. 악도(惡道)를 멀리 떠나게 되었구나.’
가섭아, 만일 이 경을 듣고 두려워하지 않고 놀라지 않으면서 스스로 제 몸을 보고 잘 지닐 마음을 내면, 여래는 이 사람이 내 법장(法藏)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다 안다.
가섭아, 마치 재물과 봉록(封祿)이 많은 장자와 같다. 즉 이 장자의 아들이 제가 보는 물품을 아버지 재산이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처음 볼 때에는 ‘이것은 내 물건이다’ 하고 그런 뒤에는 그 물건을 갖고, 어디를 가거나 가는 곳마다 그것을 감추거나 혹은 늘린다.
이와 같이 가섭아, 그 때의 비구들은 이 경을 들고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은 여래께서 부드럽고 묘한 범음(梵音)으로 연설하신 것이다.’
그러나 다시 다른 비구는 이 법을 듣고 비방한다. 그 때 이 법을 가진 비구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가장 진실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반려가 적으므로 힘이 약해 거처가 나쁘고 날마다 장거(藏擧)에 처하게 되느니라.
가섭아, 내 후세에는 법의 성[法城]을 지키는 사람이 극히 적을 것이므로, 나는 이런 법을 미륵에게 맡겨 그 반려가 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닦고 큰 보시를 행해야 한다.
만일 선남자·선여인으로서 이 법을 듣고 가르친 그대로 행하면 그는 미륵의 첫 모임에 있으면서 범행을 수행할 것이며, 바른 견해를 가진 중생들은 마땅히 법의 성을 지킬 것이다.
가섭아, 나는 보지 못하며, 나아가 한 사람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뒤 5백 세에 법이 멸하려 할 때, 이 법을 듣고서 비방하지 않고 능히 수지하고 독송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만일 나를 이미 보고 친근 공경하였으며, 뒤 말세 5백 세 때에도 이 경을 들으면 능히 수지하고 독송할 것이니, 이런 사람은 나를 기다리지 않고 이것을 독송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일체지(一切智)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나를 생각하고는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기이하고 기이하다. 석가모니 세존께서는 우리에게 법을 주고 우리를 수호하신다.’
그러므로 가섭아, 이 법을 배워야 한다. 이 법을 배우면 즐거워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반드시 이룰 것이다.”
그 때 마하가섭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 같으면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얻을 희망이 전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저로 하여금 일체지를 갖추게 하신다면 매우 기쁘겠습니다.
만일 제가 위없는 도를 얻는다면 저는 매우 드문 색신(色身)을 얻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대를 인도하지 않고 내가 그대 때문에 이런 법을 설명하는 것이니, 의혹을 적게 하여 위없는 정진의 도를 빨리 성취하여라.
또 가섭아, 만일 어떤 중생이 간절한 법을 성취하고 닦아 모으기를 성취하면 이들은 차츰 위없는 도를 성취할 것이다. 그리고 일체의 번뇌를 두루 끊고 법을 연설할 것이다.
가섭아, 보살은 네 가지 법을 성취해야 한다. 네 가지 법이란 어떤 것인가.
보살은 큰 정진(精進)을 내어야 한다. 정진이란 어떤 것인가.
정진이란, 이른바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을 구하지 않고 무루법(無漏法)을 모으는 것이다.
무루법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지대(地大)가 없고 지대를 말하지 않으며, 수대(水大)·화대(火大)·풍대(風大)가 없고 수대·화대·풍대를 말하지 않는 것이니, 일체의 말은 다 진실이 아니기 때문인데, 보살은 그것을 취해 저 언덕을 말하는 것이다.”
가섭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가령 어떤 사람이 물으면 여래께서도 역시 말로써 설법하시는데 그것도 진실이 아닙니까? 세존이시여, 그런 사람에게는 어떻게 답해야 하겠습니까? 저는 지금 여래(如來)·응공(應供)·정변각(正遍覺)께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미래에는 악비구가 있어 몸도 닦지 않고 계(戒)도 닦지 않으며, 마음도 닦지 않고 지혜도 닦지 않아 분노가 왕성하고 구업(口業)이 왕성하여 이런 경은 수지하지도 않고 독송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들은 색·수·상·행·식과 이런 경의 말의 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 때 세간의 비구들은 색·수·상·행·식을 일으킬 것이니, 그 때 비구들은 이렇게 머무르면서 마치 재가자와 같아 마침내 제일의제(第一義諦)는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가섭아, 마치 장님이 황금 화만(華?)을 차고도 자기는 모르는 것처럼, 가섭아, 장래의 비구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이런 경을 듣고도 그 글로 지니지 않거늘 하물며 제일의제를 추구해 알려 하겠는가.
또 가섭아, 어떤 남녀가 다른 장부의 꾸지람을 들었다가, 이 남녀가 다른 때에 다시 그 장부의 이름을 들으면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가섭아, 말세 비구들은 이 경 말씀의 진실을 듣고도 의복을 지나치게 탐내었던 제 허물을 알고는 놀라고 두려워할 것이다.
또 가섭아, 마치 원숭이가 쇠사슬에 매인 일이 있으면 그들은 그 쇠사슬을 다시 보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이와 같이 가섭아, 말세의 비구들도 역시 그와 같아서 이 경을 듣고도 즐겨 읽지도 않고 등지고 버리고 갈 것이다.
또 가섭아, 마치 개가 야간(野干)을 쫓으면, 그 야간은 무덤 사이나 구멍이나 깊은 구덩이로 달아나는 것처럼, 이와 같이 가섭아, 미래의 비구들도 이 경을 들으면 야간처럼 달아날 것이다.
야간처럼 달아난다는 것은 계율을 범하고 이 경을 들으면 비방한다는 것이다.
또 가섭아, 야간이 무덤 사이로 달려가는 것처럼, 이와 같이 가섭아, 미래의 비구들도 이 법을 들으면 달려가서 집으로 돌아가고, 색욕으로 달려가며, 여자에게로 달려가고, 투쟁으로 달려가며, 의술로 달려가고, 단사(斷事)2)로 달려갈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곳에 머물면서 계율을 범하므로, 나는 이들을 무덤 사이로 달려감에 비유하는 것이다.
