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불법에 집착하세요

불법에 집착하세요

-무비스님-

우리 인간은 살아있는 사람이나 이미 돌아가셔서 또 어딘가 모를 곳에 새로운 생을 맞이해서 우리도 모르게 내 이웃과 또는 내 가족이 되어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의 안목에 의해서 보면은 사람 사람이 본래 다 갖춘 뜻이고 ‘개개가 원만하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런 도리를 우리가 다 갖추고 있고 낱낱이 다 어느 누구할 것 없이 유식, 무식, 남녀노소 아무런 차별없이 동서고금, 흑백 아무런 차별없이 사람 사람이 본래가 다 원만하게 갖춘 존재고 개개인이 다 원만히 성취되어있는 그래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러한 존재라는 사실을 부처님은 보셨고, 그 이치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49년간 그런 뜨거운 인도의 햇볕아래서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서 그러한 이치를 더 가르쳐주려고 무진애를 쓰시다가 80에 열반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후 많은 조사스님들도 깨달음을 성취해서 보니까 사람 사람이 달리 다른 것을 구할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가 다 원만히 이루어져있고 이미 본래로 갖춰져 있더라 라고 하는 이 사실을 깨닫고 한결같이 부처님처럼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다만 표현이 다를 뿐이죠.

그래서 ‘흠소심마(欠少什麽,부적한 것이 무엇인가)오’ 우리 전통불교에서 가장 높이 받드는 임제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보고 듣고 이렇게 느끼고 새 봄이 되면은 그 새 봄을 알고 여름이 되면 여름을 알고 하는 누구나 다 알고 느끼고 누리고 하는 이 사실에서, 이 능력과 이 사실에서 부족한 게 도대체 무엇이냐?” ‘흠소심마오’ 부족한 게 도대체 무엇이냐? 아무것도 알고보면 부족할 것이 없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영가든 이미 돌아가셔서 또 새로운 생을 받은 영가든 좀 한 생각 돌이켜서 보면 우리가 조상을 천도해준다고 하지만은 어쩌면 우리 자신을 우리가 천도하고 있는지 모르고 또 내 자녀들을 천도하고 있는지 모르고 또 우리가 오히려 천도 받아야 할 그런 존재로 있는 줄도 모르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영가나 돌아가신 영가나’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처님의 안목에서 보면 우리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일회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입장에서 우리의 얼굴만 바꿔가면서, 다시말해서 옷만 바꿔 입어가면서 육신이라고 하는 이 옷만 바꿔 입어가면서 우리가 생을 거듭하기 때문에, 우리의 참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어느 한 번 죽은 적도 없고 어느 한 때 한 번 새롭게 태어난 적도 없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부처님과 모든 깨달으신 분들이 한결같이 그 깨달음의 안목을 통해서 우리의 진실생명을 꿰뚫어보면은 그와같은 완전무결한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우리에게 그렇게 늘 고구정령(苦口丁寧)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알고보면 우리의 삶이 정말 더없이 소중한 것이고 더 이상 꾸밀것도 없고 장엄할 것도 없고 더 수행이 필요한 것도 없고 뭐 크게 참회해서 업장을 소멸해야 할 것도 없는 그와같이 개개인이 본래로 갖추고 있고 사람 사람이 완전하게 이루어져 있는 완전무결한 존재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이해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화엄경』에서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이러한 이치를 우리가 아냐 모르냐 하는 것을 비유하자면은, 마치 캄캄한 방에 보물이 가득 있다고 합시다.

근데 캄캄한 방에 보물이 아무리 있다 하더라도 등불이 없으면은 그것을 볼 수가 없다 하는 거지요.

하다못해 촛불을 키든지 호롱불을 키든지 아니면 밝은 전등불을 키든지 불을 밝히면은 그 안에 가득 있는 보물을 우리가 잘 볼 수 있듯이 ‘불법무인설(佛法無人說)’이면은 불법에 대해서 사람이 누가 그러한 사실을 설사 우리가 다 갖추고 있다하더라도 누가 이해하고 그것을 설명해주지 아니할 것 같으면은 비록 사람 사람이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능히 알수가 없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 많고 많은 설법을 하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가르쳐주기 위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깨우쳐줄려고 그래서 우리는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부처님의 많고 많은 가르침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죠.

그것이 마치 캄캄한 방에 보물이 가득히 쌓여 있는데 등불을 밝혀서 그 보물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이고 도대체 금인지 은인지 다야몬든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자 하는, 그런 뜻에서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신 것이고 또 곳곳에서 법문을 많이 하고 경전강설을 많이 하고 근래는 또 교양대학이라고 하는 것을 열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은 사람들에게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법으로 그렇게 전하는 노력들을 참으로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우리 존재가 아무리 뛰어난 존재고 훌륭한 존재고 완전무결한 존재라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을 보신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일러주시지 아니하면은 이건 알길이 없는거요.

마치 안목이 없는 사람이 고려청자를 가지고 아무렇게나 쓰다가 깨면 던져버리고 혹은 개에게 밥을 주는 개밥그릇으로도 쓰고, 안목이 없으면 그런거요.

