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몹시 부대끼는 날
어머님은 맷돌을 돌리셨다
노란 콩이 반쪽으로 갈라지고
곱디고운 가루가 될 때까지
아무 말씀도 않으시고 맷돌을 돌리셨다
때때로 매화나무 가지에 까치가 와서 울고
먼 데선 쑥국새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할아버지 글 읽는 소리
사랑채 문풍지를 빠져나와
솟을대문을 열고
팔작지붕 위로 훌쩍 날아
봄 하늘 송화가루같이 창공을 날아오르면
어머니는 옥양목 앞치마에 이마를 닦으시고
참나무 숯불을 발갛게 피워
놋쇠주전자에 찻물을 끓이셨다
마음이 맑아지는, 향기로운 찻물로
어둡고 비좁은 내 방을 가득 채워 주셨다
어버이날 아침
작설차 한 잔 정성들여 끓여 놓고
찻잔을 들여다본다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 위에
일흔의 나이테가 색색으로 그려진다.
文殊華 하 영(시인. 마산반야학당) 글. 월간반야 2009년 3월 제100호
* 이 시는 하영 시인의 제3시집 『자귀꽃 세상』 (1997, 문학아카데미)에 실혔고, 2008년 한국시인협회 시화집, 가족사랑시집 『사철 푸른 어머니의 텃밭』에 재수록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