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경전들이 언제, 어디서, 어떠한 연유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두가 궁금해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4대종교 중에 어느 교조도 자신이 써서 남긴 글이나 저서는 없으며, 다만 그 분들의 가르침과 위대한 정신이 제자들의 손에 의해 정리되어진 것뿐입니다. 불교의 경전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독송하거나 연구하고 있는 수많은 경전들이 한꺼번에 만들어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경전이 성립되기까지에는 여러 차례의 경전편집회의(結集)를 거쳐서 정리되고 정비된 것입니다. 그간의 사정을 잠시 살펴보기로 하지요.
부처님의 입멸소식을 전해들은 가섭존자는 부처님이 입멸하신 쿠시나가라로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부처님의 입멸소식을 듣고 슬픔에 빠져있는 수많은 수행자들을 만났지만 그들을 달랠 겨를도 없이 길을 재촉하여가고 있을 때, 한 사람의 수행자가 소리를 쳤습니다. “아, 기쁜 일이로다. 우리들에게 사사건건 잔소리만 하던 석존이 이 세상을 떠났다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없는데, 무엇을 그리 슬퍼한다는 말인가?” 이 말을 들은 가섭존자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제자들이 있는데 하물며 후대의 사람들이 전해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얼마나 왜곡될 것인가? 하는 점에 생각이 미친 가섭존자는 “하루빨리 정법(正法)을 정리해두지 않으면 안되겠구나”하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다비식이 끝나고 나서 얼마 후, 왕사성 교외에 있는 칠엽굴(七葉窟)에서 오백명의 제자들이 모여서 첫 경전편집회의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가섭존자가 회의를 주재하였고,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經)은 다문제일(多聞第一)인 아난(阿難)존자가, 교단의 규칙인 계율은 지계제일(持戒第一)인 우바리(優波離)존자가 암송하였는데 오백대중들이 이를 듣고서 부처님의 설법과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증명하였습니다.
그 때 아난존자는 “이와같이 나는 들었습니다”라고 전제하고서 자신이 들었던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암송하였기 때문에 모든 경전의 첫머리는 반드시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전편집회의가 인도에서만 4차례 행해졌는데, 그 세 번째 회의에서 비로소 문자화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경전은 지금처럼 종이에 쓴 것이 아니라 종려나무과에 속하는 다라(Tala) 나뭇잎을 사용하였답니다. 이 다라나무잎을 패엽(貝葉)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기록한 경전을 패엽경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