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인 귀의
“세존이시여, 여래는 한량없는 시간 동안 머뭅니다. 여래, 응공, 등정각은 미래의 끝[後際]과 나란히 머무릅니다. 여래는 한량없으며, 크게 자비로우심[大悲] 또한 한량없고, 세간을 편안케 하는 데 이러한 설을 짓는 것은 잘 설하는 것이라 이름합니다. 여래가 만약 다시 ‘다함없는 법, 상주하는 법은 모든 세간의 귀의를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면 역시 잘 설하는 것이라 이름합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아직 제도하지 못한 세간, 의지하지 못하는 세간에 있어서 미래의 끝과 같아져서 다함없는 귀의, 상주하는 귀의를 짓는다고 한다면, 이른바 여래, 응공, 등정각입니다. 법은 하나의 길[一乘]이고 승(僧)은 세 가지 길(三乘)의 무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귀의는 궁극적인 귀의는 아니며 불완전한 귀의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길을 설하는 것은 궁극적인 법신을 얻는 것이며, 이 위에 다시 하나의 길의 법신을 설함이 없는 것입니다. 세 가지 길의 무리들은 공포가 있어서 여래에게 귀의하여 벗어남을 구하며 수학(修學)하는 것이니,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을 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가지 귀의는 궁극적인 귀의가 아니며 한계가 있는 귀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