또 가섭아, 야간이 구멍으로 달려가는 것처럼, 이와 같이 가섭아, 그 때의 비구들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으로 달려가리니, 나는 그들을 구멍으로 달려간다고 이름하느니라.
또 가섭아, 야간이 깊은 구덩이로 달려가는 것처럼, 미래의 비구들도 그와 같아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자지옥(刺地獄)에 날 것이니, 가섭아, 나는 이들을 깊은 구덩이로 달려간다고 이름하느니라.
가섭아,저 야간과 같이 모든 비구들도 이런 경전을 추구하여 그 뜻은 알지 못하고, 다만 이렇게 훼방하여 악만 드러날 뿐이니,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악도(惡道)에 떨어지느니라.
가섭아, 어떤 비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의 설법은 진실이 아니다. 여래의 말은 진실이냐, 진실한 지혜가 아니냐?’
비구는 말했다. ‘대덕(大德)은 지금 무엇을 집착하는가? 공(空)을 집착하는가, 말을 집착하는가?’
대답했다. ‘나는 말을 집착한다.’ 물었다. ‘네가 곧 부처님인데 너는 무엇 때문에 말로써 말하는가?’
대답했다. ‘나는 공(空)을 집착한다.’
물었다. ‘그것을 분별해야 한다. 왜냐 하면 분별할 수 없는 것을 공이라 하며, 네가 말하는 공은 곧 말이기 때문이다. 또 네가 말하는 공은 나[我]의 공인가, 내 것[我所]의 공인가, 또는 중생(衆生)의 공인가?’
또 물었다. ‘비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일체 법의 공(空)을 좋아하느냐?’
대답했다. ‘나는 일체 법의 공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또 말했다. ‘대덕은 사문 석자(釋子)의 법을 잃은 지 오래 되었구나.
왜냐 하면 불세존께서는 일체 법의 공을 말씀하시고 나와 중생과 수명이 있다고는 말씀하시지 않고, 사람이 있다고도 말씀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답했다. ‘나는 지금 일체 법의 공을 좋아한다.’
물었다. ‘대덕은 오히려 일체 법의 공을 좋아하거늘 하물며 여래·응공·정변각이시겠는가? 대덕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눈이 여래인가, 귀·코·혀·몸·뜻이 여래인가?’
대답했다. ‘눈이 곧 여래요, 귀·코·혀·몸·뜻이 곧 여래이다.’
물었다. ‘이것을 분별해야 한다. 만일 그렇다면 대덕아, 변(便)도 또한 여래이겠는가?’
대답했다. ‘눈이란 이 말이요 여래가 아니며, 귀·코·혀·몸·뜻도 이 말이요 여래가 아니다.’
물었다.
‘이것을 분별해야 한다. 만일 눈이 여래가 아니라면 귀·코·혀·몸·뜻도 여래가 아니다.
대덕아, 먼저는 여래가 곧 말이라 하더니, 지금은 왜 아니라 하는가?’
대답했다. ‘눈이 여래가 아니지만 눈을 떠난 것이 여래가 아니요, 나아가 뜻이 여래가 아니지만 뜻을 떠난 것이 여래가 아니다.’
물었다.
‘여래께서는 12입(入)이 중생이라 하셨다. 이것을 분별해야 한다. 대덕아, 눈과 빛깔이 여래인가? 나아가 뜻과 법이 여래인가?’
대답했다. ‘눈과 빛깔이 여래요 나아가 뜻과 법이 여래이다.’
물었다. ‘네 말과 같다면 일체 중생이 곧 여래요 일체의 모든 대지와 일체의 모든 산과 수림과 초목이 다 여래이겠구나.’ ‘눈이 여래가 아니요 나아가 뜻이 여래가 아니다.’
물었다. ‘만일 그렇다면 여래는 법이면서 법이 아니라고 말하는가?’
대답했다. ‘빛깔도 여래가 아니요 나아가 법도 여래가 아니다.’
물었다. ‘대덕이여, 법이 여래가 아닌가?’
대답했다. ‘법이 여래가 아니다.’
물었다. ‘만일 그렇다면 모든 중생들은 부모가 없고, 사문·바라문과 부정한 종성(種姓)과 살생·도둑질·사음·거짓말·이간질하는 말·욕설·비단같이 꾸민 말과 탐욕·분노·삿된 소견이 없다고 말하는데, 네 말과 같다면 그것이다 여래인가?’
대답했다. ‘그것은 다 선(善)이 아니므로 여래라 할 수 없다.’
물었다. ‘만일 그렇다면, 네 말과 같이 법도 여래가 아니요 법 아닌 것도 여래가 아니다.
만일 법도 아니요 법 아닌 것도 아니라면 그 말이 없을 것이다.
대덕의 말과 같다면 말이 없는 것을 여래라 하는 것인가?’
가섭아, 이와 같이 저 악인들을 자주 절복(折伏)시켜야 한다.
가섭아, 나는 세간 사람과 천마(天魔)와 범천(梵天) 중에 능히 이렇게 법다이 함께 논의할 자를 보지 못하였다. 다만 성내고 우치[癡]한 자로서 그것을 참지 못하는 자와 인연이 없는 자와 공법(空法)을 비방하면서 버리고 떠나는 자를 제외한 것이다.
이러므로 가섭아, 너희들은 이런 경을 지녀야 한다.
가섭아, 오는 세상에 이 경을 지니는 사람은 세 가지 이름이 있을 것이다.
그 세 가지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단멸(斷滅)을 말하고, 이른바 물(物)이 없음을 말하며, 음취(陰聚)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니, 그래서 공경을 받지 못할 것이다.
가섭아, 그 때에는 이런 경은 비방을 받을 것이다.
가섭아, 그대는 보라. 그 때에는 부처님[佛]을 공양하지 않고 법(法)을 공경하지 않으며 승(僧)을 공경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부처님·법·승을 공경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승이라 하겠는가.
