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 28
부루나가 말하기를
“저와 여래는 보배의 깨달음이 원만하게 밝아서 진실하고 오묘하고
청정한 마음이 다를 것이 없이 원만한 것입니다만 저는 옛날 시작도
없는 과거로부터 허망한 생각을 내어서 오랫동안 윤회 속에 있었으므로
지금 성인의 과업을 이루었으나 아직도 완전하지 못하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모든 허망함이 모두 없어져서 홀로 오묘하게 참되고
항상하시니 감히 여래께 묻습니다.
일체 중생들은 무슨 원인으로 허망한 생각이 있어 스스로 오묘하게
밝은 것을 가리우고 이렇게 윤회에 빠져 허덕이나이까?”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비록 의심은 없?으나 나머지 의혹이 모두 없어지지 못 하였으니
내가 세상에서 현재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지고 지금 다시
네게 묻겠다.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시라벌성 안에 연야달다(演若達多)가 홀연히
이른 새벽에 거울로 얼굴을 비추어 보다가 거울 속의 머리에 있는 눈썹과
눈은 볼만하다고 좋아하고 자기 머리의 얼굴과 눈은 보지 못한다고
짜증을 내며 그것을 도깨비라고 여겨 까닭없이 미쳐 달아났다하니
너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이 무슨 원인으로 까닭없이
미쳐 달아났겠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그 사람은 마음이 미친 것일 뿐 다른 까닭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은 본래 원만하고 밝고 오묘한 것이니
이미 허망이라 하였으니 어떻게 원인이 있다고 하겠으며 만약 원인이
있으면 어떻게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겠느냐?
스스로 일으킨 모든 망상들이 전전하며 서로 원인이 되어 미혹을
좇아 미혹이 쌓여서 끝없는 세월을 지내왔으므로 비록 부처님께서
밝게 알려 주었어도 오히려 돌이키지 못하나니라.
이와 같이 미혹한 원인은 미혹으로 인하여 저절로 생긴 것이니
미혹함이 원인이 없다는 것을 알면 허망은 의지할 곳이 없나니
오히려 생기는 것도 없는데 무엇을 없에려느냐?
보리를 얻은 자는 잠을 깬 사람이 꿈 속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마음에는 비록 꿈 속의 일이 분명하지만 무슨 수로 꿈속에
물건들을 취할 수 있겠느냐?
더구나 원인이 없어 본래 있지도 않은 것이랴.
저 시라벌성의 연야달다와 같은 경우는 어찌 인연으로 자기의 머리를
무서워 달아났겠느냐?
홀연히 미친 증세가 없어지면 그 머리는 밖에서 얻어진 것이 아니며
비록 미친증세가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들 어찌 잃어버린 것이겠느냐?
부루나야!
허망의 성품이 이러하니 원인이 어찌 있다고 하겠느냐?
너는 다만 세간의 업장과 과보 그리고 중생, 이 세 종류가 서로 연속되는
것을 따라 분별하지 아니하면 세 가지 인연이 끊어지기 때문에 세 가지
원인이 생기지 아니하면 곧 너의 마음속에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은
자연 없어질 것이다.
무명이 없어지면 곧 보리의 뛰어나게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
우주에 두루퍼져서 다른 사람에게서 얻어진 것이니 어찌하여 애써가며
수고롭게 닦아서 증득하겠느냐?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옷 속에 여의주를 간직하고 있으면서
자신이 알지 못하고 타향에서 곤궁하게 돌아다니며 빌어먹는 것과 같아
비록 실제는 빈궁하지만 여의주는 잃은 것이 아니니 지혜있는 사람이
그 여의주를 가르켜 주면 원하던 것이 마음을 따라서 큰 부자가 되리니
그때야 비로소 그 신비로운 여의주가 밖에서 얻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으리라.”
그때에 아난이 대중 가운데에 있다가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데고
예를 올리고 일어나서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께서 지금 말씀하시기를 음욕, 살생, 도적질의 세 가지 업연이
끊어져 세 가지 원인이 생기지 아니하면 마음속에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이
자연 없어지리니 미친 성품이 없어지면 이는 곧 보리이니 사람에게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인(因)과 연(緣)이 분명한 것이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인연을 완전히 버렸습니까?
저도 인연으로 해서 마음이 열리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이치는 어찌 나이 어린 저희들 유학인 성문들 뿐이겠습니까!
지금 이 모임 가운데 있는 대목견련과 사리불과 수보리 등도 늙은 범지
(梵志)를 추종하다가 부처님의 인연법을 듣고 발심하여 깨달아 정기가
새는 것이 없는 도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리가 인연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왕사성의 구사리 등이 말하는 자연에서 제일의(第一義)가 되리니
바라옵건데
큰 자비를 베푸시어 혼미하고 답답한 것을 열어 밝혀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치 성 가운데 있는 연야달다가 만약 미친 성품의 인연을 제거하여 없엘
수만 있다면 미친 성품이 아닌 것이 자연히 나오는 것과 같아 인연과
자연의 이치가 여기에서 끝나나니라.
