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삼계경 – 01.상권

대방광삼계경

대방광삼계경 – 01.상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王舍城)의 기사굴산(祇??山)에 계셨다.

이 산은 높고 넓으며 온갖 곡식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마치 대지가 온갖 꽃을 내는 것과 같았다.

긴나라(緊那羅)·건달바(乾?婆) 들이 항상 거기서 놀고 있었으며, 가지가지 여러 무리들이 있었으니, 하늘·용·야차(夜叉)·나찰(羅刹)·비사차(毘舍遮)가 그 안에 살고 있었다.

또 잡류(雜流)들이 많았으니, 이른바 사자·호랑이·코끼리·말·기린·곰·사슴·푸른 소·물소·양·원숭이 등, 이런 온갖 짐승들이 거기 살고 있었다. 또 한량없이 많은 새들이 있었으니,

이른바 공작·앵무·구욕새[??]·명명(命命)·때까치·물오리·기러기·원앙·거위·검은 기러기·산 닭[山鷄]·산 새·까마귀·꿩·비둘기·솔개·참새·차사(遮沙) 등으로서 이런 온갖 새들이 거기에 살고 있었다.

이 모든 중생들은 부처님의 힘에 의해 탐욕·분노·우치의 괴롭힘을 받지 않으므로, 서로 잡아먹지 않고 서로 친애하되 마치 모자(母子) 사이 같았다.

이 때 그 산에는 울창한 숲이 조밀하나 부러진 가지가 없었다.

그리고 온갖 나무들이 많았으니, 이른바 천목(天木)나무·필리차(畢利叉)나무·마이(馬耳)나무·필발라(畢鉢羅)나무·긴축가(緊?加)나무·가리륵(呵梨勒)나무·가마륵(呵摩勒)나무·비혜륵(毘醯勒)나무·다라(多羅)나무·가니가(迦尼迦)나무·암바라(菴婆羅)나무·염부(閻浮)나무·모과나무·포도나무·복숭아나무·살구나무·배나무·내바(?婆)나무·융가(隆伽)나무·호도나무·안석(安石)나무·석류나무·진두가(鎭頭迦)나무·니구라(尼駒羅)나무·소나무·잣나무·예장(豫樟)나무·파사(波奢)나무·훈륙(勳陸)나무·전단(?檀)나무·침수(沈水)나무·소합(蘇合)나무 등 이런 나무들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또 이 산에 물과 뭍의 온갖 꽃이 다 구족하였으니, 이른바 아제목다꽃[阿提目多華]·첨바꽃[瞻婆華]·파타라꽃[波?羅華]·바사꽃[婆師華]·수만꽃[須曼華]·수건타꽃[修乾陀華]·유제가꽃[由提迦華]·가니가꽃[迦?迦華]·우극백엽만수사꽃[牛?百葉曼殊沙華] 등 이런 온갖 꽃이 그 땅에 깔려 그 산을 빛내고 장식했다. 또 물 꽃으로서 푸르고 누르고 빨갛고 하얀 잡색 연꽃이 다 구족되어 있었다.

또 이 산에는 항상 밤중만 되면 큰 구름이 일어났는데, 하늘과 용과 엷은 구름이 8미(味)를 가진 향기로운 보슬비를 내려 한 구우(牛) 사이에 그 비는 기사굴산(祇??山)을 촉촉히 적셨으며, 새벽이 되면 비가 개어 구름 한 점 없고 시원한 바람에 몸과 마음이 상쾌해졌다.

이 산에 있는 중생들과 모든 초목들은 알맞게 젖고 윤기가 흘러 마치 화만(華?)에 물을 뿌린 것처럼빛이 더욱 선명하고 깨끗하며 배나 더 뛰어났다. 기사굴산에 나는 풀은 부드러웠고 빛깔과 향기와 맛을 갖추었고옥색으로서 오른쪽으로 돌아 있었으며, 온갖 묘한 빛깔은 공작의 목과 같았다.

그 향기는 마치 바사라꽃[婆師羅華]과 같았고, 그 촉감은 가릉가옷[迦陵迦衣]과 같았다.

그 땅은 부드러워 발로 디딜 때에는 네 발가락이 다 빠졌다가 발을 들면 다시 여전하게 되었다.

또 이 산에는 못이 많았는데 그 물은 맑고 찼으며, 거기에는 파랑·노랑·빨강·하양·자색 등 온갖 연꽃이 가득히 났는데, 크기는 수레바퀴와 같았다. 그 꽃을 꺾을 때에는 향기가 두루 퍼져 1유순에 가득하였다. 이 산꼭대기에서는 크고 묘한 연화좌(蓮華座)가 나왔는데, 무항복(無降伏) 보배로 만들어졌다. 푸른 유리가 줄기가 되었고, 염부단금(閻浮檀金)이 잎이 되었으며,견고하고 검은 전단(?檀)이 대(臺)가 되었고, 마노(馬瑙)가 그 꽃술이 되었으며, 세로와 너비는 바다와 같았다. 백억 아수라(阿修羅) 왕이 항상 그것을 가지고 있었고,백억 잡색 보배 그물이 그 위를 덮었으며, 백억 용왕은 묘한 향이 나는 비를 내렸고, 백억 금시조(金翅鳥) 왕은 입에 비단을 물었으며, 백억 긴나라(緊那羅) 왕은 기뻐하면서 우러러보았고,백억 마후라(摩?羅) 왕은 자세히 바라보았으며, 백억 건달바(乾?婆) 왕은 노래로 찬탄하였고, 백억 천왕(天王)은 가루향과 옷과 향기로운 화만(華?)과 당기[幢]·번기[幡]·일산[盖]의 비를 내렸으며,백억 범왕(梵王)은 공중에서 합장하여 모셨고, 백억 정거천(淨居天)들은 합장 공경하였으며,

