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 #13/64

능엄경…13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 오묘한 깨달음의 근본이 모든 상대되는 물질
그리고, 마음과 생각으로 화합한 것이 아닌가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또, 말하기를 깨달음이 화합한 것이 아니라고 하니, 내가 다시
네게 묻겠노라. 오묘하게 보는 것이 화합한 것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만약, 밝음과 조화를 이룬 것이라면, 보는 것과 밝은 것의 경계가 있어야
하리니 너는 자세히 보아라. 어디까지가 밝은 것이며, 어디까지가 보는
것이냐? 보는 것과 밝은 것이 어디로부터 경계가 되는냐?
아난아!
만일 밝은 것 중에 보는 것이 없다면 서로 이를 수가 없으므로, 밝은 모양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할 것이니, 경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어둠과 통함 그리고,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오묘하게 보는 것이 화합한 것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만약, 밝은 것과 합해진 것이 아니라면, 보는 것과 밝음이 서로 어긋남이
마치, 귀와 눈이 서로 닿지 않는 것과 같아서, 보아도 밝은 모양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합하는 것과 합하지 않는 것의 이치를
밝게 분별하겠느냐? 어두움과 통함,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너는 아직도 일체의 허깨비같이 변화하는 모양이 곳을 따라
생기며, 곳을 따라 없어짐을 알지 못하는구나. 허망한 허깨비 같은 것을
물질이라 하지만, 그 성품은 참으로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본체이다.
이와 같이, 오음(五陰)과 육입(六入)과 십이처(什二處)와 십팔계(十八界),
모두가 인연이 화합하여 허망하게 생기는 것이며, 인연이 흩어져 허망하게
없어지나니, 진실로 생기고, 없어지고, 가고, 오고하는 것이 본래 여래장
(如來藏)이니, 항상 머무르는 것이며, 오묘하고 밝은 것이며, 흔들리지
않으며, 원만하고, 오묘하고, 참답고, 변함없는 성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참 성품이 머무는 곳에 가고, 오고, 미혹하고, 깨닫고,
나고, 죽음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나니라.
아난아!
어찌하여 오음(五陰)이 본래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청정한 눈으로 맑은 하늘을 볼 때, 오로지, 하나의
맑은 하늘일 뿐이어서, 멀리까지 아무 것도 없거늘, 그 사람이 까닭없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오래도록 똑바로 보다가 피로가 생기면, 허공에서
또다른 광화(狂華)가 보이며, 또다시 몹시 어지러워 모양이 없는 듯하니,
당연히 알아라. 색음(色陰)도 그러하니라.
아난아!
이 헛보이는 꽃은 허공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눈에 서 나온 것도 아니니라.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면 이미 허공에서 생겼으니, 다시 허공으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예를들어, 나오고, 들어감이 있다면, 허공이 아니며,
허공이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히, 그 꽃 모양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함이 마치, 아난의 몸에 다른 아난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만약, 눈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미 눈을 쫓아 나왔으므로 다시 눈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니, 헛 보이는 꽃이 눈으로부터 나왔으므로 마땅히 볼 수 있을 것이며,
만약, 보는 것이 있다면, 나갈 적에 이미 허공에 꽃이 있으므로 돌아올 적에
당연히 눈을 보아야 할 것이며, 만약 보는 것이 없다면 나갈 때는 이미 허공을
가리웠으므로 돌아올 때도 당연히 눈을 가려야 할 것이다.
또, 헛 꽃을 볼 때도 눈을 가리움이 없을 것이니, 어찌하여 맑은 허공을
청정하고 밝은 눈이라고 하겠느냐?
당연히 알아야 한다. 색음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손발이 편안하고, 모든 뼈마디가 적절히
조화되었을 때는 살아있음을 잊은 듯하여, 성품이 어긋나거나, 순함이 없다가
그 사람이 까닭없이 두 손바닥을 허공에서 서로 비비면, 두 손 바닥에서
거칠거나, 미끄럽거나, 차거나, 뜨거운 등의 여러가지 모양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 당연히 알아라. 수음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이 여러가지 허깨비같은 허망한 것이 허공에서 온 것도 아니며, 손 바닥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라.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왔다면 이미 손바닥에 접촉하였는데, 어찌 몸에는
접촉하지 아니하였느냐? 허공이 선택하여 접촉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손바닥에서 나왔다면 손바닥이 합하기를 기다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 손바닥에서 나왔으므로 합할 때 손바닥이 느낀다면, 뗄 때는 접촉이
들어가서 팔과 손목과 골수들이 들어갈 때와 같은 감응을 느껴야 할 것이니라.
반드시, 느끼는 마음이 있어서 들어가고 나감을 안다면, 자연히 한 물건이
몸 가운데 오갈 것이니, 어찌 손바닥과 합해져야만 느끼는 것을 접촉이라고
하느냐? 당연히 알아야 한다. 수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쓴맛의 매실을 말하면 입안에서 침이 생기고,
까마득한 벼랑에 있는 것을 상상하면 발바닥이 저려지는 듯하니,
당연히 알아야 한다. 상음(想陰)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쓴맛의 이야기가 매실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라.
아난아! 만약 매실에서 생긴 것이라면 매실이 마땅히 스스로 말을 해야 할 것
이니, 어찌 사람이 말하기를 기다리며, 만약 입을 쫓아 들어갔다면 마땅히
입으로 들어야 하는 것이니, 어찌 귀를 기다리겠느냐? 만약 귀만이 듣는다면
침이 어째서 귀속에서 나오지 않느냐?
그러니, 마땅히 알아라. 상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성품이 허공에서 생긴 것이 아니며, 물에 있는 것도 아니며,
물의 성품도 아니며, 허공과 물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면, 시방의 끝없는 허공에 끝없는 흐름이 생겨서
세계가 자연히 모두 물에 잠기게 될 것이며, 만약, 물에 있는 것이라면,
급히 흐르는 물의 성품은 마땅히 물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능유(能有)와 소유(所有)의 모양이 마땅히, 앞에 나타나야 할 것이며,
만약, 물의 성품이라면, 맑은 때는 당연히 물의 본체가 아닐 것이며,
만약,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이라면, 허공은 밖이 있는 것이 아니며,
물 밖에는 흐름이 없어야 할지니라.
당연히 알아야 한다. 행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빈가병의 두구멍을 막고 허공을 가득히 채워
천리나 되는 먼 다른 나라에 가서 사용하는 것과 같으니라.
당연히 알아야 한다. 식음(識陰)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허공은 저쪽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이쪽에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라.
아난아!
만약, 저쪽에서 오는 것이라면, 본래 병에 이미 허공을 담아가지고 갔으므로
본래의 병이 있던 곳에는 당연히 허공이 조금 줄었어야 할 것이며,
만약, 이곳으로 들어갔다면, 구멍을 열고 병을 기울일 때는 마땅히 허공이
나오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당연히 알아야 한다.
식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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