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볕이 좋은 오후,
흰 목덜미를 말리는 해안선이 있는 곳으로 마실을 갔다가, 한쪽 귀퉁이로 밀려난 해당화를 보았습니다. 버림받은 아이처럼, 가출 소녀처럼, 노숙자처럼, 태풍에 밀려온 지푸라기를 이불 삼아, 쓸쓸하고 적막한 세월의 한 귀퉁이를 가을볕과 함께 기도하듯 밝히고 있었습니다. 지난여름, 온몸으로 비바람을 막아주던, 방풍림의 노고에, 죽을 힘 다해, 가장 따뜻한 불을, 잠시나마 지피고 싶었나 봅니다.
간절한 마음이 길을 낸다고
향기로운 길이 되어 기쁨 된다고
물빛도 산빛도 나비처럼 날아와
연인처럼 속삭이며 작은 등燈을 답니다.
그동안 참 고마웠다고
오랜 고단함속에서도
더러는 행복한 날들도 있었었다고
아주 가끔, 내 불빛이 나를 안아주기도 합니다.
文殊華 하영 시인 글. 월간 반야 2010년 12월 1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