다만 말을 의지하고 명자(名字)를 의지할 뿐일 것이니, 비록 부처님 이름을 대중들에게 설명하더라도 무엇이 부처인지 그것은 보지 못하고, 입으로는 법을 말하면서도 여래 세존께서 어떻게 설법하시는지는 알지 못하며,4향(向)과 4득(得)3)과 불세존의 성문승(聲聞僧)을 말하면서 그 이름은 고루 다 알아도 이름을 의지하는 실덕(實德)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의복·음식·침구·의약 등의 인연을 위하기 때문에 법을 훼방할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그곳에서 정진하면서 이런 경을 즐거워하고 수지 독송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이 사람은 오는 세상에 법의 성[法城]을 지키기 때문이니, 왜냐 하면 91겁 동안에는 이 공법(空法)을 연설하는 것을 듣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섭아, 나는 지금 지난 세상의 천 겁을 생각한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으니, 그 이름은 적멸(寂滅)이요 수명은 8만 4천 세인데, 보살을 수호하고 세간을 이롭게 하셨다. 또 여래께서 계셨으니, 이름은 이구(離垢)요 수명은 21겁이며, 보살도를 행한 뒤에야 위없는 도를 이루셨느니라.
가섭아, 그대는 보아라. 여래는 얼마나 어려운 일을 행하여 모든 중생들을 끌어안는가? 가섭아, 겁탁(劫濁)이 다할 때는 이들을 나무라지 말라.
왜냐 하면 가섭아, 겁탁이 다할 때에 만일 어떤 한 사람이라도 이 법을 믿으면 그것은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그 때에는 이 법을 믿으면 그것은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그 때에는 이 법을 믿는 이는 칼이나 막대나 돌멩이의 해침을 받지 않아 매우 희유할 것이다.
왜냐 하면 가섭아, 이 법은 크고 좋은 대장부의 법이니, 이른바 일체의 행은 행이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만일 아견(我見)·중생견(衆生見)·수명견[命見]·인견(人見)·유견(有見) 등에 집착하면 그는 이 법을 알 수 있느니라. 견(見)에 의지한다는 것은, 계견(戒見)·불견(佛見)·법견(法見)·승견(僧見)·열반견(涅槃見)에 의지하는 것이다.
만일 열반견을 일으키면 여래께서는 그것이 다 사견(邪見)임을 아신다.
왜냐 하면 가섭아, 여래께서는 열반이 없고 열반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 만일 열반이 있고 열반을 얻는다면 여래께서는 그것을 사견이라 하신다.
만일 사견이 있으면 그것을 무지(無智)라 하고, 만일 무지의 해(害)를 받으면 그는 우치한 범부요, 만일 우치한 범부라면 천상에 나기도 어렵거늘 하물며 부처님의 보리(菩提)이겠는가.
가섭아, 오는 세상의 비구들은 나이 20, 30, 40, 50, 60, 70, 80 나아가 백 세가 되도록 늙어도 지혜가 없고, 옷을 장엄하고 머리를 깎아 형상을 허물어뜨리더라도 우치한 노인으로서 위덕도 없고 삿된 업을 지을 것이다. 그리하여 임종 때에는 다시 악을 짓고 계법(戒法)을 파괴할 것이니, 그는 세 가지 일로 간사하고 남을 속일 것이다. 세 가지란 어떤 것인가.
위의(威儀)를 나타내 보이고 계를 지님을 나타내 보이며 선인(善人)인 체 행하는 것이다.
상을 드러내는 이런 법으로 덕을 드러내면서 큰 교만에 떨어졌다가 회한하는 마음으로 목숨을 마칠 것이니,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가섭아, 나는 말하노니, 나는 너희들의 참 벗이 되리라.
그리하여 나는 너희들을 가르치고 너희들을 이롭게 하며 너희들을 가엾이 여겨 이 뒤에 큰 고뇌를 받지 않게 하리라. 가섭아, 나는 마침내 견(見)에 집착하는 중생들이 출가를 얻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아견과 중생견과 수명견[命見]에 집착하고 인견(人見)에 집착한 사람으로서 출가를 얻었다는 말을 나는 실로 듣지 못하였다.
굳이 내 법에서 출가하여 중한 신시(信施)를 먹는다 해도 거기에는 진실한 계를 지니는 공덕이 없느니라.
가섭아, 사람으로서 차라리 엿새 동안 음식을 끊을지언정 아견·중생견·인견·수명견 나아가 열반견에 집착하여 신시를 받아먹지 않아야 할 것이다.
보살은 그 중에서 부지런히 정진하여 아견으로부터 열반견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가섭아, 이런 경을 이런 모든 훌륭한 장부들에게 부촉한다.
왜냐 하면 이런 사람들의 행은 내 행과 같기 때문이니, 이런 사람들은 곧 내 짝이요 내 친구이니라.”
그 때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고뇌를 받는 모든 중생들 구호하는 이 아무도 없다.
세상을 인도하는 스승과 희론(戱論)하지 않는 이 제외하고는.
고뇌를 받는 모든 중생들 도가 낮은 이를 의지하다가 온갖 욕심만 차츰 늘어나 그 때문에 악도(惡道)에 떨어진다.
길잡이 없고 이익도 없는 험준한 곳에 살면서 바르지 못한 길로 나아가나니 마침내 아무 안온함 없다.
마치 많은 재보 가지고 이익을 구해 광야를 가다가 거기에 도적 떼 일어나 모두 겁탈 당하는 것과 같다.
재물을 빼앗기고 돌아와서는 이익을 잃고 더욱 고뇌하다가 남에게서 재물을 빌고 그 때문에 더 괴로워한다.
이들도 또한 이와 같아서 업을 짓고는 돌아오지 못하다가 본래 지은 선업[白業]으로 돌아와서는 이 재물 먹는다.
겁탈에 의지하는 자와 견해에 떨어진 범부들은 아견과 수명견과 또 인견에 집착한다.
아견과 인견에 의지하는 자는 공법(空法)을 말하는 비구를 비방하다가 빨리 악도에 떨어진다.
성을 내어 업을 지으면서 다시 서로 헐뜯고 업신여기며 비방하고 거짓을 말하나니 이것은 부끄러워할 것이다.
몸이 악하고 입이 악하고 의업(意業)이 극히 간사하며 온갖 견해에 굳게 집착하나니 이들은 극히 나쁜 곳으로 간다.