백억 전륜인왕(轉輪人王)은 7보를 가지고 그리로 왔고, 백억 바다 왕은 바다에서 나와 경례하였으며, 백억 큰 주보(珠寶)는 밝게 비추었고, 백억 정마니(淨摩尼) 보배는 사이사이 장식되었으며, 백억 편열(遍悅) 보배는 그 열매가 되었고, 백억 광명덕(光明德) 보배는 그 조명이 되었으며, 백억 잡색 마니(摩尼) 보배는 그 조명이 되었고, 염부당(閻浮?) 보배는 잘 간직되었으며, 백억 금강사자(金剛師子) 보배는 깨어지지 않는 장엄이요, 백억 일장(日藏) 보배는 온갖 장엄이며, 백억 잡색 불가사의한 보배는 온갖 빛을 내었고, 백억 여의(如意) 보배는 다함 없는 장엄을 내었다.

이 큰 연꽃은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신 선근(善根)에서 나온 것이요, 보살의 의지의 보호를 받아 모든 곳에 두루 나타나는 것이며, 허깨비와 같은 법이 내는 선법의 업(業)에서 나온 것이요, 다툼이 없는 법안(法眼)이 장엄한 꿈과 같은 법에서 나온 것이며, 행이 없는 데서 일어나고 걸림이 없는 도에서 와서 시방 법계에 충만한 것이니, 이것은 부처님 경계의 공덕이 이룬 것이다. 그러므로 무량한 아승기겁(阿僧祇劫) 동안 그 공덕을 찬탄하더라도 다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이 연꽃 위에 가부하고 앉아 큰 비구 대중 8천 인과 함께 하셨으니, 그들의 이름은 아야교진여(阿若?陳如)·대덕 갈시파사(曷尸波?)·대덕 바빈(婆賓)·대덕 마하남(摩訶男)·대덕 우타야(優陀耶)·대덕 야사(耶奢)·대덕 부나(富那)·대덕 무구(無垢)·대덕 교범발제(?梵鉢提)·대덕 선비(善臂)·대덕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가야가섭(伽耶迦葉)·나제가섭(那提迦葉)·마하가섭(摩訶迦葉)·대덕 가전연(迦?延)·대덕 사리불(舍利弗)·대덕 대목건련(大目乾連)·대덕 아나율(阿那律)·수보리(須菩提)·이바다(離波多)·부루나(富婁那)·미다라니자(彌多羅尼子)·우바리(優波離)·라후라(羅?羅)·난타(難陀)·대덕 아난(阿難) 등으로서, 이런 상수(上首) 8천 인과 함께 계셨다.

그들은 다 여실한 성품을 자세히 알았고 실제를 관찰하였으며, 법의 성품을 건넜고 모든 유(有)의 바다를 건넜으며, 여래의 허공의 행을 행하여 결박을 아주 끊고 소굴의 장애가 없었으며, 공의 적정(寂靜)을 행하였고, 의심 그물을 아주 끊어 부처님의 지혜를 믿었고, 저 언덕에 건너 세간을 이롭게 하였고, 청하지 않아도 도와 주는 벗[不請友]1)이 되었다. 그리하여 일체 중생을 보호하려고 인자한 마음으로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고 일체 부처님의 행을 잘 연설하여 불법을 지켜 보호하고 불법을 맹세코 보호하며 부처 종자로 잘 나아가며 일체의 지혜로 향하였다.

또 보살마하살 8천 인과 함께 하셨으니, 보현(普賢) 보살과 문수사리(文殊師利) 보살 등이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리고

