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을 쌌던 종이에 향내가 난다☆
어느 날 부처님이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던 중이었다.
부처님이 길가에 떨어진 종이 조각을 보고 저기에 떨어진 휴지가 무엇에 쓰였던 것일까? 하고 제자들 에게 물었다.
한 제자가 휴지를 주워 냄새를 맡아 보니 향내가 났다.
“이 종이는 향을 쌌던 종이인 것 같습니다.
종이에 향내가 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자 부처님은 그러냐는 듯 표정을 짓고 말없이 길을 계속해 갔었다.
얼마를 더 가자 이번에는 길가에 새끼토막이 버려져 있었다.
부처님이 다시 물었다.
“저 새끼토막은 무엇에 썼던 것일까?” 아까처럼 한 제자가 새끼토막을 주워 다시 냄새를 맡았다.
“세존이시여, 이 새끼는 썩은 생선을 묶었던 것인가 봅니다.
썩은 생선 비린내가 나고 있습니다.”
향기롭게 사는 것이 참된 삶 마음의 때 씻고 선업 지어야 이렇게 대답하자 부처님이 걸음을 멈추었다.
제자들도 걸음을 멈추고 무슨 말씀을 하실까 하고 귀를 기울였다.
“비구들이여, 선업을 짓는 사람이 있고 악업을 짓는 사람이 있다.
선업을 짓고 사는 사람은 향을 쌌던 종이가 향내를 풍기는 것처럼 그 사람의 마음에서 향기가 나오고 악업을 짓고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에서 악위가 나오게 된다.
향기 나오는 사람의 마음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대개 어떤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마음이 본래는 깨끗하지만 모두 인연을 따라 죄와 복을 일으키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을 가까이 하면 도의 뜻이 높아지고 우매한 이를 벗하면 재앙이 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종이가 향을 가까이 하였기 때문에 향내가 나고 새끼는 생선을 꿰었기 때문에 비린내가 나는 것과 같아서 차츰 물들어 친해지면서도 사람들은 그것을 잘 깨닫지를 못한다.”
부처님은 이어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쁜 사람이 남을 물들이는 것은 냄새나는 물건을 가까이 하는 것처럼 조금씩 미혹해져 허물을 익히다가 자신도 모르게 악한 사람이 된다.
어진 사람이 남을 물들이는 것은 마치 향에 쪼이며 가까이 하는 것처럼 지혜를 익히고 선을 힘쓰고 그대로 행실이 깨끗하게 된다.”
(법구비유경) ‘쌍요품’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인간의 성행과 악행을 향기와 악취에 비유한 것으로 향기롭게 사는 것이 삶의 참된 의미임을 설한 법문이다.
오탁악세의 혼탁이 인간의 심성을 자꾸만 오염시키는 오늘날의 세태를 생각해 보면 어떤 것이 인간의 참모습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모두가 정신없이 허둥대면서 자기 정체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문명의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이 문명의 병증에 깊이 중독되어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중독된 삶이란 결코 건강한 삶이라 할 수 없는 것임에도 해독의 처방을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내리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마음을 지혜롭게 쓰지 않는 불우한 상황에 처해 삶의 의미를 바로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에 걸려버린 것 같다.
매일 세수를 하며 얼굴을 씻듯이 마음의 때를 씻고 살면 선업이 지어져 세상을 향기롭게 할 것이다.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