악한 법을 짓고는 악도에 빨리 이르러 온갖 고뇌 받지만 그를 구호할 이 없다.
오는 세상에는 분노가 왕성한 사람이 보리로 나아가는 저 비구를 몹시 핍박하리라.
자비 없는 사람은 이런 경을 헐뜯고 석사자(釋師子)의 법을 믿거나 공경하지 않으리라.
서로서로 다투어 큰 분쟁 일으키고 서로서로 헐뜯어 사방에 악을 흩날리리라.
온갖 비방을 지어 부끄러움을 아는 이를 나무라고 악한 자 세력 얻고 온순한 이 약해지리라.
바른 법 약해지고 악한 법이 횡행함을 알고 이 비구들이 떠나면 내 사랑하는 아들들이 어디로 가서 편안함을 얻으랴.
악한 자 제거하고 여기에 자비심 없어서 나의 이런 경들을 항상 생각하면서 도사(導師)는 이렇게 말했다고 이로써 스스로 즐거워하리라.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는그들에게 나는 가리.
법이 무너지는 지금 유화한 이는 얻기 어렵네.’
혹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이곳을 빨리 떠나서 큰 선인(仙人)이 위없는 도를 얻은 곳으로 가라’고 하네.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좋구나, 그 말씀 잘 하셨다.
도사는 이렇게 말했나니 모든 탑을 돌면서 예배하라 하셨다’고 하네.
‘차라리 이곳에 와서 보리수(菩提樹)를 즐길지언정 저 질투하는 자들이 성내어 다투는 곳에 가지 않으리.’
이 비구들은 곧 떠나 내가 말하는 데로 가서 다른 살 곳을 보았나니 이른바 부처님 계시는 곳이다.
거니시고 또는 앉던 곳 혹은 돌이나 또는 빈 곳 이런 곳에 모두 모여서 서로 마주해 자주 묻는다.
‘여기는 큰 선인께서 거니시면서 사용하시던 곳 부처님께서는 본래 여기 계셨지만 그곳은 보이는데 부처님은 보이지 않네.
여기는 위없는 선인(仙人)이 위없는 법을 연설하시던 곳 우리는 지금 뵈옵지 못하나니 유위(有爲)란 다 덧없는 것이네.
사람과 또 모든 귀신과 하늘과 용들이 모였을 때에 잘 설법해 기쁘게 하셨건만 우리는 뵈옵지 못하네.
계시던 곳 여기 왔나니 이른바 그 보리수 밑인데 우리는 여기 모여 와서는 바른 억념[正念]으로 잘 생각하네.
그 때 세상의 길잡이께서는 위없는 그 보리를 얻으시어 마왕(魔王)의 무리들을 두렵게 했나니 그들은 저 야간(野干) 새끼 같았네.
여기는 본래 도량의 자리 그 여래께서 앉으시던 곳 과거 미래의 부처님들이 다 이곳에 앉으시었다.
그 이는 용감하고 건장한 어른 억(億)의 하늘의 공경 받으며 이레 동안 가부하고 앉아 이 보리수를 관찰하셨네.
이 어른은 공양 마치고 다시 설법할 자리로 나아가 여기서 법륜을 굴리실 때에 그 소리는 범세(梵世)에 들리었네.’
이 비구들 거기 가서 자꾸자꾸 모두 울었다.
‘용감한 어른 여기 오시어 이 다섯 사람 제어하셨네.
이 다섯 사람 부처님 보고 곧 근심과 괴로움 생겨 나쁜 일을 공모하고는 다 일어나지 말자 하였네.
크게 자비하신 세존께서는 그들을 슬퍼하는 마음을 내어 그 다섯 비구를 위해 감로(甘露)의 법을 연설하셨네.’
법륜을 굴리신 그곳에 예배하고 다시 모두 자꾸자꾸 울다가 다시 열반하신 곳에 이르러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곳을 보았다.
‘그 때 세상의 길잡이께서는 많은 중생들을 이롭게 하시려고 그 몸을 가루로 내었나니 부처님께서는 여기서 멸도에 드셨네.
아아, 불세존이시여 석사자(釋師子) 능인(能仁) 지금은 오직 그 이름만 들을 뿐 그 모습은 볼 수 없구나.’
이것은 최상의 선인으로서 선현(善賢)이 그 최후인데 큰 지혜는 그런 줄 아시고 이 내가 최후라 하셨네.
혹은 노닐다 목숨 마치고 혹은 살던 곳에서 목숨 마쳤다.
노닐다 마침내 목숨 마치고 그들은 다 좋은 곳에 왕생하셨다.
이 뒤 말세 때에 이 불법을 널리 펴실 이 그는 열반을 얻으리니 깨끗한 계율에 살던 자이리라.
계율을 허는 비구이면서 그래도 두루 공양 얻으면 그 귀중한 공양 먹고는 빨리 저 악도에 가리라.
이 비구를 보라.
이와 같이 차등이 있지만 지혜로운 이는 목숨 마치면 빨리 저 천상에 난다.
이들은 세상을 비추는 등불 세상을 가엾이 여기는 사람 큰 지혜로운 보살은 자비심으로 중생을 이롭게 한다.
일을 경영하는 사람들 속에서 기뻐서 뛰는 마음으로 ‘나는 장차 부처가 되고 또한 미륵불을 만나게 되리라.
저 세존께 공양하면 일체의 대중 앞에서 일체지(一切智)께서 내게 기별 주시리니 그것은 내 생각대로이네.’
그이는 큰 세력 있다고 나는 이런 뜻을 말하노니 비록 그 부처님 보지 못해도 마주 보는 것과 같음을 알아라.
내가 그를 안위시킴도 그 또한 이와 같아서 보리분(菩提分)을 다 수행하고 일체 부처님께 예배하노라.
만일 어떤 여자가 위없는 보리를 향하면 나 또한 그녀를 안위시키어 저 한량없는 여래께 미치게 하리라.
여자의 몸을 버리고 빨리 남자의 몸을 이루어 미륵불을 보게 되거든 그 이를 공양하여야 한다.
일체의 구하는 바가 모두 그 뜻대로 되어 지혜로운 이를 따라 배우되 왕성하고 굳은 욕심을 내라.