무상지(無上智) 보살
무상보지(無上寶智) 보살
무애지(無?智) 보살
화상지(華上智) 보살
일상지(日上智) 보살
월상지(月上智) 보살
무구상지(無垢上智) 보살
금강지(金剛智) 보살
원진지(遠塵智) 보살
편설지(遍說智) 보살
광당(光幢) 보살
산당(山幢) 보살
보당(寶幢) 보살
무애당(無?幢) 보살
화당(華幢) 보살
정당(淨幢) 보살
일당(日幢) 보살
욕락당(欲樂幢) 보살
이구당(離垢幢) 보살
편열당(遍悅幢) 보살
지위덕(地威德) 보살
보위덕(寶威德) 보살
대위덕(大威德) 보살
금강지위덕(金剛智威德) 보살
무구위덕(無垢威德) 보살
일위덕(日威德) 보살
월위덕(月威德) 보살
산위덕(山威德) 보살
지조위덕(智照威德) 보살
편위덕(遍威德) 보살
지장(地藏) 보살
허공장(虛空藏) 보살
연화장(蓮華藏) 보살
보장(寶藏) 보살
일장(日藏) 보살
정덕장(淨德藏) 보살
법해장(法海藏) 보살
편열장(遍悅藏) 보살
선장(船藏) 보살
연화덕장(蓮華德藏) 보살
일안(日眼) 보살
정안(淨眼) 보살
무구안(無垢眼) 보살
무애안(無?眼) 보살
편견안(遍見眼) 보살
선리지안(善利智眼) 보살
금강안(金剛眼) 보살
보안(寶眼) 보살
허공안(虛空眼) 보살
보안(普眼) 보살
천관(天冠) 보살
조법계지관(照法界志冠) 보살
도장주관(道場珠冠) 보살
열제방관(悅諸方冠) 보살
일체불현재장관(一切佛現在藏冠) 보살
초일체세간관(超一切世間冠) 보살
편열일체관(遍悅一切冠) 보살
무훼관(無毁冠) 보살
복일체여래사자좌관(覆一切如來師子座冠) 보살
조일체법계허공관(照一切法界虛空冠) 보살
용주계(龍主?) 보살
범주계(梵主?) 보살
이일체불법만계(離一切佛法慢?) 보살
도장계(道場?) 보살
출일체원해음주계(出一切願海音珠?) 보살
방일체여래광장주계(放一切如來光場珠?) 보살
일체허공무괴어보계(一切虛空無壞語寶?) 보살
제불신통편조당보주망복계(諸佛神通遍照幢寶珠網覆?) 보살
출일체여래법론성계(出一切如來法論聲?) 보살
출일체삼세명성계(出一切三世名聲?) 보살
대광(大光) 보살
정광(淨光) 보살
보광(寶光) 보살
이구광(離垢光) 보살
월광(月光) 보살
법광(法光) 보살
적광(寂光) 보살
일광(日光) 보살
신통광(神通光) 보살
천광(天光) 보살
덕상(德相) 보살
지상(智相) 보살
법상(法相) 보살
무괴장(無壞相) 보살
광상(光相) 보살
화상(華相) 보살
주상(珠相) 보살
불상(佛相) 보살
범상(梵相) 보살
편초상(遍超相) 보살
범음(梵音) 보살
해음(海音) 보살
지음(地音) 보살
세음(世音) 보살
석산음(石山音) 보살
편법계음(遍法界音) 보살
출일체법해뢰음(出一切法海雷音)보살
최일체마장음(?一切魔場音) 보살
출대비도뢰음(出大悲道雷音) 보살
멸일체세고뇌음(滅一切世苦惱音)보살
법용(法勇) 보살
증용(增勇) 보살
지용(智勇) 보살
덕산용(德山勇) 보살
덕증용(德增勇) 보살
명칭용(名稱勇) 보살
보조용(普照勇) 보살
대자용(大慈勇) 보살
지조용(智照勇) 보살
여래종성용(如來種性勇) 보살
광덕(光德) 보살
승덕(勝德) 보살
법용덕(法勇德) 보살
편광덕(遍光德)보살
법덕(法德) 보살
월덕(月德) 보살
허공덕(虛空德) 보살
보덕(寶德) 보살
상덕(相德) 보살
지덕(智德)보살
바라왕덕(婆羅王德) 보살
법주왕(法主王) 보살
세주왕(世主王) 보살
범주왕(梵主王) 보살
석산주왕(石山主王) 보살
중주왕(衆主王) 보살
천주왕(天主王) 보살
적주왕(寂主王) 보살
부동주왕(不動主王) 보살
화주왕(化主王) 보살
보리승주왕(菩提勝主王) 보살
적성(寂聲) 보살
무애성(無?聲) 보살
지성(地聲) 보살
대해성(大海聲) 보살
뇌성(雷聲) 보살
조법성(照法聲) 보살
허공성(虛空聲) 보살
일체성(一切聲) 보살
선안뢰성(善眼雷聲) 보살
발본원성(發本願聲) 보살
멸일체마장각(滅一切魔場覺) 보살
지산각(智山覺) 보살
허공각(虛空覺) 보살
무애각(無?覺) 보살
오음각(寤音覺) 보살
조삼세각(照三世覺) 보살
보각(寶覺) 보살
무외각(無畏覺) 보살
편조각(遍照覺)보살
법계안조각(法界眼照覺) 보살 등, 이런 보살마하살 8천 인과 함께 계셨다.

