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장 큰 스님 영결식 중에 방광하는 모습] ●오고 감 없는 삶/법장스님● 진리에는 본래 태어남도 없고 죽음 또한 없으며 실상(實相)은 항상 머물고 있는데 어찌 여래(如來)에게 열반일(涅槃日)과 탄신일(誕辰日)이 있어 오고 가심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태양은 항상 스스로 밝은 빛을 내고 있는데 중생들이 공연히 진다 뜬다 하며 낮과 밤을 만든 꼴이요, 꿈속에서는 분명히 생사가 있으나 깨고 나면 꿈속의 생사가 거짓이듯 진리에는 생사가 없는 겁니다.
부처님께서는 인생과 우주에 본래 생사가 없는 도리(道理)를 설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인간이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방법이 아니라 우리는 본래 늙을 것도 죽을 것도 없는 영원한 생명이요, 전능한 존재라는 가르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생사대사(生死大事)를 깨달으시고, 우리에게 생사가 없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믿음도 부족하고 지혜도 부족해서 생로병사가 있다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무명연기(無明緣起), 12연기(十二緣起)에도 보면 생사라는 것이 무명(無明; 어리석음) 한 생각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금강경(金剛經)에 이르시기를, “수보리(須菩提)야, 어떤 사람이 말하되 여래가 온다거나 간다거나 앉는다거나 눕는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내가 설한 바의 뜻을 알지 못했음이니 무슨 연고냐? 여래란 좇아오는 바도 없으며 또한 가는 바도 없을 새, 그러므로 이름이 여래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여래의 실체가 이러할진댄 어찌 여래의 그림자만을 쫓고 있을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구시나가라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려 할 때 제자들이 울부짖으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우리는 무엇을 의지해야 합니까?”하고 여쭈니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마땅히 사법(四法)에 의지하여야 하리니 무엇이 사법인가 하면, 법(法)에 의지하고 사람(人)에 의지하지 않으며, 뜻(義)에 의지하고 말(語)에 의지하지 않으며, 지혜(智)에 의지하고 앎(識)에 의지하지 않으며,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료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하신 가르침이 열반경(涅槃經)에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열반에 들었다고 하면 육신의 멸함으로 알고 있는데 본래의 뜻은 번뇌를 끈 상태라는 뜻과 오고 감이 없는 상태, 취(取)할 것이 없는 상태, 부정(不定)이 없는 상태, 장애(障碍)가 없는 상태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부처님 열반일’을 맞이하여 사부대중(四部大衆)께서 부처님께 갖가지 공양물을 올리고 정성껏 기도를 올리시니 제가 진실한 공양에 대해서 장아함경(長阿含經)의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려고 누우시니 하늘에서 천신(天神)들이 예쁜 꽃과 훌륭한 과일을 바쳤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아난 스님(阿難尊者)에게 이르시기를, “여래에게 바치는 참다운 공양은 여래의 법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대중께서는 이 가르침을 명심하셔서 수행자의 몸과 마음으로 참다운 공양을 올리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 올리는 가장 아름다운 등공양(燈供養)은 우리의 마음에 지혜의 빛을 밝혀 부처님께 바치는 것이요, 가장 향기로운 향공양(香供養)은 우리의 마음에 중생을 향한 자비의 향기를 부처님께 바치는 것이니 이 몸이 초가 되어 부처님 전을 밝히고 이 몸이 향이 되어 부처님 전을 맑히는 공양을 올려야 가장 큰 공덕을 짓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게으름 없이 정진하여서 불과(佛果)를 맺는 것이 천신의 수승한 과일공양보다 더 위대한 공양이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지난 죄업을 참회하고 선업(善業)을 쌓아 자비로 피어나는 미소를 중생들에게 보낼 때 천상의 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 공양을 부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일체 형상이 있는 것은 영원한 것이 없으니 그저 스쳐 가는 바람으로 알고 꿈이고, 물거품이고, 그림자이고, 이슬 같고, 번갯불 같다고 생각하고 또 우리가 받고 있는 모든 고통과 고난과 번민이 모두 스스로 어리석음으로 시작하여 애착 때문에 일으킨 것임을 깨달아 스스로 놓아 버리고 벗어나야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 꼭 이렇게 되어야만 부처님께 진심으로 공양을 올리는 것이 되고 은혜를 갚는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불문(佛門)에 든 수행자들이 부처님의 열반에 드신 거룩함에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타종교의 지도자들보다는 초월적이고 감동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생사가 본래 없는 도리를 확실하게 깨달아서 생사를 초월해 언제 어디서나 걸림 없이 자유롭게 살다보니 죽음 또한 멋지게 맞이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 예로 저 중국의 등은봉 스님(鄧隱峰 禪師)께서는 세상을 떠나실 때 대중 스님들에게 “내가 알아보니 그 동안 앉아서 가고 서서 간 스님들은 많이 계시나 거꾸로 서서 떠난 분은 없으니 이제 내가 그렇게 가겠다.”
라고 하시고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가셨는데 신기하게도 몸은 거꾸로이신데 옷이 뒤집혀 흘러내리지 않았고 제자들이 아무리 당겨도 떨어지지 않으셨습니다.
잠시 후 선사의 누이가 되시는 비구니께서 “노형(老兄)은 평상시에도 율법(律法)을 잘 안 지키고 이상한 행동을 일삼아 대중을 놀라게 하시더니 돌아가실 때에도 대중을 현혹시키는 짓을 하십니까?”하고 미니 시신이 떨어져 넘어갔습니다.
우리도 생사의 근본도리만 깨달아 증득하면 갈 때를 스스로 알고 마음대로 때와 곳을 택해서 자유자재하게 대해탈의 세계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명철한 진리의 세계에서 보면 부처님탄신일이라고 기뻐할 것도 부처님열반일이라고 슬퍼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부처님의 크신 은혜를 찬탄할 뿐입니다.
끝으로 불교의 역사를 나타내는 불기(佛紀)는 부처님 열반하신 해를 기원(紀元)으로 하는 것을 알려 드리니 이를 입멸연대(入滅年代)라 합니다.
-전 조계종 총무원장, 열반에 드신 법장스님의 부처님열반재일 법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