그 견고한 욕심 가지고 계율 지니고 많이 들으면 미륵불에게서 기별을 받게 되리라.
그러므로 이런 이익 듣거든 어질고 착한 믿음을 내고 굳게 믿고는 다시 나아가 일체 중생을 끌어안아야 한다.
그 누가 이런 곳 구하다가 비록 얻지 못하더라도 슬기롭고 정진하면 보리를 얻기 어렵지 않으리라.
아첨하는 마음 짓지 않고 인자한 마음 닦아 행하며 항상 한가한 곳에 있으면 그것을 보리행이라 한다.
이런 곳을 버리고 보리 있는 곳만 말하면 그는 크게 탐하는 도적이니 모두들 그를 멀리 떠나라.
만일 음식과 그리고 이양(利養)의 일만 위하여 거짓으로 바른 법 잡는 척하고 서로 다투어 연설하면
이것은 깨끗한 삶이 아니요 우치로 살아가는 것이니 온갖 악의 해침을 받고 악도의 침노와 핍박당하리라.
이것은 한맛[一味]의 법문인데 저 거짓 이름만의 비구는 이와 같은 법과 해탈과 그리고 계율을 비방한다.
만일 계율을 지니는 이나 내가 금계(禁戒)의 법을 말하면 형상만의 비구는 비방하리니 그는 좋은 곳에 가지 못한다.
일체 하늘과 세간이 다 버리고 떠날 것이요 일체지의 세존께서는 더구나 그런 사람 떠나리라.
만일 몸에 악업이 없고 입에도 또한 악업 없으며 의업이 다 청정하면 그는 열반에 빨리 이르리라.
“가섭아, 여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에 차례로 닥칠 말세 때에는 어떤 비구는 과거 부처님에게 선근을 심어 모두 열반에 들고, 순수하고 선한 중생들은 다 목숨을 마치고 떠날 것이다.
그리고 뒤 5백 세 때에는 어떤 비구는 탐하고 구하여 만족할 줄 모르고 성내어서는 각기 헤어지며, 추잡하고 악독하여 성낸 얼굴을 찌푸리면서 세 가지 법에 머물 것이다.
세 가지란 어떤 것인가. 의술을 오로지 닦고 장사하고 살며 여자를 친근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법에 머무르면 네 가지 법을 잃을 것이니, 네 가지란 어떤 것인가.
계율의 무더기를 잃고 선한 도를 잃으며 과증(果證) 얻음을 잃고 여실히 보는 법을 잃는 것이다.
이 사람이 이 네 가지 법을 가지면 다시 네 가지 법이 더욱 치성해진다.
그 네 가지란 어떤 것인가. 질투가 치성하고 분노가 치성하며 남의 집을 탐함이 치성하고 이양(利養)을 탐착해 저축함이 치성한 것이다.
그리하여 옷을 탐하고 사랑하여 옷상자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지마는, 빈손에 가진 것이 없으며 사문의 법도 없다.
그리하여 그는 이 법을 들으면 네 가지 법에 떨어질 것이니, 그 네 가지란 어떤 것인가.
법을 비방함에 떨어지고 때를 모르고 말하며 여자만을 위해 설법하고 계율을 범하는 것이니, 이 법을 듣고는 이런 재앙에 떨어지느니라.
가섭아, 마치 사나운 개의 코를 때린 것과 같나니, 가섭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개는 더욱 사나워지지 않겠는가?”
가섭이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더욱 사나워질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이 악인들은 저 사나운 개와 같고 비사차(毘舍遮:8部衆의 하나)와 같다.
만일 뜻이 깨끗한 비구가 이런 법을 지니고 이런 법을 연설하면서 진실로 욕심이 적고 욕심이 적은 것을 칭찬하면, 이들은 이 말을 듣고는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믿지 않는다.
그리하여 겁에 빠지고 뜨거운 번뇌를 내며 다시 더욱 성내거늘, 장차 어떤 업에 머물겠는가? 아직 때는 오직 않았지마는 나는 지금 미리 말하였다.
그는 이 경을 들으면, 비방하면서 창에 찔린 듯이 크게 성을 내어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며, 욕심이 적은 이를 헐뜯는 자는 ‘이 사람은 욕심이 많은 자요 욕심이 적은 이가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가섭아, 나는 항상 갖가지로 욕심이 적은 이를 찬탄하고 만족할 줄 아는 이와 잘 포살(布薩)4)하는 이와 함께 있기 쉬운 이와 두타(頭陀)를 행하는 이와 아련아처(阿練兒處)5)에 머무는 이와 깨끗이 사는 이를 찬탄하나니, 너희들은 저 온갖 악을 행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말라. 왜냐 하면 이것은 재가법이기 때문이다.
이 법으로 남을 침노해 속이지 말라. 그리고 이 재가법으로 너희들은 크게 성내지 말며, 너희들은 많은 재물을 모으지 말고 뇌물을 버려야 한다. 너희들은 부디 이상한 상을 나타내어 자신의 덕을 자랑하지 말며, 너희들은 너무 아쉬워하여 많이 쌓아 두지 말며, 너희들은 낙타·말·소·나귀 등을 기르지 말라. 너희들은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불선법을 끊고 선법을 닦아 모아야 한다.
가섭아, 나는 항상 갖가지 인연으로 아련아처와 청정하고 고요함과 친근한 집을 떠나는 것을 찬탄한다. 뒤 말세 때에는 나의 이 법을 어기리라.
나의 법을 어기고는 온갖 근심을 만들고 바른 법을 훼방하려 할 것이다.
가섭아, 마치 어떤 사람이 더울 때에 소유[蘇]를 마시는 것과 같다.
마시고 나서 갈증을 염려하여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물을 좀 주시오’라고 할 때, 그 사람은 답하기를 ‘훌륭한 대장부여, 그대가 물을 구하지 않고 소유를 마셨기 때문이니, 그대는 이로 말미암아 곧 죽지 않겠느냐?’라고 하였다. 그는 분노하여 이 사람을 꾸짖으면서 이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마시고는 곧 죽었다.
이와 같이 가섭아, 미래의 비구로서 견해에 집착하는 자는 온갖 악에 머무른다.