그들은 다 보현의 원(願)과 행을 구족하여 그 행이 걸림이 없었으며, 모든 불찰(佛刹)을 두루하여 무량한 몸을 나타내어 일체 부처님 처소에 나아갔으며, 눈의 경계가 청정하여 보는 바가 무량하였고, 부처님의 일체 신통을 다 잘 나타내어 반연하는 바가 무량하였으며, 일체 여래께서 성불하신 곳이 있으면 거기 다 나아가되 피곤해 함이 없었으며, 지혜의 광명은 일체 법의 바다를 비추었고, 무량억 겁에 그 공덕을 찬탄해도 다하기 어렵다. 즐겨 설명함이 청정하여 도량이 허공과 같았으며, 지혜의 행이 청정하여 의지하는 데가 없었다. 중생들의 좋아함을 따라 형상을 나타내되 걸림이 없었으며, 중생이 없고 나[我] 등의 경계가 없음을 알았으며,슬기는 허공과 같고 지혜의 광명 그물은 일체 법계를 두루 비추었고, 그 마음은 끝까지 고요하여 산란하지 않았으며, 일체 다라니(陀羅尼)와 지혜 종자의 경계와 삼매와 무외(無畏)로 어디로 가나 걸림이 없고, 법계에 머물러 백억의 눈으로 일체의 법을 행하면서 두려워함이 없었다. 무량한 지혜 바다와 선바라밀(禪波羅蜜)을 관(觀)하여 저 언덕에 이르렀고,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과 신통바라밀(神通波羅蜜)을 얻었으며, 모든 세간을 뛰어넘은 삼매바라밀도 자재(自在)를 잘 얻었다.

또 5백 비구니가 있었으니, 그들의 이름은 마하파사파제(摩訶波?波提) 비구니·안은(安隱) 비구니·연화(蓮華) 비구니·극고구담미(極苦瞿曇彌) 비구니·라후라의 어머니인 야수타라(耶輸陀羅) 비구니 등으로서 이런 우두머리 5백 비구니들이 함께 있었다.

또 5백 우바새(優婆塞)가 있었으니, 그들의 이름은 선위덕(善威德) 우바새·천위덕(天威德) 우바새·혜광(慧光) 우바새·명칭위덕(名稱威德) 우바새·과명칭위덕(過名稱威德) 우바새·선지(善志) 우바새·월덕(月德) 우바새·월환희(月歡喜) 우바새·대환희(大歡喜) 우바새·라후발타(羅?跋陀) 우바새·대현(大賢) 우바새 등으로서 이런 우두머리 5백 우바새들이 함께 있었다.

또 5백 우바사(優婆斯)가 있었으니, 즉 대광(大光) 우바사·선광(善光) 우바사·선신(善身) 우바사·가락신(可樂身) 우바사·현(賢) 우바사·현덕(賢德) 우바사·월광(月光) 우바사·상광(相光) 우바사·덕광(德光) 우바사·선안(善眼) 우바사 등 이런 우두머리 5백 우바사들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이외의 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등과 함께 불세존을 공경하고 둘러쌌다.

그 때 세존께서는 설법하셨는데 그것은 3계(戒)였다. 일체 모든 불여래의 경계와 보살의 행을 자세히 분별하고 설명하여 일체 법계를 두루 비추고, 일체 모든 법계의 마당을 밝게 비추어 깨끗이 장엄한 일체 법계에 들어가고, 일체 모든 외도들을 무찌르며, 모든 악마를 항복 받고, 일체 모든 중생계를 두루 기쁘게 하며, 일체 모든 중생들의 미혹한 마음을 잘 알고,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 설법하며 잘 비추어 중생의 근성을 전환시켜 나타내 보이셨다.

그 때 대덕 마하가섭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미어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중생이 불법의 힘과 무소외(無所畏)를 구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법을 모으고 어떤 법으로 중생을 보호하며 어떤 법으로 위없는 정도(正道)에 퇴전하지 않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묻자,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가섭이여. 그대가 지금 물은 것은 많은 사람들을 안락하게 하고, 세간을 안온하게 하고 하늘과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려고 그런 것을 내게 묻는구나.

가섭아,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나는 그대를 위해 분별하여 설명하리라.”

대덕 가섭과 모든 대중들은 그 분부를 받들어 듣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중생이 부처님의 지혜와 부처님의 힘과 부처님의 무외(無畏)를 구한다면, 가섭아, 그런 중생은 일체 법에 있어서 얻음이 없고 의지함이 없이 모든 선근(善根)을 내어야 한다.

가섭아, 어떤 보살이 위없는 정진의 도를 구할 때 만일 상(相)에 집착이 있어서 혹은 불법에서 유위(有爲)의 상을 일으키고, 혹은 불법에서 무위의 상을 일으키며,혹은 불법에서 망상을 일으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불법을 안다’ 하고, 이 상에 굳게 집착해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그 사람은 위없는 도에 향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불법에 구함이 있으면 나에 집착하여 ‘이것을 닦아야 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렇게 자주 나에 집착하면 그것을 끊을 수 없고, 만일 끊을 수 없으면 희망이 있어서 희망하는 곳에서 법을 희망하여 그 해(害)를 받는다. 만일 해를 받으면 달리는 마음을 일으키고, 만일 달리는 마음을 일으키면 흘러 다님이 있으며, 만일 이미 흘러 다님이 있으면 뚫음이 있고, 만일 이미 뚫음이 있으면 망상이 있으며, 만일 이미 망상이 있으면 분별이 있고, 만일 이미 분별이 있으면 망상이 더하고, 만일 망상이 더하면 사각(思覺)이 있고, 만일 이미 사각이 있으면 견고한 집착이 있으며, 만일 이미 견고히 집착하면 따라 다님이 있고, 만일 따라다님이 있으면 미혹이 있으며, 만일 이미 미혹하면 잃게 되나니, 어떤 것을 잃음이라 하는가.