수억짜리 수십억짜리 고려청자도 그냥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다가 깨지면 그냥 던져버리고 혹 개밥그릇으로도 쓰고 하는 그와같은 어리석음을 우리는 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인의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고 성인께서는 먼저 아시니까 고구정녕하게 일러주려고 그렇게 애쓰시는 거지요.

안목이 있는 사람이 볼 때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수십억짜리 고려청자를 갖다가 그건 그야말로 깨져도 금으로 잘 붙이면은 수십억가치는 안 나간다 하더라도 수억가치는 된다구요.

그런데 우리는 안목이 없으니까 그것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린다든지 개밥을 떠주는 개밥그릇정도로 사용한다든지 하는 그런 오류를 범하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행히도 참 ‘인생난득(人生難得)이요.

불법난봉(佛法難逢)이라.’고 사람 몸 만나기 어렵고 그 가운데서도 불법만나기 어렵다고 고구정녕하게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불법을 통해서 우리의 그 존귀함을 우리의 그 소중함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그것을 존중하면서 살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존중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나마 배워서 알고있기 때문에 이미 다른 곳에 다 인연따라서 천도되어졌고 새로운 몸을 받아서 태어났지만 그래도 생각하면 소중한 나의 인연이고 소중한 나의 부모고 소중한 나의 조부모였었기 때문에 그래서 또한 그 안타까운 마음에서 조금이라도 부처님과 인연을 더 깊이 맺어드릴려고 우리가 이러한 기회를 통해서 정초를 통해서 또한 천도재를 드리는 것입니다.

고려청자의 가치가 그렇듯이 우리 인간의 가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거죠.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방금 저희들이 함께 독송한 『금강경』에는, 『금강경』의 가르침의 가치는 이 지구를 금은보화로 가득히 싸서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고 희사한 공덕보다도 천 배, 만 배 더 훌륭한 것이 『금강경』의 가치다 라고 했습니다.

『금강경』종이로 되고 먹으로 된 이 『금강경』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종이와 먹으로 된 이『금강경』을 통해서 진짜 살아있는『금강경』에 눈을 뜨라는 것이죠.

진짜 이 세상에서 가치있고 존귀한『금강경』이 무엇이겠습니까? 하필『금강경』만 그렇겠습니까?『화엄경』이 그렇고 『법화경』이 그렇고 모든 경전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깨우쳐주고자 하는 것은 종이와 먹으로 된 『금강경』이 아니라, 종이와 먹으로 된 이 책이라고 하는 『금강경』을 통해서 진짜 가치있는 살아있는 참 생명의 『금강경』에 눈을 뜨고 그 가치에 눈을 뜨라는 것이죠.

그랬을때 사실 이 지구만한 금은보화하고 우리들 한 생명하고 누가 바꿀 사람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한 생명하고도 이 지구만한 금은보화하고 결코 바꿀 사람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금강경』에서는 금은보화칠보로써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채워서 보시한 공덕보다도 『금강경』의 공덕이 더 크다 라고 이렇게 말씀하신거요.

그것을 우리는 정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혀가 닳도록 읽고 사경하고 열심히 부처님 말씀의 그런 그 이치를 깨우칠려고 그렇게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은 우리 인간의 본래로 갖추고 있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무결한 참생명에 눈을 뜨고 그 가치를 우리가 알아서 그 가치를 한껏 누리면서 살자고 하는, 자기 인생의 그런 금은보화를 이 우주만한 것보다도 더 큰 더 많은 금은보화하고도 바꿀 수 없는 참생명의 가치를 깨닫고 인식하면 다른 사람에 대한 그런 그 소중한 생명의 가치 또한 이해하게 되고 존중하게 될 것이니까 그러므로 영가를 천도지내는 것도 또 그러한 정신에서 참생명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받들어 섬기는 그러한 마음의 일환으로 하는 것이고 나아가서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한 가족으로 나와 아주 절친한 인연이 있으니까 위해주고 받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불자들은 정말 인간의 본래 갖춘 지극히 고귀한 그 가치를 불교를 모른 사람보다도 불교를 아는 사람이 훨씬 더 잘 아니까 정말 이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금강경』에서 말했듯이, 이 지구만한 금은보화보다도 더 가치있다고 말한 그러한 것을 이해한 까닭에 우리는 다같이 나를 존중하고 아울러서 가족 모두를 존중하고 나아가서 그것이 좀 더 확대되면 이웃을 그렇게 존중하고 받들어 섬기고 그리고 인연있는 사람이나 인연없는 사람이나 모든 사람을 다같이 그렇게 존중하고 받들어 섬기면은, 내가 첫째 행복하고 그 섬김을 받는 사람이 또한 행복하고 그래서 나도 행복하고 그도 행복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할 수 있는 그러한 이치가 바로 불교의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고 사실은 그러한 가르침에 의해서 하나의 우리가 그 가르침의 실천으로써 조상을 천도하는 것입니다.

친지를 천도하는 것이고 ??부모를 천도하는 것이죠.

왜냐? 나와 가장 가까운 인연이니까.

가까운 인연부터 제도해야죠.