그래서 이 비구는 말하기를 ‘이 일은 머물러 있어야 하고, 이것은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면서 도리어 헐뜯고 비방하고 이런 경과 여래의 교법(敎法)을 비방한다. 가섭아,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도리어 여래와 다투느니라.
가섭아, 그대는 우선 저 현호(賢護) 비구를 보라.
여래가 계율을 제정할 때 다른 비구들과 한 자리에서 밥을 먹고, 이 경을 듣고는 성을 내어 석 달 동안 내게 오지 않았었다. 가섭아, 그 때에 범행을 청정하게 완전히 갖추어도 오히려 이러하거늘, 하물며 멸도한 뒤에 음식에 탐착하고, 의복·발우·침구·의약에 탐착하며, 잠에 덮이고 분노가 왕성한 사람이 이러한 경을 들음이겠으며, 그들은 불여래도 공경하지 않거늘 하물며 법다이 행하는 다른 비구이겠는가.
가섭아, 이런 법이 이미 없어졌다는 것은 극히 좋지 못하고 매우 좋지 못한 일이다.
가섭아, 만일 선남자가 좋은 이익을 구하고자 하면 나의 이 법을 믿어야 한다.
뒤 말세 때에는 탁하고 악한 재변이 있을 것이다. 내 법이 끝날 때에는 말세의 잔재로서 분노가 왕성할 때에는 선인은 얻기 어려울 것이다.
그 때에는 만일 누가 이런 깊은 경을 들으면 그 사람을 믿어야 한다.
즉 그는 상응을 짓고 상응하지 않음이 아니며, 그 말을 믿어 받들고 믿어 받들지 않음이 아니다.
가섭아, 나도 지금 말하기를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음이 아니며 믿지 않는 것이 이니다’라고 한다.
가섭아, 마치 사나운 말을 길들인 말과 한 멍에에 채운 것과 같다.
고요하여 아무 소리가 없어도 순종하지 않겠거늘 하물며 고둥을 불고 종을 치며 북을 두드린다면 어찌 그것을 잘 참겠는가?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섭아, 계를 깨뜨린 비구가 훌륭한 장부의 법을 참는다는 것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섭아, 또 마치 사나운 말을 채찍으로 한 번 치면 이 말이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가섭아, 만일 나가 없다는 공법(空法)을 한 번 들으면 아상(我想)에 집착하는 자는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다툼을 일으키거늘 하물며 자세히 말할 것이 있겠는가?가섭아, 큰 정진근(精進根)을 일으키고 큰 장엄을 내어 백천만억의 모든 악마들을 항복 받아 그들로 하여금 끝까지 다툼을 일으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어떤 것이 정진근인가. 욕심 없음이 바로 정진근이요, 두타(頭陀)의 공덕이 바로 정진근이며, 탐욕 없음이 바로 정진근이요, 우치가 없고 분노가 없음이 바로 정진근이며, 질투 없음이 바로 정진근이요, 욕심 떠남이 바로 정진근이며, 짝 없음이 바로 정진근이요, 잠을 떠남이 바로 정진근이며, 언제고 모든 악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이 바로 정진근이요, 언제고 욕심을 일으키지 않음이 바로 정진근이다.
의심을 일으키지 않고 큰 정진을 일으키면 모든 의심을 떠나며, 모든 의심을 떠나 크게 장엄하면 보리심을 내어 의지하는 데가 없거늘 하물며 아상(我想)을 일으키겠는가. 그는 마침내 아상·중생상(衆生想)·수명상[命想]·인상(人想)·남상(男想)·여상(女想) 등을 일으키지 않고, 지대(地大)·수대(水大)·화대(火大)·풍대(風大)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욕계·색계·무색계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계를 지킨다는 생각과 계를 범한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공(空)이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서 모든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나아가 열반이란 생각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모든 생각을 일으키지 않음이란 어떤 것인가. 이런 모든 생각 가운데서는 얻기 어려운 것이니라.
가섭아, 만일 탐욕이 진실하지 않다면 탐욕을 멸하는 것도 진실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가섭아, 탐욕은 일정한 곳이 없는 것으로서 다만 허망한 말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여실히 말하기를 ‘이 탐욕은 나가 아니요 이와 같은 법은 곧 적멸한 법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것이 적멸한 법인가.
만일 집착 없음에 집착하면 이것은 생각에 집착함이 수미산과 같다.
만일 사람이라는 생각에 집착하면 이 사람은 거룩한 법을 잃을 것이니, 그는 사문의 법을 일으키지 못하고, 사문의 법에 머무르지 않으면 그는 우치한 사람이며, 우치한 사람은 길이 사문의 법을 일으키지 못한다.
왜냐 하면 이 생각에 집착하는 자는 한량없는 겁 동안 무간지옥(無間地獄)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가섭아, 그대는 저 구가리(拘迦離) 비구와 제바달다(提婆達多) 비구·쇄재(碎財) 비구·흑구사(黑丘舍) 비구·해여(海與) 비구 등을 보라. 가섭아, 마사(馬師) 비구와 만숙(滿宿) 비구와 선성(善星) 비구 등은 내 시자로서, 내 말을 듣고 내가 거니는 것을 보았으며, 내가 단정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신통으로 허공을 거니는 것을 보았으며, 내가 백천 외도들을 항복 받는 것도 보았다. 이런 사람들도 내게 호의를 가지지 않아 발 밑의 벌레를 나와 다르다고 하다가 스스로 악도(惡道)에 갔느니라.
만일 여래의 공덕을 진실로 말하는 이가 있거든 수미산만큼의 전단향(?檀香) 가루를 그의 위에 흩고, 삼천세계만한 큰 보배 일산을 만들어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받쳐 주어야 한다.
왜냐 하면 가섭아, 신심을 가지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진실한 신자도 적은데 더구나 신심을 가지고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더러운 욕심을 멀리 떠나고 집착 없는 선정을 닦는 이는 참으로 드물기 때문이다. 가섭아, 내가 말하는 금계를 능히 가지고 이런 감로의 법을 믿고 아는 중생은 더욱 드무니라.
