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결(修心訣) – 14.

수심결(修心訣) – 14.

-"돈문과 점문의 선정과 지혜 다른데-
-어떻게 한꺼번에 수행할 수 있나요"-

自性門則曰 任運寂知
자성문즉왈 임운적지
元自無爲 絶一塵而作對
원자무위 절일진이작대
何勞遣蕩之功 無一念而生情
하로견탕지공 무일념이생정
不假忘緣之力 判云此是頓門箇者
불가망연지공 판운차시돈문개자
不離自性 定慧等持也
불리자성 정혜등지야
隨相門則曰
수상문즉왈
稱理攝散 擇法觀空
칭리섭산 택법관공
均調昏亂 以入無爲
균조혼란 이입무위
判云此是漸門劣機所行也
판운차시점문열기소행야
就此兩門定慧 不無疑焉
취차양문정혜 불무의언
若言一人所行也 爲復先依自性門
약언일인소행야 위부선의자성문
定慧雙修然後
정혜쌍수연후
更用隨相門對治之功耶
갱용수상문대치지공야
爲復先依隨相門 均調昏亂然後
위부선의수상문 균조혼란연후
以入自性門也
이입자성문야

자기 성품이란’걸림없는 고요함과 아는 것이 원래 무위여서 하나의 티끌도 상대함이 없으니 어찌 번뇌를 없애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으며, 한 생각의 망령된 정(情)도 일어남이 없으니 반연을 잊으려 힘쓸 필요도 없다.’하고는 결론짓기를’이것이 담박에 깨닫는 문(頓門)에 들어간 사람이 자기 성품을 떠나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평등하게 가지는 것이다.’하였습니다. 그리고 상을 따르는 문(隨相門)은’이치에 따라 산란한 마음을 거두어 법에 따라 공을 관조하여 혼침과 산란을 고루 다스려서 무위에 들어간다’하고 결론 짓기를’이것은 점문의 열등한 근기의 수행이다’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문의 선정과 지혜에 대해서 의심이 없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수행함에 있어서 먼저 자기 성품의 선정과 지혜를 고루 닦은 뒤에 다시 수상문, 즉 상(相)을 따르는 방법으로 경계를 다스려나가야 합니까. 아니면 먼저 상을 따르는 공부로써 혼침과 산란을 고루 다스린 뒤에 자기 성품의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까.?

若先依自性定慧則任運寂知
약선의자성정혜즉임운적지
更無對治之功
갱무대치지공
何須更取隨相門定慧耶
하수갱취수상문정혜야
如將皓玉 彫文喪德 若先以隨
여장호옥 조문상덕 약선이수
相門定慧 對治功成然後
상문정혜 대치공성연후
趣於自性門則宛是漸門中劣機
취어자성문즉완시점문중열기
悟前漸熏也 豈云頓門箇者
오전점훈야 기운돈문개자
先悟後修 用無功之功也
선오후수 용무공지공야
若一時無前後則二門定慧
약일시무전후즉이문정혜
頓漸有異 如何一時竝行也
돈점유이 여하일시병행야

만약 먼저 자기 성품의 선정과 지혜에 의지한다면 고요함과 아는 것이 자재하여 다시 대상에 따라 다스려야 하는 공력이 없을 텐데 어째서 수상문, 즉 상을 따르는 선정과 지혜가 필요합니까.

그것은 마치 흰 옥에 무늬를 새김으로써 본바탕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만약 먼저 상을 따르는 방법으로 선정과 지혜를 얻어서 대상에 따라 다스리는 공부를 완성한 뒤에 자기 성품의 문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점차로 수행하는 열등한 근기가 깨닫기 이전의 점차로 닦아나가는 공부이니, 어째서 돈문(頓門)의 사람이 먼저 깨닫고 뒤에 닦아나가되 노력 없는 노력을 쓰는 것이라 하겠습니까.

만약 전후가 없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면, 돈문과 점문의 두 가지 문의 선정과 지혜가 다른데 어떻게 한꺼번에 수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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