그래서 가까운 인연에서부터 차츰차츰 그 범위를 넓혀가면은, 넓혀가면은 우리가족 전체를 서로서로 부처님으로 위하고 받들어 섬기고 또 좀 더 넓히면은 우리 이웃을 그렇게 위하고 받들어 섬기고 나하고 인연있는 사람들로부터 차츰차츰 확대해서 많은 사람에게 그렇게 그 사상, 그 사상을 우리가 몸소 실천하게 되면은 그야말로 부처님이 바라는 세상의 행복, 세상의 평화 이것을 우리가 부처님의 심부름꾼으로 이렇게 확대될 수가 있습니다.

지난해보다 또 이 정월 10일 매년 이 길일을 택해서 천도하는 이 모임, 이 회원들이 훨씬 많이 늘어났다 이야기를 들었고 오늘 보니까 참으로 작년보다 많이 또 늘어났습니다.

이것이 말하자면은, 금방 제가 말씀드린 사람을 부처님으로 이해하고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하나의 실천강령으로써 구체적인 실천으로써 하나의 징표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 이 좋은 모임이 있다.

이 좋은 인연이 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 절도 돕고 또 어려운 사람들도 돕고 여기저기 대중공양도 다니고 불사에도 함께 보태고 이러한 좋은 인연이 있다라고 해서 자꾸 확대해 나가는 거에요.

자꾸자꾸 확대해 나가는 것이, 말하자면은 맨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아무리 좋은 이치가 있다 하더라도 그 좋은 이치를 이야기해주지 아니하면, 스스로 아무리 지혜가 뛰어나더라도 모르는 거에요.

그것을『화엄경』에서 비유를 들듯이 캄캄한 방에 아무리 금은보화가 있다하더라도 등불을 밝히지 아니하면 그 금은보화가 있는 줄을 알지 못하고 금은보화가 있는 줄을 알지 못하니까 그것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평생 가난뱅이 노릇을 하는거요.

금은보화를 두고도 가난뱅이 노릇을 하는 것은 우리가 등불이 없고 안목이 없어서 그것을 이해못하고 활용할 줄 몰라서 그런 것이다.

불법이라고 하는 것.

정말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성인의 가르침보다도 위대하고 우리 인생의 정말 주옥같은 지침이 되는 이 훌륭한 부처님의 법을 내가 알고 또 보다 더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하는 것.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법에 의해서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면은 정말 그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가 부처님의 심부름꾼이요.

부처님의 심부름을 하는 심부름꾼이라고, 얼마나 자랑스럽고 훌륭한 일입니까? 어릴때 초등학생이 선생님이 조그만한 심부름 하나만 시켜도 몇날 몇일 자랑꺼립니다.

몇날 몇일 자랑꺼리야.

“아 선생님이 나한테 이런 심부름을 시켰다고” 우리는 부처님의 심부름꾼이야.

부처님이 시키는 일을 우리가 몸소 한다면은 이것은 뭐 어릴때 담임선생님 무슨 작은 심부름시켜서 자랑으로 삼았던 어찌 그것과 비교하겠습니까? 그래서 불자가 된 것만으로도 이건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고 또 불자로서 더욱더 바른 이해를 가지고 진정 부처님의 심부름꾼 노릇을 제대로 한다면은 이건 뭐 정말 가문의 영광이고 대대로 집안의 행복과 행운은 말할 것도 없고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죠.

최소한 불법을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애착하고 그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아~ 나는 부처님 도량에 드나든다.

부처님 가르침을 믿는다.

아『금강경』을 읽는다.

아 이보다 더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이 세상에 또 어디있습니까? 정말 그런 환희심과 그런 기쁨으로 충만해 있으면은 그것은 곧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그 기쁨이 퍼져 나갑니다.

우리 모두 부처님의 그 위대하신 가르침에 더욱 깊이 빠져들고 애착하고 사랑하고 집착하세요! 집착! 불법에 집착하세요.

집착.

집착하지마라.

그거는 쓸데없는 곳에 집착하니까 집착하지 마라는 것이지.

불법에 집착하세요.

불법을 애착하세요.

그리고 불법속에서 무한한 환희심을 느끼고 그 환희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이시키세요.

전염시키세요.

다른 병균은 전염시키면 안되지만은 이 불법을 통한 환희심은 마음껏 전염시켜서 온 가족이 법희선열로써 늘 기쁘게 살아가고 또 가족과 친지들이 나하고 인연있는 인연가까운 모든 사람들이 모두 법희선열로써 그 기쁨속에서 살아가게 하고 보다 더 많은 도반들이 이러한 기쁨에 동참한다면은, 뭐 인생이란게 무엇이 따로 보람이 있고 기쁨이 그보다 더 나은 보람이 있겠습니까? 부디 새해에 더욱 씩씩하고 건강하고 불법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아주 용기백배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불법을 전하고 또 이 모임에 동참을 해서 곳곳에 인연닿은데 선행을 많이 하시는 그런 한해가 되기를 바라면서, 다른 살아있는 우리나 또 저기 모셔진 모든 영가나 불법의 그 위대한 인연을 통해서 모두 풍요롭고 지혜롭고 자비 넘치는 그런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 염화실, 범어사 화선회 초청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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