가섭아, 마치 대중이 사당에 모여 가죽 상자 하나를 만들었는데, 그 모양은 극히 묘하고 온갖 채색의 그림은 여러 가지 빛깔인데, 거기 더러운 똥을 담아 두었다 하자. 또 어떤 사람이 옷으로 그것을 싸 가지고 가서 사람들에게 보였을 때, 그 중의 어떤 사람이 그것이 진실이 아닌 줄을 알고는 돌아보지도 않는 것처럼, 이와 같이 가섭아, 어떤 비구가 여래 공덕의 법의 사당을 보았을 때, 그 중의 어떤 비구는 아상(我想)을 가지느니라.
가섭아, 만일 아상이 있으면 곧 욕심을 일으키며, 또 남이라는 생각이 있어도 욕심을 일으킨다.
그러나 가섭아, 이상이 없는 자는 이 경을 들어도 성을 내지 않는다. 왜냐 하면 남을 비방하면 그것은 선이 아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이 법을 들으면 좋은 마음을 얻는 것이다.
만일 아상(我相)에 집착하면 그것은 사견(邪見)이요, 사견을 가진 자는 이런 진실한 가르침을 들으면 곧 성을 낸다. 왜냐 하면 가섭아, 아상(我相)을 가진 자는 성을 내기 때문이다.
가섭아, 만일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로서 이런 법을 듣고 성을 내어 비방하면, 그는 다만 사문의 형상과 이름만 가졌을 뿐이니, 나는 그의 스승이 아니요, 그는 내 제자가 아니다. 왜냐 하면 그런 망령된 말을 하는 자는 내 제자가 아니요, 나 또한 그런 망령된 말을 하는 자의 스승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가섭아, 여래 세존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요, 여래는 일체 법의 공[法空]을 말하기 때문이다.
가섭아, 여래 세존은 일체의 나[我]를 파괴한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여래와 다투며, 불여래와 다투면 그는 악마이니, 여래는 악마가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느니라.
가섭아, 만일 새끼 말이 큰 코끼리에게서 나온다고 한다면, 가섭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가섭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가섭아, 그 말이 상응하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가섭아, 만일 어떤 중생이 아상·중생상·수명상·인상, 나아가 열반상(涅槃想)에 집착하면서 나를 그의 스승이라 일컫는다면 그것은 더욱 상응하지 않느니라.” “가섭아,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금시조가 새에서 생겼다’라고 한다면, 가섭아, 너는 그 말을 믿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가섭아, 그와 같은 말이 상응한 것이냐, 상응하지 않은 것이냐?”
가섭이 말하였다. “그것은 상응한 것이 아닙니다.”
“가섭아, 만일 나와 나아가 열반에 집착한 이가 나를 스승이라 한다면, 더욱 상응하지 않으리라.
가섭아, 만일 어떤 사람이 ‘반딧불 벌레가 수미산을 짊어지고 갔다’라고 한다면, 가섭아, 그와 같은 말을 믿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가섭아, 그것이 상응한 것이냐?””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가섭아, 어떤 악한 사람이 아견·중생견, 나아가 열반견에 집착하고서 나를 스승이라고 말하면 더욱 상응하지 않느니라. 가섭아, 어떤 대왕에게 급사(給使)가 있었고, 또 아무도 모르는 이상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거짓으로 그 급사를 시켜 왕의 명령이라 하고 큰 부잣집에 가서 이렇게 말하게 하였다.
‘아무는 이 일을 하라.’
그 때 대신과 모든 부자들은 이 이상한 사람이 자재(自在)한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일을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부자들은 왕에게로 갔으니, 그것은 살기 위해서이다.
가섭아, 여래의 복의 힘과 구족한 신통은 왕이 안락하여 아무 적이 없는 것과 같다.
왕은 대지에 있으면서 음식이 구족하다. 여래와 승가들도 또한 그와 같아서 아무 적이 없고 부처님 국토에 살면서 법의 음식이 풍족하다.
어떤 이상한 사람이 청하지도 않았는데, 대중 가운데 들어와서 아견(我見)과 나아가 열반견(涅槃見)을 말하면서 이와 같이 말하였다.
‘여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할 일이요, 이것은 할 일이 아니다.’ 여래에 대한 신심을 가진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는다.
그는 이 말을 듣고는 의복과 처자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나누어 그에게 주되, 알지 못할 때까지는 믿고 공경하면서 준다.
이와 같은 사람은 저 이상한 사람과 같아서 그 공양을 받고는 온갖 시끄러운 일을 좋아하여 나라 일과 도적의 일을 이야기하고 음식을 이야기하며, 음탕한 여자를 이야기하고 의약의 일을 이야기하며, 또 일식·월식과 모든 왕들의 오고 가는 일 등 왕가의 일을 이야기한다.
또 말하기를 ‘아무 데 가면 음식을 얻고 아무 데에는 얻지 못한다’라고 한다.
이런 갖가지 이야기로 해를 다 보내고 밤에서야 머무는 곳에 돌아온다.
혹은 이틀, 사흘 나아가 여섯 밤을 밖에서 자면서 가는 곳마다 온갖 일들을 이야기한다.
갖가지로 미워하고 거만하며 갖가지로 익살을 부리며, 말은 잡되고 침을 흘리며, 어지러운 생각을 하며 잔다. 그 생각하는 바를 따라 밤에 누우면 꿈을 꾸고, 꿈에는 제가 그곳에 가서 마중과 공경을 받는다. 꿈을 깨어서는 서로 꿈을 이야기하되 ‘대덕님, 저는 꿈에 당신과 아무 데 가서 어떤 물건을 얻었습니다’라고 하고는,다시 말하기를 ‘이 꿈은 좋은 꿈이니 빨리 저기 가 보아야 합니다’라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간의 도시로 나가 모든 것을 바라볼 때, 눈알을 굴리면서 마음에 기약하는 것이 많아 흥분하고 초조해 한다.
마음은 전일하지 못하고 행동은 경솔하며 감관은 고요하지 못하고 마음은 산란하다.
