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정해진바 아닌 만들어가는 것
-지광스님-
점쟁이를 찾는 사람들이 꽤있다.
누군가가 뭘 봐준다고 하면 100% 신뢰하지는 않더라도 일단 호기심을 갖는다.
운명이 정해져있다 믿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부처님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인 듯하다.
부처님께서는 운명이 정해져있다고 믿는 숙명론을 삼종외도라하여 크게 비판하셨다.
불교에서는 운명은 없다고 가르친다.
다만 업이 있을 뿐이라 얘기한다.
전생에 지은 업을 소멸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스스로의 마음을 고쳐먹으면 업장이 소멸되고 삶이 개조된다고 가르친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의 마음을 고치려는 사람이 적으니 업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한탄하셨다.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면서 실제 자신의 마음을 고쳐먹으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불교는 정진을 통해 부처를 만드는 종교다.
결단을 통해 원을 세우고 그를 실천하려는 의지에 찬 수행자를 지극히 예찬하는 종교가 불교다.
자신의 운명은 누가 정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기에 원력을 세우고 성실하게 정진해 그를 현실 속에 구현하려는 수행의 종교가 불교다.
투철한 원력을 세우고 계속 전진하다보면 갖가지 암초 역시 뚫리게 마련이다.
잘못을 반복하기에 윤회하지만, 반복의 위력을 올바르게 활용하면 어떠한 장애물도 극복 할 수 있다.
반복된 투철한 신념은 바위를 뚫는 것은 물론 태산도 움직일 수 있다.
위대한 성자들은 자신의 이상을 끊임없이 반복 반추하면서 나아갔다.
계속 나아가다보면 분명히 부처님나라의 메시지를 듣게 된다.
당연하지 않는가? 굴하지 않는 마음으로 계속 장애물을 뚫어 나가다보면 부처님나라가 가까워지지 않겠는가? 끝없는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는 사람에게 부처님의 육성이 그를 인도하는 예를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지 않는가.
몸과 마음을 다해 부처의 길을 따라 걷는 수행자들이여, 결단하라! 백척간두 진일보하라! 몸과 마음을 던져라! 일단 죽기 살기로 나아가기만하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우유부단해서 회피하거나 차일피일 미루거나하면서 좀처럼 결단을 내리기 힘겨워한다.
결단은 항상 강한 자력을 띤다.
잘 알지 않는가.
강한 자석은 동시에 두 방향으로 물건을 끌어당길 수 없다.
인생은 갖가지 고통을 헤치며 돌진할 수밖에 없는 일회적 찬스다.
마음은 위대한 자석이다.
결단하라! 불교는 결단의 종교다.
결단은 용기로부터 나오고 용기는 부처님의 힘을 신뢰하는데서 생긴다.
신심이 곧 여래이고 불성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말씀대로 번뇌 중생이 신심을 일으키면 즉시 위대한 불성을 얻어 성불할 수 있는 경지(大乘正定聚之類)로 들어간다.
正定聚(정정취)에 들기 때문에 멸도에 이르러 주변을 상락의 세계로 만들며 실상의 경지에 법성과 하나가 된다.
그를 가리켜 진여·일여와 하나 된 자, 부처라 한다.
정정취의 보살들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며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들어간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들어간 자는 세상을 한없이 아름답게 만든다.
그는 무아의 화신이며 한없이 베풀며 주는 보살이 된다.
무아의 결단을 내린 자는 나를 버리고 세상과 하나가 된다.
그는 항상 세상과 하나이기에 ‘어떻게 하면 항상 주변 모두를 기쁘게 할 것인가’, ‘나는 항상 모두를 즐겁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마음속에 산다.
그대는 과연 어떠한 마음을 지니고 사는가.
남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나 자신의 기쁨을 누리는 길임을 깨달은 자에게 운명이란 말은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린가 항상 소리 높여 외치라.
‘나는 그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여기에 존재한다.
나는 모두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한다!’ 그 같은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부처님의 가피가 영원히 함께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