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행의 한 방법에 주력(呪力)이라 하는 것이 있다. 주술적인 힘을 의지하여 마음의 영성(靈性)을 밝혀 깨달음에 이르는 신비한 공부법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비밀스러운 가르침이라는 밀교(密敎)의 수행법이라고 하면서 이를 의지하여 본격적으로 수행하는 종파들 이름에 총지종, 진언종, 심인종 등의 이름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밀교도 대승불교의 한 전통으로 내려왔으며 티베트의 불교가 밀교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원래 종교 신앙에 있어서 기도를 하여 소원을 빌고 복을 비는 것은 원시적이자 원형적인 인간 심리라 할 수 있는 모습이다. 어떤 초자연적인 힘이 있어 불가항력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다. 이 때 부처님 등 숭배의 대상에 간절한 믿음을 가지고 초자연적인 위신력을 구하여 자신이 보호되고 또 어떤 이익이 오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주력신행의 요지이다.
이 주력을 할 때 외는 말을 진언(眞言)이라고 부른다. 이는 가슴 속에 있는 가장 진실한 것을 말한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사실 사람의 가슴 속에는 누구에게나 자기 진언이 숨어 있다. 무엇인가 절절히 가슴에 맺혀 있는 비원 같은 것이 숨어 있다. 때로는 자기 생명의 불꽃을 연소시키고픈 지극한 원이 남아 있어 이것 때문에 내가 살고 있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선(禪)의 이치에서 말할 때는 우리 마음 자체가 진언이 된다. 내 마음이 내 진언이라는 말이다. 때문에 마음 없는 중생이 없는 것처럼 진언 없는 중생이 있을 수 없다.
절에서 불공이나 기를 드릴 때 필수적으로 독송하는 경전을 『천수경』이라 한다. 이 경은 기도의례용 경으로 여기에는 여러 가지 진언이 나온다. 중요한 진언이 ‘신묘장구대다라니’라는 긴 진언이지만 그 외에 짧은 진언이 8개가 들어 있다. 제일 처음 나오는 ‘정구업진언’에서부터 ‘준제진언’에 이르기까지 여러 진언이 나오는데 이 가운데 ‘참회진언’이라고 이름을 붙여 놓은 진언이 있다.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라는 범어를 음독(音讀)하는 이 진언은 스님들이나 신도들이 계를 받을 때 반드시 독송하는 진언이기도 하다. 이 진언은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이름그대로 참회하는 진언이다.
나는 한 때 출가하여 스님이 되고부터 이 진언을 무던히 외운 적이 있다. 그것은 세속의 인연에서 지은 불효의 죄를 참회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나 때문에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고, 속가 형도 내가 도와주지 못하여 일찍 죽었다고 생각하고 윤리적 죄책감을 많이 지고 살아왔다. 그 뿐만 아니라 남에게 은혜지고도 갚지 못할 때도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매일 기도시간마다 이 참회진언을 외웠다. 소리 내어 외는 것은 물론 속으로 늘 이 진언을 중얼거리며 살다시피 하였다. 지금도 나는 미안한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진언을 곧잘 읊조린다. 정말 내가 지은 죄업이 어느 정도 인지 모르지만 나는 이 진언으로 내 모든 죄업을 소멸하고 싶다.
공자는 사람의 수신(修身)을 위하여 ‘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는 말을 『논어』에 남겨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을 반성하라고 하였다. 반성이 없는 생활은 도덕이 무너지는 무서운 결과가 야기되어 개인은 물론 사회가 함께 불행의 도가니에 빠지는 결과가 야기된다. 진정한 마음으로 반성하여 참회할 때 선근과 공덕이 키워지며, 자기 이익과 행복을 보장 받는 법이다.
축구 경기장이니 야구 경기장의 스탠드에 수많은 관중이 모여 경기를 지켜보며 응원을 하기도 하고, 경기 자체를 즐기기도 하듯이 나는 가끔 산중절간에 앉아 뉴스를 듣고 신문을 보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관중석의 구경꾼처럼 구경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 와서 느끼는 것 하나가 우리사회가 반성을 모르고 사는 것 같은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다. 각종 비리에 연루된 소식들이나 부정부패에 관련된 소식을 들으면 그러한 사건이 터진 것도 답답한 일이지만 사건 주변의 연관된 사람들의 반성 없는 행동에 더 실망을 금치 못한다. 우리 사회가 반성이 실종된 사회가 되었는가? 연일 떠들썩했던 불교계의 부끄러운 사건소식도 그렇거니와 정치계 등 사회지도층의 오염된 모습 또한 반성이 없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작금의 사건 소식들로 매스컴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기분 나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정말 참회진언이라도 외우도록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잘못이 있건 없건 우리 모두 참회의 진언 합창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회진언은 깨달은 지혜를 빨리 얻게 해 달라는 어원의 뜻이 들어 있는 말이다. 어서 깨달은 지혜를 얻어 영광이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깨달은 마음은 반성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개인의 문제를 반성하여 고치고, 사회적 문제도 반성을 통하여 개선되어 향상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영광스러워질 수 있다.
아! 일체의 지혜를 깨달은 중생들이여, 영광이 있으소서. ‘옴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11월 제84호