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장참회, 수행으로 이뤄진다
-지안스님-
사람의 행위를 업이라 하고 이 업에 따르는 과보가 있다는 것이 업 이론의 주된 내용이다.
이른바 원인이 좋으면 결과가 좋고 원인이 나쁘면 결과가 나쁘다는 인과법에 의해 응보(應報)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보면 오랜 세월을 착하게 살아온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하거나 나쁜 짓을 많이 하고도 아무런 벌을 받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럴 경우, 혹 사람들은 인과를 믿지 않게 되어 선악은 인과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 말하는 수가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금생에 선한 일을 많이 했는데도 그 과보가 금생에 오지 않고, 반대로 악한 일을 수없이 했는데도 그 과보가 금생에 오지 않을 때 인과를 믿을 수 없다고 부정한다는 것이다.
(금강경간정기)에는 업의 과보가 나타나는 세 가지 유형을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업을 선악으로 구분하고 선도 악도 아닌 것을 ‘무기’라 한다.
그래서 선업 악업 무기업이라 부르며, 또 욕계의 선업을 복업(福業) 악업을 비복업(非福業), 그리고 색계와 무색계에서 닦는 선정을 부동업(不動業)이라 부르기도 한다.
업을 지어 놓고 그 과보를 언제 받느냐 하는 것은 주로 선업 악업을 두고 하는 이야기이다.
금생에 선악을 지어 금생에 고락을 받는 것을 순현보(順現報)라 하고, 금생에 지은 선악의 과보를 다음 생, 곧 내생에 받는 것을 순생보(順生報)라 한다.
그러나 금생의 선악의 업이 그 과보를 가져 오는 때가 내생 뒤의 다음 생, 곧 제3생부터 백천 생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정해지지 않은, 어느 생에 가서 받는 과보가 있다 하여 이를 순후보(順後報)라 한다.
이 세 가지 과보를 삼세보(三世報)라 한다.
또 업이 지어졌을 때 과보를 받는 때와 어떤 과보를 받을 것인가가 미리 정해지고 정해지지 않은 경우가 있다 한다.
이를 정업(定業), 부정업(不定業)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때는 정해졌으나 과보는 정해지지 않은 경우가 있고, 과보는 정해졌으나 때는 정해지지 않은 경우도 있으며, 때와 과보 모두가 정해진 경우와 모두가 정해지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업과 과보의 관계는 인과관계이면서도 묘한 불가사의가 숨어 있다.
어째서 정해지기도 하고 정해지지 않기도 하는가 하는 점이 불가사의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업이 무겁고 가벼운 경중이 있어 과보도 경중이 있는데, 무거운 업보를 초래할 업이 결과에 가서 가벼워지거나 소멸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미 지은 과거 선세의 죄업으로 악도에 떨어지게 될 과보를 받을 사람이 경을 수지 독송한 덕택에 악도에 떨어질 과보를 모면하고 남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는 가벼운 과보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금강경)에서는 말하고 있다.
바로 무거운 죄업이 가볍게 줄어들고 소멸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참회의 의미가 나온다.
다시 말해 내가 가지고 있는 선세의 죄업을 선을 짓거나 복을 닦음으로써 가볍게 줄어들거나 소멸시켜 가는 업장참회가 나 스스로의 수행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