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과 물로 사방이 막힌 이곳에 와서
그 때 그 어린 임금처럼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나를 보았어요
나무계단 돌계단 간신히 올라
천 길 낭떠러지 앞에 발 돋우고 서서
서강 물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햇빛소나기를 보았어요
햇빛소나기 따라
빨려 들어가는
내 몸뚱이, 그 몸뚱이의 살과 피를 보았어요
그 물빛 감옥 속에 나를 버리고서야
관음송 맨 꼭대기 연약한 가지 끝에
자울자울 졸던 가을햇살이
잠시, 아주 잠시
아직도 낭떠러지에 서 있는
내 마음 속으로 쑤욱 들어가
집 한 채 짓는 것을 보았어요
아주 잠깐, 또 다른 적막의 집 한 채를 보았어요
아, 적멸보궁이었어요
하 영 文殊華(시인, 반야불교학당) 글. 월간반야 2008년 5월 제9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