이른바 안온을 잃는다는 것이며, 안온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분별이 없는 것이다.

만일 분별을 일으키면 곧 상(常)이 있고, 만일 이미 상이 있으면 대애(對?)가 있으며, 만일 대애가 있으면 머무름이 있고, 만일 이미 머무름이 있으면 상속(相續)이 있으며, 만일 이미 상속이 있으면 서로 어긋나고, 만일 이미 서로 어긋나면 거듭 서로 어긋나며, 만일 거듭 서로 어긋나면 헛된 착오가 있고, 만일 이미 헛된 착오가 있으면 광란(狂亂)이 있으며, 만일 이미 광란하면 속임이 있고, 만일 이미 속였으면 근심과 괴로움이 있으며, 만일 이미 근심하고 괴로워하면 회한(悔恨)이 있고, 만일 이미 회한하면 해를 입느니라.

선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따라 애착하지마는 실은 애착할 일정한 법이 없는 것이니, 다만 생각을 굴림으로써 생각의 결박을 받나니, 이것을 생각의 결박[想縛]이라 한다.

탐욕[貪]은 일정한 곳이 없고, 분노[瞋]도 일정한 곳이 없으며, 우치[癡]도 일정한 곳이 없다.

그러나 망상으로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위없는 정도를 얻지 못하는 것이니, 가섭아, 이것을 애처(愛處)라 한다. 무엇 때문에 애처라 하는가. 일정한 법이 없는 것을 애(愛)라 한다.

사랑할 법이 없고 사랑할 곳이 없는데, 다만 애(愛)에 굳게 집착하지만 오직 공(空)인 것에 굳게 집착할 뿐이니, 이른바 나에게 굳게 집착하고, 중생에게 굳게 집착하며, 깨끗하고 깨끗하지 않은 데에 굳게 집착하는 것이다.

가섭아, 일체 법은 공(空)인데 망상이 물(物)을 만든다. 만일 물(物)과 물이라는 생각이 없으면 보리(菩提)를 물이라 하고,만일 보리를 물이라 하면 그것은 아상(我想)이요, 만일 아상이 있으면 그는 보살이라 할 수 없다. 무엇 때문에 아상이라 하는가. 비록 생각하는 바가 있으나 생각은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니, 생각이 얻을 것이 없는 것을 아상이라 한다.

그러므로 진실한 글귀가 아닌 것을 아상이라 한다. 만일 중생이 진실이면 보리도 진실이다.

어떤 것을 보리라 하는가. 이른바 모든 법이 다 허깨비와 같다고 보는 것이다.

어째서 허깨비와 같다고 하는가.

이른바 아상(我想)과 수명상[命想]과 중생상(衆生想)을 말하지 않는 것이니, 만일 없다는 생각이 마음에 있으면 이 사람들은 생각[想]과 생각 아님[非想]에집착하는 것이요, 만일 생각과 생각 아님에 집착하면 이것은 미치고 취하는 것이며, 만일 이미 미치고 취하면 온갖 고통의 핍박을 받을 것이요, 만일 온갖 고통의 핍박을 받으면 여래는 그것을 미침[狂]과 아첨[諂]에 머무르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째서 아첨이라 하는가. 광란(狂亂)에 머물러 망상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망상이 있으면 곧 나[我]와 내 것[我所]이 있고, 만일 나와 내 것이 있으면 말이 있으며, 만일 말이 있으면 여래는 그것을 말이 없다고 하느니라. 그는 말 때문에 말에 집착하나니, 그러므로 모든 법은 생각으로부터 ‘나는 진실이다’라고 말하느니라.

가섭아, 마치 공중에 구름 무리가 일어나는 것과 같다.

즉 이 구름 무리는 동서남북 상하 4유(維) 어디에서도 온 것이 아니므로 여래는 시방 어디서도 온 것이 아니라고 진실하게 말한다.

이렇게 알고 여실히 말하면 뜻을 따라 연설하고 상응하여 진실하게 말할 것이다.

그리고 구름 무리란 실은 구름 무리가 아니니, 이름을 구름 무리라 할 뿐이다.

무엇 때문에 구름 무리라 하는가. 여러 잡색과 갖가지 잡색을 일으키지마는 그것은 허망에서 일어나는 것이요, 거기에는 구름과 안개가 된다고 일정하게 말할 수 없다.

구름과 안개가 일어남을 보는데 구름과 안개를 보더라도 일정한 생각이 없다.

거기에는 마침내 구름과 안개의 실(實)이 없기 때문이다.

가섭아, 마치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우리 같이 저 그늘에 앉자’라고 할 때 지혜로운 사람이 ‘나는 지금 가지 않겠다’라고 하면, 이 사람은 대답하기를 ‘내가 있다고는 말하지 않고 다만 그늘만 있다’라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이 말하기를 ‘네가 만일 그늘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그늘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가섭아, 그대는 이 사람을 보라. 그는 조그만 말에까지도 오히려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섭아, 만일 여래의 법의 성품에 대한 도를 알거든 대중 가운데서 바로 사자처럼 외쳐 보아라.