그 집에 가서는 계율을 깨뜨리고, 한 여자에게만 설법하며, 그 인연으로 히히거리면서 점점 음탕한 표정을 나타내는데, 그것은 이양(利養)을 얻기 위해서이다. 이양을 얻은 뒤에는 사랑하고 탐하며 혹하고 집착하여 항상 그 집에 살며, 혹 본의에 어긋나면 울면서 거기서 떠난다. 그리고 두 군데를 찾아가는데 한 곳은 후덕한 곳이요 한 곳은 찬탄하는 곳이다. 만일 후덕하지 않으면 그 시주를 욕하고, 다시 모여 서로 묻기를 ‘누가 무리에게 보시하던가, 무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얼마나 얻었는가, 너는 얼마나 먹었는가?’라고 한다.
가섭아, 이런 것은 다 상응(相應)하지 않은 행으로서 곧 죽음에 이른다.
가섭아, 이들에게는 또 상응하지 않은 행이 있으니, 그것은 바른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가섭아, 그러나 이런 악비구에 대해서도 자비심을 내어야 한다.
왜냐 하면 이들은 장차 큰 고통의 과보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 세존께서는 이 뜻을 거듭 펴기 위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범부인 왕의 급사가 그 목숨 살기 위하여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왕이 영을 내렸다 했다.
그들이 왕의 명령이란 말 듣고 성내어 우리를 벌하지 말라 했다.
그 범부는 이 세력 빙자해 그것으로 항상 살아갔었다.
하물며 가장 훌륭한 부처님 백천억 겁 동안을 손과 발을 보시하면서 온갖 고행을 많이 행함이랴.
이는 내 법왕 아니라 하여 그를 꾸짖고 벌받게 하고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을 일 그것을 묻는 이 아무도 없다.
속인들은 비구에게 보시하되 아주 맛난 온갖 음식과 옷 중에도 제일 좋은 것과 일체 공경을 그들에게 준다.
자기는 먹지도 입지도 않고 또 자식에게 주지도 않고 가장 좋은 것 모아 두었다가 계율 지니는 이에게 다 보시한다.
상응하지 않은 행을 행하는 자들그것들 다 받고는 버리고 떠나 모두들 한 곳에 모여서는 서로들 즐거이 먹었는가 묻는다.
왕과 도적의 일 이야기하고 또 관라(關邏)의 일 이야기하며 또는 먹고 마시는 일과 어떤 부처 모이는가 이야기한다.
혹은 일식 월식 이야기하고 왕의 오가는 일 이야기하며 ‘저는 승리하리라’ 하고 또 ‘저는 망하리라’고 한다.
이런 상응하지 않는 말을 저들은 자주자주 이야기한다.6)
빨리들 그 집으로 가는데 그 집은 다 부잣집이나 ‘이 집은 극히 인색해 맛난 음식을 얻을 수 없다’ 하고
이와 같은 생각을 내어 갖가지로 곰곰이 생각하나니 이 악행을 모르는 자는 무거운 짐을 진 나귀와 같다.
그리하여 그날 밤 꿈에 늘 생각하면 일 꿈을 꾸다가 깨어나서는 마주 앉아 갖가지로 풀이해 본다.
근심 없으면 기뻐 크게 웃으면서 ‘너는 장차 안락을 얻으리니 빨리 가서 이 일을 성취하고 머뭇거리다 후회하지 말라’ 한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로 나가 이런 추잡한 행을 하나니 눈을 굴리며 간사하게 살피는 것 그것은 마치 저 원숭이와 같다.
그들은 성안에 들어가서는 여자만을 위해 설법하면서도 부처님 경전과 해탈과 그리고 계율은 돌아보지 않는다.
이미 거기 이르러서는 어떤 추악한 짓을 하는가.
그들의 시주와 아는 이들을 헐뜯으며 또 나무랄 뿐이다.
그들은 다시 모여 서로 묻는다.
‘너는 어떤 음식을 얻었는가, 그 음식은 맛이 있던가?’
이런 일을 이같이 말하면서 백천 년을 지내도록 이와 같은 생각으로 목숨을 살아간다.
그들은 다툼을 일으키고 술과 향과 꽃을 모아 ‘이것으로 약을 만들면 병의 고통이 적어진다’고 한다.
부처님인들 이들을 어찌하랴.
백 부처님이 나오더라도 그들이 닦아야 할 행을 버리고 속인들 법을 익히는 것을.
나라는 견해[我見]와 영원하다는 견해[常見] 그 견해 일으키고 거기에 집착하고 그들은 그 행을 닦아 저 악도에 이르게 된다.
그들은 이 고통 받으리라.
바른 법을 비방하는 자들 그 범부들은 지각이 적어 속인들의 행을 닦아 모으나니.
이 모든 석사자(釋師子)들 진실을 행하는 모든 성문(聲聞)들 이들은 그 목숨 살기 위하여 금하는 계율을 범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먹기를 탐해 흔들리는 생각을 일으키거나 더러운 행을 닦지 않고 고요히 앉아 시주의 은혜 갚는다.
이들은 모든 욕심의 번뇌 끊고 모든 생각을 닦아 익히며 그가 방편을 닦아 행하여 불법을 따라 집을 나온다.
다툼이 없는 법과 말해진 공법(空法) 알고 자꾸자꾸 닦아 모으지마는 좋은 열매를 못 얻는 자도 있다.
용감하고 지혜로운 이 공(空)의 도를 아는 사람을 악마와 그 무리 두려워하나니 이들은 시주의 은혜를 갚는다.
이들은 끝내 애욕이 없고 또한 공을 파괴하지 않나니 이 용감한 부처 아들은 사람 중에 복의 밭이다.
바른 법은 오래 머물지 않나니 그것은 악인이 많기 때문이다.
유연한 비구와 이익에 방일하지 않는 자 적다.
지혜로운 이는 염려하나니 ‘오래지 않아 죽음으로 가는데 나는 이 밤에 어떻게 될까?’
낮도 또한 그렇게 다 보낸다.
이족존(二足尊)을 제외하고는 나를 구호할 이 세상에 없다.
모든 학(學)과 무학(無學)들 그들도 다 죽고 마는 것을.
알지 못함이 이와 같아 근성을 따라 설법하나니 어찌 부처님과 또 위없는 바른 법을 공경하지 않으랴.
바른 법이 멸하려 하거니 부디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오래지 아니하여 듣게 되리니 약간의 바른 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