아난아! 연야달다의 머리가 본래 자연 그대로인진댄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으로 자연이 아닌 것이 없으니 무슨 인연 때문에 머리를 두려워하여 미쳐
달아나느냐?
만약 자연의 머리가 인연 때문에 미쳤다면 어찌하여 자연이 인연 때문에
잃어지지 않는냐?
본래 머리는 잃은 것이 아니니, 미쳐 두려워함이 허망하게 생겼다면
이는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인연에 의한 것이라고 하겠느냐?
본래 미친 것이 자연이라면 미친 두려움이 본래부터 있는 것이겠지만
미치지 않았을 때는 미친 증상이 어디에 숨었었으며 미치지 않은 것이
자연이라면 머리는 본래 미쳐 날뜀이 없을 것이니
어찌하여 미쳐 달아나느냐?
만일 본래의 머리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미쳐서 달아났던 것을 알면
인연과 자연이 모두 장난같은 논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세 가지 연(緣)이 끊어지므로 곧 보리심이다’
고 한 것이다.
보리의 마음이 생기고 나서 없어지는 마음이 없어진다면 이것도 나고
없어지는 것이니라. 나고 없어짐이 모두 공부의 작용이 없는 길에
자연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연의 마음이 생기며 나고 없어지고
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 분명하니 이것도 나고 없어지는 것이니라.
나고 없어짐이 없는 것을 자연이라고 이름한다면 이는 마치 세간의
모든 현상이 섞여 한 몸이 되는 것을 화합의 성품이라 하고 화합하지
않은 것을 본연의 성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본래 자연과 본래 자연이 아닌 것, 화합과 화합이 아닌 것,
자연과 합해진 것을 모두 여의며 벗어나고 화합함이 모두 아닌 것이
장난같은 논란이 없는 진리라 할 수 있느니라.
보리와 열반이 아직도 아득하고 멀어서 네가 여러 겁동안 애써
닦는 것으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비록 시방 여래의 십이부경
(十二部經)에 청정하고 오묘한 이치를 알아 가짐이 항하의 모래와
같더라도 장난같은 논리만 더할 뿐이다.
네가 비록 인연과 자연의 설명은 분명하고 확실하므로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많이 들은 것은 제일이라 하겠지만 이렇게 여러 겁을
많이 들음을 쌓아 익혔건만 마등가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으니
어찌하여 나의 불정신주(佛頂神呪)로 마등가의 마음에 음욕의
불꽃이 모두 없어지게 하고 아나함을 증득하여 나의 법 가운데
정진의 숲을 이루고 애욕의 강을 말려 너로 하여 해탈케 하였다.
그러므로 아난아!
네가 비록 여러 겁을 여래의 비밀되고 오묘하고 장엄한 것을 기억해
가졌다고 하더라도 단 하루를 무루의 도를 닦아 미워하고 사랑하는
두 가지 고통을 멀리 여의는 것만 못 하나니라.
마등가는 전세에 음란한 여자였으나 신주(神呪)의 힘으로 애욕을
소멸하고 지금은 나의 법 가운데 에서 성비구니(性比丘尼)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라후라의 어미 야수다라와 함께 과거세의 인연을
깨달아 많은 세상을 지내며 맺어온 인연이 탐욕과 애욕으로 괴로움이
된 것을 깨닫고 일념으로 무루의 선행을 닦았으므로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혹은 수기(授記)를 받기도 하였는데
너는 어찌하여 스스로 속아서 아직도 보고 듣는데 머물러 있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의혹이 사라져 없어지고
마음의 참 모습을 깨달아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져 일찌기 있기
않았던 것을 얻고 다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데어 예를 올리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위없이 크고 자비하신 청정한 보배의 왕께서 저희들의 마음을 잘
열어 주시여 이러한 인연을 방편으로 이끌어 주시고 권장해주시며
암흑에 빠진 자를 인도하여 괴로움의 바다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비록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듣고 여래장인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이 시방세계에 두루 퍼져 여래께서 시방국토의 청정한
보엄묘각왕찰(寶嚴竗覺王刹)을 함유(含有)하였음을 알았습니다만
여래께서 다시 꾸짖으시기를
‘많이 듣기만 하는 것은 공이 없어 닦아 익히는데에 미치지 못 한다’
고 하시니 저는 지금 마치 나그네 생활을 하던 사람이 홀연히 천왕
(天王)이 주신 호화로운 집을 받은 것과 같아 비록 큰 집을 얻었으나
문을 찾아 들어가는 것과 같사오니
바라옵건데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와 저희 이 모임에 있는 여러
몽매(夢昧)한 자들을 깨우쳐 주시어 소승을 버리고 여래의 무여열반
(無餘涅槃)의 본디 발심했던 길을 얻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유학자들로 하여 어떻게 해야 지난날 반연하던 마음을
항복받고 다라니(陀羅尼)를 얻어 부처님의 지견(知見)에 들어갈 수 있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오체(五體)를 땅에 던지고 모인 대중들과 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