가섭아, 여래는 오히려 선하지 않은 법에서 선법을 행하려 한다.

만일 세상 중생으로서 아상(我想)이 있으면 그는 여래에 대해 제일의(第一義)일 것이다.

왜냐 하면 여래는 이 아상이 곧 생각이 아닌 줄을 알지마는, 다른 소인 범부들은 여래가 근기를 따라 설법한 것을 알지 못하고여래와 다투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세간은 나와 다투지마는 나는 세간과 다투지 않는다’라고 한다. 어떤 것을 세간이라 하는가. 세간이란 중생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중생 세간이라 하는가. 여래는 세간의 여여(如如)함을 안다. 그러므로 중생 세간이라 한다.

저 범부들은 스스로 ‘이것은 나고 이것은 멸하면서 서로 해친다’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들은 출세(出世)하려 한다. 왜냐 하면 그들은 크게 미련하여 세간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만일 세간에 집착하면 곧 탐욕이 있게 되고, 만일 탐하면 성내게 되며 ,만일 성내면 어리석게 되고,만일 어리석으면 다툼이 있으며, 만일 다투면 서로 어긋난다. 누구와 어긋나는가? 이른바 여래 및 성문승(聲聞僧)과 어긋난다. 만일 서로 어긋나면 탐하게 되고, 만일 탐욕이 있으면 거듭 서로 어긋나게 되며, 만일 거듭 서로 어긋나면 곧 유(有)를 취하게 되고, 만일 유를 취하면 유를 구하게 되며, 만일 유를 구하면 족함을 알지 못하게 되고,

만일 족함을 알지 못하면 많이 일하게 되며, 만일 많이 일하면 욕심이 많게 되고, 만일 욕심이 많으면 욕계·색계·무색계에 살게 되며, 만일 삼계에 살면 곧 집착하게 되고, 만일 집착하면 역류(逆流)가 없게 되며, 역류가 없으면 항상 죽음을 받게 되고, 만일 항상 죽음을 받으면 열반에 이르지 못하게 되며, 만일 열반에 이르지 못하면 이르기 어려운 곳에 이르게 되고, 이르기 어려운 곳에 이르면 이른바 지옥이니라.

이와 같이 가섭아, 행을 닦음이 바르지 못하면 닦지 않는 것이라 한다.

만일 바르게 닦지 못하면 분노가 있고, 만일 분노가 있으면 추구(推求)함이 없으며, 만일 추구함이 없으면 아상(我想)을 알지 못하고, 만일 아상을 알지 못하면 같은 무리가 되고 같은 물(物)이 되나니, 이른바 나[我]와 내 것[我所]이다.

어떤 것을 나[我]라 하는가. 진실하지 않은 것에 집착하여 갖가지 망상을 짓고 모든 업을 지으며, 만일 갖가지 망상을 짓고 모든 업을 지으면 나에 집착하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을 내 것[我所]이라 하는가. 지혜가 없기 때문에 내 것이라 한다.

또 이 몸이란 모든 물건이 화합한 것을 몸이라 하며, 또 계(戒)가 모인 결과라고도 한다.

그런데 분노하는 마음으로 남을 업신여기고 분노 때문에 아만(我慢)을 내나니, 그것은 무더기로 나는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지키는 것과 같은데 이것을 내 것이라 한다.

만일 내 것이 있으면 속임[狂惑]이 있게 되고, 만일 속임이 있으면 곧 우치[癡]가 있게 되며, 만일 우치가 있으면 곧 비방이 있게 되고, 만일 비방이 있으면 분노가 있게 되며, 만일 분노가 있으면 곧 탐함[貪取]이 있어서 그것으로 불살라진다.

그것에 불살라지면 생각에 불살라지게 되나니, 이른바 남자라는 생각과 여자라는 생각과 수명이라는 생각이니, 이것은 곧 아허(我許)로서 이것을 내 것이라 한다. 내 것이 있으면 그는 내 것을 꾸중하고, 내 것을 꾸중하면 그는 곧 범부이니, 이것은 범부의 도를 의지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내 것이라 한다.

가섭아, 만일 이 법을 듣지 않고서 보리를 알고 보살행을 알면 이것을 행을 아는 것이라 하나니, 가섭아, 이 보살행은 전혀 행함이 없는 것이며, 이것을 보살행이라 한다.

또 가섭아, 보살행이 원만하여 결정코 청정하고 극히 청정하다면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정진이 있다면 이것은 큰 법을 말한 것이니, 이것은 모든 법의 허공의 무더기와 같기 때문에 법의 무더기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람의 말은 큰 법은 상응하거나 상응하지 않음이 아니라는 것이며, 이 공덕은 나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이 덕행은 이 덕행이 아니어서 법을 잘 지니는 것이다.

이렇게 받아 지니지마는 그 지니는 법에 집착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여래의 말은 가장 제일이요, 응공(應供) 중에서 최상이기 때문이다.

중생이 도를 물으면 나는 승법(勝法)으로 대답하리라. 승법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모든 법은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가섭아, 이런 보살을 이름하여 계율을 깨끗이 지닌다고 한다.

