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를 껴안아라
-현진스님-
현실의 고난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괴로움을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닭은 추우면 나무 위로 올라가고, 물오리는 물 속으로 들어가 추위를 피한다.
지금의 상황보다 더 깊이 몰입해서 고난을 전환한다는 것.
때로는 번뇌를 피하지 말고 삶의 일부분으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물코 하나를 당기면 그물망은 따라오는 법.
삶의 원리를 크게 통찰하면 세세한 번뇌는 우수수 떨어질 것이다.
우리가 어리석은 것은 번뇌를 다스릴 줄 몰라서가 아니라 번뇌의 원인을 파악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리석음의 근원을 정확히 알고 그 상황을 반전시키는 그것이 지혜이다.
그래서 삶의 지혜는 번뇌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더욱 필요한 가르침인지 모른다.
한자로 ‘탐낼 탐貪’ 자는 ‘조개 패貝’ 위에 ‘이제 금今’ 자가 있고, ‘가난할 빈貧’ 자는 ‘조개 패貝’ 위에 ‘나눌 분分’ 자가 있다.
이는 탐욕이 화폐를 계속 쥐고 있는 것이라면 청빈은 그것을 나눌 때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재물을 쓰지 않고 감추는 것은 스스로 소유의 골방에 갇혀 있는 꼴이다.
자신의 이익에만 빠져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지금의 일이 화를 불러올지 복을 불러올지를 알아야 한다.
당장의 이익에만 눈 멀면, 등 뒤에 숨어 있는 불행을 보지 못한다.
화는 눈덩이다.
자꾸 굴리면 커지지만 그냥 두면 작아져서 없어진다.
눈덩이가 녹고 나면 무슨 실체가 있던가.
화 역시 감정의 거품인 것이다.
따라서 화내는 자신을 알아차리면 화의 급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네들도 혀를 언제나 부드럽게 간직하게.
딱딱한 혀를 가진 사람은 남을 화나게 하거나 불화를 가져오는 법이니까.” “용서를 구할 때 받아 주지 않는 것도 허물이다.
원한을 품어 오래 두지 말고 분노의 땅에도 또한 머물지 말라” 이제 결론이다.
화를 냈다면 그 화를 알아차리고, 화를 참았다면 그 화를 지켜보아라.
그럼 둘 다 병이 되지 않고 용해된다.
이 말은 화낼까, 참을까, 이 둘을 가지고 고민하지 말라는 뜻이다.
“누구나 화를 낼 수 있다.
그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올바른 대상에게 화를 내는 것, 적당하게 화를 내는 것, 적절한 시기에 화를 내는 것, 올바른 목적을 위해 화를 내는 것, 올바른 방법으로 화를 내는 것,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