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부질없음 일깨운 대승경전
눈물은 슬픔을 정화시키는 소리없는 말이라고 하는데 모두들 뭔가의 반작용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재난을 부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슬프게 하고 눈물짓게 하는 모든 고통의 원인도 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모르는 데서 비극이 싹트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대승경전 가운데 《관무량수경》의 내용도 바로 비극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삼아 설해지고 있음은 우리들로 하여금 고금(古今)의 거리를 좁혀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한없는 욕심이 측은한 느낌마저 주고 있습니다.
《관무량수경》은 《무량수경》 《아미타경》과 함께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라 불리우고 있는데, 때로는 《관경(觀經)》이라 약칭으로 부르고도 있습니다.
범본과 티베트본은 산실되어 버리고, 오직 5세기에 강량야사(畺良耶舍)가 번역한 한역본만이 현존하기 때문에 그 성립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토삼부경’ 중에서 가장 발전된 사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대략 4세기경의 성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명(經名)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경전은 극락정토의 장엄함과 그곳에 주재하시는 무량수불(無量壽佛)과 좌우에서 보좌하는 보살이신 관음(觀音), 세지(勢至)를 생각하는(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생각한다(觀)는 말에는 두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극락정토를 머리 속에 떠올리는 관견(觀見)이요, 다른 하나는 무량수불 즉 아미타불에 귀의하여 구원을 받는 타력신앙의 관지(觀知)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경전의 내용을 보면 이러한 사상을 매우 비극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펼치고 있는데 바로 ‘왕사성의 비극’이라고 하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드리면, 부처님께서 기사굴산(耆사굴山)에 계실 때, 왕사성의 빈바사라왕과 왕비 위제희(韋提希)는 슬하에 자식이 없는 것이 오직 근심이었는데, 어느 날 예언자를 불러 물어보았더니 숲 속에 살고 있는 선인이 3년 후에 죽으면 왕자로 환생한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자 그들은 3년을 참지 못하고 선인을 죽여버리지요.
그로부터 왕비는 곧 임신을 하였고 산달이 다가오자, 왕은 또다시 예언자에게 태아의 장래를 물어봅니다. 그러자 태중의 아기가 왕자임에는 틀림없지만 부모에게 말도 못할 증오심을 품고 있다는 겁니다. 왕과 왕비는 선인을 죽였던 일이 생각나고 마침내 공포에 사로잡혀서 태어나는 즉시 아기를 죽여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핏덩이 아기는 새끼손가락 하나를 잃었을 뿐, 시녀들의 도움으로 숨겨져 자라게 되었는데 이러한 사실이 왕과 왕비에게 알려지고, 그들도 귀여운 아들을 보는 순간 부모의 정이 되살아나 ‘아사세’란 이름을 지어주고 태자로서 양육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자, 태자는 격렬한 복수심을 가지게 되고 거기에다 ‘제바달다’의 충동질로 인해 부자상극(父子相剋)의 비극이 일어나게 됩니다.
즉, 아사세는 아버지를 유폐시키고 옥을 지키는 경비병 외에는 일체의 출입을 금지시키지만 어머니에게만은 하루에 한번씩 면회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지요. 그러자 면회 때마다 왕비는 깨끗하게 목욕을 한 다음 밀가루와 꿀로 버무린 음식물을 온몸에 바르고 가서 왕에게 먹게 하였는데 어느 날 탄로가 나게 됩니다.
화가 난 아사세는 아버지를 굶주리게 하여 자신의 살을 베어먹다 죽게 하고 어머니마저 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비로소 어머니는 업보의 무서움에 몸서리를 치고 후회를 하게 됩니다. 원래 후회란 항상 ‘느림보’여서 언제나 모든 일의 제일 끝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기쁨이 후회를 만나면 그 기쁨은 끝이 난 것이고, 슬픔이 후회를 만나면 그 슬픔 또한 끝이 나기 마련이지요.
한편 아사세는 부친을 살해한 후에 창독이 올라 죽어가게 되었을 때 부처님을 만나 자비로 구제를 받게 되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경전에서는 범부 왕생의 십육관법(十六觀法)을 통해서 악인도 구제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악한 사람에게도 불성(佛性)은 있고 또한 그들이 누구보다도 먼저 구제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이 미타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현실적으로는 최고의 신분이라 할 수 있는 왕비 위제희 부인을 근기가 가장 낮은 범부로 설정함으로서 진리에 대한 인간의 수용능력은 결코 신분이나 지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