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단경 22. 修行 – 수행

22. 修行 – 수행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만약 수행하기를 바란다면 세속에서도 가능한 것이니, 절에 있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다. 절에 있으면서 닦지 않으면 서쪽 나라 사람의 마음이 악함과 같고, 세속에 있으면서 수행하면 동쪽 나라 사람이 착함을 닦는 것과 같다. 오직 바라건대, 자기 스스로 깨끗함을 닦으라. 그러면 이것이 곧 서쪽 나라이니라.”

위사군이 물었다.

“화상이시여, 세속에 있으면서 어떻게 닦습니까? 원하오니 가르쳐 주소서.”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혜능이 도속(道俗)을 위하여 ‘모양 없는 게송(無相頌)’을 지어 주리니 다들 외어 가지라. 이것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항상 혜능과 더불어 한 곳에 있음과 다름이 없느니라.”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설법도 통달하고 마음도 통달함이여!

해가 허공에 떠오름과 같나니

오직 돈교(頓敎)의 법만을 전하여

세상에 나와 삿된 종취를 부수는구나.

가르침에는 돈과 점이 없으나

미혹함과 깨침에 더디고 빠름이 있나니

만약 돈교의 법을 배우면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미혹하지 않느니라.

설명하자면 비록 일만 가지이나

그 낱낱을 합하면 다시 하나로 돌아오나니

번뇌의 어두운 집 속에서

항상 지혜의 해가 떠오르게 하라.

삿됨은 번뇌를 인연하여 오고

바름이 오면 번뇌가 없어지나니

삿됨과 바름을 다 버리면

깨끗하여 남음 없음(無餘)에 이르는 도다.

보리(菩提)는 본래 깨끗하나

마음 일으키는 것이 곧 망상이라

깨끗한 성품이 망념 가운데 있나니

오직 바르기만 하면 세 가지 장애를 없애는 도다.

만약 세간에서 도를 닦더라도

일체가 다 방해되지 않나니

항상 허물을 드러내어 자기에게 있게 하라.

도와 더불어 서로 합하는 도다.

형상이 있는 것에는 스스로 도가 있거늘

도를 떠나 따로 도를 찾는지라

도를 찾아도 도를 보지 못하나니

필경은 도리어 스스로 고뇌하는 도다.

만약 애써 도를 찾고자 할진대는

행동의 바름(正行)이 곧 도이니

스스로에게 만약 바른 마음이 없으면

어둠 속을 감이라 도를 보지 못하느니라.

만약 참으로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세간의 어리석음을 보지 않나니

만약 세간의 잘못을 보면

자기의 잘못이라 도리어 허물이로다.

남의 잘못은 나의 죄과요

나의 잘못은 스스로 죄 있음이니

오직 스스로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번뇌를 쳐부수어 버리는 도다.

만약 어리석은 사람을 교화하고자 할진대는

모름지기 방편이 있어야 하나니

저로 하여금 의심을 깨뜨리게 하지 말라.

이는 곧 보리가 나타남이로다.

법은 원래 세간에 있어서

세간에서 세간을 벗어나나니

세간을 떠나지 말며

밖에서 출세간의 법을 구하지 말라.

삿된 견해(邪見)가 세간이요

바른 견해(正見)는 세간을 벗어남(出世間)이니

삿됨과 바름을 다 쳐 물리치면

보리의 성품이 완연하리로다.

이는 다만 단박 깨치는 가르침이며

또한 대승(大乘)이라 이름하나니

미혹하면 수많은 세월을 지나나

깨치면 잠깐 사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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