즉 마음이 악을 일으키지 않고 장애를 짓지 않으며, 비구니를 비방하지 않고 속인을 친하지 않으며,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사음(邪?)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으며, 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않고 욕설하지 않고,비단같이 꾸민 말을 하지 않고, 탐내거나 성내지 않고, 삿된 견해를 가지지 않고 스스로 괴롭히지 않고 남도 괴롭히지 않고, 욕심을 친하지 않고 욕심을 탐내지 않고,

헐뜯지 않고 희롱하지 않고, 스스로도 짓지 않고 남도 짓게 하지 않으며, 음녀의 집에 가지 않고 과부에게 가지 않으며 동녀(童女)에게 가지 않으며, 새나 물고기를 잡는 사람과 친하지 않고, 망나니와 전다라(?陀羅)를 가까이하지 않으며, 남의 아내와 술 마시는 사람과 가까이하지 않으며, 나아가 손으로 그 손을 잡고 함께 다투는 사람도 가까이하지 않는데, 사나운 개를 피하는 것처럼 이것을 멀리하는 것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멀리 버릴 때는, 나아가 한 생각의 악한 마음도 생기지 않고 인자한 마음에 머물러 스무 가지 일을 버린다. 그 스무 가지란 어떤 것인가.

여인을 떠나 마침내는 추한 말로 함께 희롱하지 않고, 함께 의논하여 투쟁을 일으키지 않으며, 부모를 공경하여 공양하고, 불(佛)·법(法)·승(僧)을 공경하여 공양하며, 만일 여자로서 20명 미만이면 그들을 위해 설법하지 않는데, 남자가 있을 때는 예외이다.

비구니가 모여 설법하면 거기는 가지 않고, 끝내 비구니에게는 문안하지 않으며, 여인에게는 글을 써 주지도 않고 또 지어 주지도 않으며, 친척의 특별한 초청이 있어도 그 청을 받지 않으며, 마침내 음욕의 마음으로 여인 앞에는 서지 않고, 나아가 길을 동행하지 않는다.

만일 비구니가 있어서 희롱하더라도 대꾸하지 말고, 언제고 비구니가 주는 옷은 입지 않으며, 4중(衆)이 법을 연설할 때에 옷을 보시하는 이가 있으면 마음을 대지와 같이 한 뒤에야 받되 면전에서 받지 않는다. 언제고 비구니가 권하여 옷을 보시하더라도 마침내 받지 않고, 언제고 설령 병이 났더라도 비구니가 권하는 음식은 끝내 먹지 않거늘 하물며 병이 없을 모든 때이겠는가. 언제고 과부가 식사를 초청할 때는 스님들 수가 차지 않으면 끝내 그것을 받지 않고, 언제고 비구니 절에는 들어가지 않으며, 언제고 비구니를 청하지 않으나 청할 때에도 팔짱을 끼고 머리를 쳐들고는 등지고 간다.

만일 설법할 때에 비구니가 와서 그 발에 예배하더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합장하고 눈으로 달리 보지 않으며 그 발도 움직이지 말라. 몸이 건강하다고 해서 대장부라 할 수 없고, 만일 마음이 굳세어 한 곳에 생각을 바루면 장부라 할 수 있다.

모든 물건에 사랑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어느 때에도 끝내 성을 내지 않으면서 항상 일체의 지혜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니, 이 법을 듣고는 공부하고 그것을 증장시켜야 하느니라.

가섭아, 보살승(菩薩乘)으로 향하는 선남자·선여인으로서 설법을 듣고도 수학하지 못하면 그들은 마침내 위없는 정도(正道)를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가섭아, 수학(修學)함으로 말미암아 위없는 도를 얻는 것이요, 수학하지 않고 위없는 도를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섭아, 만일 수학하지 않고도 위없는 도를 얻는다면, 토끼나 말·고양이·살쾡이도 역시 위없는 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바로 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보리가 없기 때문이다.

가섭아, 만일 음성으로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多羅三?三菩提)를 얻는다면 말하기를 ‘나는 마땅히 부처가 되리라, 나는 마땅히 부처가 되리라’고 해야 한다.

그리하여 부처가 된다면 끝없는 중생도 역시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이다.

가섭아, 중생들은 다만 이 행을 갖추기 어려울 뿐이다.

심지어 하루나 하룻밤도 오히려 전념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1겁(劫) 내지 천 겁이겠는가.

그러므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가섭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안에 있는 일체 중생이 혹은 1겁이나 혹은 10겁, 백 겁, 천 겁,백천 겁이나 혹은 만억 겁 동안 같은 소리로 ‘일체 중생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부처가 되리라, 너희들은 마땅히 부처가 되리라’고 한다고 하자. 이 사람들이 이렇게 게으르지 않고 항상 말하기를 ‘너희들은 마땅히 부처가 되리라, 너희들은 마땅히 부처가 되리라’고 하면서 구업(口業)을 쉬지 않더라도 그들의 보리심을 일으키지 못하리라.

만일 그들이 부처가 된다면 그럴 수는 없으리라.

