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 27
부루나야! 또 네가 묻기를 “흙과 물, 불과 바람의 본래 성품이 원융하여
우주에 두루하였다면 어째서 물의 성품과 불의 성품이 서로 능멸하지
않습니까?”하였고, 또 묻기를 “허공과 땅덩어리가 다 함께 우주에
두루하였다면 서로 용납하지 못할 것입니다”고 하니
부루나야!
비유하면 허공의 본체가 여러가지 모양이 아니지만 그러나 저 여러 가지
모양이 나타남을 막지 않는 것과 같나니라.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하면 부루나야!
저 커다란 허공이 해가 비치면 밝고 구름이 끼면 어두우며,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개이면 맑으며, 기운이 엉키면 탁하고 흙먼지가 쌓이면
흙비가 되며, 물이 맑으면 밝게 비치나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러한 여러 방면에서 작용하는 모든 현상들이
저것들로 인하여 생기느냐 허공을 따라 있는 것이냐?
만약, 저것들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부루나야!
장차 해가 비칠 때는 이미 그것은 해의 밝음이므로 시방세계가 다같은
햇빛이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공중에서 다시 둥근 해를 보게 되느냐?
만약 허공을 따라서 생긴 밝음이라면 허공이 응당 스스로 비칠 것인데
어찌하여 밤중이나 구름이 끼었을 때는 빛을 내지 못하느냐?
그러니, 당연히 알아야 한다.
그 밝음은 해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허공이나 해와 다른 것도 아니니라.
그 현상을 살펴보면 본래가 허망해서 가리켜서 말할 수가 없음이
마치 허공의 꽃에서 헛된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
어떻게 서로 능멸하는 이치를 따지겠느냐?
성품을 살펴보면 본래 참된 것이라서 오직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일뿐이다.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의 마음이 본래 물이나 불도 아니니
어찌하여 또다시 서로 용납하지 못하느냐고 묻느냐?
참되고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도 역시 그러하니라.
네가 허공으로 밝히면 허공이 나타나고 흙과 물, 불과 바람으로
각각 밝히면 곧 그것들도 각각 나타나며 만약 다 함께 밝히면 곧 다함께
나타나나니라.
어떤 것을 함께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부루나야!
마치 물 속에 해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이니, 두 사람이 함께
물 속의 해를 보다가 동쪽과 서쪽으로 제각기 가면 물 속의 해도 제각기
두 사람을 따라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가서 본래부터 정한
곳이 없으니 따져 말하면 “저 해는 하나인데 어찌하여 제각기 가느냐?”고
하며 “각자 가는 해가 이미 둘인데 어찌하여 하나로 나타나느냐?”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온통 허망하여 의지할 수가 없나니라.
부루나야!
너는 물질과 허공으로서 여래장에서 서로 밀어내고 서로 빼앗으므로
여래장도 따라서 물질과 허공이 되어 우주에 두루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바람은 움직이고 허공은 맑으며 해는 밝고
구름은 어두운 것이니,
중생들은 어리석고 미련해서 깨달음을 저버리고 허망한 티끌과
어울리므로 번뇌가 일어나서 세간의 현상이 있게 되나니라.
나는 오묘하고 밝은 것이 생겨나거나 없어지지도 않는 것으로
여래장과 합한 것이니, 여래장이 오직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이므로
우주에 원만하게 비춘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하나가 한량없는 것이 되고 한량없는 것이 하나가
되며, 적은 가운데 큰 것을 나타내고 큰 가운데 적은 것을 나타내며,
도량에서 움직이지 않고 시방의 세계에 두루 퍼지며, 몸으로 시방의
끝없는 허공을 머금으며, 한 털끝에서 보왕(寶王)의 세계를 나타내며,
작은 먼지 속에 앉아서 큰 법륜(法輪)을 굴리나니라.
번뇌를 없에고 깨달음에 합해지므로 진여인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성품을
발하니 여래장의 본래 오묘하고 원만한 마음은 마음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흙도 아니요 물도 아니며, 바람도 아니요 불도 아니며,
눈도 아니요 귀, 코, 혀, 몸, 생각도 아니며, 빛도 아니요 소리, 향기,
맛, 촉감, 법도 아니며, 안식계(眼識界)도 아니요, 이렇게 해서 의식계
(意識界)도 아닌데까지 이르며, 밝음도 밝음이 없음도 아니요, 밝음과
밝음이 없는 것마저 다함도 아니며, 늙음도 아니요 죽음도 아니며,
늙음과 죽음이 다함도 아닌데까지 이르며, 괴로움도 아니요 괴로움의
원인도 아니며, 괴로움을 없는 자리도 아니요,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아니며, 지혜도 아니요 증득함도 아니며, 보시도 아니요 계율도 아니며,
인욕도 아니요 정진도 아니며, 선정도 아니요 반야도 아니며,
바라밀다도 아니니라.
이와 같아서,
여래도 아니요 응공도 아니며, 정변지도 아니요 대열반도 아니며,
항상함도 아니요 즐거움도 아니며, 주체도 아니요 청정함도 아닌 것에
까지 이르니 이렇게 세간과 출세간도 모두 아니기 때문이며,
곧 여래장의 원래 밝은 마음인 오묘함은 곧 마음이요 허공이며, 흙,
물, 바람, 불이요 곧 눈, 코, 혀, 몸, 생각이며, 곧 빛, 소리, 향기, 맛,
촉감, 법(法)이요 곧 눈으로 보아 의식하는 경계이며, 이렇게 뜻으로
생각하여 의식하는 경계에 이르며, 곧 밝음과 밝음이 없음이요 밝음과
밝음이 없는 것까지 모두 끊음이며 이렇게 곧 늙음이요 죽음이며,
곧 늙음과 죽음이 다함이요 곧 괴로움(苦), 괴로움의 원인[集], 괴로움을
없에는 자리[滅], 괴로움을 없애는 길[道], 지혜, 증득함이며,
곧 보시, 계율, 인욕, 정진, 선정, 반야, 바라밀다이며, 곧 여래, 응공,
정변지이며, 곧 대열반이요, 곧 항상함(常), 즐거움(樂), 주체(我),
청정(淨)이니, 이것이 모두 세간법과 출세간법이므로,
곧 여래장인 오묘하고 밝은 마음의 근본은 그런 것도 아니요 그렇지
아니함도 아니며,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것이니라.
어찌하여 세간의 삼유(三有)의 중생들과 출세간의 성문 연각들이 알고
있는 마음으로 여래의 위없는 보리를 추측하고 헤아려 세간의 말로
부처님의 지견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
비유하면, 마치 거문고, 비파. 공후가 비록 묘한 소리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손가락이 없으면 끝끝내 소리를 낼 수 없는 것과 같으니,
너와 중생들도 역시 이와같아, 보배로운 깨달음의 참 마음은 각각
원만하지만 어리석어 깨닫지 못하느니라.
만일, 내가 손가락을 놀리면 해인(海印)이 빛을 발하고,
너는 잠시만 마음을 움직이면 번뇌가 먼저 일어나나니,
위없는 깨달음의 길을 부지런히 구하지 않고 소승을 좋아하여 적은 것을
얻고 만족하게 여기는 탓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