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한등독불경 一穗寒燈讀佛經 한 촉 차가운 등불에 불경을 읽다가
부지야설만공정 不知夜雪滿空庭 밤눈이 빈 뜰에 가득 내린 줄도 몰랐네
심산중목도무뢰 深山衆木都無籟 깊은 산 나무들은 아무런 기척 없고
시유첨빙타석상 時有檐氷墮石牀 처마 끝 고드름만 섬돌에 떨어지네
시를 쓰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계절의 서정을 깊이 느낀다. 물론 감상이 남달리 풍부한 탓도 있겠지만 내면 관조를 통한 사물의 관찰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깊은 밤 절간 방에서 불경을 읽고 있던 어떤 스님이 있었다. 간경삼매에 빠져 밤이 깊은 줄도 몰랐다. 밤중이 훨씬 넘은 시간이 되었는데 밖의 기척이 여느 때와 사뭇 다른 것 같다.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던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고 가끔 처마 밑에서 울던 풍경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왜 이리 조용할까? 잠시 밖에 귀를 기울였더니 섬돌 위에 무엇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 살며시 문을 열어보았다. 처마 밑에 달려 있던 고드름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떨어져 부셔지는 소리였다. 산중의 한겨울 눈 오는 밤의 풍경이 정적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시이다.
이 시의 작자 혜즙(惠楫1791~1858)은 이조 말엽의 스님으로 교학에도 밝았고 선지도 출중했다. 호를 철선(鐵船)이라 했으며, 14살에 대흥사에 출가하여 제방을 다니면서 경전을 수학하고 20년을 강의를 하며 수많은 학인들을 가르치다가 다시 20년 동안 좌선을 익혔다. 학식이 뛰어났고 글씨도 잘 써 다방면의 재능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조용한 생애를 살아 이름을 내는 것을 싫어하였다. 철종 9년에 입적하였는데 문집 1권이 남아 전한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5년 12월 제6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