가섭아, 내가 멸도(滅度)한 뒤 말세에, 또 너희들이 반열반(般涅槃)에 든 뒤에는 모든 하늘이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는 비록 내가 말하는 보리심을 듣더라도, 들은 어떤 비구는 보리심을 내고도 스무 가지 법에 머무르리라. 그 스무 가지란, 이른바 비구니를 친근하여 부정한 음식을 먹고 취식(?食)2)을 먹으며, 비구니가 권하는 음식을 먹는 것이니라.

가섭아, 마치 지금에 많이들은 비구가 한적한 곳이나 대중 속에서 부지런히 집법(集法)을 닦는 것처럼,그와 같이 가섭아, 그 때의 비구들은 취락에 있거나 한적한 곳에서 비구니들과 함께 화목하게 모여 부지런히 법을 묻는다고 하면서 음욕의 마음을 내고 법의 마음은 내지 않으며, 그 비구니들도 음욕을 많이 내고 법의 마음은 내지 않으리라. 가섭아, 그대는 보라.

이 사람은 보리라는 이름을 얻고도 마땅히 크게 악하고 두려운 길에 떨어질 것이다.

가섭아, 그대는 보라. 그 때에는 거짓으로 법을 위한다하여 서로 친근하고, 만일 서로 만날 때에는 애욕의 불에 타면서 추잡한 말을 내며, 또 서로 친근할 때에는 제자가 되어 처음에는 스승에 대한 법으로 머리를 조아려 경계하며, 그 뒤에는 마땅히 차츰 사람을 보내고, 만일 사람을 보낼 때에는 훌륭하다는 이름을 알리고, 이름을 알린 뒤에는 가만히 아내로 삼아 같은 길로 출입하며, 뒤에 누가 ‘그가 누구의 소유이며 어떤 친척인가?’라고 물으면 누이나 여동생이라 부르면서 자주 만나고, 자주 만나기 때문에 곧 비처(非處)에 떨어져 서로 애욕을 내고 차츰 애욕의 표정을 나타내며,

처음에는 말로 하다가 드디어 부정한 행을 행한다. 그리하여 염라왕의 법을 익혀 보리와 천상에 나는 것과 열반을 잃으며, 여래를 버리고 법을 멀리하여 승(僧)의 이익을 없앤다.

그리고 한 곳에 머물러 욕심과 성내는 마음과 괴롭힐 마음과 해칠 마음을 낸다.

보살의 행업은 네 가지 깨끗한 범행(梵行)이지마는 이 사람은 다른 보살의 부지런한 네 가지 범행과 같은 것이 없으며, 이 사람이 부지런히 행하는 욕심·분노 등의 각(覺)도 그와 같다.

가섭아, 그 때에는 이런 악인이 살고 이런 도적이 살며 투쟁이 산다.

가섭아, 그 때에는 계율이 모두 무너져 이런 경을 들으면 곧 업신여기거나 헐뜯는다.

본래 가졌던 계율과 본래 행하던 보시에는 기쁨을 내고 보리심을 내다가도 뒤에 이 경을 들으면 곧 헐뜯고 비방하리라. 가섭아, 그 때에는 이 인상(印相)이 있어서 이런 경을 들으면 곧 비방할 것이다.

만일 계율이 깨끗하고 법을 지니는 비구가 있으면 경의 글귀와 같이 지내왔음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이런 사람을 버릴 것이니, 법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또 가섭아, 그 때에는 이 사람들은 스스로 ‘나는 보살도(菩薩道)를 행한다’라고 주장하면서 광일(狂逸)하고, 광일하기 때문에 ‘나는 대아라한(大阿羅漢)이다, 나는 연각(緣覺)이다’라고 자칭하리라.

그러므로 그들은 다스릴 수 없고 악취(惡趣)로 향하는 것을 붙들 수 없다.

또 가섭아, 그 때에는 선업을 짓는 사람이 없어 많은 중생들로 하여금 보리를 비방하게 하리라.

가섭아, 그 때에는 겨우 형상만이 있으리라. 또 가섭아, 그 때에는 어떤 사람이 비슷한 바라밀을 행할 것이니, 이것이 후세에 겨우 형상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또 가섭아, 그 때에는 이런 경(經)으로 진실을 설명하는 이는 비방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삿된 견해의 주장이라고 버림을 당할 것이다.

가섭아, 그 때의 우치한 자들은 이 경을 알지 못하고 계율을 깨뜨릴 것이다.

가섭아, 그 때에는 다 도적이 되어 법과 괴로움이 없는 보리를 보지 못하고, 어리석게 침묵하거나 고요히 생각하면서 보리가 없다고 비방할 것이다.

또 가섭아, 그 때에는 화합하는 승가는 없고 겨우 형상만 있을 것이다.

또 가섭아, 그 때에는 은혜를 모르는 자가 많고 굳세게 악을 지을 것이니, 어떤 악을 짓는가. 부처님의 이름을 자주 말하여 공양을 받는 것이다.

또 가섭아, 그 때에는 해탈과 계를 꾸짖음으로써 구업을 지키지 않고, 구업을 지키지 않으므로 위의(威儀)를 지키지 않고 부정한 곳에 살며, 부정한 곳에 살면서 법 을 연설하리니, 나의 법은 이 때에 차츰 천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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