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스님 법문

■복밭 가꾸는 것도 믿음에서 출발해야■ 지성스님 동화사 주지 ‘백고좌 법회의 공덕’ “복밭 가꾸는 것도 믿음에서 출발해야”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기도하는 현대인들.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면서 살고 싶지만 바쁜 현실 속에서 불자의 삶을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지역의 불심을 한데 모으고, 불자들에게 고승대덕을 친견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을 넓혀주고자 대구 동화사는 백고좌 법회를 개최해 큰 호응을 얻었다.

동화사 주지 지성스님에게 백고좌법회의 의의와 현대인의 올바른 신행활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힘은 믿음까지 고취시켜줄 수 있는 불교공부가 디딤돌이 될 때 생깁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간사에 몸을 맡기다 보면 부처님의 깨달음도 바쁜 일상속에 끼어들 틈이 없는 듯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의 흐름에 쫓기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혼란과 갈등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한 어려움들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부처님께 의지하고 부처님 법을 따르는 것이겠지요.

불자들을 만나보면 흔히 “불교를 믿고 있긴 하지만 불교에 대해 아는 건 없다”고 합니다.

특히 불교의식에서부터 부처님이 말씀하신 가르침이 너무 방대하여 어디서부터 어떻게 배워야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부처님 말씀에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고, 사람으로 태어나서도 불법을 만나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부처님 법을 만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불자의 올바른 신앙생활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불자다운 신앙생활은 믿음과 배움, 실천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것이지요.

부처님이라는 개인의 능력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법회를 통해 배우는 것이지요.

《화엄경》에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한국불교에 있어 불자들의 신행모습은 자신의 소원성취를 위한 기복신앙의 형태로 지난 50여년간 지속되었습니다.

불법을 수호하기는 했지만 정작 부처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는 말씀입니다.

불교는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으로 다스려 마음의 얼룩을 지우는 수행의 종교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한국 불교를 기복신앙, 치마불교라고 폄하하면서 불교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는 기복불교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의 본질은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되고 학문적인 지식은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을 지어 복밭을 가꾸는 일도 중요한 수행의 과정입니다.

종교는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염원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고3 수험생을 가진 학부모들은 오로지 대학입학이라는 소원을 부처님께 올립니다.

그 소원을 가슴 깊이 품고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지요.

자식의 대입합격이라는 일념으로 염불이든 절을 하면 그것만으로도 부처님을 믿는 마음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고, 불법을 깨달아 윤회의 고리를 끊는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녀의 앞날을 위한 기도로 부처님과 인연을 맺었다면, 기도하는 가운데 그 생각조차도 떨쳐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처음에는 자녀의 앞날을 위한 기도로 부처님과 인연을 맺었다면, 기도하는 가운데 그 생각조차도 떨쳐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부처님께 의지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마음의 준비, 즉 불심이 가슴속에 진동한다면 그 다음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일이겠지요.

불심이 바탕에 깔려있지 않으면 불교를 배우는데 있어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입니다.

부처님께 복을 구하는 행위도 불교의 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믿는 마음만 가지고는 불교를 다 알았다고 할 수 없겠지요.

오히려 복을 바라며 부처님을 찾는 일이 전부가 된다면 불교의 진정한 가치를 외면하는 일이 되겠지요.

불자들이 불법승 삼보를 외호하고 절에 와서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우리나라 불자들의 신심은 나무랄 데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이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들의 신행생활은 변해야 합니다.

불자들이 절에 가서 불사에 동참하고, 부처님 전에 앉아 염불소리만 듣고 집에 돌아와도 그 공덕은 뭐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염불소리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절은 왜 하는 것인지 알고 행한다면 사찰에 가서 법회를 봉행하는 시간이 바로 깨달음으로 향하는 정진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불변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불자들의 모습은 바뀌어야 합니다.

본질은 본질대로 지키고 변화는 수용하면서 현대사회에 발맞추어야 합니다.

세계를 이끌 수 있는 불교가 우리 곁에 있지만 불자들은 그 불교의 우수성을 잘 모릅니다.

앞서 나가야 할 불자들이 변화에 이끌려 다녀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 불자들은 복을 짓는 것도 대승의 차원에서 지어야 합니다.

사회문제나 나랏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나의 작은 관심과 행동이 전체를 바꿀 수 있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우선 불자들이 이 시대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불교를 알아야 합니다.

불교를 공부하려거든 벼랑 끝에 선 자세로 매섭게 몰아부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사는 모습이 위태롭기 그지없다는 뜻이지요.

《법화경》 〈비유품〉에 따르면 부처님께서는 윤회하는 중생들의 삶을 불타는 집에 비유하셨습니다.

집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을 버젓이 보면서도 불이 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불에 타 죽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무지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 어느 때보다 정견(正見)이 필요한 때입니다.

세상을 바로 볼 줄 아는 힘은 단순한 알음알이식 공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의 시발점이 됐던 믿음까지 고취시켜줄 수 있는 불교공부가 디딤돌이 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바로 우리 불자들이 노력해야 할 올바른 신행생활입니다.

-만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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