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조 홍인의 10대 제자 중에 혜안국사(642~709)의 법을 이은 파조타(破竈墮) 화상은 생몰 연대를 확실히 알 수가 없으나 , 그의 이름이 그렇게 불리어진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스님이 하루는 제자들을 동반하고 어느 산언덕 사이로 들어갔는데 한 신당(神堂)이 있었습니다. 그 당 안에는 부뚜막이 안치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기도하면 영험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여, 원근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어 제사가 그치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물(祭物)로 그 부뚜막에 걸린 솥에 많은 생물들이 삶겨 죽임을 당했습니다. 시자를 데리고 들어선 스님은 주장자로 부뚜막을 세게 세 번 두들기고 호통을 쳤습니다.
“너는 본래 벽돌과 흙으로 이루어진 것일 뿐인데, 성스러운 영(靈)이 어디서 왔으며 신령스러운 효험은 어디서 일어나 이렇게 많은 생물의 목숨을 손상하느냐” 하고 꾸짖으면서 주장자로 또 세 번 두들기니 부뚜막이 바로 기울어져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 한 푸른 옷에 높은 관을 쓴 사람이 나타나 스님 앞에 절을 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본래 이 신당의 조왕신(竈王神)입니다. 오랫동안 업보를 받고 있다가 오늘 스님의 무생설법(無生說法)을 듣고 이미 이곳을 벗어나 천상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뵙고 감사 드립니다” 라고 말하자, 스님이 말씀하시길, “이는 너의 본래 가진 성품일 뿐, 내가 지어내어 한 말이 아니다”라고 말하자, 신은 다시 두 번 절하고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스님에게는 부뚜막(竈)을 파했다 해서 ‘파조타’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위 파조타스님의 고사(故事)에서 우리들이 눈여겨 볼 것은 본디 부뚜막이란 벽돌과 흙으로 이루어 진 것으로 원인(因)과 조건(緣)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사고와 인식들도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일 뿐인데, 여기에 온갖 잡다한 것들을 넣어 삶기도 하고 때로는 볶기도 하며 갖가지 알음알이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집착하는 마음, 고정된 마음, 분별하는 마음을 부수어 무너뜨릴 때만이 우리의 본래면목은 자연히 들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하면 무심한 선의 절대경지에 들어가서 모든 들리는 것이 무생법문(無生法門)으로 들리게 되어 무심한 선의 절대경지에 들어 청정한 본래심을 직접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해스님(동국대강사) 글. 월간반야 2005년 8월 제5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